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믿음을 묵상함 - 김요일의 시 '체 게바라에게' 친구, 잘 있었나 어딘지 알려줄 순 없지만 국경 너머의 외곽 도시에 와 있네 벌써 몇 년 됐지 가끔 쓸쓸하기도 하다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술도 있고 여자도 있다네 주일이면 시골 성당 성가대에 앉아 Miserere mei*, Miserere mei 찬양하고 있어 세상을 살해하지도 못하고 떠돌다 이곳에 흘러든 건 혁명에 실패해서만은 아니지 인간은 용서받기 위해 존재하나 봐 결혼 한 번 못해본 검은 옷의 녀석들에게 고해를 하진 않지만 Miserere, miserere 화음을 맞추다 보면 불협의 대위법으로 어깃장 놓던 잔인하고 불량했던 진압군 시절마저 용서받는 기분이 드니까 성경책을 넘길 때 비릿한 슬픔이 책장에서 풍겨나는 까닭은 우리 손에 배었던 죄 냄새가 묻어있기 때문이야 신이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 눈이 마주치면 입가에 살짝 미소를 걸어주지 찾지 마 잊지도 마 이곳에서의 이름은 이방인 K, 아직 담배는 끊지 못했어 (김요일·시인, 1965-) * '긍휼히 여기소서'라는 뜻의 라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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