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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 대비되는 색깔의 영화 3편
[새영화]맨 온 파이어, 빌리지, 노브레인 레이스
 
임흥재   기사입력  2004/09/25 [14:31]
추석 연휴를 앞 둔 24일 몇 편의 외화들이 일제히 전국의 극장가에 걸렸다. 그 하루 전에는 올드보이의 강렬한 이미지를 벗고 조금은 우울하고, 한편으로는 부드러운 남자가 되어 돌아온 최민식의 <꽃피는 봄이 오면>이 개봉되었다. 탄광동네의 중학교 음악교사로 부임한 최민식을 아직 필자는 만나보지 못했음으로, 오늘은 24일 동시 개봉된 영화 중 묘하게 그 색깔이 대비되는 영화 세편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 우리가 볼 영화는 <맨 온 파이어Man on Fire>, <빌리지Village> 그리고 <노브레인 레이스Rat Race>이다.   
 
▲맨 온 파이어 포스터 모습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거머진 명우 덴젤 워싱턴Danzel Washington과 영화 '<아이 앰 샘I am Sam>에서 숀 펜의 딸로 나와 관객의 심금을 울린 다코타 패닝Dakota Fanning이 주인공 소녀 ‘피타’를 연기한 ‘맨 온 파이어’는 남미의 유괴 문제를 다룬 액션물이다. 그 둘이 보여주는 완벽한 연기 호흡은 이 영화를 두 편의 영화처럼 느끼게 해준다. 전직 CIA의 암살 전문요원인 ‘존 크리시(델젤 워싱턴 분)’는 선배의 소개로 멕시코시티에서 한 소녀의 보디가드일을 맞게 된다. 영화의 시작에서 소개 되듯이 ‘남미에서는 한 시간에 한 건 꼴로 유괴사건이 발생하고 그 중의 70%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름답고 깜찍한 소녀 ‘피타(다코타 패닝 분)’ 역시 그 유괴에 노출 될 수밖에 없는 상류층의 소녀이고 경호원이 그만둔 며칠 동안은 유괴의 위험 때문에 학교에도 가지 못한다. 피타와 그녀의 엄마 리사는 경호일에 열의도 없어 보이는 크리시를 왠일인지 순순히 받아들인다. 크리시는 알콜 중독자다. 자신이 담당했던 암살의 임무는 그를 알콜 중독자로 만들었다. 지워지지 않는 어둔 기억은 그를 피해망상에 시달리게 한다. 그는 잠자기 위해, 살기 위해 술을 마시고 술기운을 빌려 아픈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그런 그를 피타는 거리낌 없이 ‘곰 아저씨’라 부르며 자신의 곰인형에게 크리시란 이름을 몰래 지어준다.
 
술병을 멀리 하고는 한시도 살 수 없는 크리시에게 피타는 그 천진난만한 웃음과 소녀의 호기심으로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그런 피타가 크리시는 귀찮기만 하다. 퉁명스런 크리시의 핀잔에 상처 받는 소녀 피타, 뾰로퉁 토라진 소녀의 눈망울은 금새 슬픔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피타는 늘 크리시를 바라본다. 자신의 방에서 또는 등하교길의 차 안에서 언제고 피타의 눈은 크리시를 쫓는다. 그만큼 피타는 크리시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 피타의 진정한 관심과 순수한 마음에 얼음장처럼 차갑게 꽁꽁 닫혀있던 크리시의 마음도 슬슬 녹아내리고 슬며시 열린다. 크리스는 차츰 성경을 읽으며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애쓰고, 술로 의지하던 기억으로부터의 도피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의 빛을 찾는다. 아름다운 소녀 피타의 순수함이 마침내 크리시를 구원의 세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피타의 수영 코치를 자청하여 훈련시키는 모습에서는 이제 어두운 기억의 흔적은 보이질 않는다. 피타는 크리시의 열정적인 지도로 드디어 총소리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은 곧 피타가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늘 늦은 출발로 양보해야 했던 수영대회의 우승을 가능하게 한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필요하고 위로해주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크리시와 피타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과 애정이 영화의 전반부를 채우고, 이는 피타를 유괴한 자들에게 크리시의 잔혹한 응징이 가해지는 영화의 후반부와는 별개의 영화라 해도 손색이 없다.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피타의 아름다운 미소와 눈망울, 때문에 크리시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그녀를 유괴한 그 악한 자들을 향해 총을 뽑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다.
 
피타는 유괴 된다. 크리시의 헌신적인 경호와 사투에도 불구하고, 경찰 제복을 입은 자들이 순찰차에서 쏟아져 나와 크리시를 향해 총을 난사하는 부패의 도시 멕시코시티에서는 크리시도 불가항력이다. 크리시에게 훈련 받은 대로 피타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지만 돌아본 광경은, 그토록 자신이 좋아하는 곰아저씨가 피 흘리며 죽어가는 광경을 그녀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 크리시에게 돌아와 울부짖는 소녀 피타를 경찰이 유괴한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크리시는 오히려 경찰에 의해 경찰 살해범에 유괴 공모자로 발표되고 피타를 살리기 위해서는 천만 달러를 그들의 요구대로 보내야 한다. 천만 달러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도중에 사라지고 피타의 목숨은 이제 끝이라는 유괴범 'Voice(음성)'의 음성만이 전화선을 통해 흐른다.
 
병원을 탈주한 크리시의 응징과 복수는 이제 시작이다. 자신에게는 구원의 빛과도 같던 아름다운 소녀 피타를 살해한 그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어둔 과거의 기억 속게 침잠하여 알콜 중독자가 되어 가는 크리시이거나, 피타의 순수한 사랑에 스스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크리시이거나, 유괴범들을 향한 응징에 나선 분노의 크리시에서나 덴젤 워싱턴은 시종 침착하다. 그가 왜 대배우인지를 새삼 상기하게 해준다. 다코타 패닝의 앙증스러운 연기와 덴젤 워싱턴의 우수에 찬 눈빛이 헐리우드 액션의 진부함을 잊게 해주는 영화, 맨 온 파이어다. 
 
▲빌리지 포스터 모습    
맨 온 파이어가 범죄와 부패의 도시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카메라 워킹을 하고 있다면, 범죄와 돈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키며 종교적 공동체 같은 마을을 일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 영화 ‘빌리지’이다. 전자가 부패한 욕망의 늪에 빠진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사악한 욕망의 늪으로부터 도피하여 은둔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처럼 상반된 성격의 두 영화에도 공통점은 있다. 전자가 피타라는 천진무구한 소녀의 사랑에 의지하고 있다면, 후자인 ‘빌리지’는 아이비 워커라는 순수하고 용기 있는 맹인처녀의 사랑으로 영화적 구원과 전망을 빚어낸다.
 
빌리지의 배경은 19세기말 펜실베니아주의 ‘코빙턴’이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코빙턴숲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마을 사람들은 숲에 들어가지 않는다. 괴물이 살고 있는 그 숲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음으로 자신들과 괴물 간의 암묵적인 정전, 즉 상호 간의 영역을 인정하고 이를 침범하지 않음으로 숲에도 마을에도 평화가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그 믿음은 수 십년 동안 지켜져 왔고 마을은 평화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마을의 청년 ‘루시어스(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 분)’가 숲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로 마을은 위기에 휩싸인다. 분노한 괴물이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이고 저마다 굳게 닫아 걸은 문밖에는 빨간 피칠이 되어 있다. 여우의 가죽 벗겨진 시체들이 마을의 여기저기에 내동댕이  쳐져 있다. 숲의 괴물이 경고를 던진 것이다. 혹은 그들과의 암묵적 공존을 깨트리겠다는 의사 표시다. 마을의 장로회의에서는 절대 번 숲에 들어가지 말 것을 엄격히 당부하고 괴물들에게 제물을 바친다.

마을에는 ‘노어’라는 미치광이 청년이 있다. 그는 여러 번 숲에 들어간 적이 있노라고 루시어스는 장로회의에서 고변한다. 숲의 괴물이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노어를 무사히 돌려보냈듯이 자신이 적의를 가지지 않는 한 숲에 들어가도 자신 역시 무사할 것이란 논지로 마을의 장로들에게 허가를 구한다. 그러나 숲의 출입을 금하는 장로들의 금기는 완고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숲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루시어스는 그 숲에 가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다. 잠 못 드는 그에게 숲은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다. 그런 그를 마을의 리더인 ‘에드워드 워커(월리엄 허트William Hurt 분)’의 딸 아이비가 연모한다.

‘아이비(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Bryce Dallas Howard 분)’는 자라면서 시력을 상실한 맹인처녀다.(영화 속에서 판단컨대, 어렴풋이 빛과 형체를 식별하는 정도의 시력은 가지지 않았나 짐작한다) 아이비는 숲을 넘보며 괴로워하는 루시어스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친구다. 그들은 차츰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신뢰하며 사랑하게 된다. 한 때 루시어스에게 사랑을 고백한 아이비의 언니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됨으로써 그들은 더욱 가까워진다. 아이비는 루시어스에게 자신의 연정을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미치광이 노어마저 아이비를 연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미치광이의 무모한 사랑은 아이비와 루시어스가 사랑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루시어스를 칼로 찌른다. 복부를 칼에 찔린 루시어스의 눈빛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실의 불행을 드러낸다. 안절부절 못하는 미치광이의 광기는 쓰러진 루시어스를 향하여 다시 또 칼을 찌르고 만다. 루시어스는 죽어 가고 미치광이의 피 묻은 손에 놀란 마을 사람들은 동요하고 소란하다. 아이비는 운명적으로, 직감적으로 루시어스의 위기를 깨달은 것인가. 루시어스의 집에 달려간 그녀의 손에는 루시어스의 피가 묻어난다.
 
루시어스를 살리기 위해서는 2차 감염을 억제할 주사약이 필요하다. 그것은 마을에는 없는 것이다. 저 숲을 뚫고 나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마을’에서나 구해올 수 있는 것이다. 아이비는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마을의 금기에 도전한다. 숲의 성역을 지나 마을에서 루시어스를 살릴 약을 구하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마을의 우두머리인 아버지 에드워드 워커는 충격적인 비밀을 털어놓는다. 숲과 마을의 비밀에 대해서, 밤마다 우는 그 괴물의 공포와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시종 음악은 급박하고 스크린은 어둠으로 긴장을 자아내지만 영화의 한참동안은 꽤나 지루하고 지겹다.

그러니 영화의 반전에 대하여, 맹인처녀 아이비의 숲에의 도전과 사랑의 완성에 대해서 미리 말해 버리면, 이 영화는 보기 어렵다. 현대의 히치콕이라 불리는 나이트 샤말란Night Shyamalan은 전작들에 비해 영화적 완성도를 살려내지 못했고 영화의 긴장감도 성공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대륙의 한 귀퉁이에 섬을 만들고 스스로를 유폐시키며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그리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참을성 없는 관객이라면 표를 사고 후회하는 낭패를 미리 경계하시라 조언한다. 

▲영화 노브레인 레이스 포스터 모습
빌리지가 청교도적인 은둔자들의 모럴이 지배하는 세상 가운데 유폐된 섬의 공간이라면, 지금 보게 될 ‘노브레인 레이스’는 현대 산업의 막강한 경제력과 그 경제동물들의 환락과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열린 광장 라스베가스라는 공간을 주무대로 삼은 영화다. 빌리지의 사람들이 ‘돈’이 인간의 선성을 파괴하고 타락시키는 사악한 악마의 주술이라 생각하였다면, 노브레인 레이스의 사람들은 돈이야 말로 인간의 행복과 살아가는 최고의 가치를 담보해주는 신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라스베가스의 카지노 주인은 자신의 도박장(일명 빠징꼬 게임기)에 행운의 동전이 나오도록 일을 꾸민다. 우연한 기회에 그 도박장에서 행운의 동전을 차지한 사람들은 여럿이다. 잡범 형제도 있고 오랜만에 상봉한 커리어우먼과 그 어머니도 있다. 출장차 들른 사업가와 그와 우연으로 엮인, 곧 애인의 변심을 하늘에서 알아채야 하는 헬기 조종사인 여성도 있다. 노동의 댓가를 꼬박 모아 마술쇼를 보러온 일가족도 있다. 멍청한 이방인도 있다. 카지노의 사장은 그런 그들에게 색다른 제안을 한다. 뉴멕시코 주의 어느 역에 있는 물품 보관함에 이백만 달러라는 거금을 넣어 두었다는 것이다. 각기 열쇠를 나누어 주면서 누구든 가장 먼저 도착하여 그 보관함을 여는 사람의 것이라는 것이다.

카지노 사장의 이런 제안은 일반적인 도박에 식상한 카지노의 고객을 위한 또 다른 도박이다. 참가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 누가 우승자일 것인가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카지노 사장이 내 놓은 이백달러의 거금은 큰 도박판을 위한 판돈에 불과 하다. 처음 미심쩍어 하던 사람들은 저마다 무관심한척하지만 내려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지 않자 부리나케 비상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경주, 아니 도박은 시작된 것이다. 일확천금의 꿈과 그 돈이 가져다줄 환락과 욕망의 내일을 위하여 도박판의 말이 된 사람들은 뉴멕시코를 향한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슬랩 스틱 코메디다. 감독은 총알 탄 사나이 등으로 대번에 떠오르는 바로 쥬커 형제의 막내 제리 쥬커Jerry Zucker다. 물론 그가 ‘사랑과 영혼’, ‘카멜롯의 전설’ 등을 연출한 역량 있는 감독이지만 쥬커 형제하면 코메디가 연상되고 그 연상된 이미지에 충실할 때, 우리의 선택은 망설임이 없다. 재미있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쉽게 실망하는 과욕 매니아나 늘 닫아둔 빗장 때문에 근엄하기만 한 감성고갈자들에게 재미있으니 보시라고 필자는 권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백만달러를 찾아가는 여러 사람들의 행보는 재미나고 가끔 기상천외한 사건에 말려들어 그들의 여정이 빗나가는 것을 보는 것은 그런대로 유쾌하다.

마지막, 이백만 달러를 차지한 경주자들과 내기에 판돈을 건 고객으로부터의 수입에 들떠있던 카지노 사장 그리고 도박참가자들을 곤경과 난처한 결말에 빠트리는 영화의 엔딩은 우리가 맞는 한가위에 불우한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도록 한다. 오래도록 추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나기란 그리 쉽게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편의 영화에서 그런 행운을 만날 수는 없다. 굳이 한 편정도의 외화를 보고 싶다면 필자는 맨 온 파이어를 권하고 싶다. 일주일여가 흘렀지만 필자는 다코타 패닝의 그 아름다운 눈망울과 천진무구한 미소를, 그녀를 위해 유괴범들에게 스스로 걸어가는 덴젤 워싱턴의 뒷모습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추석연휴가 시작되었다. ‘파이란’에서 만나 무작정 좋아하게 된 최민식을 ‘올드보이’의 대수 이후로 만나지 못했다. 한가위 보름달이 비치는 날들의 한 날을 택해 필자는 강원도 도계중학교의 밴드부 아닌 관현악부의 선생님이 되어 나타난 그를 만나러 갈 것이다. 그가 부는 트렘펫 소리와 그의 주름진 얼굴에서, 많은 은어들을 간직한 듯한 그의 눈빛에서 필자는 달나라에 살고 있는 토끼나 혹은 다른 누군가가 보내준 아름다운 동화를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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