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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한 세비야선언과 인간방패
폭력을 거부하는 '이성' 그리고 '연대'
 
이승훈   기사입력  2003/03/04 [00:32]
논리는 세계관에 따라 끊임없이 보완되고 재생산된다. 개인간의 폭력에서 국가 간의 폭력인 전쟁에 이르기까지 폭력과 전쟁의 문제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마찬가지이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관해서는 아직까지도 '맞을 짓을 했으니까 때린다'는 소박한 논리부터 생물학 인류학 심리학 기타 과학적인 연구성과에 기댄 정밀한 논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폭력을 합리화하는 세계관이 계속 논리를 만들어 내고 합리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폭력과 전쟁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과학적인 연구결과에 대해서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있는 독특한 형식의 선언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1989년 유네스코 세비야선언(The Seville Statement)이다. 세비야선언에서는 폭력과 전쟁을 정당화하는 과학적 이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예로부터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음을 밝히면서 그 중 가장 기초가 되는 몇가지 쟁점을 대상으로 하여 생물학적 비관적 결정주의를 반박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세비야 선언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명제 1. 우리가 동물로서의 조상에게서 폭력과 전쟁을 발발하는 경향을 유전받았다

비록 동물 종들 전체에서 싸움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종 내부의 조직된 집단 간의 파괴적 싸움은 자연 종 중에 단지 약간의 경유에서만 보고되었으며, 이들 중 그 어느 경유에서도 무기로 쓰기 위해 고안된 도구가 사용되지 않았다. 다른 종을 식량으로 삼는 정상적인 포식행위는 종 내부의 폭력과 동일시 될 수 없다. 전쟁은 인간에게 독특한 현상이며 다른 동물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전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근본적으로 변해왔다는 사실은 전쟁이 문화의 산물임을 나타낸다. 전쟁의 생물학적 연관은 일차적으로 집단 간의 조정, 기술의 전달, 그리고 도구의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전쟁이란, 오랜 세월동안 많은 장소를 통해 나타난 다양한 전쟁의 변형태들이 입증하듯이, 생물학적으로 가능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수세기 동안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문화가 있고, 어떤 때는 전쟁에 자주 참여하고 다른 때는 그렇지 않았던 문화도 있다.

명제 2. 전쟁이나 여타 폭력적 행위가 유전적으로 우리의 본성에 갖추어져 있다

유전자는 신경체계의 모든 기능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은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환경과 연결되어 있을 때만 실현될 수 있는 진화의 잠재력을 제공한다. 개인들이 자신의 경험에 의해 영향받는 소인은 아주 다양하지만, 그들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유전적 기여와 양육 조건간의 상호작용이다. 희귀한 병리현상을 제외한다면, 유전자가 개인으로 하여금 반드시 폭력적인 성향을 갖도록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유전자는 그 반대의 경우를 결정하지도 않는다. 유전자는 우리의 행위적 가능성을 형성하는 데 공동으로 참여할 뿐이지 스스로 산출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명제 3.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다른 종류의 행위보다 공격적 행위가 선택되어 왔다

연구된 종들의 경우, 조직 내의 지위는 그 조직구조에 적합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얻어진다. '지배'는 사회적 유대와 소속을 포함하는 것이다. 비록 지배가 공격적 행위를 포함하지만, 그것은 단지 우세한 물리력의 소유나 사용의 문제만은 아니다. 공격적 행위에 대한 유전적 선택을 동물에게 인공적으로 실시했을 경우, 초공격적인 개체를 만들어 내는 데 아주 빨리 성공하였다. 이는 공격성이 자연조건 하에서 최대한으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이처럼 실험을 통해 창조된 초공격적 동물이 사회집단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사회구조를 붕괴시키거나 아니면 추방당한다. 폭력은 우리의 진화적 유산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우리의 유전자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명제 4. 인간은 '폭력적 두뇌'를 가졌다.

우리는 폭력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신경장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내적 외적 자극에 의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고등 영장류에서처럼, 다른 동물과는 달리, 우리의 고등 신경과정은 여러 자극들을 행동으로 발현하기 전에 여과시킨다. 우리의 행동양식은 우리가 어떻게 조건지어지고 사회화하였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신경생리학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로 하여금 폭력적으로 반응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명제 5. 폭력과 전쟁이 '본능'이나 다른 어떤 단일한 동기에 의해 발생한다

근대 전쟁의 출현은 감정적이고 동기유발적인 요인의 우월성으로부터 인지적 요소의 우월성에 이르는 하나의 여정이었다. 근대 전쟁은 복종, 암시감응성, 이상주의와 같은 개인적 특성, 언어와 같은 사회적 기술, 그리고 비용계산, 계획, 정보처리와 같은 합리적 고려의 제도적 활용을 내포한다. 근대 전쟁공학은 전투원을 훈련하고 일반 주민의 전쟁지지를 유도하는 데 있어 폭력과 관련된 특성을 과장해 왔다. 이러한 과장의 결과 그러한 특성은 종종 그 과정의 결과라기보다는 원인으로 잘못 취급된다.

세비야선언에서는 이러한 다섯 명제에 대한 반론 뒤에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결론은 간단하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인간이 폭력을 하게끔 만드는 것, 강요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폭력을 하고 말고는 선택과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결론이지만 체벌을 합리화하는 논리에서부터 전쟁을 합리화하는 논리에 이르기까지 폭력적 행태를 합리화하는 모든 논리를 반박하는데는 이것으로써 충분하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대응논리가 아무리 사실에 기반하고 합리적인 것이라고 해도 전쟁 등 폭력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다. 애초에 폭력과 전쟁은 반이성적인 것이며 탐욕과 야만, 광기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이라크를 침공하려는 미국은 예방차원의 선제공격에 의한 전쟁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현재 국제 사회에서는 어떠한 이유를 들건 간에 모든 선제공격은 불허한다는 원칙이, 국력이 세건 약하건 상관없이, 대부분의 나라들에 의해 승인되어있다. 자위권의 명분으로도, 상대국이 곧 쳐들어 올 것이라는 것이 명백하더라도 그 어떠한 경우의 그 어떠한 이유로도 선제공격은 불허된다.

다만 영국, 호주, 이스라엘등 극소수의 국가들만이 상대국이 곧 쳐들어 올 것 같은 임박한 위험상태에서의 선제공격(preemptive war)은 허용되어야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런데 9.11테러 사건 이후로 미국은 영국, 호주 같은 나라보다 한 술 더 떠서, 임박한 위험이 없더라도 위험을 예방하는 목적에서의 선제공격(preventive war)까지 정당화하고 있고 이를 이라크에서 실천하려고 한다. 이러한 '꼴통국가' 미국의 행동을 어떻게 설득해서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폭력과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세비야선언에서 제시한 '이성' 외에도 '연대'가 필요하다. 직접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이러한 폭력을 말려야하는 것이다. (사실 현대사회의 전쟁에서는 푸코가 말한 바 있듯이 그 누구도 당사자 아닌 사람이 없다) 물론 세비야 선언 그 자체도 연대적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대라는 개념은 타자에 대한 공감과 이에 의한 실천적 행동을 중요한 요소로 하고 있기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한다.

최근 이라크로 몰려들고 있는 각국의 민간인들로 구성된 인간방패들. 우리가 언제 타자인 국민들을 위해 몸을 던지는 이러한 인간방패들을 보았단 말인가. 인간방패는 연대적 가치를 극한적인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인간방패들을 '한심한 불나방'이라고 말하고 있는 미국이 과연 폭력에의 의지를 단념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최소한 우리는 금세기 들어 연대권적 가치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체득되어 점점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의를 둘 수 있다. / 논설위원

자유...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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