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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서울시의 엉터리 민방위훈련
누가 관료들의 안전불감증을 방기하고 있나?
 
서태영   기사입력  2003/04/13 [02:52]
관료들의 안전지수는 도대체 몇점일까. 위험이 지역차별을 하지 않고 빈틈을 파고 든다는 사실을 몰라서 건성으로 겉시늉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단 말인가. 대구참사에서 배우지 않는 대한민국은 아무리 잘 봐줘도 무방비사회이다.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참사가 일어났다. 손쓸 새도 없는 후속사고가 엄습했다. 경각심으로 팽창해 있는 시점에 벌어지는 재앙은 우리를 무척 당혹스럽게 한다.

관료들의 안전불감증은 안정희구를 바라는 시민사회로부터 격리대상이다. 그들이야말로 눈에 띄는 '우리사회의 얼굴없는 테러리스트들'인지도 모른다. 사고의 규모는 죽고 다친 사람들로 계산이 되지만, 관료들의 안전불감증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들은 대형참사로 단련된 가공할 맷집이라서 그런지, 시민사회의 갖은 대책마련 요구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거나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관행이 체질로 굳은 모양이다. 대형사고로 단련된 관료들의 안전불감증은 특단의 대책을 발동해서라도 치유해야 할 사회병리현상이 아닐 수 없다. 공무원을 바로잡아야 나라가 바로선다!

위험의 징후는 도처에 널브러져 있다. 사고는 '의도치 않게 사람이나 재산상의 피해를 가져오고, 사회체계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사고는 터졌다하면 참사로 연결되는 속성이 있다.

"현대의 위험은 자동차형 사고보다는 비행기형 사고의 특징을 갖는다. 발생률이 낮은데도 일단 사고가 나면 재앙으로 귀결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우리가 만든 문명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체계의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이재열, 주간동아 2001.9.27)

98년 대형사고와 위험을 '일상화한 비정상성'으로 개념화했던 서울대 이재열교수는 90년대에 일어난 잦은 대형사고의 원인을 "높은 위험추구경향, 긴급구조체제의 미비, 관료의 부패와 법집행의 공정성 결여, 사회성원간 조정과 협력의 실패"로 진단했던 적이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를 맞아 대학신문에 기고한 글에서한국의 대형참사원인을 ‘예방과 대비가 가능한 사고’로 파악했다. 충분히 진단된 일이 연쇄사건처럼 또다시 벌어진 것이다.

위험사회란 근대산업사회의 원리와 구조 자체가 재앙의 근원으로 변모하는 사회를 뜻한다. 그 구조를 운영하는 주체들이 벌이는 화재진압 훈련은 쓴웃음을 짓게 했다.

지난 3월 14일 서울시는 요란하게 지하철화재 진화훈련을 했다. 겉도는 민방위 훈련을 대피훈련으로 활용한 일은 참으로 기특해 보였다. 지하철 승객들이 실제와 똑같은 상황에서 참여해 위급상황에 대한 대피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오히려 늦어서 탈이었다. 대피훈련은 대구참사 때와 똑같은 상황을 가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훈련상황을 곰곰히 관찰해 보니 몇 가지 상황설정의 오류가 발견되었다. 일상의 착각은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혹은 믿고 있는 상식의 오류'에서 기인한다. 그렇지만 화재상황에서 통용되는 상식의 오류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바로 수정해야 할 일로 다가왔다. 화재사고에서는 최초의 10초가 관건이다. 상황대처에 실패하면 떼죽음을 당한다. 지하철공화국인 서울시의 지하철 안전대책은 무사안일의 표상이다. 밑빠진 독상감이다.


▷ 서울지하철의 민방위훈련보도장면(mbc뉴스데스크 19분 20초경)

앵커 : 민방위훈련이 있었던 오늘 서울 시내 27개 지하철역에서 대피훈련이 있었습니다. 대구참사 때와 똑같이 전철 2대를 세워두고 객차 내부에 불이 났다고 가정한 것입니다.

기자 : 마스크를 쓴 뒤 소화기를 들고 객차를 향해 뛰기 시작합니다. 화재가 발생한 지 약 30초 만에 일단 기관사에 의한 진화작업이 시작됩니다. 소방관들이 도착할 때쯤 전기가 끊겨 역사 안은 어두워집니다. 소방관들이 객차 안으로 호스를 연결하는 사이 천장에 비상등이 켜지고 승객들은 역무원의 안내와 비상등을 따라 어둠 속에서 대피합니다......

기자: 화재발생 20분 만에 상황은 종료됐습니다.


첫번째 오류는 소화기를 들고 뛰어가는 장면이었다. 초동진압을 하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부른다. 사진에서 나온 것처럼 화재가 발생하면 소화기로 불을 꺼려고 달려들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으로 번진다. 불을 꺼려면 소화전을 들고 뛰어가야 초동진압이 가능하다. 두번째는 비상조명등이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인데도 비상조명등이 들어왔다. 비상조명등은 한전측의 사정으로 단전이 일어났을 경우에만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세번째 지금처럼 1인승무제하에서는 차장이 근무하지 않는 환경인데 서울시는 2인승무제를 가정한 훈련을 했다. 대한민국이 대참사를 당했는데도 서울시는 안이하게도 엉터리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서울시청 김순직 대변인은 한술 더떠 "대구 지하철 참사 때 계단, 통로가 오히려 '연통' 역할을 하면서 소방관 진입을 막아 피해를 키웠기 때문에 외국처럼 선로를 따라 대피하는 훈련이나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별도의 훈련도 필요하다"는 대책 안서는 대책도 내놓았다. 점입가경이다. 과연 깜깜한 선로를 따라 뛰어가라는 것이 안전한 대피책일 수 있을까? 선로를 따라 뛰는 것은 비정상이다. 계단을 따라 대피하도록 가상훈련을 해야 실제상황효과가 나온다. 안전대피 훈련은 계단을 따라 대피하도록 하는 것이 정상이다. 상황종료될 수 없는 상황을 안전한양 보도하는 언론의 안전불감증도 만만찮았다.

모든 위험은 무신경에서 자라난다. 위험은 새롭게 인식된 신종 문명이다. 위험이 창궐한 사회의 목표는 안전일 수밖에 없다. 위험사회론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첨단기술, 예측치 못한 복잡한 시스템의 결함이 사고 위험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첨단과학으로도 문명의 위험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봐왔다.

지하철 참사수습과 관련하여 대구시만 문제있는 줄 알았는데 서울시도 엉망이었다. 또한 대한민국 건교부 수송정책실장의 대답을 듣다보면 노무현정부의 사고수습 대책도 엉망이라는 사실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의 적들(!)이 공공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꼴이다. 안전한 지하철은 물 건너갔다. 대구지하철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안전한 나라도 한참 멀어보인다. 이재열교수의 몇년 전 다그침은 현재진행형이다.

"무고한 인명이 무차별로 살상된 대형 사고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악의 배후세력을 찾아나서 제대로 성전을 치렀는가? 우리 내부에 스며들어 있고, ‘한국적 위험사회’를 만드는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용서하고 타협한 것은 아닌가? 혹시 우리 자신이 그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는 아니었는가?"

위엄은 사라지고 위험만 난무하는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내로라할 위험한 관료들의 공화국이다. 정부는 공무원 월급올려주겠다는 소리만 하고 있으니 한숨이 다 나온다. 정권이 몇 순배 돌고 돌았어도 청산되지 않는 위험한, 망할 놈의 관료들이 관리하는 공화국이다! 특단은 기형의 사회에서 남용되는 처방전이다. 관료들에게 맡겨진 중차대한 안전업무를 시민단체로 이양해서라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소잃고 외양간도 손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엉터리 사고수습책은 오래동안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비정상의 연속이다. 위험이 덜 가진 자에게 억울하게 분배되는 사회구조를 청산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위험이 우리 옆을 기웃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 필자는 하니리포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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