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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선, 비지론의 완성이자 종말
[쟁점] 盧 등장은 개혁열망의 이미지화, 노빠의 민노당지지 상관없어
 
편집부   기사입력  2005/01/06 [03:07]
* 본문은 본지 뒤집기 독자 논설위원의 ''노빠논객'의 말로, 정신분열적 글쓰기'라는 기사에서 촉발된 논쟁중, 노무현 지지세력의 성격과 민주노동당 지지세력의 실체에 대해 본지 독자이신 '이거...'님의 분석과 평가입니다. ‘노무현 지지세력’의 성격과 향방에 관해 누리꾼 여러분들의 다양한 평가와 참여를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뒤집기님, 온 곳으로 돌아가는 법입니다.
 
비전공자의 눈으로 보기에 정치는 매우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는 우스운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점은 ‘초월적 개인의 존재’란 불가능하며 어떤 개인은 그가 속한 정치 세력에 의해 ‘얼굴 마담’으로 추대되어 절대적으로 이미지화 될 수는 있어도, 실제 그러한 권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 노무현의 시스템 정치가 아닌가.
 
나는 정치가 노무현의 정치력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무섭게 생각하는 편이다. 여태까지의 행적을 보건대, 그는 정치의 룰을 잘 알고 있으며, 정치의 룰만에 파묻히지도 않는 것으로 보인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에) 그는 상황을 매우 잘 이용할 줄 알며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잘 포장할 줄 알고 참을성있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상황을 이용하는 기술 - 이러한 점에서 그는 정치적으로 일류 전술가라고 생각된다.
 
노빠로 대표되는 그의 지지그룹이 만들어지기까지 그가 표방한 것, 혹은 지지를 받기 위해 처신하고 내걸었던 내용들은 바로 개혁이었다. 최초의 문민 정부(군부 독재의 종식), 최초의 여야 정권 교체(민주화의 일정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에는 턱없이 못 미쳤고, 친일 - 군사 독재로 이어지는 많은 부류들은 여전히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개혁은 민주화의 완성 - 포괄적으로 표현하자면 ‘정직한 사람들이 무참한 꼴을 당하지 않는’ 사회를 향한 진전이야 말로 시대적 요구였고, 노무현은 이를 간파하였다.
 
개혁과 변화, 범개혁세력, 수구와의 전쟁 등의 이미지를 총동원하여 스스로를 민주화 흐름의 성과물이자 완성형으로 위치시켰다. 일류 전술가답게 시대적 흐름을 읽고 그것에 자신의 입장을 합치시킨 것이다. 당연하게도 노무현 지지자 중의 일부는 노무현을 몰랐을 때부터 무언가의 변화와 혁신, 혹은 한국 사회의 진보를 바라고 있었던 사람들이 차지한다.
 
변화된 상황
 
노무현은 제2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이처럼 현실적인 힘을 획득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이 노무현을 지지하게 되었다. 대통령이면 무조건 성군이라 칭송하는 도올같은 해바라기에서, 그보다 조금은 수준이 높은 서영석류의 개혁 장사치, 민주당 분당시 열우당으로 대거 이전한 이름없는 수구 국회의원들이 그들을 대표할 것이다. 보수를 지향하지만 높은 수구의 벽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비주류 수구-보수층도 중기 이후의 열우당으로 상당히 이끌렸으리라 생각된다.
 
어쨌든 노무현지지, 혹은 열우당 지지자들은 선명한 목소리로 국사를 농단하는 개혁적 인사들의 말과는 달리 형편없는 잡탕 정당이 되어버렸고, 애초의 개혁적 이미지 메이킹조차 흔들리게 되는 상황이 도래하였다.

개인적으로 볼 때,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비지론의 완성된 형태이자 종말을 고하는 것이다. 비지론은 일종의 고전과 같아서 똑같은 논리로도 오랜 세월 동안 항상 새로운 감흥(은 주지 못하지만)과 용도와 논리를 제공하여 왔다. 단, 비지론을 주장하는 세력이 열세인 경우에만 그렇다. 그러므로,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때부터 아니면 적어도 열우당의 과반 획득 이후부터는 비지론이 사라졌어야 한다.
 
그러나 유시민의 앵벌이, 그리고 현재 대자보에서 벌어지는 16%를 줬느니 마느니 하는 논쟁을 보면 아직도 비지론이 망령처럼 떠돌고 있는 듯 하다. 이는 비지론이 당면한 최악의 결말이다. 비교적 개혁성과 비교적 현실성이라는 어정쩡한 태도로 비교적 지지를 받아오던 세월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인지, 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상상력을 잃어버린 듯 하다. 전략과 상황을 만드는 기술, 이러한 점에서 노무현은 일류 전술가인지는 몰라도 전략가로서는 3류에 불과하다.
 
과반 의석 획득 이후 그들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위치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지지율 하락이 이루어졌던 것은 의미심장하다. 혹시 이들이 익숙하고 편안한 소수당의 위치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개인적으로는 서영석의 독립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소수-비주류의 입장에서 주류를 비판하거나 주류가 되려하는 노력은 얼마나 멋있어 보이는가!)
 
소결
 
노무현의 지지가 피크에 달했던 당시는 비교적 개혁성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희망으로 존재하면서도, 비교적 현실성은 비교적을 넘어서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이다. 그러나 상황이 진행되면서, 희망은 희망으로 끝나버리게 되었고 현실성은 철저하게 수구의 것과 다르지 않은 현실 타협성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사정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노무현의 대폭적인 지지율 하락이 동반되었다.
 
노무현의 개혁성을 보고 지지했던 사람들은 노무현이 개혁적이지 않음에 실망하였고, 노무현의 권력과 보수성에 주목하고 접근했던 사람들은 한나라처럼 명쾌하게 돈과 권력이라는 잣대로 운영되지 않는 당의 행태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지금 이들은 노무현과 열우당에 등을 돌렸거나 혹은 돌리려 하고 있다. 이들이 노무현에게 등을 돌린 이후, 어디로 가겠는가? 당연하게도 원래의 목적, 개혁을 쫒아왔던 이들은 또다른 개혁을 찾아 나설 것이고, 권력을 쫒아 왔던 이들은 또다른 권력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들 전체를 한때의 노무현지지 세력 - 개혁 세력으로 이해하려고 하니까 이해의 혼선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뒤집기님의 분석이 유사하게 들어맞는 예외가 있다. 애초에 개혁으로 시작했던 노빠 논객들, 그들의 당시 사고방식은 현재의 노빠들과 동일하다.
 
‘노무현을 지키는 것이 바로 개혁을 지키는 것이요. 그 자체가 개혁이다.’
 
이 논객들은 정권을 방어하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논리를 개발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이라크 파병을 옹호해야 했고, '귀족노조' 운운하면서 '노노갈등'을 부추겼으며, 네오콘의 압력 앞에서는 꿇어야 한다는 진리를 설파했다. 이들에게 천성산의 생태계는 고속철을 위해 양보돼야 하는 것이었고, 부안 주민은 대가리 터지고 군화발에 짓밟히면서도 지역이기주의를 관철하려는 독종들이었다. 지난 몇 년간 이러한 사고방식의 글쓰기를 열광적으로 해왔던 이들이, 노무현에게 등을 돌렸다고 해서 갑자기 생태와 자연과 노동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상 이들은 대부분 전과 비슷한 논조의 글을 쓰고 있다. 이들의 글을 ‘노무현에게 등을 돌린 이후 갑자기’ 보수화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실은 노무현을 칭찬하는 한 어떠한 글도 개혁적으로 보였다는 뒤집기님의 심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추기)

1. 어쨌든 이 글의 결론은 권력 찾아 온 사람은 권력 찾아 떠나고, 개혁 찾아 온 사람은 개혁 찾아 떠났다는 것인데, 이런 당연한 내용을 장황하게 적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노무현 지지자도 그렇고 민노당 지지자도 그렇고 자기 당 지지를 목놓아 소리칠 사람은 지지자 중에도 극히 일부일 뿐이며, 국민 전체로 보면 그야말로 한줌에 불과합니다. 정치에 아주 요상한 철학을 가진 옆집 아저씨조차도 모두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정치적 의사를 결정합니다. 국민들이 개혁을 원했기 때문에 (선거 때) 노무현의 개혁 전술이 먹혀든 것이지, 노무현의 개혁이 사람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이 개혁을 원하게 된 것이 아니지요.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민노당에도 표를 주었다면 그들은 노무현식 개혁과 민노당식 진보의 둘을 모두 원했기 때문이지, 노무현을 지지해서 마음이 넓어져서가 아닙니다. 몇 표를 줬느니 다시 거둬들이느니 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국민들을 싹 무시하는 건방진 소리라고 생각됩니다.

2. 지난 해 대자보와 폴리티즌을 넘나들며 진행된 노빠 논쟁은, 그 열기와 재미에 있어서는 다른 기사들을 압도했지만 별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논쟁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매우 치열하게 여러 가지 현안들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논쟁의 중심은 그 현안들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현안들을 누가 더 잘 이해하고 있느냐의 ‘나 잘났다.’ 싸움이었을 뿐이다. 대자보 편집진의 토론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는 십분 공감하지만, 좀더 건설적이고 현실적인 대안들에 대한 논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평범한 회사원이며 사회나 정치, 경제를 전공하지 않은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그러한 분야의 논쟁을 주도하는 현실은 대자보나 독자들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어떤 주제들에 대해서는 비록 본인 같은 일반인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더라도 구체적 근거에 의한 전문가들의 식견이 필요한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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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1/06 [03:0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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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 2005/01/06 [23:01] 수정 | 삭제
  • 빠돌파돌님,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한 합리화의 변입니다.
    제가 이렇게 나름대로 머리를 긁적여가며 장문의 글을 쓴 이유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사회와 관련된) 고등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저 자신도 글을 쓰다 보면 막히는 부분이 너무나 많아서 쓰다가 지워버린 글이 훨씬 많습니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장하려는 글이라면, 좀더 객관적인 근거 또는 좀더 논리적으로 합리적인 사실의 꿰뚫음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나름대로는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게으름일 수도 있고, 비전공자이자 다른 생업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피치못할 사정일 수 있지만, 어쨋든 정치인이나 정치 평론가. 기타 정치와 관련된 생업을 가진 사람보다 정보에서 둔감하고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정치나 어떤 사회 현상에 관해 썰을 푸는 경우는 이미 그와 관련한 정보가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제공된 이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포되는 정보 자체가 유포하는 사람의 (그 사람이 의식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가치관에 의해 걸러진 정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가끔씩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허위 보도와 국민의 부화 뇌동'이라는 함정에 걸려들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않는 언론이 필요한 것이고, 안티 조중동의 의미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졸필이나마 글을 올리는 이유는 똑같은 정보에 대한 감수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최용식 소장이 매년 하반기에 엄청난 경제 성장률을 보였다며 한국 경제는 튼튼하다고 주장할 때 최 소장이 제시한 수치만을 근거하더라도, 연간 경제 성장의 저조와 그를 메꾸기 위한 하반기의 경기 부양을 추론해 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감수성의 차이이겠지요.

    결론적으로, 보다 먼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 - 즉, 꾸준히(생업을 걸고) 정보의 동향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먼저 말문을 열어야 한다는 - 다시 말해 구체적 사실들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 것이고, 그러한 구체적 사실을 감안한 (제가 제기하는 것과 같은) 자기 생활에서의 감수성에 의한 분석 내지 비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쓰는 글은 한 단계나 두 단계 정도의 뒷북성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분석에 필요한 사실들을 충분히 수집했을 시점에는 그 사실들을 이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모두가 아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연결시켜 어떤 해답을 내놓는 것도 매우 주요한 일이고, 일반인 논객으로서 제가 지향하는 최고의 경지이지만, 사회 현상을 주도하거나 예측하거나 그에 대한 뭔가를 만들어 나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주제에 대한 논쟁은 일반적 감수성에 벗어나더라도 보다 사실에 입각한 전문가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Dark... 2005/01/06 [10:56] 수정 | 삭제
  • 온길로 가지 않고 좀 더 바뀌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그 엇갈리는 경우의 수가 비슷하면 원래의 상황과 다를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좀더 많은 사람들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요. ^^
    그래야 사회의 수준이 올라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

    제 개인의 생각이 어떻든...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빠돌파돌 2005/01/06 [09:26] 수정 | 삭제
  • 저 또한 정치나 사회분야 비전공자입니다.
    정치에 대한 혹은 사회현상 일반에 대한
    그런 것들을 꼭 전공자의 것으로 두고
    우리가 거리가 있는 것처럼
    규정할 필요는 없을 법 합니다.

    좋은 하루!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