'포월자' 예수를 묵상함 - 김진석의 '초월이 아니라 포월'
우리는 부처도 예수도 아니고, 노자도 공자도 아니다. 고승도 아니고 성자도 아니고 현자도 아니다. 더 이상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 되려고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다만 겨우 기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도사가 될 수도 없고 또 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나 이 조금씩 기고 있음은 몰락과 퇴락의 제스처가 아니다. 낮은 데서 기는 우리의 몸과 마음은 새로운 차원의 넓이와 깊이와 거리를 가진다. 거의 제자리에서 머무르는 듯하지만 매우 멀리 간 것과 같고, 너무 느리지만 너무 빠른 것과 같고, 너무 작지만 너무 큰 것과 같고, 너무 얕지만 깊다. 기지만 넘어가기 때문이다. 넘어갔다 다시 오면서 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월은 안 하지만 포월을 하고, 해탈은 안 하지만 탈을 한다.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고 할 필요도 없지만, 거룩한 포월의 길을 간다. (김진석, 『초월에서 포월로』솔, 1994)
* 김진석 서울대, 프라이부르크대,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인하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탈형이상학과 탈변증법』『초월에서 포월로』등이 있으며 계간 『사회비평』주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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