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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인제 대세론의 허구성에 대해서
 
장신기   기사입력  2002/01/30 [12:15]

500만표와 여론지지율의 허구

이인제 대세론이란 무엇인가? 현재 민주당 대권 후보로 거명되는 사람 중에서 이인제의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올 뿐만 아니라 이회창과의 가상 대결에서도 상대적으로 다른 후보보다 격차가 적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지난 97 대선에서 얻은 500만 표에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기본 지지층을 더하면 대선 승리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 논리에는 호남에서의 절대적 지지와 충청 지역에서의 우세, 그리고 영남 지역에서의 나름대로의 선전과 경기 인천 강원과 같은 중부권 유권자의 지지를 전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이러한 '이인제 대세론'에 대해서 상세한 분석 기사를 내보낸 {한겨레 21} 385호의 기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김대중 대통령의 당 총재직 사퇴로 본격화한 민주당의 차기주자 경쟁국면. 그 맨 앞에 이인제 상임고문이 달리고 있다. 당내 부동의 대중 지지도 1위, 현역의원 40여명에 달하는 지지세력. 차기주자 이 고문의 아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현실들이다. “내년 대선은 결국 이인제-이회창의 대결이 될 것이다. 당내 경선은 걱정하지 않는다. 대의원들도 국민지지가 가장 높은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다. ‘될 사람’을 후보로 뽑을 것이다.”(이 고문쪽 관계자)  

이 고문이 민주당의 전신 국민회의에 합류한 98년 9월 상황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당시 97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 고문의 국민회의행을 따랐던 현역의원은 이용삼, 원유철 등 6명. 사실상 혈혈단신이나 다름없었다. 거의 유일한 자산은 97년 대선에서 얻었던 500만표. “당시에는 모든 게 불투명했다. 다음 대선까지는 4년 반이나 남았다. 한국처럼 복병이 많은 정치판에서 차기를 기약할 수 있을까,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대선패배로 곤궁에 빠진 이 고문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이 고문의 측근) 그렇지만 내년 대선을 1년 남짓 남긴 시점에서 이 고문은 민주당에서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 고문의 대세론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은 9월7일 이 고문의 계파 모임. 현역의원 26명이 참여한 이 자리에 이훈평, 조재환 등 동교동계 구파 의원들이 함께 했다. 동교동계 구파는 이처럼 내놓고 이 고문 캠프의 모임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다. 동교동계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대변인격인 이훈평 의원은 최근 “우리(동교동계 구파)는 이제 이인제로 정했다. 누가 뭐래도 이인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뛰어야 한다”라고 말했다.(한겨레21 제385호, 「뜨거운 감자 '이인제 대세론'」, 2001년 11월 21일)

위에서 보듯 이인제 대세론은 97년에서 얻은 500만표와 현재의 여론 조사 결과 가장 높은 지지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인지도로 얻은 지지도

우선 현재의 여론 조사 결과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 문제점은 인지도와 지지도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의 지지도라는 것은 높은 인지도와 깊은 연관이 있어서 실제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들에게 인지도가 높으면 지지도가 높은 것으로 나오게 된다.

대선 후보가 결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에게 '누구를 지지하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실제 지지하지 않더라도 많이 알려진 인물에 대한 언급을 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게 되면 실제로 본선 경쟁력이 낮은 인물이 인지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현재 여론 조사에서는 지지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된다. 이는 통계 자료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유의할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지도가 높다는 것은 분명 특정 인물의 장점이고, 그 안에는 상당한 수준의 지지세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의 단순한 여론 조사에서 높게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국민 지지도가 높다는 결론을 내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결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단순한 발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발상은 민주당이 처한 여러 열악한 조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지적 직무유기라고 까지 할 수 있다.

민주당은 기본적인 당세가 보수 야당인 한나라당에 비해서 약하다. 또한 보수 세력의 분할 통치 전략과 정치 이념적 공세에 의해서 형성된 반한나라 비DJ 정서를 가지고 있는 중간층의 지지를 얻지도 못하고 있다.

현재 중간층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4가지 부류로 나누어져 있고 이들은 김대중 정권에 대한 실망과 보수 세력의 공세에 의해서 야당으로 조금씩 기우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치 구도의 변화와 구조적 성격에 대한 치밀한 해석을 하고 그 해석에 기반하여 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한 필승 전략을 구체화해야만 하는 것이 민주당이 처한 현재의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높은 인지도가 높은 지지도로 연결되는 현재의 여론 조사의 결과만을 가지고 국민적 지지가 높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인제 대세론의 중요한 논거 중의 하나인 현재의 높은 국민 지지도는 확신하기 어려운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흔들리는 500만표

그러면 이인제 대세론의 또 하나의 근거인 97년 대선에서의 500만표의 존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지난 대선에서 얻은 500만표의 성격에 대한 면밀한 고찰 없이 당시의 지지층이 현재의 지지층으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 이인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92년 대선과 97년 대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반한나라 비DJ 세력을 97년에는 이인제 혼자 독점했기 때문이다.

92년 대선에서도 반한나라 비DJ 성향의 유권자는 매우 많았으며 선거 막판에 가서는 이 들 중에 상당수는 김영삼 김대중 두 거대 후보 쪽으로(물론 김영삼 후보을 지지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기울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향을 끝까지 나타낸 사람들은 정주영 후보와 박찬종 후보로 몰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97년 대선에서는 정주영 후보와 박찬종 후보의 지지세 였다고 할 수 있는 그 당시의 반이회창 비김대중의 유권자는 97년 경우엔 이인제로 몰리게 되었다. 만약 97년 대선에서 조순 후보가 출마했다고 가정한다면 이인제가 그 만한 득표를 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 이인제가 얻은 표 중에서 상당 부분은 조순 쪽으로 분산되어서 그만한 득표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산술적인 계산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반한나라 비DJ에 속한 유권자들의 결집력이 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 공간에 속한 유권자(반한나라 비DJ)들은 적극적인 지지 성향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92년 대선과 97년 대선에서 당시 여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저런 이유로 김대중을 지지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92년의 정주영 박찬종, 97년의 이인제의 주된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공간(반한나라 비DJ)에 속한 사람의 정치적 지향점을 명확하게 나타내기 어려운 면이 있다. 기존 거대 정당과 인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결집력이 강하고 강력한 지지층을 형성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상당수가 92년과 97년에 정주영, 박찬종, 이인제 등을 지지한 것은 그 인물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사의 표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여권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야권의 김대중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표가 될 것을 알면서도 정주영, 박찬종, 이인제를 지지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반한나라 비DJ이라는 정치적 공간을 기반으로 하여 97년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이인제의 500만 표는 사실상 이인제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의사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이회창이 싫지만 그렇다고 김대중을 지지하지도 않는 92년 선거부터 구조화된 반한나라 비DJ이라는 정치적 지지 공간에 속한 세력의 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특정한 상황 속에서 주어진, 그야말로 주어진 공간에서 나타날 수 있었던 예외적 현상이며 이는 어떠한 정책적 입장과 이념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러한 지지층은 견고하지 못하며 특정한 이슈나 이미지의 효과에 쏠리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비정형화된 지지층를 전제로 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면밀한 상황 판단에 근거해서 보면 이인제가 얻은 97년 대선에서의 500만 표가 이번 2002년 대선에서 이인제의 강력한 지지세라고 파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500만표의 존재를 강조하는 '이인제 대세론'의 중요한 논거는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충청과 영남을 동시에 잡을 수 없다

그러면 이인제 대세론의 또 하나의 논리적 근거인 충청 지역에서의 우세와 영남 지역에서의 선전은 어느 정도 논리적 타당성이 있는가? 이와 관련된 {한겨레 21}의 기사를 보자.

그러나 이 고문이 대세론을 형성해 가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이인제 회의론’도 함께 낳았다. 우선 이 고문의 가능성을 높여준 지난해 4월 총선 결과는 동시에 이 고문의 한계도 보여줬다. 97년 대선 당시 이 고문의 영남 득표율은 부산 29.8% 62만표, 경남 31.3% 33만표, 울산 26.7% 14만표였다. 이른바 PK지역의 경우 전국득표율 19.2%보다 높았다. 그러나 이 고문이 선대위원장으로 선거전을 진두지휘한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은 단 한석도 건지지 못했다. 반DJ정서에 가로막힌 민주당의 한계였지만 이 고문에 대한 영남권의 거부정서로도 풀이될 만한 것이었다. 실제 한나라당은 총선 내내 “이인제의 경선불복 때문에 DJ가 됐다”는 이른바 ‘이인제 학습효과’를 퍼뜨리며 영남권 61석 가운데 60석을 석권했다. 이 고문의 영남권 득표력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을 실제로 보여준 것이다.

그동안 여권 내부에서 내년 대선정국을 겨냥한 정계개편설, 영남후보론, 외부인사 영입설 등이 끊이지 않은 것도 이런 ‘이인제 회의론’의 다른 표현이다. 이 고문을 포함한 민주당 내 경선주자로는 이회창 총재를 이길 수 없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 10·25 재·보선 패배 이후 민주당에서는 “이 고문의 한계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꿈틀거리고 있다. 당 관계자는 “이 고문은 누구보다 10·25 재·보선에서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 충청권표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반면 한나라당은 김용환, 강창희 의원 영입 이후 충청권에서 세력을 확대해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고문의 충청권 영향력이 의문시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이 고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회창 총재에 뒤진 지지율을 뒤집을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내에서는 이런 흐름이 대선 때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고 전했다.

이 고문은 “국민의 지지가 높은 주자가 후보가 돼야 한다”며 당내에서 가장 높은 대중지지도를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 고문의 성패는 이 고문이 이회창 총재에게 뒤진 지지율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특히 영남의 완고한 지역정서를 뚫고 들어갈 방안을 제시하느냐를 핵심 과제로 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는 이 고문의 영남지역 지지도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가 10월27∼28일 실시한 여론조사의 경우 이인제 대 이회창의 가상대결에서 이 고문은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에서 11.9% 대 68.4%, 14.4% 대 58.8%로 크게 뒤졌다. 당 관계자는 “이 고문의 경우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지역에서는 호남 출신인 한화갑 상임고문, 고건 시장 등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 고문의 호남 득표력은 더이상 늘어날 여지가 적다는 뜻이다. 따라서 관건은 영남권인데 이 고문이 영남권을 공략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 고문에 대한 회의론은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한겨레21 385호, 「뜨거운 감자 '이인제 대세론'」, 2001년 11월 21일)

위의 주장에서처럼 충청 지역에서의 우세를 장담하기 힘들고 영남지역의 반발을 무마시키기도 어렵다면 '이인제 대세론'은 사실상 현실성이 없는 주의 주장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기사를 바탕으로 하여 이인제 진영이 강조하는 충청 지역 우세와 영남에서의 선전이라는 선거 전략적 논의의 한계를 지적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충청 지역에서의 이인제의 득표력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사실 이인제가 민주당 후보가 될 경우 나름대로 지지율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 충청권이다. 분명 이인제가 민주당 후보가 된다면 충청권의 지지가 민주당의 다른 후보보다 높아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적을 것이며 영남 지역에서의 마이너스 요인을 감안한다면 충청권에서의 어느 정도 지지율 상승이 전체 대선 구도에서 민주당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수준은 결코 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충청권은 한국 사회의 격렬한 지역 갈등과 대립 구도에서는 조금은 벗어난 지역이다. 충청권은 비록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지역적 요인으로 이익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호남 지역처럼 차별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충청 지역의 특성으로 인하여 충청 지역은 87년 대선과 88년 총선 이후에 김종필에 대한 지지의사를 나타내었지만 그 정도는 영호남에 비하여 강도가 약했다. 그래서 다른 정당들도 충청지역에서 비교적 균등한 지지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92년 대선과 97년 대선 때도 반한나라 비DJ의 정서가 강하게 나타나서 정주영이나 이인제가 상대적으로 많은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 충청 지역은 이회창이 선영이 충남 예산에 있다는 연고를 내세우면서 지지세를 조금씩 확장해가고 있다. 그리고 김용환 강창희 두 의원의 한나라당의 입당으로 한나라당의 당세가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종필이 아직도 충청 지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이인제가 충청권에서 우세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 만약에 DJP 공조가 대선 때까지 지속되었고 그 상황에서 이인제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는 가정을 한다면 이인제가 충청권에서는 분명 한나라당의 이회창보다 의미 있는 수준에서 우월한 지지세를 확보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호남 충청 연합의 성격이 너무도 강렬하게 부각될 DJP연합 구도하의 이인제 대통령 후보는 영남 지역에서의 격한 반발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영남 지역에서 돌이킬 수 없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이 경우에 대선 승리는 사실상 어렵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인제는 독자적으로 지지 성향이 비교적 다양한 충청권에서 확실한 우세를 담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전략은 영남 지역에서의 마이너스 요인을 고려한다면 민주당의 필승 전략으로는 매우 위험한 선택일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영남권에서의 이인제의 지지성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이인제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97년 대선에서 얻은 김대중의 13%와 자신이 얻은 26%가 결국은 차기 대선에서도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인제가 YS로부터 돈을 받았다' '이인제 찍으면 DJ가 당선된다' 같은 흑색선전 때문에 20%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당시 내가 얻은 26%와 DJ가 얻은 13%가 결국 어디로 가겠는가?(2001년 11월 19일자 시사저널 630호 참조)

이는 영남 지역의 득표력에 대한 당 내외의 회의적인 반응에 대한 이인제 진영의 대응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인제의 논리에는 현재의 심화된 지역 감정 문제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97년 대선까지의 지역감정은 사실상 호남 대 비호남의 구도하에 차별받는 호남 지역민들의 단결이 극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 감정이 지역 갈등 구조 1기라고 할 수 있다면 김대중 정권 들어선 이후에 나타난 영남 지역민들의 지역 감정은 제 2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김대중 정부 들어선 이전과 이후와의 차이가 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선 이후의 지역 감정의 특징은 무엇보다 영남 지역민들의 소외의식이 지역이라는 고리로 묶여져 있다는 데에 있다. 영남지역민들은 김대중 정부 들어선 이후에 소외되었다는 인식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결과로 인해 지난 총선에서 전체 65석 중에서 64석을 야당인 한나라당에게 몰아준 것이다. 영남지역민들이 현재와 같은 집단적인 소외감을 갖게 된 것은 극우 언론과 야당 그리고 정부 여당의 실정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결과이며, 그 폭발성은 다음 대선의 방향을 좌우할 정도로 강력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인제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이인제는 분명 영남지역에서 호남 충청 정권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게 될 것이며 이는 현재의 악화된 영남 민심을 끌어들이는 데에 결정적 장애가 될 것이다.

사실 호남 지역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민주당의 어떤 후보든 영남 지역의 민심을 얻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첫번째로 지역 분열과 갈등을 위해 싸웠다는 명확한 논리와 경력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는 원칙적인 측면에서 영남들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연고주의적 특성상 영남 지역에 대한 연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현실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출신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서 그 해당 지역의 지지세에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치는 것이 현실이기에 영남 지역의 연고가 있어야 함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렇게 볼 때 이인제는 두 가지 면에서 영남민들에게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인제는 망국적인 지역 갈등 문제에 온몸을 던져 싸워 왔다고 보기 힘들다. 이인제는 지역 감정을 이용한 보수 지배블록의 권력 연장을 위한 3당 합당에 참여했으며, 그 이후에도 지역갈등 문제해결을 위한 뚜렷한 정치적 행동을 해왔다고 하기 힘들다. 물론 얼마나 많은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포기하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역 감정 문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섰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이인제도 평범한 일반 정치인과 같이 지역 감정 문제을 현실로서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자신의 정치적 행동을 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경력은 지역 갈등 구조를 반드시 뛰어 넘어야만 하는 민주당의 입장에서 볼 때 국민들 특히 영남 지역민들에게 호소력을 가지기 어려우며, 이는 민주당의 대선 승리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남 지역에 대한 연고주의적 고리도 없다는 점도 이인제 고문의 영남 득표력을 의심하게 하는 요인이다.

사실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반감이 큰 영남 지역에서 지역 갈등 구조 타파를 위한 헌신을 한 것도 아니고 영남 지역 출신이라는 연고주의적 고리도 없는 민주당 후보에게 영남 지역민들이 표를 몰아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그냥 기대로 끝날 것이다. 막연한 기대감이 현실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것은 너무도 상식적인 이야기 아닌가? 막연한 기대는 현실로 이뤄지기 힘들다.  

이러한 요인들을 감안해볼 때 이인제 대세론의 핵심적 근거라고 할 수 있는 97년 대선에서의 500만표와 내년 대선에서의 충청 우세와 영남에서의 방어라는 논리적 근거에는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이인제 대세론은 97년 대선에서의 출마와 지난 총선에서의 선대위원장으로서 활동하여 국민적 인지도에서 앞선 이인제의 현재적 조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민주당은 위에서 언급한 상황에 대한 좀 더 치밀하면서도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표밭이 무너진다

그런데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인제 대세론 자체는 사실상 민주당과 김대중의 전통적인 지지자들이 기본적으로 이인제를 지지할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을 전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인제가 현재의 민주당 후보가 될 때 과연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인제를 그대로 지지하게 될까? 필자는 이인제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민주당 지지를 철회하거나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겠다는 사람을 너무도 많이 보고 있다. 이는 정말로 민주당으로서는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인제는 어떠한 이념적 가치를 지향하는지 불분명한 면이 있으며 현재 거명되는 민주당 대선 후보 중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민주당 대선 전략적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이인제 진영은 민주당의 고정 지지표는 어차피 다 모일 것이며, 민주당에 등을 돌린 보수 세력을 끌어안아야만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한겨레 신문 2001년 11월 20일의 『민주 대선주자 집중탐구 ①이인제 '민주 지지표+보수표 흡수 자신'』기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민주당 대선주자 가운데 보수적 색체가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단편적이나마 그가 밝혀온 견해들을 보면, 금융파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력한 구조조정의 상징인 영국의 대처 수상을 예찬했다. 재계의 규제완화 요구와 관련해 “혁명적 방법으로 규제를 없애겠다”고 밝혔으며, 주5일 근무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일부 참모들은 이런 변화를 선거전략 차원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진보적 계층이나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미 확보해놓은 표이기 때문에, 보수세력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안정지향적인 행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고문을 가까이서 지켜본 김광두 교수(서강대 경제학과)는 “이 고문은 97년 대선 뒤 여러나라를 돌아보며, 전세계가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경쟁력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보수 세력을 껴안아야만 한다는 논리. 이 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이 논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시절 보수파를 껴안기 위한 이른바 뉴DJ플랜과 매우 흡사하다. 야당 시절 김대중 대통령은 보수파의 지지를 받아야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뉴DJ플랜을 내세웠지만 보수파의 이동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통적인 지지층의 반발만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의깊게 살펴 보아야할 점은 이인제는 김대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김대중이 뉴 DJ플랜을 내세웠을 때는 견고한 보수 블록의 공세에 방어하면서도 일부 보수세력을 견인하겠다는 의도가 개입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대중은 비록 몇 가기 비판받을 면이 있지만 그 동안의 민주화 투쟁의 경력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이 뉴 DJ플랜의 보수성을 지지층이 이해하게끔 하는 힘이 되었다. 이와 비교해볼 때 이인제가 민주당의 지지층은 어차피 우리 편이 될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상황 판단을 잘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해온 이인제의 정치적 행동과 입장은 민주당의 이념적 지지 세력의 이탈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분명 사회가 개혁되어야 하고 진보적인 방향에서 바뀌어야 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역적으로 영남 지역의 지지를 받는 것과 동시에 보수 세력의 지지 역시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민주당은 호남 지역의 지지를 받는 것과 동시에 개혁적이고 진보 세력의 지지-물론 민주당으로 수렴되지 않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세력도 있다-를 받고 있다. 이러한 개혁 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이인제의 행동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그래서 뉴DJ플랜을 내세웠을 때의 김대중과 다르게 이인제의 경우엔 실제로 민주당의 개혁적 지지세력의 이탈이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력은 매우 클 것이며 이는 이인제 대세론이 실제로 대세가 아닌 결국 '필패론'으로 끝나게 할 정도의 위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인제의 경선 불복종은 실질적으로 개혁 세력에게 더 많은 도덕적 순수함을 요구하는 한국적 풍토에서 볼 때 민주당으로의 흡입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과거에 김대중이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지층의 확대를 이루지 못한 것은 비록 보수진영의 이미지 조작에 의한 것도 있지만 김대중이 상황논리를 내세우면서 말을 바꾸었고, 또 말을 바꾼 것처럼 비춰진 것에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김대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확대되어 선거마다 여러 가지 고생을 했던 민주당으로서는 이인제의 경선 불복종이라는 사실로 인해서 과거에 겪은 어려움을 또 다시 반복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과 개혁 진영은 선거에 임할 때 항상 보수 세력보다 더 많은 도덕적 순수함을 요구받으며 개혁 세력의 도덕성이라는 요소는 개혁 세력에 대한 국민적 지지의 폭과 그 정도를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인제의 경선불복종이라는 경력은 좀 더 엄격한 도덕적 순수함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는 민주당의 입장에서 볼 때 선거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인제의 지지율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선 이인제는 민주당이 현재 한나라당에 비해서 기본적으로 뒤지고 있는 5%의 차이를 어디에서 만회할 수 있는지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인제가 후보로 될 경우에 그나마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충청권의 중간층은 그 세도 약하며 결집도도 약하고 김종필 변수 등등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5%의 차이를 만회할 수 있는 세력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적인 5%의 차이를 만회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부산 경남 울산 지역의 강력한 중간층을 사실상 포기하는 결과가 되는 치명적 결함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인제는 보수 세력의 공세에 취약한 면이 있으며 이는 선거 전체 분위기가 보수 세력이 의도하는 대로 형성되어 비판적인 수도권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오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자들이 이인제에 대한 지지를 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민주당은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중간층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다른 중간층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해야만 한다. 그렇게 볼 때 이인제는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중간층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동서대결 구도에 의해서 부산 경남 지역의 중간층의 거센 반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처한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러한 종합적인 어려움이 민주당의 대선 패배로 귀결될 것임이 뻔히 보임에도 이인제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할 것인가? 5%의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확실한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불확실한 수도권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더군다나 기존 개혁세력 표의 상당수를 날려버릴 위험성도 있는 이인제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모험이 아니겠는가?  

이인제는 탈당할 수 없다

이인제와 관련되어서 한 마디만 더 하도록 하겠다. 시중에는 이인제가 민주당 후보가 되지 못하면 탈당할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실제로 위와 같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인제가 97년 대선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전통적인 반한나라 비DJ의 정서를 혼자 독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이 더 이상 김대중의 민주당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민주당은 김대중의 지지 이상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 정치는 이제 사실상 민주당 대 한나라당이라는 개혁 대 보수의 실질적인 양자 대결 구도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는 87년 민주화 이후의 혼란스럽던 한국 정치의 안정화 과정과 맥을 같이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3김청산과 권위주의 정치질서의 거부라는 명분이 더 이상 통하기 힘든 상황에서 유의미한 제3세력의 등장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다. 이는 이인제의 탈당을 어렵게 할 구조적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97년의 여당과 현재의 여당의 상황은 다르며, 이러한 요인 역시 이인제의 탈당을 어렵게 할 것이다. 이인제는 이미 경선 불복종이라는 경력이 자신의 정치적 발전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경선에 불복하여 당에서 뛰쳐나간다면 국민들의 평가는 매우 싸늘할 것이며, 이는 이인제의 정치적 발전에 결정적 타격을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을 누구보다 이인제 자신이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이인제가 탈당할 것이란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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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기 기자는 그동안 대자보에서 발표한 정치평론 등을 묶어 [이인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노무현만이 이회창을 이길 수 있다, 거름출판사, 2002. 1. 30]라는 책으로 출판합니다. 네티즌들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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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1/30 [12:1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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