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직후부터 누누이 지적되어온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한미한 가문에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고 민주화운동을 했지만 그 주류에는 끼지 못하는 대통령, 정치인답지 않은 것은 물론 출세한 여느 중년남성과는 다른 언행을 가진 대통령의 탄생은 적어도 문화사적으로는 큰 의미를 지닌다.
5년 사이에 노무현의 철학과 노선은 꽤 많은 차이를 겪었다. “예나 지금이나 신자유주의 노선이다”라는 김규항의 비판은 정확하지 않다. 그가 신자유주의를 ‘얼마간 수용’하리라는 기미가 대통령후보 시절의 공약에서 엿보이기는 했으나 신자유주의를 철저히 ‘휘두르게’ 될지를 예측한다는 것은 편견이거나 저주에 가까웠다. 어쨌거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저런 마이너리티적 정체성과 얼핏 짙은 개혁성을 띤 것처럼 보이는 정치인도 서민과 빈민을 억누르는 정책을 펼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한 독재자가 사라진 이래 한동안 잊고 있었던 진실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언행방식만큼은 그대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오늘 대통령이자 공무원이라는 제 신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언론자유수호투쟁’을 벌이고 있다. 어느새 국민들은 노무현의 언행에 놀라지 않는 대범함을 갖추게 되었다. 노대통령을 죽으나 사나 추종하는 한줌의 무리들을 빼면 그의 발언에 귀 기울이는 이가 거의 없다. 아, 예외가 하나 더 있긴 하다. 한나라당은 여전히 노대통령이 폭탄발언을 신경질내면서도 은근히 만끽하는 변태취향을 간직하고 있으니.
대통령이 주는 신선한 충격에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덩달아 줄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 다음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스타일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예상하기는 무리다. ‘극우 노무현’이라고 불리운 이명박 후보는 이미 지지율이 급감했으며 앞으로도 무수한 고비들을 넘어야 할 것이다.
노대통령의 언사는 개혁과 진보에 대한 국민의 지지조차 일그러뜨렸다. 그렇지만, 다음 대통령이 꼭 ‘수구보수’이리라는 보장도 없다. 변화와 진취를 향한 국민적 지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명박 역시 박찬종이나 조순, 이인제, 정몽준마저 스타로 띄워주었던 기운에 힘입었다. 하기에 따라 이들은 실질적인 개혁에든 개혁적인 이미지에든 소극적 지지를 보낼 수도 있다. 그들 중 상당수가 노무현과 다른 스타일이되 더욱 더 개혁적인 후보를 원하게 된다면? ‘수줍은 개혁주의자’ 천정배에게는 특히 고무적인 현상이 될 터이다.
‘수줍은 개혁주의자’의 기회 필자는 사석에서 2년 전부터 늘 “유력 대선 주자 6인(이명박, 박근혜, 고건,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고건과 김근태는 일찌감치 탈락했다. 손학규는 2등과는 멀고 4등과는 매우 가까운 3등이다. 반면 이명박과 박근혜는 여론조사의 1, 2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지난 번에 이 지면을 할애하며 이명박과 박근혜의 몰락을 예고했다. 어떤 지인은 “비(非)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예견하셨다면서요?”라고 물었다. 틀린 표현이다. 필자는 예전부터 대선 후보에 적합한 조건과 그렇지 못한 조건을 짚어었는데, 마침 한나라당 주자 둘은 이에 부합하지 않았다.
필자는 북핵사태가 해결될 경우 이번 대선이 전후세대의 경쟁이 되리라는 정치컨설턴트 박성민 씨의 입장에 동의한다(북핵문제가 그럭저럭 풀려나간다는 전제에도 동의한다는 뜻이다). 전후세대란, 5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났고, 대학을 다녔다면 70년대 중후반 학번인 세대를 가리킨다.
군사독재 시대는 1910년대 후반에 출생한 세대의 시대였다. 독재자는 1917년생이었고, 중앙정보부의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던 저항자 장준하와 강원용은 1918년생이었다. 그리고 1920년대 출생한 삼김씨의 시대가 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1946년생이 현직 대통령이 되었다. 여기서 한번 더 ‘점프의 시점’이 올 것이다. 김근태의 불출마와 손학규의 부진, 정동영의 추레함, 이해찬의 독선이 상징하듯 민청학련 세대는 노무현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세가 1960년대까지 점프하지는 못할 것이다. 속칭 386세대는 미숙하다. 그리고 그 세대가 언젠가 정국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는 데에도 필자는 회의적이다. 386세대는 미숙하면서도, 노회하다.
아마도 각계각층에서 ‘58년 개띠’로 상징되는 세대가 곧 확고한 리더로 자리잡을 것이다. 물론 이 리더들이 그저 연령상의 특징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 세대에서 민주화운동의 세례를 받았던 인물들로 범위를 좁혀보자. 이들은 386보다 개인주의적이고 낭만적이며 실존주의적이다. 더 진지하면서 또 활달하다. 386세대 사이에서는 이재현, 김명인, 고종석이 나오지 않는다. 나오더라도 운동권386의 속성을 명랑하게 배반한다(이를테면 진중권). 유신과 광주항쟁을 거쳐 터져나온 시위의 파도에 힘입어 졸지에 새파란 선장이 되었던 전대협 운동가들과는 달리 긴급조치 시대의 운동가들은 5초간 샤우팅하고 징역을 사는 것을 각오해야 했다. 명분과 대의를 떠나, 일단 두 세대의 대결은 결코 ‘싸움’이 되지 않는다. 2005년 열린우리당 상임위원 경선 당시 유시민과 송영길의 결투가 그것을 증명했다.
오늘도 민주화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는 국민들은, 학생운동권 지도자 출신을 고집하지 않는다. 노무현과 김근태의 희비가 엇갈린 2002년부터 엿보인 이런 경향은 ‘운동권’의 후광이 사라진 지금 더 강해졌다.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든 아니면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의 바람대로 먹고 사는 문제가 민주주의 담론으로 이어지든, 올해 대선은 ‘민주화투쟁’의 온갖 훈장을 단 재야 출신 정치인보다는 ‘평화’와 ‘인권’에 식견을 가진 전문가이면서 문화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정치인을 더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외에 지면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생략한 여러 요소들을 감안하면, (가나다 순으로) 강금실,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 천정배 등이 대통령직에 가깝다는 게 필자의 의견이다. 이렇게 듣고 나면 자연히 천정배에게 이목이 쏠릴 것이다. 노회찬, 심상정은 잠재력은 강하지만 그들의 소속정당이 약하다. 강금실의 요즘 행보는 탈정치적이다. 유시민은 노무현과 너무 닮은 것이 약점이다.
FTA 반대한다면서 정동영, 손학규와 연대? 이런 상황에서 천정배는 한미FTA에 맞선 단식투쟁을 결행했다. 그무렵 <오마이뉴스>는 그에게 포커스를 맞추었고, 고교 후배라는 홍성담 화백의 격려를 담은 서한까지 공개되었다. 그는 ‘근무태만’ 김근태를 압도하고도 모자라 함께 오랫동안 단식한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보다 더 돋보였다(당연히 이것은 언론보도의 불공정성 탓이다). 민주노동당내에서 가장 좌파적인 정파임을 자임하는 ‘다함께’도 그를 잠재적인 연합대상으로 지목하였고, 문성현 대표도 진보대연합을 논하며 그를 거명했다. 원내에 우군이 없던 노무현을 국회의원으로서는 최초로 지지했던 2002년, 그리고 ‘민주적 통제’라는 어휘를 유행시키며 강정구 교수의 불구속을 지시했던 법무부 장관 시절 이래 대중정치인으로서 또 하나의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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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에 걸친 천정배 의원의 단식, 지금 그는 어디로 가고 있나? ©독자 에큐메니안 제공 |
최근 시민사회운동의 대표자 노릇을 했던 최병모 변호사 등이 포진한 천정배의 정책자문그룹도 탄탄한 편이다. 소액주주운동에서부터 장하성펀드를 이끄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장하성, 대선 후보 시절 노무현의 경제자문위원이었던 장하원, 그리고 삼성에 맞서 1인시위를 벌였고 민주노동당에서 부유세법을 준비하였던 윤종훈 등도 눈에 띈다.
하지만 천정배의 당선가능성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틈에 중대한 선택의 기로를 맞이하였고, 슬그머니 망가지는 길로 접어들었다. 유능한 듯 보이는 주변 인사들도 정치적 감각의 측면에서는 딱히 재능이 없거나, 직언을 할 만큼의 용기가 없는 듯하다. 아니면 천정배가 애초에 기획한 로드맵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천정배는 열린우리당에서 나간 뒤 동료 의원들과 함께 ‘민생정치모임’을 구성했다. 민생모는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참여한 최재천, 이계안 의원 등이 평소부터 정책통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얼마간의 관심을 모았다. 그들은 다른 범여권세력과는 달리 개혁의 강화를 강조하고, 비교적 서민친화적인 정책을 기획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중도통합신당, 민주당과 매한가지로 ‘대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천정배나 민생모는 노대통령을 비판하는만큼 참여정부의 노선조차 급진적이라 평가하는 중도통합신당, 민주당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천정배의 행보는 진보진영이나 시민사회운동 뿐만 아니라 심지어 노무현에게까지 덜미를 잡힐 만한 것이다. 노무현은 그와 김근태를 싸잡으며 현직 대통령을 밟아 차기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한미FTA에 반대한다고 조롱하였다.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천정배는 한미FTA에 찬성하는 손학규, 정동영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아닌 말이기도 하다. 천정배는 지금 한미FTA 반대에도 적극적이지 않다.
개혁의 ‘천신정’에서 통합의 ‘천동태’로 이라크파병에 대해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섰으며, 법무부장관에 재직할 때 한미FTA에 이견을 제시한 적이 없는 천정배로서는 예전에 상실한 개혁적 진정성을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고립을 각오하는 베짱이 필요하다. 원군을 구하려거든 김한길, 박상천, 손학규, 정동영이 아니라 개혁신당을 꾸리고 있는 미래창조연대나 진보신당을 선언한 소위 ‘미래구상(내) 좌파’에게 구애해야 할 것이다.
필자 자신이 민주노동당원으로서 당과 천정배의 연대에 다소 부정적이지만, (정치 컨설턴트의 관점에서는) 그가 진심으로 한미FTA에 반대하고자 한다면 범여권에서 등을 돌려 민주노동당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싶다. 같은 법무법인에서 근무했으며, 딱히 정파가 없는 왕따이지만 그래도 천정배와 교분을 유지했던 임종인 의원조차 민생정치모임에 가입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일지 뻔하지 않은가?
선명한 개혁과 대통합은 양립할 수 없다. 천정배가 지역주의와 보수주의에 찌든 범여권을 하나로 모으는 데 성공할지는 몰라도,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잃어가는 범여권에서 내부의 경쟁을 통해 개혁을 다시 빚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대선 후보가 될 가망도 없다. 어떤 노빠 논객은 그를 정동영, 김근태와 묶어 ‘천동태’라고 불렀다. 천정배는 어느새 ‘개혁의 주자’에서 아무런 울림도 없는 ‘통합’을 들먹이는 그렇고 그런 ‘중진’이 되고야 말았다.
* 이 기사는 연세대 진보정치 웹진 <오렌지>(
http://club.cyworld.com/orangenews)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