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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권 앞에 꺼져가는 가난한 생명들
제약기업, 이윤 집착…최빈국 저가 의약품 공급 길 막아
 
지오리포트   기사입력  2003/02/25 [00:00]
최빈국의 가난한 환자들이 약을 구하지 못해 한숨 짓고 있다. 최빈국에 값싼 ‘카피약'(복제약으로도 불린다. 정식 명칭은 generic drugs)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소리에, 특허권을 보유한 미국 등의 거대 제약기업들이 고개를 가로 젓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저가 의약품 공급의 길을 모색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의약품 특허권 협상은 또 다시 좌절됐다. 영국 신문 가디언 인터넷판이 지난 2월 20일 보도한 기사 ‘최빈국의 처방전은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Prescription for world's poorest stays unwritten)’를 통해 의약품 특허권 협상을 둘러싼 논란을 살펴본다. <편집자>

{IMAGE1_LEFT}최빈국 사람들이 저가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과, 심지어 접근할 수는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지난 2월 19일 145개국 대표들이 모인 회담이 단 두시간만에 끝나버렸다.

최빈국에서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예방할 수 있거나 치료할 수 있는 질병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의 의약품 특허권 협상은 또 다시 좌절되었다.

세계무역기구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TRIPS) 협정의 2002년 타결 시한은 이미 오래전의 과거가 되어 버린데다, 올해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회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때까지 의약품 문제가 해결이 안된다면, 칸쿤은 또다른 시애틀이 될 것이란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시애틀에서는 빈국에게 양보하지 않으려는 부국에 대해 분노한 사람들이 거리에 뛰쳐나온 바 있다.

그러나 19일 열린 제네바 회담은 강력한 제약산업이 갖고 있는 돈 잘벌리는 특허권을 미국이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는 바람에 성과가 없었다. 회담에서는 세계무역기구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회원국들의 태도에 다른 나라 대표들이 분노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소수 회원국들의 반대 때문에 빈국이 값싼 '카피약'을 수입할 수 있는 규정을 정하기 위한 회담이 1년이 넘도록 교착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을 거머쥐고 있는 제약산업이 미국의 협상태도를 결정"

그러나 다른 회원국들은 백악관을 거머쥐고 있는 제약산업이 미국의 협상태도를 결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제약기업이 선거자금으로 약 6천만 달러를 제공한 덕분에 공화당은 성공적으로 의회를 장악할 수 있었다. 한 정부 당국자가 말했듯이, “지금은 빚을 갚을 때다. 제약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의약품 협상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정치 자문관인 칼 로브(Karl Rove)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인 로버트 죌릭(Robert Zoellick)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옵저버들은 제약기업들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취하한 뒤로부터 지난 2년 동안 태도가 완고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39개의 제약기업들은 남아프리카 정부가 값싼 에이즈 치료제의 수입을 허가하는 입법조치를 방해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거센 비난 여론과 치료제의 실제 제조비용과 가격 책정을 조사하겠다는 압력, 그리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법정에 증인으로 서게 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고려해서, 결국 기업들은 소송을 취하하게 되었다.

새로운 라운드의 무역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무역장관들이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 모여들었을 때에도 제약기업들은 여전히 주춤거리고 있었다.

개발도상국 대표들은 특허권보다는 공중보건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값싼 카피약을 제조하거나 수입할 수 있는 권리- TRIPS 협정에는 적혀 있지만 근본원칙으로서 제시되지 않은-를 천명하는 선언문을 요구했다.

이 국가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켰고 로버트 죌릭도 협상을 끌어내는데 협조적이었다. 바로 이 도하 선언 덕분에 새로운 무역 라운드를 출범시키기 위해 개도국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회담이 원래 정해진 타결 시한을 넘어서면서, 장관들은 협상대표들이 제네바에서 세부사항을 결정하도록 넘겨버렸다.

논쟁이 된 문제는 돈이 없어서 의약품을 자체 생산할 수 없는 국가들, 이를테면 에이즈가 창궐하고 있는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 속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카피약을 수입할 수 있도록 규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제약기업들은 도하 선언을 가장 좁은 범위에서 해석하려고 이를 갈며 싸워 왔고, 이 때문에 세계무역기구 회담은 거의 14개월동안 마비 상태였다.

"회담을 질질 끌고 가는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어간다"

개발도상국들은 도하 선언이 천식에서부터 당뇨병, 암, HIV/에이즈까지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모든 질병에 대해 저렴한 의약품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폭넓은 규정에 오싹해진 제약기업들은 질병의 명단을 말라리아, 결핵, HIV/에이즈로 제한하고 특허권의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국가들도 최빈국으로 제한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엄청난 로비를 해왔다.

작년에는 협상을 통해 열대성 질병을 명단에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리슈마니아증(leishmaniasis)과 같은 기생충성 질환은 잘사는 나라에는 없기 때문에 치료제가 상업적인 이윤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질병도 명단에서 빠지게 되었다. 값싼 의약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려면 그 전에 반드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거나 세계무역기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도 마찬가지로 철회되었다.

제약기업들은 특허권에 관한 규정이 느슨해질 경우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부유한 인구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카피약 제조업체들이 수익성이 높은 생활개선 제약(lifestyle drugs. 비아그라와 같이 생명과는 직결되지 않지만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하는 약을 말한다 - 옮긴이) 시장을 쥐게 될 것이라고.다.

제약기업과 미국 무역대표들은 브라질과 인도가 자국의 카피약 제조업체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협상 테이블에 신뢰란 없으며, 제약산업에서 브라질과 인도가 특허권을 훔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지난 2월 19일 인도의 찬드라세카르(KM Chandrasekhar) WTO 대사는 14개월 전에 결정된 협상 범위를 좁히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하겠다는 의사를 반복해서 밝혔다. “우리는 도하에서 결정된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도 제한을 두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그러나 최근 브라질은 교착상태를 깰 수도 있는 희망이 보이는 새로운 협상안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 협상안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는 제조능력이 없다고 판정된 국가에 한해서는 특허권을 무시하고 값싼 치료제에 접근하도록 허락할 수 있다.

거대 제약기업의 이사회는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무역대표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간절히 필요로 하는 약을 수입할 수 있도록 새로운 규정이 마련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제네바에서는 교착상태가 계속되어 다른 부문의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시 정부 쪽에서는 점점 인내심의 한계를 보이고 있는 반면에, 다른 부문의 기업인들은 제약기업이 계속 끈질기게 나오면 시애틀 회담의 악몽이 재현될 거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의 요구는 간과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 지난 주 케냐의 무키사 키투이(Mukhisa Kituyi) 무역 대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당신들이 회담을 이렇게 골치아프게 끌고 가는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다.”
(Sarah Boseley and Charlotte Denny / 번역 김지연)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지구촌을 여는 인터넷 신문" 지오리포트 http://georeport.net/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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