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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원인, 기업별 코디네이션의 한계를 중심으로
 
양준호   기사입력  2003/01/28 [17:53]
 유럽의 경제학자 P.A. Hall과 D. Soskice에 의하면 자본주의적 경제시스템은 공간별/국가별 다양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크게 분류하면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ies"와 "코디네이트된 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ies"라고 하는 두 가지 타입의 자본주의가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도 이와 같은 그들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ies"에서는 자유경쟁시장 또는 수직적 히에라르키 조직을 통한 경제과정의 조정이 그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 영국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반면 "코디네이트된 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ies"에서는 시장 또는 수직적 히에라르키 조직에 의한 경제조정 뿐만 아니라 '비시장적 조정' 또한 중요한 경제조정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경제과정에 대한 비시장적 조정은 여러가지 형태가 존재하지만 그 공통점으로는 "하나의 네트웍" 내의 정보교환과 협동적 관계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중에 다시 한번 언급하겠지만, 경제에 대한 코디네이션이 이루어지는 그 영역과 단위는 상이하지만 일본, 스웨덴, 노르웨이 이 3국은 흔히 "코디네이트된 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ies"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ies"와 "코디네이트된 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ies"사이에는, 1)노사관계, 2)직업훈련, 3)기업통치/지배구조(흔히 "코포레이트 가버넌스"라고 함), 4)기업간 관계에 관련한 제제도에 있어서의 현저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또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ies"와 비교해 보면, "코디네이트된 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ies"에는 "고용관계의 장기성", 그리고 "국민적 신뢰관계의 장기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90년대에 있어서의 일본경제의 장기불황 또는 장기정체의 원인을 정부에 의한 과다한 규제와 지도 등 비시장적 경제조정을 다용한 점에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상당히 많다. 이러한 견해들은 일본경제가 정체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구조개혁", 즉 규제완화와 규제철폐에 의해 시장 본래의 "자연적 자유의 질서"에 입각한 경제조정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경제가 IMF 관리체제에 빠지게 되었을 때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 온 "시장원리주의자"들도 미친듯이 외쳐대었다. 꼭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신을 믿고 있는 맹신도와 같이. 결국 이러한 주장과 견해들은 시장에 의한 경제조정을 효율적이고 공정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제조정방법이라고 맹신한 나머지,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ies"를 가장 이상적인 자본주의의 타입이라면서 광신한 것이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ies"에 속하지 않고 "코디네이트된 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ies"에 속하는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버블경제붕괴 이후 경제재생을 단기간에 성공리에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공적자금의 투입과 은행국유화, '적극적노동시장정책'에 의한 노동자의 기능형성과 "연대임금정책'을 통한 노동이동의 순조로운 촉진 등의 비시장적 경제조정을 집중적으로 채택했으며 실시한 결과이다. 따라서 비시장적 경제조정 일반을 무용하고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경제학자("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신을 믿는 자들)들의 견해는 엉터리임을 폭로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하에서는 버블경제붕괴 후의 일본경제의 정체는 비시장적 경제조정 그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비시장적 경제조정의 특수한 형태, 즉 일본적 형태로부터 기인되었음을 설명하고자 한다.

스웨덴 노르웨이의 경제에 대한 코디네이션은 주로 산업레벨과 사회레벨에서 전개된다. 반대로 일본에서의 경제 코디네이션은 주로 기업레벨과 기업그룹(이른바 기업집단)레벨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직업훈련과 임금교섭이 이루어지는 그 영역과 단위는 일본에서는 "기업"인 반면에, 스웨덴 노르웨이에서는 "산업" 또는 "사회전체"이다. 일본에서도 산업별 사회별 코디네이션은 몇 가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많고 조정능력도 매우 약하다. 그리고 이하에서 말하겠지만, 기업레벨, 기업그룹레벨의 코디네이션(경제조정)은 버블경제붕괴 후의 경제조정에 대해서 순조롭게 처리할 수 없었다.

"버블경제 후의 처리"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산가격의 저하에 의해 수익성을 상실한 사업부분/기업/산업을 소멸/도태시켜 그 곳에 투입되었던 자본과 노동이라는 핵심 생산요소들을 수익성이 유망한 다른 사업부문/기업/산업에 이행시키는 것이다. 사회전체에 걸친 거대한 버블의 경우 자본과 노동의 이동은 일개 기업내의 부문간 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축소되는 산업으로부터 확대가 예측되는 산업으로의 이동이 필요한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는 일시적인 경제활동수준의 저하와 실업 또한 일어날 수 있다. 실업 후의 직업훈련과 재취직을 지원하는 제도와 시설이 불충분할 경우, 해고라고 하는 조치는 정통성을 얻을 수 없으며,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또 부실채권의 실체적 처리는 은행으로부터 보면 불채산기업(불량기업)에 대한 융자정지와 담보자산의 회수를 의미하지만, 대기업의 경우는 앞서 말했던 것과 같이 해고의 대량발생을 동반하게 된다. 또 중소기업의 경우 그 영향은 경영자의 개인재산의 상실까지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이 은행이 부실채권의 실체적 처리라고 하는 조치를 취하면, 대출처였던 중소기업이 부분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건전사업의 수행능력과 신규사업에 대한 참입능력은 거의 상실해 버리기 때문에 부실채권의 실체적 처리에 대해서는 강력한 저항이 존재하게 된다. 즉 손실과 고통의 분배는, 성과의 분배에 비해서 이해대립이 격해지기 마련이다.

결국, 첫째, 사회전체에서의 코디네이션이 필요하다는 점, 둘째, 소득저하와 실업 등 손실과 고통의 분배를 동반한다는 점, 이 두 가지 특징을 가진 문제의 처리에 관해서는 기업과 기업그룹을 기준단위로 하는 코디네이션은 유효성이 낮을 수 밖에 없다. 사회레벨의 코디네이션이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고 또 그 코디네이션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제도와 조직이 없는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는 버블경제 후의 처리에 관한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일본경제의 정체가 장기에 걸쳐 지속되는 기본적 원인은, 기업과 기업그룹레벨의 코디네이션의 이와같은 특징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부실채권문제의 미해결과 산업구조변화와 고용구조변화의 정체, 그리고 기업의 저수익성의 지속은 그 결과이다.

기업과 기업그룹레벨의 코디네이션에 장기정체의 근본적 원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관점으로부터 보면, 일본경제가 장기정체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두가지의 방법이 예상된다. 하나는 미국과 영국과 같은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ies"를 향해 걸어가는 길, 즉 시장과 히에라르키적 경제조정기능을 고조시키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독일과 스웨덴과 같은 산업과 사회전체라고 하는 영역과 단위를 전제조건으로 한 "코디네이트된 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ies"를 향한 돛을 올리는 것, 즉 코디네이션의 범위를 더욱 더 넓히는 길이다.

전자의 길을 걷게 될 경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저수익부문으로부터 고수익부문에의 자본과 노동을 이동시키는 수단으로서는, 시장메커니즘에 의존한 조정이 그 중심에 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시장에서는, 이윤율과 주가 등 단기의 지표에 입각해서 투자자금의 제공과 회수가 행해지는 형태로, 자본이 자유로 이동하는 메커니즘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은행과 대출처기업과의 장기적 관계를 현 시점에서의 수익성을 중시한 단기적 관계로 변경하는 것과 자금조달방식을 간접금융으로부터 직접금융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정보공개의 확충 등 정보증권거래제도를 정비하는 것 등이 필요할 것이다.

노동시장에서는 경영자가 가지는 해고의 자유를 기본적으로 인정하여 경기의 변동에 따른 유연한 고용조정, 이른바 해고의 유동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현재의 고용보장과 해고억제를 위한 법 규제와 노사협약에 의한 규제를 완화 철폐해야 하는 것이 요구된다. 또 연공임금, 신입사원채용의 중시, 연령제한 등 기업의 임금체계와 인사제도를 변경해서 중도전직을 통한 노동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을 축소시키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처방은 90년 이래 일본에서 줄곧 시도되어 왔지만 지금의 일본은 전혀 회복하고 있지 않다.

독일과 스웨덴 등의 "코디네이트된 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ies"의 길을 향한 닻을 올린다면, 수익성을 상실한 산업으로부터 고수익성이 예상되는 또 다른 산업으로 자본과 노동을 이동시키기 위한 비시장적 조정을 사회전체라고 하는 레벨에서의 합의에 입각한 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비시장적 조정의 운영주체는 반드시 국가일 필요도 없으며, 노동조합과 경영자단체 지방자치체 등 여러가지 형태가 가능하겠지만, 세금을 원자로 하는 국가자금의 투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의 이동에 관해서는 장래 필요하다고 예상되는 기능분야에 중점을 둔 본격적인 직업훈련을 위한 제도, 그리고 조직이 필요하다.
 또 재취직을 위한 제도와 조직도 필요하다. 일시적인 실업의 격화를 완화하기 위해서, 국가부문(섹터)이 채용자 수를 늘이는 것 또한 필요할 것이다. 자본이동에 관해서는 부실기업이 진행해 온 여러 사업 중 부실차업과 건전사업을 적절히 분리해서 건전사업의 존속과 발전을 가능케 하는 조치가 중요하다. 또 부실사업의 정리와 건전사업의 지속적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공적자금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처방은 90년 이래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 줄곧 시도되었고, 이로인해 양국의 경제회복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양국에서의 경험들을 우리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정권은 "코디네이트된 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ies"를 위한 제도적 장치 구성을 경제개혁의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삼아야 할 것이며, 일본의 서툰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ies"를 위한 모험을 절대로 답습해서는 안 된다.
 
* 필자는 오사카경제법과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 본문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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