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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좌파,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변명
진보에 관한 류철원에 대한 반론, 그리고 소위 ‘좌파’에게 던지는 화두
 
권순욱
* 본문은 본지 권순욱 기획국장의 기사 '노무현 지지자들의 열린사고를 기대함'에 대해 폴리티즌(www.politizen.org)의 논객 류철원님의 반론 ‘'노빠'는 열린사고 아닌 환골탈태 해야“에 대한 재반론입니다. 본문에 대한 네티즌 여러분들의 다양한 평가와 입장을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정치공론장 ‘폴리티즌’(www.politizen.org)의 논객으로 활동하시는 류철원님(이하 경칭 생략)께서 내가 쓴 글에 대해 반론 성격의 글을 주셨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제목이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변명이다. 어찌됐든 노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대표성은 없지만 내가 쓴 글에 대한 반론을 통해 노대통령을 비판했으니 응당 나로서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글은 류철원의 반론글에서 더 나아가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분들께 드리는 성격이 짙은 글이다.
 
상식과 원칙이라는 레토릭의 의미는
 
노빠들이 가치판단 기준으로 삼는 '상식과 원칙'이라는 레토릭은 사실 노빠들조차 그 개념 규정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리고 각자 주관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충분한 레토릭이다. 그동안 이 '상식과 원칙'이라는 레토릭은 50년 넘도록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반칙과 특권'에 대한 저항적 개념이다.
 
그러니 소위 좌파라 불리는 세력들이 보면 굉장히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다는 식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소위 좌파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이론적 토대와는 달리 뜬구름을 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민중을 이야기 하면서도 민중과 밀착하지 못하는, 아니 그들과 밀착하더라도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한국 좌파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고 있다.
 
정교한 수학같은 서구 좌파이론이나 한국 사회의 주류 좌파에서 볼 때 상식과 원칙은 이론적 토대가 없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레토릭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 사회에서 이 보다 더 큰 진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상식과 원칙은 무엇인가? 앞서 반칙과 특권에 대한 저항적 개념이라고 이야기 했다. 이는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미래지향적 가치개념은 아니다. 소극적 개념이다.
 
그럼에도 이런 소극적 개념의 상식과 원칙은 우리 사회의 물적토대를 교체하는 데 있어서 출발점이 된다고 믿고 있다. 인맥과 학맥, 혈맥 등 온갖 폐쇄적 커뮤니티가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며 구축해놓은 물적 토대를 무너뜨리고, 소위 좌파가 말하는, 그리고 범개혁세력이 원하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상식과 원칙은 존재가치를 갖고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상징되는 과거의 가치체계를 청소하는 것이야말로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과거사 청산이 중요하고, 제대로 된 사회적 담론 형성을 위해 언론개혁이 중요하다. 
 
상식과 원칙이라는 레토릭은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니 소위 좌파에서 볼 때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현실적으로 과거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진보라고 믿고 있다. 소위 좌파에서 신봉하는 가치체계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가 여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소위 좌파세력이 노대통령의 노선에 대한 대안으로 지지를 얻고 있는가라고 되묻고 싶다.
 
그래서 나는 최근 민노당에 대한 지지율 상승도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에 따른 반사이익에 불과하다고 본다. 상식과 원칙이 적극적으로 미래지향적인 가치가 아닌 것처럼 민노당을 비롯한 좌파진영 역시 현실적합성을 갖춘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가지지 못한 점은 동일하다고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상식과 원칙이라는 레토릭이 미래를 지향하는 가치가 아닐지언정 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과거와 현재의 올바른 자리매김에는 현실적합성을 가졌다는 측면에서 유효하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라는 가치는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이 한국 사회에서 '희망'으로 존재했던 이유는 사실 각양각색이었다. 그래서 노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을 보면 심지어 박정희를 존경하면서도 각자의 경험을 통해 이 사회의 반칙과 특권에 울분을 느꼈던 감성적인 사람들, 이론적 토대나 자신의 가치체계를 좌파에 두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헤게모니 장악을 통한 실제적인 진보를 위해 노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들, 그리고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향하는 그룹들 등 동일한 이념적 스펙트럼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다양한 사람들이 집결한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이념적 잣대를 기준으로는 이런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노대통령을 중심으로 모일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공통 분모를 찾는다면 50년간 지속되어 온 수구냉전 기득권 세력을 몰아내고 범개혁세력이 이 사회의 새로운 주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를 장악한다는 의미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의 정치구조, 경제구조, 사회구조, 문화구조, 국제질서구조 등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공통 분모라고 본다.
 
정통 좌파에서 말하는 진보라는 가치가 '노동계급론'에 터잡은 것이라면 나는 한국 사회에서의 진보라는 가치는 노동문제에 국한하지 않은 포괄적인 구조 변화라고 생각한다. 유물론에서 말하는 물적 토대가 단순히 경제적인 혹은 노동적인 문제가 아니라 모든 가치를 포괄한다고 믿는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고 있는 개혁의 실체는 한국 사회의 '주류세력 교체', 달리 말하면 '물적 토대의 교체'라고 본다. 노빠들이 구체적인 의미나 개념 규정 없이 떠드는 '원칙과 상식'이라는 레토릭의 실체는 바로 이러한 물적 토대의 교체에 있으며,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주류 세력의 교체는 물론 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는 개혁은 다소 더디게 보이고, 미진한 부분이 많이 보이기도 하지만 제 갈 길을 가고 있다고 본다.
 
물적 토대는 교체되었는가?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일한 이념적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는 광범위한 세력이 집결했기 때문에 노대통령 지지그룹의 취약성이 드러난다. 류철원이 지적한 것처럼 각론에서 제 세력들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북정상회담 특검 수용을 통해 전통적 민주당 지지그룹이 이탈했으며, 1차 이라크 파병결정을 통해 반전주의자들이 떨어져 나갔고, 부안 핵폐기장 문제와 천성산 터널문제 등으로 인해 환경론자들이 돌아섰다. 그리고 화물차 파업문제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통해 노동자 그룹이 실망했으며, 재벌개혁, 부동산 문제, 정치개혁 문제, 사법개혁 문제 등 무수한 현안에 있어서 기대에 못미치는 속도 혹은 지체로 인해 지지그룹이 이탈했다.
 
여기서 좀 더 노대통령을 변명하고자 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모든 아젠다를 범개혁세력의 입맛에 맞게 끌고 갈 수 있는 물적 토대는 확보했는가? 한국 사회의 상부구조는 변화했는가? 아니다. 기존 주류세력을 대체하는 비주류 정권이 들어선지 겨우 7년이 지났을 뿐이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의 대통령처럼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거니와 지난 독재정권이 구축해놓은 상부구조는 여전히 강고하다.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로 풀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국회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리고 사법부의 몫은 사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과거처럼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혹자들은 너무도 간단하게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왕권국가였던 조선시대의 임금도 자기 마음대로 국정을 좌지우지 할 수 없었다. 굳이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강력한 물적 토대를 구축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뚫기에는 개혁세력의 물적 토대는 너무 허약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런 현실적 한계 때문에 남북문제와 국제문제를 제외하고는 많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행정부 관료들은 여전히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꿈꾸는 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사법부의 반동성은 행정수도 이전 위헌결정 등을 통해 여러번 확인됐다. 정권의 시녀 역할을 했던 검찰도, 경제검찰을 자임하는 공정거래위나 재정경제부 내의 ‘모피아’는 여전히 건재하다.
 
인위적인 대숙청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노대통령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물적 토대 위에서 국정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개별적인 정책을 가지고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나는 책임감을 가진 진보주의자라면 좀 더 큰 틀에서 비판의 칼을 들이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과서에 나온 이상적이고 좋은 말을 늘어놓기는 쉽지만 그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진보주의자들이 이런 현실적인 제약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소위 '살롱좌파'니 '패션좌파'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이상만 앞세우는 현존하는 좌파보다는 상대적으로 노대통령이 현실적으로 진보라고 본다. 50년 넘도록 이어져 온 반칙과 특권을 걷어내는 것이야말로 참진보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적 과제를 달성해야 소위 좌파에서 말하는 진보적인 정책들이 좀 더 쉽게 성취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은 물적 토대를 구축하고 상부구조를 교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이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는 한 진보라는 가치를 획득하기는 난망할 것이다.
 
노대통령 당선 2주년을 돌아보며
 
12월 19일은 노대통령이 당선된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참여정부가 일궈낸 성과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성과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리더쉽을 해체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권위주의를 해체하면서 권위마저 잃어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비판 역시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에 길들여진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볼 때도 현재 노대통령의 리더쉽은 대단한 학습효과를 갖고 있다고 본다. 성역으로 존재하던 대통령의 권위조차 우습게 여겨지는 현 상황은 향후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부작용을 극복한 좀 더 진화한 새로운 리더쉽이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그 구체적인 실천으로 검찰과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핵심 권력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그래서 힘없는 대통령으로 비춰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4대 권력기관이야말로 반칙과 특권의 상징이었다는 점에서 나는 현실적인 진보의 증거라고 본다.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행정부가 한 몸통으로 움직이던 폐단도 시정됐다. 온갖 정치공작과 음모가 자행됐던 근본원인이 제거됐다. 대통령임과 동시에 당총재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했던 과거 정권의 폐단이 시정됐다. 공천권을 정당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상향식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사법부는 더 이상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동적인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그럼에도 커다란 역사의 물줄기를 믿고 인위적인 인적 청산 대신에 시스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청와대와 행정부, 그리고 입법부와 사법부라는 최고 헌법상 권력기관의 변화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상부구조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비록 더디게 보이지만 우리 사회가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내가 노대통령이야말로 현실적으로 진보를 성취하고 있다고 믿는 증거이기도 하다.
 
국민들과 함께 국정철학을 공유하지 못하는 게 문제
 
내가 불만스러운 점은 이것이다. 50년간 점철된 반칙과 특권을 청소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모토로 내세우고 있는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라는 비전이 청와대 홈페이지에만 박제돼 있다는 사실이다.
 
부안 핵폐기장 문제에서 드러난 국민과 함께 하지 못하는 과거와 마찬가지 방식의 정책 추진, 종암동 재래시장 방문을 통해 보여줬던 서민들과 함께 하는 모습이 지속되지 못하고 있는 점, 참여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은 순전히 청와대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그리고 청와대 수장인 대통령의 책임이다.
 
미국 일국주의로 치닫고 있는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의 생존전략은 충분히 공유되지 못하고 있으며, 어쩌면 비전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자유주의를 그냥 대세로 받아들이는 한편 새로운 경제질서를 위한 대안모색은 더디기만 하고, 사회적 논의는 지체되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구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새로운 모색이 없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한 탐구도 부족하다. 달리 말하면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가 없다는 것이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라고 할 수 있는 '희망' 제시가 없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상식과 원칙'은 그 자체로 미래지향적인 희망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식과 원칙은 출발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목표를 공유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먹고 살기 바쁜 국민들이 알아서 이해해주기를 바라면 안되는 것이다.
 
나는 소위 좌파 진영에서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 개념을 인정한다면 적어도 이런 식의 건설적인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을 근거로 현실을 무시하는 식의 비아냥거림과 조소와 냉소는 '살롱 좌파' 혹은 '패션 좌파'라는 비판을 듣기에 충분하다.
 
좌파에서 비아냥 거리는 '노빠' 안에는 민노당 당원도 있으며, 사회당 당원도 있고, 우리당에 비판적인 무당파도 있다. 그들이 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지 좌파 내부의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과연 우리 사회의 좌파는 강단이나 이론에서 벗어나 기층민중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가?

적어도 이론적으로 확고하게 진보적이지 못할지언정 그리고 일부 노빠들의 폐쇄성이 문제될지언정 대다수 노빠들은 대한민국이 한발 한발 앞으로 전진하는 데 주목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좌파든 노빠든 서로의 스탠스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빠 코드가 미래의 비전을 제시 못한다 하더라도 현 상황에서 나름대로 수행하고 있는 역할을 인정해줘야 한다. 정신병자 집단 정도로 치부하거나 광신도 정도로 일축해 버리는 한 좌파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말할 수 있다.
 
좌파에서 비아냥거리거나 조롱하고 있는 노빠 안에는 당신들의 동지들이 있다. 같은 노빠를 껴안지 못하는 폐쇄적인 노빠 못지않게 좌파 역시 폐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공통점이 있다면 굉장히 근본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앞서 폐쇄적인 노빠들에게 열린 사고를 주문한 것처럼 좌파를 자처하는 분들께도 권하고 싶은 말이다.
 
근본적인 대화를 제안하며
 
사실 개별적인 주제로 나눠서 차차 다뤄볼 생각이었는데 류철원의 반론을 받고 한꺼번에 개괄적으로 서술했다. 나는 한국에서의 좌와 우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 진보와 보수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해서부터 근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 나의 글은 그 논의를 촉발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데 나름대로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래서 완결성이 많이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처 제대로 정리를 다하지 못한 내용을, 그동안 문제의식으로만 갖고 있던 수준의 내용을 글이라고 써놓고 보니 좀 미안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많은 네티즌 독자들의 꾸중을 감수하겠다. 그리고 생산적 토론을 위한 무차별적인 반론도 기대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진보란 무엇이며, 무엇이 진보인가? / 기획국장
기사입력: 2004/12/13 [17:0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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