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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이후, 과제와 전망 - 남북한의 경제전략과 4강
 
석진욱   기사입력  2002/03/12 [16:35]
{IMAGE1_LEFT}7천만 겨레의 염원을 안은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이 55년 역사상 최대의 성과를 일구어내며 끝났습니다. 무엇보다, 그 인고의 나날중에 남과 북이 마침내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진실한 화해와 이해의 장을 만들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남북의 통일에 있어 "자주의 원칙"과 7.4 남북공동성명 의 정신을 재천명한 것, 그리고 앞으로의 통일방안에 있어 남과 북이 서로 합의한 것은 남북통일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사건으로 기록 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남북한이 4대 강국을 상대로 벌이는 이번 도박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만일, 이번 도박에서 한민족이 실패한다면 그것의 결과는 전쟁이 될 것이며, 피해는 7천만 민족 전체가 모조리 뒤집어 쓰는 불행이 될 것입니다.

  현재, 외신 특히 유럽쪽 언론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정말로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럽입장에서는 그들의 눈에 결코 유쾌하지 않은 초강대국 미국과 두려운 강자 중국, 기존의 아시아 최고 선진국 일본('문명국'이라는 표현이 적당하겠네요, 유럽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러시아를 상대로 벌이는 남북한의 외교전쟁을 마치 그들의 대리전 처럼 바라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북한은 만일 이 도박이 잘 된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최대의 수혜국입니다. 무엇을 얻어서? 앞으로 최소한 4년~6년간 "체제수호"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수혜국입니다. 북한의 SOC 확충, 비료-곡물지원 이런 것은 북한이 얻게 될 체제수호라는 당근에 비하면 솔직히 껌도 안됩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이러한 너무나 부차적인 지원에 괜한 트집을 잡고 있지요.

  사실, 북한 입장에서는 앞으로 3~4년은 북한 체제상 최대의 고비입니다. 미국의 다음 전쟁목표가 북한이라는 것은 이제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공인된 비밀입니다. 더 이상 분쟁지역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미국경제가 연착륙에 실패하여 급격한 경제수축이 일어나고 북한의 마음과는 다르게 미국 공화당 매파가 득세하여,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외부적 충격이 필요하다면 한반도 같은 최적의 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정상회담의 시점은 그래서 아주 기가 막힌 시점입니다. 곧, 미국의 대선 레이스가 펼쳐집니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 동북아 정책은 신중하고도 급격한 변화가 있어야 하겠지만, 문제는 정권교체기를 눈앞에 두고서 미국이 지향하는 장기 적이고도 합리적인 중기 마스터플랜을 마련할 수 없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이러한 때에 한반도 평화무드를 정착시켜 미국의 정권교체 후에는 전혀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는 동북아 상황을 연출시켜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을 북한이 원하는 상황 위에서 수립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이 북한이 진정 원하는 것입니다.

  남한이 원하는 것은? 대 중국 무역전진기지입니다. 얼마 전 마늘전쟁-"Garlic War"이 한국과 중국사이에 발생했지요. 만일, 남북한이 남한이 원하는 그러한 대 중국 전진기지가 된다면 남한은 중국과의 무역분쟁에서 전혀 꿀릴게 없습니다.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원료 Made in DPRK로 인쇄하고 인천에서 출항하면 그만입니다. 계약은 평양에 본사를 둔 남북합작기업이 홍콩에서 중국과 계약을 체결하면 그만이고 해운선사의 국적이 문제가 되면 공해상에서 국기 바꿔 끼우면 그만입니다. 거기에다 북한은 정말 매력적인 장점이 하나 더 있지요. 북한은 WTO 가입국이 아닙니다. 이것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무역을 확장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지만, 한국입장에서는 솔직히 말해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는 "전가의 보도"를 얻는 셈입니다.

  대만의 경우를 봅시다. 대만은 중국이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받는 피해도 많지만, 또 그 덕택에 얻는 이익도 엄청납니다. 무역분쟁의 소지가 있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대만은 "국가가 아니므로" 마땅한 무역제재 조치를 취하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국가"에 대하여 취하는 조치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세계무역에서 엄청난 무역흑자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지금까지 WTO 미가입국이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Garlic War"와 같은 무식한 조치를 취해도 상대편 국가에서는 마땅히 손쓸 방도가 없었고, 또 이를 사용해 무역장벽을 마음대로 쳤다 걷었다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아직까지도 노동집약적 산업의 Portion(몫, 할당)이 높은 국가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OECD가입으로 이제는 더 이상 선진국으로부터 후진국에 부여되는 최혜국 대우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북한은 아닙니다. 남한에서 생산된 완제품이 북한에 가서 순전히 Made in DPRK만 붙여버리면 그만입니다. 지금까지는 물류망, 특히 철도망이 되어 있지 않아 이러한 전략이 전혀 먹혀들지 못했지요. 이런 식으로 관세 장벽을 피하고 이익을 분배하면 상호 이익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한국은 산업 구조전환이라는 엄청난 대 역사를 밀어붙일 수 있는 시간과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이것 때문에 한국이 북한과 경협에 적극 나서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가장 큰 이익은 "금융시장 안정"입니다. 더 이상 Bridge Loan 도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이라는 Bridge를 사용하게 되면 한국입장에서는 모 그룹과 워크아웃 중인 모 그룹의 주력사업체가 동시에 살아나면서 금융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크게 아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음)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케인즈적인 경제정책이 통하지 않는 국가입니다. 가장 큰 이유가 이러한 공공 토목사업을 벌이게 되면 토지매입과 보상에 엄청난 자금과 시간이 소요되어 공공 토목사업이 노리는 인력-자본 투하에 의한 설비가동력이 너무나 크게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대대적인 돈을 쏟아 부으면서 공공사업을 엄청나게 벌였지만 전혀 경기활성화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이제는 금융 구조조정으로 정책을 선회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조를 투자해 봤자 토지매입 보상 등에 60% 이상의 자금이 동원되고(시간도 질질 끌고….) 실제, 공공사업을 통해 중공업 설비의 신규주문에 따르는 산업파급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토지매입이 필요 없는 사업을 하면 규모가 작으므로 그냥 유휴설비 가져다가 쓰면 그만임, 당연히 산업파급력이 그만큼 줄어듦으로 건설회사들의 적자보전 정도를 할 수 있을 뿐 경기활성화와는 거리가 멀게 됨)

{IMAGE2_RIGHT}따라서 북한에 SOC 확충을 위해 남한정부가 경협자본을 투하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공사를 수주하는 기업은? 당연히 한국기업입니다. 한국기업은 경협자본을 받아 공사를 시작하겠지요, 공사를 시작하면 유휴설비를 쓸 수 있겠지만, 설비가 더 필요하게 되면? 한국의 중공업 회사에 설비를 구매하겠지요. 한국의 중공업 회사는? 설비제작을 위해 한국의 중소 기계회사들에게 부품을 구매하겠지요.

그럼 토지매입-보상은? 그것은 북한에서 알아서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SOC 확충에 의하면 확충된 SOC는 북한에 남는 것이므로 북한정부가 남한정부의 경협자금을 차관으로 받아 공사를 시작하는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돈은 북한을 잠시 거쳐 남한으로 되돌아와 돌게 됩니다, (물론 이 돈에서 세금 걷겠지요? 돈이 더 많이 돌면 돌수록 세금은 더 많이 걷힙니다.) 이것이, 한국기업들에 대한 신용을 높여 금융시장의 안정을 가져오게 합니다. 게다가 또 하나는 북한을 통한 대 중국사업이라는 아이템입니다. 이것은 월스트리트와 강력히 연관되어 있지요.

정말 여건만 성숙된다면 북한에 투자를 하고자 하는 세계적 기업들은 널려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이 WTO 가입이전에는 중국시장을 뚫기 위해, 지금은 관세장벽을 뚫기 위한 교두보로서 북한을 보고 있습니다.(솔직히 중국에 직접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본 외국기업들이 한 둘이 아님.) 그래서 이들은 한국기업이 북한에 투자한다면 당연히 합작형태로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기업들은 어쨌든 외국기업과의 합작이 이루어지므로 한국기업의 신용을 높여 금융비용을 아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됩니다.(금융비용의 절감은 솔직히 인건비 상승보다 훨씬 기업에게 치명적입니다.)

대우 자동차 인수전이 그토록 치열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GM 의 경우 중국에 대규모 자동차 공장을 지었지만 중국의 WTO 가입에 의해 이것의 Merit(가치)는 많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당면 최대의 문제는 중국 GM공장에 조달할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입니다. ( 델파이 가 괜히 들어온 것이 아니지요.) 이것을 대우차를 통해 해결하고 중국의 GM Portion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포드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그런데 포드의 경우에는 GM공장과 같은 대 공장이 아직은 중국에 없으므로 대우 자동차를 중국공략의 전초기지로 만들기 위함이지요.

이것은 하나의 예일 뿐 북한에 진출하고자 하는 외국기업들은 한국이 꿈꾸는 것과 똑 같은 일을 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외국기업이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사이 북한에 진출했다가 큰 실패를 맛보았다는 것. 그래서 무엇보다 한국기업들과의 합작형태를 너무나 절실히 요구한다는 점, 그리고 한반도 긴장완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Wall Street의 요구입니다. 다행히도 한국입장에서도 결코 나쁘지 않은 요구입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 후 주한미상공회의소가 평양방문을 발표했습니다.)

문제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4대 강국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이 다가오자 드디어 이들 4대국은 그들의 대 한반도 정책에 따르는 이해와 요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입장에서는 Pax-Americana 의 주요 주축인 주한미군의 존립근거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것(솔직히 주한미군이 정상회담 기간 중 화력 훈련중지를 선언한 것만 보아도 이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필리핀 수빅만 기지가 10여년 전 폐쇄된 이래 주한미군의 중요성은 그 후 10년동안 엄청나게 증대했습니다. 70년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70년대만 하더라도 수빅-오키나와-주일미군으로 이어지는 대 동 아시아 기지라인이 확고했으므로 주한미군은 비용 많이 드는 중복기지였음)

수빅기지 폐쇄 이래로 미 항모가 기항할 수 있는 곳은 이제 사실상 한국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비핵 3원칙 때문에 항모기항이 민감한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 있음 - 1967년 사세보(제2차세계대전 뒤 옛 해군기지가 있던 곳에 미국군기지·자위대기지가 세워져서, 여전히 기지 거리의 성격이 강했다.) 사건 시 일본시민들이 보여준 행동에 미국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음) 게다가 미국과 일본이 동시에 원하는 것은 북한 핵 동결과 미사일 개발 중지입니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이것을 굳이 회담의제로 내세우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미국과 일본에게는 엄청나게 불만입니다.

미국입장에서는 자신의 세력근거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음에도 얻은 것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 행정부가 가지는 불만의 내용입니다. (김정일이 서울에 와서 여기에 대하여 언급-선언하면 미-일은 거의 난리가 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돌아버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대책도 없어집니다. 이것이 미국과 일본이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모든 명분이 사라지는 것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없는 것)

중국이 걱정하는 것은 한반도에 통일된 강력한 민주국가의 존재입니다. 이것은 중국입장에서는 거의 악몽입니다. 중국의 분열을 가속화시킬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정말 문제이지요, 다행히도 등소평 사망이후 분쟁지역에 대한 중국정부의 영향력이 막강함을 확인할 수 있었고 체제의 안정성과 영속성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생긴 상태이나 언제 다시 중국이 거대한 유고슬라비아 땅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중국은 결코 "중국"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될 수 없는 국가이며 그것은 다시 말해 얼마든지 분열 가능성이 상존하는 대륙이라는 의미입니다.

중국이 걱정하는 것은 결국 중국이 한반도에 통일된 한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인가 하는 점. 다시 말해 분열된 한국보다 통일된 한국이 중국에 더욱 이익이 되는 때가 올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분열된 한국이 분열을 사용하여 중국에서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어간다면 (지금도 남한에 대한 무역적자가 100억불에 이르는 데….) 그것도 기라성 같은 외국기업들마저 북한에 들어와서 혈맹관계를 지렛대로 하는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 언젠가는 중국이 견딜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때 가서 중국이 통일한국을 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는 것. 중국의 걱정은 이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장기전략은 통일한국을 점차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명백히 통일한국의 장기전략과 부딪히는 부분입니다.)

일본의 경우 강력한 한국의 출현은 정말 바라지 않지요, 게다가 북한이 본격적으로 한국과 협력, 중국시장에 대한 세계 전진기지가 되면 대 중국무역의 메리트의 대부분을 한국에 빼앗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은 20세기 역사를 반추해 볼 때 전통적으로 화북과 만주에서 구미 경제권과 경쟁하며 꾸준히 중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국운을 건 사업으로 설정, 실천해 왔던 일본에게도 악몽입니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자 그것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지만 혁명 후 시베리아-사할린-연해주처럼 일본의 영향력에 사실상 해당지역의 지배권을 상실했던 역사를 반복할까봐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노몬한 사건 과 장고봉 사건 을 통해 1936년 이후 러시아는 시베리아-외몽고-연해주의 지배권을 완전히 되찾는데 성공하지만..)

이렇게 한국과 4대 강국은 이번 정상회담이라는 것을 통해 사실상 국가의 장기전략을 전면 수정할 것인가를 놓고 외교전쟁에 돌입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에 들어섰습니다. 최근 이른바 미국의 NMD 계획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를 위해 미-일 중국-러시아간의 암투와 견제가 매우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당면한 마찰이며 결국 관건은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이로 인한 아시아 전체의 정치적 세력지형의 혁명적 변화 그리고 이것을 결정 지어버릴 경제적 이해득실의 결과를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결국, 남북한은 핵과 미사일에 대한 어떤 내용을 어느 시점에 터뜨릴 것인가에 의해 "승자"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가 결정 될 것입니다.

정상회담의 전선은 남한과 북한이 아니라 남북한과 4대 강국입니다.

* 본 글은 대자보 39호(2000.6.21)에 발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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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3/12 [16:3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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