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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이육사, 친일 서정주보다 나을까?
이문열 ‘합법’ 발언 ‘빈약한 과거사담론’ 간파한 것, 과거사규명 철저해야
 
정문순   기사입력  2004/09/03 [10:19]
시인 이육사는 저항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착잡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직업적 문인이 아니었던 그가 남긴 작품은 수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데다 그 중에서도 괜찮은 작품을 골라낸다면 고작 몇 편을 넘지 않는다.
 
육사만큼 작가의 행적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춤추는 사례에 딱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우선 육사의 시는 앞 뒤 가릴 것 없이 몽땅 저항시로 대접받는 기이한 풍조가 있다. '모시 수건'에 '은쟁반'이니 하는 귀족적 취향이 넘치는 시도 졸지에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노래로 둔갑해버린다. 설령 항일을 암시한 시라 해도 무조건 대단한 평가를 받는 것도 마뜩치 않다. 그의 양반적 감수성과 고고한 정신주의는 치명적인 결함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분하게 미화되어 왔다.
 
나라의 독립이 육사의 신념처럼 고결한 풍찬노숙형 지사의 손으로만 얻어진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항일이라는 말에 주눅이 들어 한 시인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살피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항일은 언제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저 먼 곳에 있었고 가타부타 따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선조들의 독립운동은 우리 일상을 지배하거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육사의 시, 몽땅 저항시로 대접받아
 
그렇다고 사람들이 항일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건 교과서에서 박제화된 몇 줄 지식에 불과하며 그나마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은 거의 모른다. 항일 담론이 어설프고 엉성함을 면치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친일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친일파라는 이름을 들을 때 떠오르는 감정은 막연한 경멸이나 증오 하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우리가 과거사를 얼마나 피상적으로 다루어 왔는지 새삼 일깨워준 것이 소설가 이문열의 최근 발언일 것이다. 이씨가 일제 강점이 '합법'적이라 한 발언 때문에 여기저기서 시끌시끌하다. 식민지 수탈에 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그의 속내가, 과거사를 캐겠다는 여권을 걸고넘어지는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데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몽땅 상식 이하로 치부하기에는 힘든 점이 없지 않다. 과거 청산을 확실히 한 프랑스의 경우를 그렇지 못한 우리와 비교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발언은 이문열 같은 수구 논객의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니다. 프랑스의 나치 지배는 4년에 불과했지만 우리는 그 10배에 가까운 세월을 식민지로 보낸 사정을 헤아리자는 발언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이씨는 이런 논리로 친일에 관대해지자는 수긍할 수 없는 태도로 나아가지만 그가 더없이 자신만만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 과거사 담론의 빈약함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작품으로만 평가해야
 
과거 청산을 부르짖는 사람들 중에는 항일과 친일을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항일은 더없이 숭고한 것이고, 친일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팔아먹은 매국이라는 식으로만 본다면 일제 말기에 무수히 전향한 민족주의자들을 설명할 길은 없게 된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자발적 친일로 빠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문인으로서 서정주와 유치환의 부일 행적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작품마저 아무 것도 아닌 양 치부해버리는 데는 찬성하고 싶지 않다.
 
육사의 우월 의식이 서정주의 패배주의보다 백 배 나으냐는 물음에 선뜻 답하기는 쉽지 않다. 항일시라 하여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 친일 문인의 작품이라 하여 사악한 언사만 늘어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문열씨처럼 과거사를 조사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친일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규명은 필요하다.
 
바야흐로 과거사 청산을 주창한 여당 인사들의 가계에서도 친일 행적이 드러나는 통에 그 작업을 누가 해야 하는가. 박정희를 친일 혐의 조사에서 빼버릴 수도 있다는 여당 의장의 발언을 듣자 하니 과거사 문제를 정쟁의 난장판에 맡겨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해’심을 갖춘 시민들의 몫으로 가져와야 할 것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9월 2일자에도 실렸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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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9/03 [10:1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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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겅 2016/09/12 [18:46] 수정 | 삭제
  • 마쓰이 오장 송가에 대한 작품성 분석도 해보시지요..
  • 거참... 2016/04/17 [11:22] 수정 | 삭제
  • 위에 글쓴이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근거를 내놓고 이야기 하시면 좋겠네요. 그저 증거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없으면 그만이라는 태도와 같지 않은가요. 쉽게 내뱉은변절이네 친일이라는 말은 선생의 생애에 대한 모독이고 글쓴이 자신에게도 거짓이라 생각됩니다.
  • 지식ㄴ 2016/04/15 [21:51] 수정 | 삭제
  • 이육사는 변절자 친일파입니다여러분 지금 이 사실을 널리 퍼트려야만 하는대 이 후손들이 아니라고 떵떠거리니깐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있습니다 여러분 나중에 밝혀지면 그제서야 그러쿠나 속았내 이런말하지마시고 지금도 민족문제연구소에 증거자료 일제강점기때에 기록햇던 것들이 남겨져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육사 변절자를 차단하여 널리 퍼트려야합니다 이렇게 말햇지만 그 이육사가 항일 운동을 안한것은 아닙니다 하엿지만 좀 시간이 흐르니깐 자기의 이익을 위해 친일로 변절한것이지요
  • zzz 2005/03/29 [18:17] 수정 | 삭제
  • 문학도 역사도 잘 모르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감상해도
    이육사와 서정주의 미감은 상당히 다른데..
    난 이육사의 미감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느낌
    그리고 그렇게 귀족적이라고 느끼지도 않는데..

    솔직히 패배주의나 허무주의야 그 시대 한국문학에서
    아주 일반적인 정서이고..
    그러니 희소가치가 있는 이육사의 미감이 더 신선하고..

    윤동주야 서정주보다 몇백배 낫다고 느끼고..
    윤동주 시는 실제 나이 그대로 정말 젊고 동시에 서민적이니까..
  • 백병원 2005/03/17 [17:58] 수정 | 삭제
  • 글쓴 사람은 가치관이 전도된 사람 같습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쓴 글이네요.

    일부 철없는 어린 사람들이 독립군은 나쁜 사람, 일본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정신상태가 도착된 사람의 글에는 토론을 할 공간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사회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낸 왜곡된 인간상이네요.

    슬픈 현실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는 서민이든 양반이든 누구든 너서는 일인데, 양반이면 어떻게 서민이면 어떻습니까? 이런 사소한 것 하나도 이해 못하는 사람이 이육사선생을 감히 서정주 나부랭이와 비교하다니...

    넘치는 쓰레기로 주체 못하는 대한민국 땅인데, 글에서도 이런 썩는 냄새를 맡게 만드네요.

    한승조의 축복 망언만 해도 골치아픈데, ...
  • 편파판결 2005/02/25 [23:53] 수정 | 삭제

  • 친일과 쿠데타 부정부패비리로 쌓은 재물과
    피묻은 권력으로 호강하던 그 때 그 사람들
    아직도 이 세상이 제 넘들 꺼라 착각하면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 하네

    영화는 가위질 노래는 벌금형
    패러디 만평에 사진에 댓글까지 검열하시고
    지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멋대로 재단하며 깐죽거리네

    삽질 좀 하지마 그 때 그 사람들
    그런다고 더러운 너희들
    호시절이 다시 돌아오진 않아

    이젠 좀 사라져 그 때 그 사람들
    세상은 이미 그 때 그 시절이 아니야

    [여당은 당선무효-야당은 벌금형]
    [기막힌 정치재판 그이름 선거재판]
    [돈은 풀고,입은막는 국민정서무시한재판]
    [여당,초선,개혁의원에 집중된 판파의혹]
    [대통령장인을 빨갱이라고 해도 괜찮고,야당대표 비난하면 유죄]
    [억대골프내기도 무죄라고 우기는 세상]
    [영화도 멋대로 가위질하는 재판]

    아~슬프다.

  • 의열단 2004/11/26 [04:10] 수정 | 삭제
  • '모시 수건'에 '은쟁반'이니 하는 귀족적 취향이 넘치는 시도 졸지에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노래로 둔갑해버린다.

    - 모시수건, 은쟁반이 귀족적 취향이라구? 그럼 내가 바라는 손님,,즉 광복이 오면,,,그 손님을 대접하기위해 청포도를 은쟁반에 담아주고, 그 손님의 손을 닦을 수건을 하이야 모시수건을 마련해 주겠다는데, 귀족적 취향이라고? 당신 말대로라면 "식탁"이라는 용어도 거슬리겠군. 당시 서민들은 개다리소반에 밥먹는게 일상적었으니 말이야.

    그래 그럼 그 부분을 어떻게 쓸까?

    [아이야, 우리 개다리소반엔 질그릇에 누르스름한 삼베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라고 끝내면 서민적이고, 민중적인가?

    완전 쓰레기새끼.., 물타기를 해도 분수가 있지. 감히 서정주같은 새끼와 이육사를 비교해? 당신같은 사람도 문학평론가를 하는 세상이니, 문학이 죽을 수 밖에....환타지 소설 평론하는 사람아냐?
  • 의열단 2004/11/26 [03:58] 수정 | 삭제
  • 튀어 보고 싶어 환장을 한 사람이로군. 작품은 작품으로만 봐야 한다고? 아예 구조주의적 분석이 최고라고 선언하시지.

    이 따위 글에 논리적 비판을 하려니 시간이 아깝다. 아예 이육사가 양반이어서 양반시대가 그리워서 독립운동했다는 주장하는 놈들이 더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이육사가 일본 유학을 한 뒤에 더더욱 서구적인 자유국가를 소망했다는 사실을 들이대면 깨갱하면서 꺼질 테지만,,

    이 글을 쓴 놈이 문학평론가라면,,,,,,개가 웃을 일이다.
  • 육사^^팬 2004/09/14 [19:09] 수정 | 삭제
  •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요즘은 아무나 문학평론가하는 모양입니다.
    양반은 항일운동이나 저항시를 쓰면 안된다는 사고방식
    시인이 그 시에 가장 적절한 용어 선택을 한것을 무리하게
    자기 주장에 꿰맞추어
    특정용어를 쓰면 사상이나 이념이 어떻다고 주장하는 것이 우습군요.

    영혼이 시인의 경지에 까지 이르지 못한 사람이 자기 잘난 맛에
    시 언저리에서 시를 평하는 것
    시인을 평하는 것이 이런 수준 이하의 평글이 나온게 된 이유인듯 싶군요.
  • 봄바람 2004/09/06 [11:20] 수정 | 삭제
  • 당신은 작품은 작품으로 평가를 하갰소
    당신의 형제들에게 감정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써 접근하여야된다고 설파하겠소 ?
    민족의 문제도 마찮가지인거여요
    우리;가 구태여 서정주를 기억할 필요가 있는가 말이오
  • 봄바람 2004/09/06 [11:15] 수정 | 삭제
  • 일본이 종군위안부에 대한 자료를 많이 수집하였다는 이영훈스러움이나
    서정주가 이육사보다 작품이 더 많다는 주장이나 ?
    나도 문학을 하는 사람인데 앞으로 이 따위 글을 써서 공해를 일으키지 마세요


  • 미친놈아 2004/09/05 [21:19] 수정 | 삭제
  • 그래서 꼴통들은 못말린다니까? 작품성으로도 얄팍하게 감성이나 건드린 서정주시보다 무게 있는 이육사시가 더 낫지. 너도 평론가냐? 친일꼴통!
  • 콘야 2004/09/03 [22:43] 수정 | 삭제

  • ...이육사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이 글을 쓴 건지 궁금합니다 . 몇 가지 궁금증을 나열해보겠습니다 .


    직업적 문인이 아니었던 그가 남긴 작품은-->.직업적이고 아니라는 기준이 무언지 모호하군요 ^^ 그 당시에 신춘 문예에 당선이 안되어서 ? ^^


    괜찮은 작품을 골라낸다면 고작 몇 편을 넘지 않는다.-->‘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

    우선 육사의 시는 앞 뒤 가릴 것 없이 몽땅 저항시로 대접받는 기이한 풍조가--> 시라는 것은 내재적 관점과 외재적 관점으로 읽는 것이 아닌가요 ? 독립운동가의 시를 외재적 관점으로 읽지 그럼 뭐로 읽어낸다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

    # 참고
    ♣ 표현론적 관점 : 작가의 체험, 사상,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는 관점
    ♣ 반영론적 관점 : 문학 작품은 삶의 현실(시대,사회)의 반영된 산물
    ♣ 효용론적 관점 : 독자에게 어떤 효과를 주었는가?

    : 작품 내부에 사용된 언어들의 상호 관계에 초점




    '모시 수건'에 '은쟁반'이니 하는 귀족적 취향이 넘치는 시도 졸지에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노래로 둔갑해버린다.-->>둔갑 ? ‘조국의 독립을 염원 ’ 하는 비유라고 읽었는데요 저는. 그리고 그는 실제로 안동의 양반가의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그 영화를 박차고 독립운동을 한 지사였으니 은쟁반, 모시수건을 써봤을 사람이겠지요 .



    설령 항일을 암시한 시라 해도 무조건 대단한 평가를 받는 것도 마뜩치 않다.-->>왜 마뜩치가 않으신지요 ? 그는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 나이 겨우 마흔 무렵에.....무조건-->>이라는 표현도 문학평론가로서는 대단히 비논리적으로 보입니다 .



    그의 양반적 감수성과 고고한 정신주의는 치명적인 결함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분하게 미화되어 왔다. -->>그는 실제로 양반이었지만 행동하는 실천가였습니다 . 고고한 정신주의는 왜 또 치명적인 결함입니까 ?




    나라의 독립이 육사의 신념처럼 고결한 풍찬노숙형 지사의 손으로만 얻어진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항일이라는 말에 주눅이 들어 한 시인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살피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항일은 언제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저 먼 곳에 있었고 가타부타 따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선조들의 독립운동은 우리 일상을 지배하거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정말 이상한 논리입니다 . 평범한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순간 그들은 이미 지사가 되는 것입니다 . 왜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까 ? 지금 우리 나라의 민주화나 진보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 각성하고 행동하여 세상을 바꾼 것입니다 . 누가 ‘ 항일’ 이라는 말에 주눅 들어 한 시인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살피지 못 했다는 겁니까 ? 정문순님이 입체적으로 살펴서 비평을 하여 올바른 평가로 자리를 매겨주면 될 것을 이렇게 애매모호한 깎아내리기로 육사의 행적과 문학 세계, 정신세계마저 모독하는 건 온당치 않은 일입니다 .‘ 항일은 언제나 ~~ 거리가 멀다 ’는 구절도 마치 항일 지사의 삶이 과대 평가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 오독입니까 ?

    문인으로서 서정주와 유치환의 부일 행적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작품마저 아무 것도 아닌 양 치부해버리는 데는 찬성하고 싶지 않다. -->>저는 오히려 미당과 청마가 지나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고교 문학 교과서를 보세요 ~아무 것도 아닌 양 치부하는 것도 아니구요 ..내재적 관점으로 평가해주고 있습니다 .




    육사의 우월 의식이 서정주의 패배주의보다 백 배 나으냐는 물음에 선뜻 답하기는 쉽지 않다. 항일시라 하여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 친일 문인의 작품이라 하여 사악한 언사만 늘어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문열씨처럼 과거사를 조사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친일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규명은 필요하다.
    -->>우월의식은 또 무엇이고 패배주의는 무엇입니까 ? 항일시라 하여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고 ? 친일 문인의 작품은 사악한 언사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직업이 문학평론가이시면 국문학 전공한 분이실 듯 한데(아마도 ) 같은 국문학 전공자가 이해못할 글을 쓰셨다고 생각합니다 . 육사의 전기와 육사의 시, 미당 전기와 청마 전기, 그리고 그들의 시를 다시 읽고 정려한 글을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

    ====================================================
  • 안동양반 2004/09/03 [16:23] 수정 | 삭제
  • 아무리 조중동이 욕을 먹는다 하지만, 조중동이 달리 조중동이요? 아래 기사를 읽어보시오. 반론도 필요없을 것 같소.
    이 기사를 읽고 당신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관념적인 것인가를 반성하기 바라오.

    안동 '이육사문학관'으로 떠나는 주말여행

    중고등학교 시절 한번쯤 읊조렸던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등 주변 강대국들의 역사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는 지금 주말을 이용해 가족과 함께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http://264.or.kr)을 찾아가 보자. 자연스럽게 민족의식을 심어 줄 수 있는 산 교육장이다.

    안동시에서 30여분 거리인 도산면 원천리 2000여평 터에 자리 잡은 이육사문학관은 지난 7월말 육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문을 열었다. 지금 원천리는 육사의 시와 달리 청포도를 찾아 보기 어렵다. 그 시절에는 청포도 밭이 곳곳에 있었다고 한다.

    이육사(李陸史,1904~1944) 시인의 본명은 '원록(源祿)'이다.그의 필명은 독립운동으로 처음 감옥살이를 했을때 수감 번호가'264'였던 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올곧은 그의 정신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육사는 1904년 5월 18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당시 원촌동) 881번지에서 진성 이씨 이가호(李家鎬, 퇴계 이황의 13대손)와 허형(許)의 딸인 허길(許吉) 사이에 6형제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18살에 출가,딸 하나를 두었다.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그의 딸이 지난달 이곳을 몰래 찾았다고 한다.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문학관 담당자 권영백씨는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가 커지면서 하루 평균 1000여명이 찾고 있다"고 말한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그의 동상과 시 '광야'가 새겨진 시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어 '항일 기개로 초인의 삶을 산 민족시인' '(친.외가 모두) 창씨개명.신사참배 거부한 대쪽 집안' '중국 넘나들며 독립운동' '투옥(17번)으로 점철된 생애' '광복 1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 옥사'라는 순서로 각종 유품과 사료가 진열돼 있다. 1층에는 헤드폰을 쓰고 버튼을 누르면 '청포도'와 '광야' 등 주옥같은 시 36여편을 눈과 귀로 동시에 접할 수 있는 시감상실도 갖췄다. 문학관에서 100m 떨어진 그의 생가 터에는 잡목들과 함께 청포도 시비가 외롭게 남아 있다.

    그는 일제 강점의 암흑기에 저항수단으로 시를 썼다.

    서울대 최창규 교수는 " 1900년대 이 겨레의 의병운동이 빼앗긴 역사의 첫 머리에서 터져나온 민족의 활력이었다면 , 바로 이육사에 의하여 대표되는 1930년대의 저항적 지성은 그 빼앗긴 역사마저 광복의 가능성을 거의 잃고 방황하던 역사의 절망을 지켜 준 실국역사 마지막의 활력이었던 것이다. "라고 했다.('이육사, 시대의 사상사적 좌표'가운데)

    이육사기념사업회는 문학관 개관에 맞춰 국내 작고 시인의 필적과 현역 시인의 자필시 등 100여점을 기증했다. 작고시인 한용운과 조지훈.신석정.서정주.박두진 등의 유필 30여점과 피천득.김종길 등 현역 시인의 육필시 70여점 등 100여점을 덤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가혹한 일제말기 현실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광야)'을 기다렸다. 그 초인이 대한민국의 독립이었을지 아니면 더 큰 이상이었을지... 우리는 '광야'를 떠올리며서 그런 초인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학관에서 자동차로 5분거리에 있는 도산서원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한국의 대표적인 유학자였던 퇴계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해마다 25만여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관리소 김정인 소장은 "선비정신은 예의와 염치를 구별하는 것"이라며 "돈.명예.성(性) 이라는 인간의 욕심을 다스렸던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현대화한 선비학교도 열고 있다"고 소개했다.

    ■어떻게 가나=승용차로 서울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면 약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서안동IC에서 약 한시간 국도와 지방도를 달려 도산서원 이정표를 찾아가면 된다.도산서원에서 5분거리다.안동관광안내소( 054-851-6397), 이육사박물관(054-851-6391),도산서원(054-856-1073)


  • 안동양반 2004/09/03 [16:20] 수정 | 삭제



  •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 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여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안동양반 2004/09/03 [11:40] 수정 | 삭제
  • 정문순 기자는 이육사 평전이라도 읽어보셨나요?
    그가 지하독립운동 하고 감옥에 가고, 병마에 시달리고
    언제 시를 쓸 틈이 있나요? 시인의 생애와 그를 둘러싼 전 역사과정을 함께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번 글은 시비를 위한 시비인 것 같은데, 번지수가 잘못되었습니다.
    심히 유감인데, 일단 이 정도로 지적하고 반론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