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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칼럼] '여의도방송'이 '전국방송?'
 
강준만   기사입력  2006/08/22 [12:07]
인간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영역'이다.

이는 인간이 동물과 얼마나 비슷한가 하는 걸 말해주는 주제이기도 하다. 텔레비전의 동물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듯이, 동물은 주로 오줌을 싸는 걸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다.

다른 먹이 경쟁자들에게 "여긴 내가 먹고 사는 구역이니까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뜻이다.

맹수를 훈련시키는 기본적인 원리도 바로 이 영역이다. 맹수는 자기 영역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조련사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해 맹수를 길들인다.

이 원리는 경찰의 범인 취조술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일반적인 취조술 원리상 형사는 범인과의 사이에 아무 것도 두지 않고 그의 영역을 침범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럴 경우 자신의 최소한의 영역 공간을 빼앗긴 범인은 자신감을 잃게 된다. 범죄자들 가운데 난폭한 사람들이 마음의 평정을 누릴 수 있는 영역의 크기는 일반인들의 그것보다 4배 더 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권력자들은 사람을 설득할 때에 형사의 취조술 원리를 이용한다.

이걸 잘 했던 사람이 전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이었다. 존슨은 전임자인 존 케네디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법안통과를 위해 의원들을 설득하는 일에 있어선 '천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능수능란했다.

당시 유명 칼럼니스트였던 월터 리프만의 전기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존슨은 리프만을 독대했다. 둘은 처음엔 떨어져 앉았는데 어느새 존슨이 의자를 서서히 당겨서 리프만에게 바짝 접근했다. 리프만은 불편을 느껴 자신의 의자를 뒤로 조금씩 빼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에 때아닌 '의자 전쟁'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다.

보통 인간세계에서 '영역'이라고 하면 우리는 조폭의 영업구역을 연상하지만, 이른바 출세의 위계질서에서 높이 올라간 사람일수록 영역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영역은 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역엔 이동성과 더불어 서열도 있다. 무슨 행사가 있을 때 보통사람들이야 어디에 앉는 게 무어 그리 중요할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권력자들에게 자리 배열과 같은 의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의 영역은 집무실 넓이로 대변된다.

높은 사람일수록 집무실이 넓다. 보통사람이 높은 사람의 '권력'을 체감하면서 압도당하는 건 집무실 넓이일 경우가 많다.

탤런트 같은 어여쁜 비서 아가씨에 말쑥한 검정 계통 양복을 빼입은 남자 비서 한두명이 문앞을 지키고 있는 집무실을 들어서면서 이미 기가 눌린 보통사람은 축구장처럼(?) 넓어보이는데다 으리으리하게 꾸며진 집무실 내부를 보게 되면 그 방의 주인공에게 굴복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좀 재미있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최근 '중앙일보'가 <50개 시장·군수·구청장실 장관실(50평)보다 넓게 쓴다>등의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들을 읽으면서 해본 생각이다.

서울에 비해 땅값이 싼 지방에서 그 정도 호사도 못 누리냐고 항변하는 게 옳을까?

선거 때처럼 주민들을 하늘처럼 섬기면서 슬기롭게 일만 열심히 잘한다면야 집무실이 수 백평인들 어떠랴만서도 새삼 공복(公僕)이라는 시대착오적인(?)단어를 떠올려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넓을수록 오만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아닌지 연구해 볼 필요가 있겠다.

새전북신문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교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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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8/22 [12:0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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