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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할 자들과 살 자들, 촛불을 위하여
[벼리의 세상보기] 권력과 그 기생충들에게 얼음과 불의 날들 되게하자
 
벼리   기사입력  2008/07/04 [03:56]
가장 무서운 것은 영하 천도의 삼엄함이다.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매서운 눈빛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에게 그런 눈빛을 보내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존엄을 헤치고, 그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집단에게 냉엄하다. 하나일 때는 모른다. 둘 일 때, 셋 일 때, 그리고 비로소 너나 할 것 없이 거대한 힘으로 자신을 확인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누구냐? 우리가 너희에게 뭐라 했더냐? 그것을 너희는 잊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생사가 갈린다. 죽어야 할 자들과 살 자들. 권력과 그 기생충들, 촛불은 그렇게 완전히 갈라진다. 여기에는 어떤 것이 진실인가보다 어느 누가 정당하며, 어느 누가 힘의 원천인지가 중요하다.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일 뿐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권력을 맡겼으며, 믿었으며, 마침내 배신당했다. 우리가 힘의 원천이며, 자존감을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그 권력을 접수할 수 있으며, 이제 그것을 해내고 있다.
 
영하 천도의 삼엄함. 저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설익은 열기를 저들은 비웃는다. 마침내 입이 찢어지고서야 제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 입을 찢어 버리고, 살점을 도려내는 것은 영하 천도의 얼음칼이다. 냉엄한 눈빛은 정신의 반영이다. 삼엄함은 정신의 분위기며, 그로부터 무기가 나온다. 빙점 아래에서 태어난 무기를 벼루어야 한다. 가장 냉정한 가슴에서 무기를 꺼내야 한다. 저들을 속속들이 알고, 약점을 치며, 뼈가 드러날 때까지 그것을 발라내자. 그리고 죽음을 허락하지 말라. 세세연연 치욕 속에 버려두라. 우리가 저들의 숨통을 조이면서 끝내 고통만을 허락하는 것은 죽음으로서 부활하는 저들의 속성을 알기 때문이다. 권력을 통해 스스로를 치장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저들의 더러운 속성을 알기 때문이다. 다시는 그 권력을 쥐지 못하도록 부활이 허락된 죽음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도록, 전신에 쩡쩡 얼어붙는 단 한 뼘의 공간만을 남겨 두고, 얼음벽 속에 가두어야 한다.
 
망명을 허락하지도, 권좌에서 물러나게도 하지 말라. 다만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세기 동안 이 땅에서 불안에 떨도록 함이 올바르다. 그리고 때가 무르익었다면 그들을 태울 것이다. 철을 녹이는 불길로 단번에. 그러나 마찬가지로 죽음을 허락하진 말자. 불길에 휩싸여 있는 동안 스스로의 천한 신분을 깨달을 수 있도록, 그 권력이 누구로부터 왔는지 똑똑히, 고통 속에서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의 명줄을 아껴 주자. 그들의 자손들이 그것을 보고 침을 뱉도록, 모든 시민들이 그것을 통해 망각했던 스스로의 힘을 느끼도록. 태우고 또 태우고, 태울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분노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분노는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도구가 있다면 그것은 맑고 순정한 잔인함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하는 힘이다. 저들이 당황하는 것과 저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통해 우리의 힘을 확인하는 것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기술이며, 기민한 정신의 결과이며, 우리 권능의 발휘이다. 그래서 우리는 저들을 살려둘 것이다. 촛불의 공포 속에 살도록, 그리고 언제 불탈지 모르는 저들의 초라한 움막에서 노예처럼 벌벌 떨며 기거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므로 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법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저들의 법은 낡았다. 그것은 우리가 오랜 과거에 그들에게 부여해 준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에 기생하면서 오로지 그 법이 자신의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믿는다. 얼음벽에서 옴쭉달싹 못하면서, 불길 속에 타면서 그들은 서서히, 또한 어느 순간 깨달을 것이다. 그 법이 새로운 법에 의해 대체 되었으며, 애면글면 품에 안고 있던 낡은 법이 스스로를 태우는 불쏘시개가 되었음을 말이다. 그들을 죽게 만들어서는 그 깨달음을 주지 못한다. 살려 두라. 살아서 느끼게 하라.
 
마침내 저들에게 고통이 선물이 되도록 하자. 영하 천도의 얼음과 철을 녹이는 불길을 오가면서, 우리의 삼엄함과 우리의 잔인함을 열심히 오가면서 그 고통을 우리 존귀한 시민들의 은총이 되도록 하자. 민주주의에 더 이상 시민의 피를 번제하지 말자. 다만 저들의 고통과 육신과 영혼만을 번제하자. 길게 아주 오랫동안 얼음과 불길을 오가면서. - nomadia
수유너머N에서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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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7/04 [03: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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