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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표가 국회연설 한줄 알았다
[오동명의 취중진언] 노대통령 스스로 눈과 귀를 막고 한 신년기자회견
 
오동명
대통령은 스스로 눈과 귀를 막고 있었다
 
대통령의 자리에 앉으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고 말을 하기도 한다. ‘어디 대통령 잘못인가. 대통령 밑에서 보좌하는 참모들이 문제지’ 뭐 이런 말도 했었다. 1퍼센트라도 아직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남았던지 신년기자회견 바로 전까진 나도 이렇게 믿어보려 했다. 이래서 더 주의 깊게 들었다. 그가 국민에게 한 희망을 가지라는 말에 희망을 가져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80분간의 기자회견은 희망, 실망, 절망으로 이어져온 임기 2년을 한 마디로 허망하게 만들고 말았다. 실망도 절망도 그 ‘望’자엔 기다림과 기대감을 섞고 있지만 허망의 ‘妄’자엔 진실이 아닌 거짓의 뜻이 내포돼 있다. 한 마디로 속았다는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그에게 속고 말았다는 말이다. 참모의 잘못보다도 대통령인 노무현 자신의 잘못이 더 크다는 걸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눈과 귀를 막고 한 나라를 끌어가고 있었다. 이러자니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세태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오로지 맘대로 잣대질하려 들었다.
 
그러나 그는 권력자이다. 권력은 바로 힘이어서 안하무인이 되기 쉽고 자기안주에 빠져들기 쉽게 돼 있다. 이렇게 되면 잘한 건 자기 때문이요 못한 건 남의 탓으로 돌리게 된다. 문제는 그에게 주어진 권력을 누릴 시간이 아직도 3년이나 남았다는 현실이다. 힘은 힘이 있는 것끼리 모여 든다. 굳이 자기보다 약한 자나 집단을 끌어들여 솔솔한 권력의 재미를 흩트리거나 흔들어 놓게 만들지 않는다. 그가 그전 기득권들을 끌어안으려는 몸부림은 이래서 아주 자연스럽다고 자기 스스로 느끼게 될 게 분명하다. 추하거나 배반했다고는 전혀 느끼지 못할 거라는 말이다.
 
기자회견 내내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거나 주절거리듯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이어갈 때는 한없이 측은해지기까지 했다. 그도 이런 그를  알고는 있었던지 얼굴에 웃음을 지어보이곤 했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어색해지면 웃는 웃음 말이다. 그 웃음 속에서 그가 전에 한 말도 들려왔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던.
 
「정치판에 양심적인 자는 설 자리가 없다.」한 플라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 했는가. 그는 “저를 개혁적인 인물로 알고 있던데...”라며 자조 섞은 말까지 꺼내놓고 있었다. 개혁적인 인물로 알고 있었고 그래서 뽑아준 국민들을 이 한 마디가 무지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자기부정을 하고 있지 않는가. 국민이 알고 있듯이 자기는 개혁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그러니 기대하지 말라는. 그도 가슴이 탔을 게다. 중간에 목이 마르다며 물을 마실 땐 물 한 모금이 아니라 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 씌워주고 싶었다. 그러나 물 한 바가지에 정신을 자릴 상황은 이미 넘겨버리고 말았다.
 
기자회견 내내 냉소적이고 무책임한 말을 무척 혼란하게 뒤섞어 얘기하고 있었다.
 
“부패도 문화다. 시민적 통제가 부패척결의 원동력이다.”(정치부패청산에 대한 그의 소견으로 자기가 할 몫이 아니라 시민단체가 해야 할 몫으로 떠넘기고 있었다. 후보 때나 취임 초기엔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 하지 않았던가.)
 
“지난 해 42만개의 일자리를 약속한대로 창출했다. 하지만 일자리 품질이 낮아져 내용이 나빠진 것뿐 목표는 달성했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양보가 필요하다.”(1년 전 기자회견 때도 지금처럼 일자리 창출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한 기자가 질문하자)
 
“사람 만나 해결하는 것, 21세기에 맞지 않다. 민주주의 시대에도 맞지 않고. 사람을 만나도 개별적으로 줄 게 없다. 특별한 격려가 되지 못할 것.”(대기업 총수들의 고견을 듣고 싶다고 하면서도 한 입으로 두 말을 했다. 보도된 바와 같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직접 따로 만나 -독대-주미대사와 유엔 사무총장 자리까지 약속했다는데 이는 어찌 설명하려고 이러는지...)
 
“국회, 당에 넘기고 일체 관여, 간섭하지 않겠다. 단지 국회가 잘 운영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덕담만 나눴을 뿐이다. 여유를 가지고 풀어가자고 격려 정도 했다.”(덕담과 격려를 강조하며 국회나 당에 과거사청산문제를 떠넘기고 있었다.)
 
이러다가도, 당ㆍ정이 엇갈리는 면을 자주 봤다며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국회에서 걸고 싸우지만 않았다면...” 전제하며 국회발목잡기에 대해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이어,“경제살리기가 아닌 기득권살리기 아닙니까?”라며 기득권의 탓으로 돌린다. 이 부분에선 정말 더 어의가 없었다. 그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게 바로 기득권 끌어안기면서 말이다. (삼성 등 대기업 챙기기와 홍석현과 같은 언론재벌의 자기 사람만들기가 뭣이란 말인가?)
 
“어물어물 넘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이 기회에 답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교육부총리 인사파동에 대해 묻자)
 
“책임은 제게 있지만 저는 징계절차가 없고 난감하다. 검증이 모호했다. 민정에서 올리면 그것을 믿고 판단한다. 그러나 책임을 지고 안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에게 사과하기 위해 (두 명의 수석) 해임시키지 않았느냐. 또 수석 한 명은 임기가 길기도 했고 해서...”(대통령이 모두 책임이라면서도 자기는 물러날 수가 없으니 임기도 오래된 수석을 갈았다느니 하며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늘어놓았다. 이번 인사파동의 본질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이어서, “절 개혁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던데 비서실장은 덜 개혁적인 사람이면 좋지 않겠냐?”(이게 도대체 뭔 말인가. 도덕성에 흠이 많은 교육부총리 임명과 이에 깊숙이 관여한 김우식 비서실장이 유임된 사실을 두고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이기준 씨를 교육부총리로 앉히면서 대학교육개혁의 적임자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대통령 맞나 싶다.)
 
“대학에 가면 인성, 시민교육은 아니다. 공교육은 중등교육까지다. 대학은 경쟁의 장이다.”(교육을 대학에만 편중해서 그것도 경쟁의 장으로만 생각하는 대통령이라 대학을 산업으로 여기고 있을 만하다며 마지 못해 이해해 보려 한다. 이럴 땐 가엾다는 말 외에 더 다른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가소롭다고 하면 우리나라가 너무 한심해진다. 이런 이를 대통령으로 뽑아 놨으니 말이다. )
 
“옛날에 돈 좀 벌었다고, 땅을 사뒀다고 문제 삼는다는 것이 문제다.”(이기준 씨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이기준은 죄가 없는데 할 수 없이 물러나게 했다는 말이 아니던가. 이건 도덕불감증이 아니라 사태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대통령으로서의 무능력의 소치, 통치 능력의 부재가 아니고 뭐던가.)
 
“사심없이 일하고 공사를 분명히 하는 것, 도덕적 요구자세다.”(이렇게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석현과 이기준을 이 기준으로 뽑았다면 분명 노무현 대통령은 노망이 든 게 확실하다. 도덕은 별 관심이 없다 했다. 능력만 본다고 했던 그다.)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이런 말까지 하고 말았다.
 
“대통령이 말려들어...”
 
이번 인사파동에 있어 대통령이 무엇에 말려들었다는 말인가. 인사수석의 거짓검증에? 아님, 빗발치는 반대여론에?
 
그는 결코 국민 앞에서 교육부총리 인사문제에 대해 사과할 뜻이 없었던 게 분명해 보인다. 이는 곧 여론을 귀담아 들은 게 아니라 마지못해 들어주는 척만 했다는 말이 된다. 이러니 앞으로도 이런 인사파동과 같은 시끄러운 일은 계속 벌어질 것이라는 점을 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가 있다.
 
대통령은 귀와 눈을 스스로 이렇게 막고서는 기득권에 안주하며 속 편하게 앞으로의 3년을 넘겨보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그가 밝힌 청사진이 너무나 화려하기만 해서 공허하기까지 하다. 어떤 근거로 3년 뒤에 2만 불 소득을 장담하는지, 무슨 방법으로 5년 후 선진국에 들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은 두고 보면 알 거라고만 한다. 속이 텅 벼 소리만 요란한 냄비를 본다. 여직 무시해온 환경에도 신경을 쓰겠다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2년 만에... 임기 5년까지도 성과 불투명합니다. 정책을 채택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운데 채택하지 않았느냐. 행정수도는 실속에서 처음 못지않은 결과로 추진될 것.”
 
횡설수설에 가깝다. 남의 탓, 제도 탓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 자화자찬이 벌써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고 자가당착은 극을 치닫고 있다. 누가 그를 정치 9단을 넘는다 했는가. 누가 그를 정면승부의 도사라고 칭찬했던가. 오늘, 그를 보고 있자니,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희망은커녕 실망도 아닌 절망을 넘어 허망해지기까지 했다.
 
2년 만에 이렇게 나올 거라면 애시당초 개혁은 입밖에 꺼내지도 말 것이지. 개혁운운도 대통령 되기 위한 전략이었고 그 전략에 우리가 속았더란 말인가. 노무현, 그가 우리 역사에서 책임져야 할 대목은 무능력이 아니다. 무기력이다. 국민에게 안겨준 무기력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 때, 어느 누가 개혁을 주장하는 대통령 후보에게 관심을 갖겠는가.
 
“내가 또 속을 줄 알고?”라며 늑대소년은 결코 되지 않겠다 하지 않겠는가. 이번 신년기자회견에선 개혁 대신 ‘자신감’, ‘희망’이란 말로 국민을 또 홀리고 있었다. 자괴감에 빠지게 해놓고 자신감을 가지라 하며, 희망을 저버리고서는 희망을 가지라고?
 
신년기자회견을 가장 반긴 이들이 누굴까?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 대표가 나와 국회연설을 하는 줄로 착각하기에 충분했던 기자회견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알맹이 하나 없는 연설이나 답변, 횡설수설에 한나라당이 파악한 건 무엇일까? 개혁실종의 반사적 이득, 즉 소위 개혁주의자들의 붕괴와 우왕좌왕 이합집산, 그리고 개혁지지자들의 자괴감과 정치무관심으로의 전환, 이에 대한 상대적 자기 세력의 대결집, 바로 차기 집권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이겠지. 노무현은 우리나라의 시간을 뒤로 돌려놓고 있다.
 
이번 신년기자회견의 더 큰 문제는 이를 전하는 언론이다. 적어도 YTN을 포함한 우리나라 4개 방송의 보도에선 근거 없는 대통령의 희망사항을 대통령의 입을 대신해 립서비스하고 있다. 기자회견과 현실에서 보여주는 대통령의 이중적 행태에 대한 비판은 한 마디도 없다.
 
대통령의 회견을 직접 듣지 못한 상당수 국민들은 방송만 보고 들으면 노 대통령에 아직 희망을 가져도 되겠구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대통령이 읽어 내려간 회견전문과 이 후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현격히 다른 부분이 많았다. 경제챙기기의 의지표명이나 동반성장의 취지 속에는 오히려 서민 등 노동자나 중소기업의 편이 아닌 대기업 중심의 재계 쪽에 훨씬 비중을 두고 있었다. 방송들은 이들 재계의 환영 소리만 전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대통령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얘기하는 실용주의란 말인가? 방송은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대통령의 입술에 입맞춤하기에 급급했다.
 
(참고=기자회견전문은 언론 출신의 청와대 연설문 작성자가 쓰니 모두 그럴듯해 보인다. 뒤집어 말하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아름다운 글쓰기이기 쉽다는 뜻으로 이러니 구구절절 희망사항뿐이요 두루두루 껴안기 할 수밖에. 노무현 대통령의 진짜 속내는 회견 중의 기자 질문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에 들어있다.)  
 
 
오동명 작가는 1957년 생으로 경제학을 전공했고 중앙일보 사진기자를 지냈다. 직업인이 아닌 직장인으로서 신문사에 근무할 때 3년에 한 권 꼴로 책을 내겠다는 계획을 직장을 그만 두고 변경했다. 1년에 한 권은 꼭 내겠다고. 별 다른 재주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 약속을 아직까지는 지키고 있다.
2000년엔 <당신기자 맞아> 증보판을, 2001년엔 <신문소 습격사건>을 냈고, 2002년엔 소설<바늘구멍사진기>, 2003년엔 사진취미 책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가 시중에 나와 있다. 2004년엔 여행책 <5만원 2박3일>을 펴냈다.(미디어오늘 작가소개 인용)
기사입력: 2005/01/13 [23:57]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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