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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전에 대한 언론보도의 허상을 끝까지 밝힌다
생물무기 (Biological Warfare Agent) 파헤치기 (1)
 
예병일   기사입력  2003/02/26 [00:01]
대구에서 일어난 지하철 참사는 사건발생 1주일을 넘긴 지금까지도 전국민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신문 보도 자료중에 “화생방훈련 때 하던 대로 바닥에 엎드린 후 눈과 귀를 막은 채 입을 벌리고 물기를 코 밑에 바르며 구조되기를 기다렸다”는 증언이 있었다. 이 생존자가 이야기한 화생방훈련이 군대 시절 경험한 것인지 민방위훈련시 경험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화생방훈련을 경험한 바 있을 것이다.

매달 한차례씩 전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불편을 끼쳐 가며 실시되는 민방위훈련은 경계경보, 공습경보, 화생방경보, 해제경보가 적어도 한번 이상 발효되어야 끝이 난다. 70~80년대에 초중고를 다닌 필자의 경우 매달 한번씩 수업을 중단한 채 운동장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화생방경보가 울릴 때면 모두 땅바닥에 엎드린 채 옷을 더럽혀 가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는데 그런 경험을 통하여 소중한 생명을 건진 사람이 생겨났으니 적어도 그 당사자만큼은 훈련에 대한 본전을 완전히 뽑은 셈이다.

옷을 땅바닥에 대야 하므로 민방위훈련 중에서도 가장 귀찮은 존재였던 화생방훈련은 화학, 생물학, 방사능(핵) 무기에 대한 대비를 하는 훈련이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투하된 원자폭탄 두 방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을 선포함과 동시에 방사능 무기의 무서운 효과를 명확히 보여 주었고, 영화 <더 록>과 <언더시즈 3> 등에서 소재로 등장한 것은 화학 무기였으며, 1995년에 발생하여 아직도 일반인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옴진리교의 동경 지하철 테러 사건도 사린(Sarin)이라는 이름의 화학 무기를 불법으로 제조하여 공공시설에 뿌린 사건이었다.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의 항공기 테러 직후 미국 여러 기관에 배달되던 백색가루가 탄저균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동안 일반인들에게 남의 일같지 않게 받아들여지던 생물 무기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이제 약 1년 반의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잠잠해져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으며, 가끔씩 대중매체를 통해 관련 기사들이 소개되었다가 조용히 사라져갈 뿐이다.

미생물체를 이용한 테러(bioterror)에 대한 기사가 넘쳐나던 시기에 “보툴리누스균에서 분리한 독소 1g으로 1,700만명을 죽일 수 있”다는 기사나 0.0000001g의 미생물이 자신보다 60조배나 무거운 60000g의 인간을 살상할 수 있”다는 보도를 한 대중매체도 있었다. 과연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놓았기에 이제 그와 관련된 보도가 자취를 감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형사건이 일어난 후에 잠시 떠들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일이 대한민국에서는 워낙 일반화되어 있는 일이다 보니 가까운 시일 내에 벌어질 지도 모르는 미국과 이라크의 한 판에서 뭔가 굵직한 건수가 터지기 전에는 전과 같이 생물 무기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가 쉬울 것 같지는 않다.

화생방이란 군사용어로 화학전, 생물학전, 방사능전(핵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화학전에 사용되는 물질을 화학 작용제, 생물학전에 사용되는 물질을 생물학 작용제라 한다. 생물학 작용제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그대로 사용하는 미생물 작용제와 살아 있는 생명체에서 인체에 해가 되는 물질만을 분리하여 사용하는 독소 작용제로 나눌 수가 있다.

그런데 과연 위에 인용한 보도내용이 사실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위의 내용은 사실로 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필자들이 정확한 내용을 알고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전쟁이나 테러에서 위의 내용이 실현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보툴리누스균 독소가 아무리 인체에 치명적이라 하더라도 1,700만명을 한 군데에 모아놓고 1g으로 몰살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살포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생명을 잃는 일은 발생하지 않으며, 1,700만분의 1g을 물에 타서 마시거나 에어로졸로 만들어 흡입하여도 절대로 목숨을 잃지 않는다. 1,700만분의 1g이라는 치사량은 특정독소가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특정부위에 정확히 주입되었을 때나 치명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양이다. 그러므로 우편으로 한 푸대의 탄저균 백색가루가 배달되어도 재수없게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몇 사람 발생할 뿐 가루에 노출된 모든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병원성 미생물 연구자들은 매일 목숨걸고 연구에 임하는 것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강조해야 할 것은 생물학 작용제를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더라도 얼른 피하는 것이다. 물론 우연의 결과로 먹거나 흡입하였을 경우 해독제 등과 같은 후속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전쟁이건 테러건 어떤 상황이라도 사람을 꼼짝 못하게 묶어 놓고 치명적인 독소 1,700만분의 1g을 작용부위에 정확히 찔러넣어 살해하는 방법을 시행할 수는 없을 것이며, 병원성 미생물 0.0000001g이 인체에 감염된다면 잠복기를 지나 증상이 나타나는 순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회복할 수 있을 테니 전쟁에서 살상을 목적으로 그런 소량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꾸어 이야기하자면 몽둥이 하나 들고 한 명씩 차례로 때려 죽여서 대한민국 4,500만명을 모두 저세상으로 보낼 수 있으니 몽둥이 하나가 원자폭탄 하나보다 더 무서운 무기라고 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또한 탄저균 뿐 아니라 생물학 작용제로서 사용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디프테리아나 파상풍 균에서 분리한 독소도 치사량에 있어서는 탄저균과 비교하여 별 차이가 없으므로 치명적이라는 이유로 탄저균이 무기로서의 사용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 보도내용에 도전장을 던지며, 앞으로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아웃브레이크>, 로빈 쿡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동명의 <아웃브레이크>, 탐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2>,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12 몽키즈> 등에서 주요 소재로 등장한 생물학 작용제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 필자의 홈페이지로 가시면 유전공학에 관한 더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http://yeh.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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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2/26 [00:0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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