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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 시민운동을 언론플레이로 하나
[인물과 사상의 눈] 시민운동 아닌 개인을 위한 언론플레이는 그만둬야
 
강준만   기사입력  2005/06/18 [16:12]
“한국 시민운동은 ‘無오류의 환상’에 젖어 있다”

2001년 6월 16일자 신문들은 일제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총장 이석연의 시민운동 자성론을 기사로 다루었으며, 몇몇 신문들은 사설로까지 다루었다. 국내의 대표적인 시민운동단체 중 하나인 경실련의 사무총장이 시민운동을 비판했으니 평소 시민운동에 대해 마땅치 않게 생각해오던 수구 신문들이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반겼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이석연의 발언을 비교적 크게 다루었는데, 『조선일보』에 실린 <“한국 시민운동은 ‘無오류의 환상’에 젖어 있다”: 이석연 경실련 사무총장, 에세이 『헌법 등대지기』서 苦言 쏟아내>라는 제목의 기사 일부를 인용한다.

▲헌법 등대지기임을 자처하는 이석연 변호사. 사진은 지난해 11월 5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월간조선 주최 시국강연회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맹비난하는 모습     © 대자보
이 총장은 최근 『헌법 등대지기』라는 자전적 에세이집의 출간에 맞춰 배포한 ‘이 책을 내게 된 동기 및 책의 내용 개관’이라는 자료를 통해 “현재 한국의 시민운동은 초법화(超法化) 경향, 시민단체나 시민운동가의 관료화, 권력기관화 경향과 연대를 통한 센세이셔널리즘, 무오류성(無誤謬性)의 환상에 젖어 있다”고 진단하고, “시민단체나 시민운동가들도 겸허히 자기반성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 총장은 또 “시민단체의 대표로서 겸허하게 반성하면서 시민운동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있다”며, 시민단체들을 향해 이 같은 고언들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는 현재 ‘진보=개혁, 보수=반개혁’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이 지배하고 있다”며 “시민단체가 추구하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걸쳐 개혁운동은 어디까지나 법치주의, 적법절차, 자유시장, 경제질서라는 헌법의 기본 원리를 준수하고 그 틀 내에서 이뤄질 때만 국민적 신뢰성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총장은 “한국 사회에서 시민단체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그럴수록 철저한 자기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시민단체들의 ‘권력과의 관계 설정’을 겨냥, “시민단체는 권력과 항상 건전한 긴장, 갈등 관계를 전제로 하여 그 활동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잘한다 잘한다”에 시민단체 자기도취: 경실련 이석연 총장 ‘반성’ 화제>라는 제목의 기사로 보도하였는데, 이 기사 가운데 『조선일보』 기사와 중복되지 않는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무총장은 또 시민운동 스스로가 권력기관화 관료화되는 경향을 지적하며 “1년 반 동안 경실련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스스로 깜짝 놀랄 때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시민단체의 주장은 무조건 옳다’고 평가하며 시민단체를 너무 ‘받들어’ 주는 경향이 있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

이 사무총장은 언론개혁 문제와 관련해 “경실련이 언론개혁시민연대에 속해 있긴 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언론개혁 논의에 대해 내부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적이 없다”며 “언론개혁의 원론적인 목표에는 찬성하지만 시기 절차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사무총장은 “앞으로 연대의 틀 안에서 시민운동의 변화를 위해 애쓰겠지만 그게 아닐 경우 연대회의 탈퇴 등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왜 책에도 없는 내용이 뉴스가 되나?

우선 시민운동가로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민운동을 향해 하기 어려운 고언(苦言)을 한 이석연의 용기과 충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이석연이 평소 ‘헌법 등대지기’라는 자신의 별명에 걸맞게끔 한국 사회의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애써 온 점에 대해서도 뜨거운 지지와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석연의 문제 제기 방식엔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가 비단 이석연 개인에만 한정된 것도 아닐 것이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자주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 깊이 있게 논의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나는 시민운동가의 언론플레이(언론에 널리, 크게 보도되기 위해 벌이는 홍보 전술)는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석연의 언론플레이엔 동의하기 어렵다. 시민운동가의 언론플레이는 시민운동을 위해서 해야지 자기 개인을 위해서 하면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석연의 언론플레이는 분명히 선의와 충정도 있었겠지만 자기 개인을 너무 앞세웠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내가 놀란 건 신문들이 보도한 내용이 『헌법 등대지기』라는 책에는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신문들이 보도한 내용은 이석연이 쓴 ‘이 책을 내게 된 동기 및 책의 내용 개관’이라는 보도자료에 근거한 것이었다. 책의 보도자료라는 건 책의 내용을 요약, 소개하는 것이다. 책에도 없는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가 큰 뉴스가 된다는 건 일종의 코미디가 아닐까?

『헌법 등대지기』라는 책을 살펴보자. 429쪽으로 정가 10,000원이다. 이 책은 헌법 전문가인 이석연이 평소에 여러 매체들에 기고한 법 관련 글과 이석연을 다룬 신문, 잡지 기사들을 모아 펴낸 것이다. 시민운동과 관련된 글은 40쪽으로 전체의 10%도 되지 않으며, 그거나마 다 과거에 발표했던 글들이다. 별 내용도 없거니와 새로울 게 전혀 없다는 말이다. 신문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보도한 건 이석연이 그 책의 보도자료용으로 새롭게 쓴 글에서 한 말이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나?

그리고 이석연은 보도자료에서 한 말인지 인터뷰에서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누워서 침을 뱉는’ 모순을 저질렀다. 이석연은 “앞으로 연대의 틀 안에서 시민운동의 변화를 위해 애쓰겠지만 그게 아닐 경우 연대회의 탈퇴 등도 고려하겠다”고 말한 걸로 보도되었는데, 이건 월권(越權) 발언이다. 사무총장에겐 그럴 권한이 없다. 민주적인 내부 논의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건 이석연이 비판한 시민운동의 문제점을 이석연 스스로 범한 게 아니고 무엇이랴.

이석연은 2001년 2월 10일부터 3월 12일까지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워싱턴 DC 등 미국 내 10개 도시를 방문한 후에 그 방문에서 느낀 걸 『조선일보』 2001년 3월 17일자에 <미국 한인사회는 지금 ……>이라는 제목의 칼럼에 썼다. 왜 미국 국무부가 이석연을 초청했을까? 그것 역시 이석연이 비판한 “시민단체를 너무 ‘받들어’ 주는 경향”과 무관한 것일까?

고민투성이 경실련 ‘아, 답답해’

이 ‘헌법 등대지기’ 사건은 시민운동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었고 경실련 내부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주간동아』 2001년 7월 5일자는 <고민투성이 경실련 “아, 답답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러한 내부 논란과 경실련의 고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한국 시민운동의 기수, NGO의 맏형, 새로운 운동의 영역을 연 개척자. 다음달 10일로 창립 12년을 맞는 경실련의 이름 앞에 붙은 화려한 수식어다. 그러나 운동 외부의 환경변화와 조직 내부의 문제들이 겹치면서 경실련은 새로운 위상 설정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경실련에는 시민입법위원회 등 총 21개의 내부 부서가 있다. 이들 기구의 실질적인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 사무국. 사무총장은 이 사무국을 총괄하며 임기는 2년이다. 참여연대의 박원순 사무처장이 95년 9월부터 지금까지 재직하는 것에 비하면 비교적 짧다.

임기를 짧게 제한한 것은 그 동안 겪은 몇 번의 위기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90년대 경실련 운동의 상징이던 초대 사무총장 서경석 목사(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집행위원장)가 96년 총선에 출마하면서 빚어진 논란이 그 첫 번째. 97년 김현철 테이프 파동으로 물의를 빚은 양대석 당시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 사무국장, 99년 칼럼 대필 의혹이 촉발한 내부 갈등으로 자리를 물러난 유종성 전 사무총장에 이르기까지, 아이로니컬하게도 위기는 늘 조직 상층부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선택한 카드가 2년 임기제와 지금의 이석연 사무총장이었다. 이 사무총장은 94년까지 헌법재판소 등 공직에 몸담았던 사람. 한 상근자는 “사무총장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조직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무색무취’한 인물을 추대한 것”이라 회고한다. 지나친 카리스마로 원성을 산 전임 유종성 사무총장 시절과는 반대로 현장에서 발로 뛰는 활동가 중심의 조직을 만들자는 의도였다. 업무 추진과정에서도 사무총장은 지휘자의 개념보다는 승인자의 역할에 가깝다고 전한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번 경우도 이 사무총장은 개인 자격으로 시민단체의 자성을 촉구했을지 모르지만 외부에서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탓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본질적으로 시민운동의 논리와 방식에 잘 부합하지 않는 ‘순진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이 다시 문제가 된 난감한 상황이다.


‘경찰대학 특강 사건’

난감해 할 일은 그 뒤로도 계속 일어났다. 이석연은 2001년 8월 2일에도 “언론문제에 관한 시민단체들의 입장을 정리하는 과정에 큰 문제가 있다”는 발언으로 작은 물의를 빚었지만, 신문들이 또 한 번 일제히 이석연의 발언을 대서특필한 건 이석연의 8월 7일 ‘경찰대학 강연 사건’이었다. 또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이 신이 났다.

『조선일보』의 8월 8일자 사회면(27면)의 머릿기사 제목이 <“시민단체의 특정 정파지지, 연계활동 시민운동에 대한 배신”>이다. 『중앙일보』는 8월 8일자 사회면(27면)에 <“시민단체 특정 정파지지 시민운동에 대한 배신”>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였고, 『동아일보』는 8월 8일자 A26면에 <“시민단체 정치참여 말라”>는 제목으로 보도하였다. 이석연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가?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한다.

이 총장은 7일 오전 경기도 용인 경찰대학교에서 경찰고위 간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시민운동의 과제와 방향’이라는 특강에서 “시민단체가 특정 정당이나 정파, 세력 등을 지지하고 이들과 연계해 활동하는 것은 시민운동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시민단체들의 ‘경계’를 촉구했다.

이 총장은 이어 “사회적으로 예민한 하나의 사안에 대해 시민단체가 획일적으로 한 목소리만 낼 때 시민단체는 침묵하는 다수의 비판적이고 중립적인 세력을 포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총장은 지난 2일 사회 원로 및 시민단체 인사 32명의 명의로 발표한 ‘언론문제에 대한 입장’ 성명서에서도 사회 현안을 둘러싼 ‘극단적인 대립구도’를 비판한 바 있다.

이 총장은 이 날 강연에서 또 특정 시민단체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6월 환경운동연합이 내년 지방선거 참여 의사를 밝힌 것 등을 염두에 둔 듯 시민단체의 정치참여도 비판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후진성을 고려할 때 시민운동이 정치개혁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것이 일부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정치참여를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신이 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기자들이 이석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건지, 아니면 이석연이나 경찰대학측에서 보도자료를 보낸 건지, 난 그건 모르겠다. 다만 이거 하나는 안다. 한 시민운동가의 일거수일투족이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것이야말로 이석연이 개탄해 마지않는 “시민단체를 너무 ‘받들어’ 주는 경향”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석연의 말이 옳다고 맞장구를 쳤던 신문들은 그런 ‘모순’은 모르겠다는 듯 사설로까지 치고 나갔는데, 『조선일보』 2001년 8월 9일자 사설 <시민운동 새롭게>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일부 ‘운동가’ 중심의 폐쇄성과 지나친 편가름 등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최근 들어 시민운동단체들에 대한 비판적인 논란들이 확산된 바 있다. ‘시민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시민’이 빠져있는 결과가 아닐지 반성해 볼 일이다. ……

이 총장도 강조했듯이 ‘시민운동의 상징은 다양성과 자율성’이다. 이는 시민운동이 다원화된 시민사회를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보면 모든 사회현안을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反)개혁이라는 ‘80년대식 논법’으로 양분하려는 듯한 문제점을 목격하게 된다. 이 총장의 충고를 계기로 시민단체들이 우리 사회의 ‘침묵하는 중용(中庸)의 다수파’를 대변하는 시민운동 본연의 자세를 되찾기를 바란다.”

『동아일보』 2001년 8월 9일자 사설 <시민운동 정치편향 안 된다>는 “이 총장의 지적은 ‘과거의 예’를 많이 드는 방식이었지만 현재의 상황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고 말함으로써 『조선일보』 사설에 비해 비교적 투명한 자세를 보이기는 했으나 아전인수(我田引水)는 더 심했다. 이 사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상당수 시민단체들이 보여주고 있는 행동은 정치적 중립성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권력의 비리나 부정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한쪽으로 경사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들 시민단체는 마치 정권을 대변하듯 특정 신문 공격에 앞장 서고 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한 사안에 대해 획일적으로 한 목소리만을 내면서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는 ‘무오류’의 자만에 빠져 자신들만이 ‘정의의 판관’인 것처럼 다른 쪽을 몰아붙이는 선동주의 흐름까지 보이고 있다.”


수구 신문에 이용당하는 언론플레이

이 ‘경찰대학 특강 사건’도 시민운동 내부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경실련 내부에도 열띤 논쟁을 촉발시켰다. 『한겨레』 2001년 8월 10일자는 경실련 내부의 반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경실련 핵심 관계자는 “최근 실국장 회의를 통해 ‘민감한 사안에 대한 의견을 외부에 밝힐 때는 사전에 논의를 거쳤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사무총장에게 전달했다”며 “우선 사무총장 발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한 뒤 진지하게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경실련 관계자는 “총장이 ‘개인자격’으로 ‘사견’을 밝혔다고 이해하는 것이 경실련의 공식 입장”이라며 “하지만 사무총장이라면 경실련 명의의 성명 발표를 준비하고 내부토론을 기획해야지, ‘개인 자격’으로 외부에 쉽게 발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 총장의 ‘돌출발언’이 경실련의 복잡한 내부사정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경실련 내부에서 이 총장과 상근자들 사이에 의사소통에 많은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 의해 이 총장의 발언이 시민단체들의 ‘편가르기’에 악용되는 사태가 가장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렇다. 가장 큰 문제는 이석연이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말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수구 신문들에 의해 악용되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석연은 그 점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이건 곤란하지 않을까? 시민운동단체들에 대해 ‘홍위병’이라는 악랄한 언어 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석연은 화가 나지도 않는가? 아니면 ‘홍위병’이라는 욕이 표현만 지나쳤다는 것일 뿐 그러한 주장에 동의한다는 것인가?

이석연이 ‘홍위병’ 운운했던 수구 신문들을 호되게 비판하는 특강을 여러 차례 했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장담하지만, 그건 수구 신문들엔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게 돼 있다. 이석연은 그걸 모르는가? 왜 알 만한 분이 정작 해야 할 발언은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조중동 좋아할 만한 발언만 골라서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2001년 8월 2일 ‘사회원로’와 시민단체 인사 32명이 ‘최근 언론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8월 14일엔 사회 각계 ‘원로’ 115명으로 구성되었다는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이 ‘광복의 날에 즈음하여 오늘의 난국을 생각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는데, 이석연은 이 두 성명에 중복 참여한 5명 가운데 한 명이다. 이 두 성명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선 다른 기회에 별도의 글로 다루겠지만, 이석연의 다음과 같은 발언만큼은 음미해두는 게 좋겠다.

“이석연 경실련 사무총장은 ‘정부는 23개 언론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해 모두 탈세혐의가 있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6개 언론사만 검찰에 고발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여기에 시민단체들까지 가세해 정부와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다양성을 무시한 획일주의에 빠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요즘처럼 시민단체 대표로서 부끄러움과 갈등을 느낀 적이 없었다’며 ‘정의와 형평을 기본으로 하는 법조인들마저 침묵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두 성명이 그 의도가 어디에 있었건 조중동의 화려한 각광을 받으면서 조중동을 옹호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석연은 “그건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고 변명할 것인가?

이석연의 자기 모순

나는 ‘경찰대학 특강 사건’의 경우도 이석연이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시민운동단체의 정치 참여 문제부터 따져보자. 이건 딜레마다. 시민운동단체가 정치를 감시하는 것만으론 정치가 안 바뀌고 시민운동단체가 정치판에 직접 뛰어들어 가자니 정치단체와 같아져 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딜레마라는 것이다.

나 역시 시민운동을 발판으로 삼아 정관계에 진출하는 교수 등과 같은 전문직업인들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에 대해 비판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그런데 내 나름대로 시민운동을 깊이 있게 연구해봤더니 그런 비판은 지나치게 서울 중심적이고 전문직 중심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는 이런 문제를 글로 쓴 바 있다. 즉, 자신이 살고 있는 소지역 차원에서 온몸으로 수년간 시민운동을 한 사람이 지방의회에 진출하는 것도 같은 잣대로 비판받아야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딜레마에 대한 답은 이석연이 제시했다. 무언가? “시민운동의 상징은 다양성과 자율성”이라는 게 정답이다. 나는 시민운동단체들도 획일적으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말고 각기 차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정치 참여를 할 시민운동단체들은 그걸 처음부터 떳떳하게 밝히면 되는 것이고, 그걸 하지 않을 시민운동단체들은 미리 선언을 하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왜 ‘다양성’을 강조한 이석연이 그렇게 ‘획일성’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이석연은 “민감한 정치현안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획일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는데, 이건 전혀 평소의 이석연답지 않은 발언이다. 사안의 내용을 따져줘야지 무조건 한 목소리 내면 안 된다니, 이게 웬 말인가? 이석연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되돌려 드리고 싶다.

“헌법의 정신이나 법의 일반원칙 또는 건전한 일반인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명백한 사안을 적당히 호도하거나 양비양시론적으로 접근하거나, 왜곡하거나, 침묵하려는 태도는 결코 지식인으로서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성실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내가 이석연에 대해 더욱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건 시민운동의 문제를 그가 개탄해마지 않았던 선정주의적 방식으로 공론화하려 든다는 점이다. 그건 정말 곤란하다. 나는 처음에 신문 기사를 보고선 그의 저서 『헌법 등대지기』에 큰 기대를 걸었었다. 왜? 나는 감히 참여연대를 향해 왜 내부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느냐고 질책을 가할 정도로 ‘내부 비판’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 책엔 아무 내용도 없었다.

말 나온 김에 시민운동에 대한 나의 비판적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이런 거다. 우선적으로 ‘조직 이기주의’를 버리자는 거다. 내부 문제의 공론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그 당연한 귀결로 겸허한 자세를 갖고 사과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낙천ㆍ낙선운동에 대해서도 지지를 보냈지만 그 운동의 과정에서 일어난 일부 과오에 대해 그 운동을 주도했던 시민운동단체들이 충분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문제도 왕성한 내부 비판 문화가 살아 있으면 얼마든지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시민운동에 대해 그런 왕성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나조차 이석연의 문제 제기 방식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밖에서 제 3자가 시민운동을 비판하기는 매우 쉽다. 그러나 시민운동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비판을 들으면 맥이 빠진다. 왜? 그런 비판의 일리는 인정하면서도 시민운동이 현실적으로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신문들은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고 비판하길 즐겨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거의 100%가 어디 시민운동단체에 단돈 1원도 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위선적인 시민운동 비판은 시민운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시민운동의 한복판에 있는 이석연까지 그런 불성실한 비판을 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헌법 관련 논문을 쓰듯이 좀더 심도 있게 시민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성실한 대안 모색에 임할 수는 없는 걸까?

예컨대, “우리 사회가 ‘시민단체의 주장은 무조건 옳다’고 평가하며 시민단체를 너무 ‘받들어’ 주는 경향이 있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쉽다”는 주장만 해도 그렇다. 이건 너무도 불성실한 분석이다. 설사 이석연의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그건 과도기적 현상으로 불가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만약 모든 행정부처가 진실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로 일을 처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시민단체를 너무 ‘받들어’ 주는 경향”도 저절로 없어지게 돼 있다.

그리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자기 일신의 영달을 위해 한참 일해야 할 나이의 사람들이 자기 일 제쳐놓고 시민들을 위해 일하는데, 그들을 좀 받들어 주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그게 무어 그리 큰일이란 말인가? 이석연은 아마도 “너무 ‘받들어’ 주는 경향”을 지적한 것뿐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그건 내부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문제이지 밖에 대고서 시민단체를 너무 받들어주지 말라고 외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혹 이석연은 신문들의 힘 또는 여론의 힘으로 시민운동의 문제를 바로잡아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나는 경실련의 ‘2년 임기제’가 시사하듯이, 이석연이 시민운동에 대해 ‘지나가는 손님’의 자세를 갖고 있는 건 아닌가 우려한다.

그 어떤 선의와 충정도 그걸 구현하려는 방법이 크게 잘못됐으면 그 선의와 충정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나는 이석연이 이 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이석연은 지난 1999년 11월부터 경실련 사무총장을 맡아 왔으니 이제 임기가 몇 개월 남지 않았다.(2001년 9월 현재-편집자) 그가 좀더 차분한 자세로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참고문헌

Ω박민선, < “한국 시민운동은 ‘無오류의 환상’에 젖어 있다”: 이석연 경실련 사무총장, 에세이    ‘헌법 등대지기’서 苦言 쏟아내>, 『조선일보』, 2001년 6월 16일, 25면.

Ω안수찬, <이석연 경실련 시민단체 비난 돌출발언 내부 반발 등 시민운동권 시끌>, 『한겨레』,   2001년 8월 10일, 14면.

Ω이석연, 『헌법 등대지기: 이석연 변호사의 삶과 철학 이야기』(형설출판사, 2001).

Ω허문명ㆍ박민혁, <“극단적 대립상황에 위기 느껴”>, 『동아일보』, 2001년 8월 3일, A3면.

Ω황일도, <고민투성이 경실련 “아, 답답해!”>, 『주간동아』, 2001년 7월 5일, 48∼49면.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01년 10월호에 실렸으며, 웹진 <인물과 사상>(www.inmul.co.kr)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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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6/18 [16:1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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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동효 2005/07/01 [17:18] 수정 | 삭제
  • 여러가지로
  • 헌법등대지기좋아하네 2005/06/22 [04:53] 수정 | 삭제
  • 또라이 이석연이 시민단체를 대표하나?
  • blue 2005/06/20 [09:12] 수정 | 삭제
  • 무슨 일이든 빠져나갈 구멍없이 탄탄하게 일을 처리해 놓으면
    헌재에 가던 어딜가던 법이 시행될 것입니다.

    사회의 여러가지 구성요소간 절충과 조율없이
    맹숭하게 법을 만들어 놓으니
    이석연같은 사람이 헌재에 보내는 것이 아닙니까?

    남탓하기전에 일부터 잘하는 정부가 되도록 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 너도 봐라 2005/06/19 [09:23] 수정 | 삭제
  • 이석연이 어떤 놈인지 모르는 네가 답답하다.
    이석연은 행정수도 헌법소원으로 강남 부자들 편에 섰고,
    이번엔 또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
    부패한 사학들 편에서 사립학교법 헌법소원 넣는다는데
    이야말로 기득권층 이익수호에 조중동 나팔수가 아니고 무엇인가?
  • 부산 보시오 2005/06/19 [06:22] 수정 | 삭제
  • 비판을 하려면 사실과 근거를 논리적으로 기술한 다음에 하시오.
    자꾸 그런 글이 인터넷에 난무하니까 실명제 운운하면서 종이신문과 방송이 익명성의 장점을 무시하고 인터넷 여론을 쓰레기 취급하는겁니다.
  • 부산 2005/06/19 [01:04] 수정 | 삭제
  • 입만 열면 헌법을 들먹이지만
    정작 법이 뭔지 모르는 멍충이!
    언제나 기득권층 이익 수호를 위해,
    조중동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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