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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의 전성시대! '순수한' 꼴통이 무슨 잘못?
[강준만 칼럼] 꼴통의 전성시대를 몰고 온 인터넷, 소통은 갈수록 난감
 
강준만   기사입력  2006/07/13 [10:08]
신문 칼럼을 쓸 때마다 가볍게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속어·비어 사용이다. '꼴통'이라니! 그건 인터넷에서 익명의 네티즌들이나 쓰는 말 아닌가.

그런데 지금 나는 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 글을 쓰려고 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독자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랄 뿐이다.

꼴통의 행태를 비교적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전투적 근본주의'에 가깝다. 여기서 근본주의는 "자기 자신의 신념이나 근거가 합리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울 때조차도 그러한 신념이나 근거를 정치적 주장으로 자리매김하려는 특이한 사고방식이나 고집스러운 태도"로 정의하기로 하자.(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정의).

꼴통이란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그 바탕엔 순수주의 또는 순결주의가 깔려 있다. 대부분의 꼴통들은 도덕적 정당성 또는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 자신의 꼴통 행태를 통해 무슨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타협이 어렵다.

꼴통은 처음엔 '수구꼴통'으로 많이 쓰였는데, 최근엔 이념의 좌우를 넘어서 '진보꼴통'이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념 영역에만 꼴통이 있는 게 아니다. 모든 분야에 걸쳐 꼴통은 있기 마련이다.

꼴통은 자신의 원칙과 원리에 충실하기 때문에 '현실적 고려'를 무시하거나 불온시한다. 사상과 의견의 시장 원리로 보자면 꼴통은 도태되거나 적어도 공적 영역에선 힘을 못쓰는 게 옳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양 극단의 꼴통끼리는 '적대적 공존'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적대적 공생' 또는 '적대적 의존'이라고도 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이치다. 조직·집단들간 싸움이 붙으면 어느쪽에서건 강경파가 힘을 쓰기 마련이다. 양쪽의 강경파는 원수처럼 상대편을 욕하지만 실은 그게 양쪽 모두에게 자기 조직·집단 내 헤게모니를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낸다. 그런 싸움 구도에선 양쪽의 온건파는 설 땅을 잃게 된다.

꼴통이 번영을 누리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원칙과 지조가 사라진 세태다. 기회주의가 제1의 처세술로 각광받는 세상에서 꼴통은 아름답게까지 여겨질 때도 있다. 이 또한 '적대적 공존'이라 할 수 있다. 즉, 근본주의와 기회주의는 상호 정반대의 행태이지만 서로 돕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근본주의와 기회주의의 결합이다. 얼른 봐선 결합이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는 법이다. 기회주의적 헤게모니 쟁탈을 위한 처세술로 꼴통 행세를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가? 유명 인사들 가운데 이런 사람들 숱하게 많다.

피해를 보는 건 누군가? 진정한 의미의 꼴통이다. 꼴통을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진정한 꼴통은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모든 걸 걸 수도 있다. 요즘 이런 꼴통을 볼 수 있는가?

진짜건 사이비건 인터넷은 꼴통의 전성시대를 몰고 왔다. 소통은 갈수록 난감해진다. 역설적으로 좋은 점도 있다. 아예 처음부터 소통 가능성을 포기하면 의외로 편해진다. 커뮤니케이션은 게임이나 오락의 경지로 접어든다. 이게 바로 꼴통의 법칙이다.
 
새전북신문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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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7/13 [10: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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