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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을 짓을 했다고? 세상에 맞을 짓은 없다
가정폭력에 대한 오해와 무감각을 치유하자
 
이승훈   기사입력  2003/02/24 [23:52]
얼마전 개그우먼 이경실씨가 남편 손광기씨에게 야구방망이로 얻어맞은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가 유명인이다보니 이 사건은 순식간에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가정폭력문제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경실씨 사건을 통해 비로소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면 가정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가 부족함이 심각함하다는 것을 느끼게된다. 우선, 가정폭력을 단속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는 경찰의 태도를 보면 경찰은 “피해자가 남편의 처벌을 꺼릴 경우 피해자 요청을 무시하고 법대로만 처리할 수 없는 고충이 있다”고 말한다.  

경찰의 이러한 태도는 폭행죄가 반의사불벌죄임을 문제삼고 있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반의사불벌죄를 간단히 설명하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처벌을 하지 않는 범죄를 말한다. 폭행죄는 이러한 반의사불벌죄중에서 대표적인 범죄이다.

가정 내의 부부간 폭행 사건의 경우는 특성상 배우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다른 폭행보다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수사를 시작했다가도 피해자가 처벌을 꺼릴 경우는 수사를 반드시 철회해야한다. 경찰은 이런 점을 두고 부부간 폭행사건의 경우는 개입하기 힘들다고 말한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폭행죄에 해당하는 경우이고 상해죄나 특수폭행죄, 폭행치상죄 등의 경우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다. 즉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수사는 계속되고 가해자는 처벌을 받게 된다.

이경실씨 사건의 경우는 남편 손광기씨가 야구방망이를 가지고 이경실씨를 사정없이 폭행했다. 이것은 단순한 폭행죄가 아니다. 야구방망이를 집어들고 신체에 심각한 상처와 정신적인 후유증을 남기는 폭력을 행사했다고 하면 상해의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상해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야구방망이 같은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폭행을 했을 때는 특수폭행이 인정되며 그리고 폭행으로 상해의 결과가 발생했으므로 폭행치상이 된다. 실제로 손광기씨는 특별범죄가중처벌법적용을 받는다. 흉기와 같은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폭행, 더구나 야간에 폭행한 것, 이러한 경우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다.  설령 반의사불벌죄인 단순폭행사건이라고해도 수사를 일단 시작해야 마땅하다.

경찰은 이런 경우 마땅히 처음부터 수사를 개시했어야 했다. 반의사 불벌죄 운운하면서 처벌을 원치않는 피해자의 요청 운운하면서 반의사불벌죄를 거론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건 발생이후 가만히 있다가 이경실씨의 처벌의사를 확인하고서 수사를 개시한 것은  경찰의 임무태만이다.  

그런 공권력의 임무 태만이나 법률적인 문제등은 차치하고서 이번 사건에서 무엇보다도 문제가 될 만한 일은 경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가정폭력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하며 가정 폭력 이외에도 기타 여러 곳 여러 종류의 폭력 전반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이 그런 식으로 임무를 태만히 해온 까닭도 우리 사회가 가정폭력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경실씨가 간통을 한 것이 입증이 되었다면 참작이 될 것이라는 말들이 있다.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이 말에 대해서 항의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참작이 된다는 것은 정당화된다는 말이 아니며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형량이 낮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일부 스포츠 신문들은 이러한 폭행사건의 속사정을 다음과 같이 굳이 밝혀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경실씨의 숨은 남자는  누구인가? 왜 때렸나? 이런 식의 제목아래 쓰여진 기사들은 참으로 보기에 황당하다.

이러한 기사들은, 아마도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쓴 것일텐데, 일반인들의 입장, 즉 맞을 짓을 했으니까 때렸겠지... 라는 생각아래 맞을 짓을 했을까? 어떤 맞을 짓을 했을까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충실히 반영된 기사라고 하겠다. 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수준을 황색신문들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 맞을 짓이라는 것은 없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요즘 세상에 절대로 맞을 짓이라는 것은 없다. 간통을 했건 말건 이경실이 어떤 잘못을 했건 말건 이경실씨에 대한 죄가 성립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들은 법정에서나 다루어질 문제이고 언론들이 이러한 것을 굳이 밝혀내려는 태도는 사생활의 침해가 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얼마 전에 유엔에서는 체벌을 인정하는 우리 나라 교육계에 체벌을 금지하라는 권고를 보내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상당수는 교사의 체벌은 용납될 수 없는 폭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정폭력과 체벌이 정당화되는 논리는 똑 같다. 피폭행자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있기 때문에 때린다. 혹은 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 때린다는 논리이다. 논리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기서 구체적으로 밝혀야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폭력에 대한 무감각과 오해가 언제쯤 치유될 수 있을지 안타깝다.

이번 이경실, 손광기씨 사건에서 경찰은 깊은 반성을 하고 가정폭력문제에 대해서 인식을 정확히 하여서 앞으로는 가정폭력문제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어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이 가정폭력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만연한 일체의 폭력에 대한 무감각에 대한 인식개혁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논설위원

자유...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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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2/24 [23:5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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