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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구심체의 형성과 해체 그리고 민국당
 
장신기   기사입력  2002/03/18 [13:44]


   나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정치적 구심력의 형성과 해체 과정에 대한 특징적 유형을 4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민국당의 경우를 그 하나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정치적 구심체의 형성은 정치 조직의 발전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정치적 구심체의 형성과 그 영향력에 따라서 특정 정치 조직이 처한 외부 환경의 구속력을 강화시키거나 약화 혹은 해체시키기까지 한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먼저 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야당의 분열은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외적 환경을 해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96년 총선에서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정치적 노선을 달리한 당시의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한 이유 중의 하나로서 정치적 구심력의 약화가 언급되고 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최근의 사례로서 특정 정치 이념을 공유하는 정치 세력이 선거라는 현실적인 시험 과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구심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대자보 기획 기사에서는 민국당에 대한 기획 기사의 하나로서 이 글에서는 정치적 구심체라는 문제를 민국당의 출현과 연관지어서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글의 방향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정치적 구심력의 형성과 해체 과정에 대한 특징적 유형을 4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민국당의 경우를 그 하나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그러면 4가지 경우에 대한 분류를 먼저 하고 난 다음에 개별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하도록 하겠다. 우선 정치적 자원을 공유하는 세력들이 처음부터 분리된 상태로 존재하여 통합된 구심체를 형성하기 힘든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비슷한 정치적 행동을 통하여 구심체의 형성 가능성이 있으나 완전하게 일치하기 힘든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안정적인 구심체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그 조직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상실되어 조직 내부의 균열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나름대로 안정적인 조직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내부 갈등으로 인하여 구심체가 해체 혹은 약화되는 경우이다.

위에서 분류한 4가지 경우는 크게 나누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구심체의 형성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안정적인 조직을 건설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분열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으며 세 번 째와 네 번 째의 경우는 이미 형성된 구심체가 외부적 요인(3번 째의 경우)과 내부적인 요인(4번 째의 경우)으로 인해서 분열되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면 각 사항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의 경우는 해방 전후 한국의 독립 운동 세력의 분열을 그 예로서 들 수가 있다. 한국의 독립 운동 세력은 일본 제국주의의 강력한 억압을 받아서 제대로 통일된 구심체를 형성하지 못한 채 해방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분단에 한 요인으로서 제기될 정도의 큰 문제였다. 만약에 통일된 독립 운동의 구심체를 형성한 상태에서 해방을 맞이하였다면 우리의 현대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독립 운동이라는 정당성을 갖고 있는 세력들의 분화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갈등을 초래한다. 정치적 갈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 우리 사회의 갈등은 정치적 구심체가 형성되어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거나 약한 형태였을 것이다.


두 번째의 경우는 87년 야당의 분열을 예로서 들 수가 있다. 당시 야당은 사회 운동 세력과 함께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래서 군부 세력에 반대하는 국민적 기대에 힘입어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 운동 세력과 야당은 완벽한 유기체적 통합을 이루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고 그 결과 야당의 분열이 발생하였다. 유신 이 후에 강화된 반대 정치 사회 세력에 대한 유 무형의 억압으로 인해서 비타협적 야당과 사회 운동 세력은 상호 통일된 조직체를 건설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야당의 분열을 제어하지 못했으며 사회 운동 세력도 그에 따라 분열된 것이다.

세 번째의 경우는 97년의 집권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의 분열에서 그 예를 찾을 수가 있다. 오랜 기간 강력한 구심체를 형성하여 정권을 유지하였던 한국의 보수 정치 세력은 97년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로 인해서 정치 중심 이동 과정에서 분열하게 된다. 이는 외부적인 충격으로 인해서 내부에 혼란이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외부의 충격은 내부의 단결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당시의 신한국당의 경우는 이와는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나났는 데 이는 당시 정치 구심의 핵심인 대통령의 권위에 이상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대권이라는 현실적 이해 관계가 앞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구심력을 발휘해야할 대통령의 권위가 훼손되었다는 것은 당시 신한국당의 안정된 선거 대처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 결과 이회창 총재와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이인제 후보의 분열이 현실화되었으며 이는 정권 교체의 중요한 요인으로 제기된다.


네 번째의 경우는 이 번에 나타난 한나라당의 분열에 따른 민국당의 등장을 그 예로서 들 수 있다. 이 번 한나라당의 분열이 발생한 이유는 이회창 총재의 공천에 대한 비주류 중진들의 반발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내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다. 이 번 사태를 몰고온 한나라당의 공천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그 부분에 대한 상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민국당의 지도부가 한나라당의 공천 결과를 문제 삼아 새로운 정치 세력을 건설하겠다고 밝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공천과 민국당의 출현은 연관성이 있다고 평가된다. 민국당의 출현은 새로운 정치 구심체의 형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 발생 원인은 민국당의 모태가 되는 한나라당의 내부 사정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상 네 가지 경우를 사례 별로 살펴 보았다. 이 글의 목적은 가치적 판단은 배제한 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정치적 구심체의 형성과 해체에 대해서 네 가지 분류를 제시하는 데에 있다. 글을 마치면서 한 가지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은 특정 정치 목적을 지향하는 세력이 강한 구심력을 가진 정치 조직체를 건설하지 않으면 그 목적 달성을 하는 과정에서부터 그 결과까지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이다. 해방 이후의 역사적 사건과 87년 야당의 분열에 따른 여당의 승리 그리고 97년 대선에서도 나타나듯이 동일한 정치 지향을 가진 세력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일된 구심체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번 총선의 결과는 이제까지의 경험적 사실과 일치하는지 아니면 다르게 될지 상당한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  본 글은 대자보 37호(2000.3.9)에 발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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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3/18 [13:4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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