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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새 운동주체 '삐께떼로'
모두 꺼져!…우리 삶은 우리가 책임진다
 
지오리포트   기사입력  2003/05/22 [12:57]
2001년 말, 외신들은 성난 아르헨티나 시민이 은행 창문을 부수고, 수퍼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난동 사태를 보도했다. 그들은 1990년대 내내 집권했던 카를로스 메넴과, 그 뒤를 이은 델라루아 정권이 도입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으로 삶이 거덜난 사람들이었다.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수개월 동안 임금을 지불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장 문을 닫고 도피했고, 실업률은 40%에 육박했다. 산더미처럼 불어만 가는 외채를 감당할 수 없었던 정부는 2001년 12월 3일 예금인출동결 조치를 발표했고, 절망한 중산층은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 뒤 시간이 지나면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새로운 실험에 눈뜨게 되었다. 사장이 돌아와서 임금을 지급하길 무한정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럼 우리끼리 하자"며 생산 현장에 복귀했고, 일터에서 쫓겨나 파업마저 할 수 없던 사람들은 고속도로를 봉쇄해서 유통을 막았다.

인터넷 매체 <선더베이 인디미디어(thunderbay.indymedia)>에 게재됐던 타미 존슨(Tommy Jonsson)의 글 '전부 다 꺼져버려!( They all must go!)'를 통해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운동주체 '삐께떼로'의 저항과 실험을 소개한다.

아르헨티나의 복잡한 현실을 이 글 하나로 이해하기는 힘들 듯하다. 자세한 배경 설명을 빠뜨린 점, 독자의 이해를 구한다. 그 '벅찬' 작업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옮긴이>

▲ 한 때 탱고를 추던 아르헨티나 중산층이 이제는 숟가락으로
냄비를 두들기고 있다. 출처:  http://www.nadir.org


아르헨티나 대통령 두알데는 퇴임 연설에서,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떠벌였다. “우리는 평화롭고, 질서 정연한 국가를 넘겨 주고 떠난다.” 두알데는 그렇게 선언했다.

그가 집권한 뒤로 (30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사망한) 2001년 12월 20일 봉기와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가 말한 “평화롭고, 질서 정연한 국가”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불법 점거하고, 고용자·실업자 할 것 없이 자신들 문제를 해결하라고 집단으로 요구하는 이 혼란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아르헨티나는 보여주고 있다.

전례없는 자본 유출로 실직자가 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은 빚더미에 깔려야 했다. 실직자들은 계속 일할 권리를 요구했고, 법정에서는 다시 일하고 싶으면 기업주가 진 빚을 떠맡으라는 판결을 내렸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2년 동안 소유하게 되고, 빚을 못 갚을 경우 공장은 국가 재산이 된다는 것이다.

즉시 많은 소규모 조직이 이런 조건으로 다시 일하기 시작했고, 급료는 형편없이 줄어들었지만 다시 일을 한다는 편안함, 진압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는 공장을 소유할 거라는 희망에 휩싸였다.

더 크고 강력한 조직은 기업주가 진 빚이 왜 자신들 책임이냐며, 빚을 갚을 것을 거절했다. 이런 조직은 직접 민주주의 집합체로 발전했고, 공장을 불법 점거했으며, 필요하면 힘으로 공장을 사수했다. 그리고 이 조직은 삐께떼로(Picketeros)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조직은 의복공장인 브루크만(Brukman)과 타일 제조업체인 사논(Zanon)이다. 새로운 민주주의 방식과 지역 사회에 대한 이들의 헌신으로 이들은 지역 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사장이 없어도 공장은 돌아간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되면서 가슴에 꿈을 품게 된 노동자들의 경외를 불러 일으켰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공장을 점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르헨티나 전국 실업노동자 대표조직이며, 삐께떼로 그룹과 직접적인 연계를 갖고 있는 '실업노동자운동'(이하 MTD)이 이들의 보안을 책임져 준 것이 결정적 요소였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실업률에 부딪친 정부는 한 가구당 매달 150 페소를 지급하는 대신 거리 청소 같은 일을 시키는, 'hefos y hefas'라는 사회복지 제도를 도입했다.

어떤 정파에도 속해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조직이 직접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MTD는 이 실업자 수당을 자신들이 회원들에게 직접 분배할 수 있어야 하고, 지역 주민들이 어떤 일을 할지 자신들이 프로젝트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전부 다 꺼져버려!" 출처 http://www.nadir.org


MTD 회원들은 생계비를 벌 만큼 장시간의 노동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으며, 캐나다 온타리오 주 정부의 " workfare" 제도와 비슷한 이 복지 제도의 문제점은 정부가 국가를 위한 노동에 빈민을 노예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MTD는 자신들의 운동을 대중화하고,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주 정부에게 알리기 위해 정기적으로 고속도로를 봉쇄한다.

이 중 네우껜(Neuquen) MTD는 지역 전체를 페인트 칠하는 것에서부터, 교육, 버스 정류장, 병원, 야외 공연장 건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마련하는 등, 특히 지역사회 발전에 강하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상당 부분 - 사논 노동자들이 병원을 짓는데 필요한 타일을 전부 기부한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 그들 운동내에 존재하는 연대망이다. 다른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스타 공장을 되찾으면 자신들과 연계를 맺고 있는 삐께떼로 그룹 전체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생산량을 확대하기도 한다. 이들의 목적은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실패한 정부를 대신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노동을 거부하는 것은 정부가 자신들을 지배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게을러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국가 경제가 아닌 지역 사회에 헌신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보수로 혹은 거저나 다름없이 일반 노동자와 똑같은 시간 동안 일하고 있다.

이를테면 꼬르도바(Cordoba) MST가 문을 닫은 병원을 점거하여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재가동하자, 공권력에 의해 쫗겨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도 노동자들은 병원도 없는 상태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의료활동을 계속했다.

최근에는 네우껜 지방 법원이 사논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가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리고 나서 강제퇴거 명령이 떨어지자 주 정부는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판결은 예상했던 것이었다. 법정이 공장주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편을 들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주 정부가 사논 노동자들을 상대로 조치를 취하게 되면, 이 지역에서 존경받는 사논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의 표시로 광범위한 총파업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국제적인 존경을 받고 있는 브루크만과 사논 공장은 금년에만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곳을 방문했을 정도다. 더욱이 사논 노동자들은 과거에 볼 베어링과 고무총으로 작업장을 사수했던 만큼, 주 정부로서는 강제퇴거가 성공한다는 확신도 없는 상태다.

제작년 11월과 작년 3월에도 주 정부는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공장 설비를 파괴했지만, 노동자들은 공장을 재점거해서 생산을 계속했다. 브루크만과 사논 노동자들이 최근 임금을 세 배나 올린 것도 사장이 진 빚을 갚으라는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브루크만 노동자들은 아무도 살 능력이 없는 정장복 대신 이불과 작업복을 생산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을 더 고용해야 한다며, 주 정부에게 15만 페소를 제공하라는 요구까지 했다.

이 모든 운동의 저변에 깔린 메시지는 신자유주의 기구가 내놓는 일련의 대안에 대한 환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국제 자본과 지배체제의 영향력 밖에서 공동체 건설과 노동자 자주관리를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은행, IMF, 정당, 구닥다리 노동조합, 그리고 정부를 향해서, 그들은 집회가 열릴 때마다 구호를 외친다. "Que Se Vayan Todos!(전부 다 꺼져버려!)"
(Tommy Jonsson / 번역 김지연)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지구촌을 여는 인터넷 신문" 지오리포트 http://georeport.net/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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