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당연한, 그러나 서글픈 심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국민의 심판은 준엄했다. 2007년 대선은 자유화에 대한 파산선고라고 할 수 있다. 개혁세력보다 더 급진적인 자유화 세력인 한나라당에게 정권이 가긴 했지만 자유화 파탄에 대한 심판이 맞다.
단지 국민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파탄 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인지하지만 그것이 자유화 때문이라는 데에까지는 인식 수준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노무현 좌파 정권이 좌파 정책을 편 결과 이 지경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좌파 정반대편에 표를 몰아줬다.
심판이 맞긴 맞는데 개혁세력보다 더 급진적인 자유화 세력에게 대권을 줬으므로 국민은 이번에 자살골을 넣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대선으로 한국의 10년 자유주의 시대가 마감됐다고 유럽 외신이 전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외국인들도 크게 착각하고 있다. 자유화에 대한 심판이 있었던 건 맞지만 자유화 시대가 마감된 건 아니다.
바야흐로 자유화 20년 장기집권의 서막이 올랐다. 우리 현대사는 크게 두 개의 프레임으로 나눌 수 있다. 박정희 프레임과 김영삼 프레임. 지금 정권을 잡은 한나라당은 김영삼 프레임을 충실히 계승한다. 입시 자율화 정책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런데 입시 자율화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기조이기도 했다. 3불정책의 존재가 그것을 말해준다. 3불정책은 입시를 자율화하기 위해 필요했던 정책이다. 또, 김영삼 때 시작된 소비자 주권(수요자중심주의) 교육정책은 노무현 정권까지 정확히 이어져, 2007년 초에도 교육부 장관이 수요자중심주의를 정책기조라고 말한 바 있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15년이라고 주장한 글을 기고했다가 어느 매체에서 게재거부를 당한 일이 있다. 우리나라 비판세력은 이 15년간의 연속성을 아직 인지하지 못한다. 이명박 교육정책이 나왔을 때 내가 그것을 일러 노무현 정권 정책의 강화판이라고 했더니 그 말을 이해한 주류 언론사 기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이제 우린 잃어버린 20년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곧, 자유화 20년, 파탄의 20년이다.
요즘에 나는 현실정치에 대해 발언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같은 말 반복하는 것도 우습고, 어차피 귀 기울여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구주류가 내 주장을 묵살하는 건 당연한데, 신주류(개혁세력)도 내 주장에 증오에 가까운 거부감을 나타냈다.
나는 비록 신주류가 여러 가지 죄과는 있으나 어쨌든 한국사회를 짊어질 집단이라고 여겨 최대한 그들을 격려하면서 조금씩 상황을 진전시키려 했었다. 적어도 2004년까지는 그럴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이 모든 걸 뒤집은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에 한나라당 이상의 급진적 자유화 노선을 선택하면서 우리사회엔 사실상 정상적인 정치적 대립이 사라졌다. 자유화 1중대인 한나라당과 자유화 2중대인 개혁정권이 소모전을 벌이면서 정치적 열망은 거세되고 냉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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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자가 19일 저녁 한나라당 당사에서 당선소감 기자회견을 진행한 뒤,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CBS노컷뉴스 |
결국 2006년에 나는 가장 거세게 반정부 운동을 하는 진영과 매 사안마다 거리에서 함께 연대하는 처지가 됐다. 나처럼 매사에 최대한 긍정적으로 봐주던 사람들까지도 이탈했으니 재집권이 힘들 거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끝까지 지역구도의 마법만을 믿었던 것 같다. 경상도표만 잡으면 정권재창출할 수 있다는 구태적 사고방식 말이다.
이것이 자신의 지지기반이 다 무너져가는 데도 초연했던 태도를 설명해준다. 또 하나 한미FTA라는 급진적 자유화 정책을 군사작전식으로 밀어붙인 것도 노무현 대통령의 믿는 구석 아니었나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즉, ‘경상도 잡고 경제성장 잡으면 정권재창출은 안정적이니 비판적인 사람들 말에 신경 쓸 필요 없다’는 판단 말이다. 이것이 아니면 자기 발밑이 허물어져 가는데도 끝까지 딴 세상에 사는 것처럼 보인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를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민생파탄 상황에서 경상도 잡기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경상도의 김혁규는 막판에 배신하기까지 했다. 또 한미FTA로 상징되는 자유화 기조는 경제성장은커녕 국가 불안만 조장했다. 1차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삶이 불안해지고, 그들이 수시로 저항에 나섬에 따라 2차적으로 국가 전체가 불안해졌다.
그에 따라 국민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희구했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경제활성화와 공동체복원, 즉 ‘좋았던 그 시절’을 약속하는 강력한 리더십이 국민이 원하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 나는 자유화를 공격하며 이 같은 주장을 했다가 파시스트로 몰리고 아무런 반향을 얻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입장은 ‘니들 모르겠어? 지금 이 순간이 경제활성화된 호시절이야’라는 것이었다. ‘파탄’이란 단어에 그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그 끝은 정권헌납으로 귀결됐다.
응당 있어야 할 심판이 내려졌다. 이제 문제는 미래다. 우리나라 민주화세력의 특징이 남이 무얼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훼방 놓는 일을 잘 한다는 거다. 비판능력, 딴지능력이야말로 유사이래 최고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권 치하에서 우리나라 비판세력의 장점은 극대화될 걸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장점은 국가를 경영하는 데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자유화, 시장화 프레임을 대치할 다른 국가경영기조가 잡혀야 한다. 지금 걱정되는 것은 민주화세력이 BBK 등 부패 꽃놀이패를 들고 또다시 ‘잘 하던 짓’에 안주하는 일이다. 이명박은 차라리 부패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그래야 정직하고 투명한 자유화 정책이 국가를 어떻게 침몰시키는가가 분명히 드러날 것 아니겠는가. 반부패, 반독재 운동이나 하다가 덜컥 정권 잡은 다음에 관료, 관변연구소의 실무능력에 놀아나 꼭두각시 놀음을 하지 않으려면, 지금은 20년 기조를 뒤집을 준비를 할 때다. 교육정책에서 난 참여정부에 환멸을 느꼈고, 정동영, 문국현 등에게도 그것 때문에 지지를 보낼 수 없었는데, 참여정부 교육정책은 중반기에 들어설 무렵 관료들에게 먹혔다는 것이 정설이다.
비판세력이 우리나라의 모든 주류 연구소, 관료, 미국유학자들보다 더 나은 국가경영론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다시 정권을 잡더라도 지금과 같은 결과를 빚을 것이다.
이로서 민주화세력의 1차 집권기는 막을 내렸다. 국민은 서글프게도 자기의 발등을 찍는 심판을 내렸다. 국민을 비난할 순 없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은 절박한 처지에 있으니까. 다만 국민의 바람과는 달리 민생파탄은 여전히 이어질 거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