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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관은 종교에서 유래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정치관
 
정연복   기사입력  2009/12/29 [17:07]
 나는 사람의 마음이나 사회가 사회, 정치 그리고 종교 등의 부분으로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분야는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삶은 쪼개질 수 없는 전체이므로 윤리와 정치, 그 밖의 다른 모든 부문 사이에 서로를 가르는 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을 속여서 재산을 얻는 상인이 약간의 돈을 종교적인 선한 일에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데 성공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정신 생활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이러한 삶의 양면은 얽히고 설킨 긴밀한 관계에서 움직인다.
 
정치가로서의 나는 한 번도 내가 하는 결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오늘날 정치가 마치 뱀의 또아리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을 둘러싸고 있어 아무리 애써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1894년 이래로 계속 그런 뱀을 물리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기적인지는 몰라도 나는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나의 동료들과 함께 종교를 정치 세계로 도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보편적이면서도 모든 존재를 보살피는 진리의 정신과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아주 보잘것없는 피조물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면 삶의 어느 부분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믿음은 나를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나는 주저없이 종교와 정치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종교가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스스로 인류 전체를 나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종교적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이며, 내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전체 인류를 나와 동일시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요즘 우리 생활의 구조는 모두 어우러져 있어 나눌 수 없는 전체를 만든다. 우리는 정치, 종교, 경제, 사회적인 문제들을 따로 떼어서 다룰 수가 없다. 나는 사람의 생활과 떨어진 종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모든 우리 행동의 도덕적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런 기준이 없을 때 우리의 삶이 무가치하게 변하여, 의미 없는 불만과 함성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을 막아준다.
 
나는 사회적인 사업에 참여하면서 정치를 생각하지 않고는 일을 진행시킬 수 없음을 알고 어쩔 수 없이 정치 세계에 발을 딛게 되었다. 나는 정치활동은 사회적·도덕적 발전을 의식하면서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 사회에서 정치와 연결되지 않는 생활은 없다.
 
나에게 종교를 떠난 정치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추하고 피해야 할 일이다. 정치는 국사(國事)를 다루지만. 그런 국가사업 중에 복지에 관한 사업은 종교에 전념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관심을 두고 노력해야 하는 사업이다. 나에게 신과 진리는 서로 바꿔 쓸 수 있는 말이다. 만약 거짓의 신이 있고 고통의 신이 있다면 나는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를 통해서도 하늘나라를 세워야 한다.
 
나는 나의 정치가 부패하지 않았을 비폭력주의나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나의 내면 세계와 정치 활동을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한순간도 종교를 떠나서 살아갈 수 없다. 나의 많은 동료들은 나의 정치관조차 종교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알고는 큰 실망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들의 시각은 틀리지 않는다. 내 정치관이나 그 밖의 모든 나의 활동은 종교에서 유래한다.
 
더 나아가 나는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든 행동을 종교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신에 예속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신이 우리의 모든 호흡을 지배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진실로 우리의 모든 행동에 스며들어야 한다. 여기서 얘기하는 종교는 종파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다스리는 조화로운 어떤 도덕 체제에 대한 믿음을 가리킨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진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종교는 힌두교나 이슬람교, 기독교 등의 종파를 초월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러한 종파를 무시하지 않으며 그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하며 그들의 진실성을 뒷받침한다.
 
수백만 민중의 생활이 내 정치 영역이며, 나는 내 평생의 일이나 신을 부정하지 않고는 민중의 생활로부터 내 자신을 분리시킬 수 없다. 나는 정치 노선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그래야만 하는 환경의 형편에 따르는 것이다.
 
내가 조국보다 종교가 소중하다고 말할 때는 나름대로 뜻이 있다. 나는 먼저 힌두교도이며 민족주의자는 그 다음이다. 나는 다른 어느 민족주의자와 비교해도 민족주의자로서는 뒤지지 않는다. 내 말의 뜻은 내 조국의 이익은 바로 종교의 이익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자신의 구원을 인도 전체의 구원보다도 더 귀중하게 생각한다고 하는 것도 내 개인의 구원을 위해 인도의 정치적 해방이나 그 밖의 다른 사람의 구원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나의 뜻은 양자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종교는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신 사이의 문제다. 국가 문제에 있어서는 어떠한 종교를 믿든 간에 인도가 모든 행동의 처음이고 마지막일 수밖에 없다.
(마하트마 간디 ·1869-1948)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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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2/29 [17:0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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