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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국가의 군인되느니 감옥가겠다"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한 사회당 대전시 기획국장 이원표씨 소견서 밝혀
 
취재부   기사입력  2004/08/26 [16:13]
지난 7월 15일 대법원 판결에 이어 26일 헌법재판소 판정에 의해 ‘양심적 병역거부’는 현 병역법에 저촉된다며 위헌 판정이 나오는 시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며 입영을 거부했던 사회당 대전시 기획국장인 이원표씨가 자신의 입장을 정리, 대자보에 보내왔다.

이원표씨는 ‘전쟁은 범죄’이며, 자신은 ‘피눈물이 아닌 땀방울‘을 이라크에 전하고 싶다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걸어 전쟁이 범죄이며, 자이툰 부대의 파병이 이라크인과 우리에게 저질러지는 가장 악독한 범죄”임을 보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 씨는 “전쟁을 반대하고, 전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국제연대를 꾀하고자 하는 사회당 당원의 양심으로 병역을 거부‘하며, ”온 국민 앞에서 헌법 수호를 약속했던 대통령이, 평화의 헌법정신을 어기며 이라크 파병을 주도했음을 강력히 규탄“했다.

아울러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도 “일제시대부터 시작되어 1만명이 넘는 피해자를 양산”했으면서도 “분단과 안보의 특수한 상황이라는 이유를 들어 다른 양심을 가진 1만명을 범법자”로 만든 사법부와 입법부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가게 되어있는 군대에 가길 거부하고, 감옥을 선택한 것은 “군대라는 존재 자체가 언제나 전쟁을 예비하고 있다며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복무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음으로해서 군대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전쟁도발성은 억제될 수 있다는 것도 상기”해주길 바란다며, 자신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면서 저는 전범국가의 군인이 되느니, 차라리 감옥을 택하겠습니다”라며 끝을 맺었다.

대법원과 헌재의 판결로 인해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자는 최근 불구속 기소되는 것과 달리 과거처럼 병역법 위반으로 즉각 구속에 처해지는 등 활동이 상당히 위축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원표 씨의 선언처럼 우리 사회에 더욱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이원표씨가 밝힌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 전문이다.


피눈물이 아닌 땀방울을 이라크에 전하고 싶습니다.

전쟁은 범죄입니다.

자이툰부대가 이라크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수 많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로 떠난 자이툰부대는 국민 모두가 잠든 사이 '도둑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들이 이라크의 해방군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우리들을 속였지만, 우리는 자이툰부대가 이라크를 침략한 미영연합군의 일원임을 잘알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지난 몇 달간 파병 중단과 점령군 철수를 요구하는 전국민적 저항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쳤던 것입니다.
 
미국의 추악한 탐욕에서 비롯된 이 전쟁에서 수 많은 이라크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남은 대다수의 이라크인들도 가족을 빼앗고 삶의 터전을 파괴한 미국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종전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저항세력과의 전투 또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요청에 응해 파병되는 한국군이 이라크인들의 친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세계질서의 절대 강자인 미국과의 동맹에만 눈이 멀어, 애초부터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의 계산법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국민인 저로서는 이라크 파병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국익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야 하고, 김선일 씨와 같은 우리의 친근한 이웃이 목숨을 위협당하는 이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국익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반미 테러와 미국의 반테러전쟁에서 이미 수만 혹은 수십만의 인명이 살상되었습니다. 가늠할 수 없는 그 많은 생명의 희생을 담보로 더 많은 군수물자 소비를 생각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수백배, 수천배의 국익을 만든다 할지라도, 저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살인은 모두가 범죄라고 말하지만, 전쟁을 범죄로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세상을 잘 안다는 투로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만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라고 말하는 것에 저는 혐오감을 느낍니다. 전쟁은 범죄입니다. 범죄인 전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바로 범죄입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걸어 전쟁이 범죄이며, 자이툰 부대의 파병이 이라크인과 우리에게 저질러지는 가장 악독한 범죄임을 보이고 싶습니다.
 
전쟁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피와 살육의 잔치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전국의 학교를 순회하면서 상영하는 반공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영화는 한결같이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와 못된 짓을 하는 것에 분개한 마을 청년이 낫으로 인민군을 쳐 죽이고, 다시 그들의 총에 맞습니다. 그러다 국군이 들어와 못된 인민군을 완전히 소탕하는 그런 내용 일색이었습니다.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한 영화로 유용했을지 모르겠지만, 낫?죽창?도끼?총 등 끔찍한 무기로 사람을 처참하게 살해하는 무시무시한 장면들이 악몽이 되어 저를 괴롭히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반공소년영웅 이승복을 닮으라고 공비에게 입이 찢길 때 까지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반복했지만, 그 뒤로 이승복의 동상을 볼 때 마다 그려지는 것은 입이 찢어져 피 흘리는 귀신상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승복 동상을 끔찍이도 싫어했습니다.
 
적에 대한 적개심을 기르기 위해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살육이 난무하는 끔찍한 영화를 강제로 보게하고, 믿을 수도 없는 공비 이야기들을 반복했던 혐오스런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적'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는 반공영웅이 탄생할지는 모르지만, 그와 함께 왜곡되고 파탄난 인간성을 가진 집단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전쟁터에서는 이런 인간성 파탄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국전쟁 당시, 전쟁에 참가한 미군들은 한국인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도록 아시아인은 개, 돼지와 같다는 교육을 반복적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들개떼에게 총을 겨누듯 무고한 양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학살해 왔습니다.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전쟁은 상대를 인간으로 보지 않게 합니다. 그저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적'일 뿐입니다. 그 증거가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입니다. 이라크인을 인간으로 보았다면 그런 처참한 포로학대가 발생했겠습니까? 침략군의 눈에는 수없이 죽어가는 이라크인들도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라크와 나눠야하는 것은 피눈물이 아니라 땀방울입니다.
 
작년 정부는 대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당시 정부는 서희ㆍ제마부대는 이라크의 재건을 위해 파병되는 비전투병부대이며 더 이상의 파병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자이툰부대의 파병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정부의 치졸한 술책에 속았음을 뒤늦게 후회하였습니다. 자이툰 부대는 파병되기도 전에 무고한 한국의 젊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한국의 파병과 이라크의 방어전쟁 사이에 벌어진 한 젊은이의 죽음. 누구의 잘못이며, 누구의 책임입니까? 한국과 이라크가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 피눈물과 살육의 악순환에 휘말려야 합니까?
 
저도 이라크에 가고 싶습니다. 군인이 아니라 민간봉사자가 되고 싶습니다. 군복을 입고 총을 들어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는 이라크인들을 위협하고 싶지 않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망치를 들어 이라크의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와 집을 짓겠습니다. 한국이 이라크의 재건을 진정으로 돕고 싶다면 군복이 아닌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내야합니다. 한국과 이라크가 서로 땀방울을 나눌 수 있다면, 저도 작업복을 입은 일원이 되겠습니다. 살육과 살생의 공포를 조장하는 군인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의 미래를 선물하는 자원봉사자가 될 수 있다면 10년의 세월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이라크로 건너가겠습니다.
 
전쟁을 반대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사회당의 한 사람의 당원으로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을 택합니다.
 
사회당 강령 7항은 "모든 침략전쟁과 테러를 반대하고 전 세계의 반전평화운동진영과 긴밀하게 연대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쟁을 반대하고, 전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국제연대를 꾀하고자 하는 사회당 당원의 양심으로 병역을 거부합니다. 더불어 저는 대한민국 헌법 5조 1항이 "대한민국은 국제 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라고 쓰여진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온 국민 앞에서 헌법 수호를 약속했던 대통령이, 평화의 헌법정신을 어기며 이라크 파병을 주도했음을 강력히 규탄합니다.
 
이 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일제시대부터 시작되어 1만명이 넘는 피해자를 양산해 왔습니다. 헌법 19조에 국민 개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분단과 안보의 특수한 상황이라는 이유를 들어 다른 양심을 가진 1만명을 범법자로 만들었습니다. 50여년간 헌법정신을 위배하는 부당한 판결을 계속해 온 사법부를 규탄합니다. 또한 헌법정신이 유린당하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입법권자 국회를 규탄합니다.
 
누구나 가게 되어있는 군대에 가길 거부하고, 감옥을 선택하면서 한 가지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럽 소국가들에게나 있는 치안군대가 아니라면 자국방위만을 위한 군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군대의 존재는 침략과 전쟁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평화헌법을 가지고 있는 일본도 자위대를 전쟁에 파병하면서, 그것을 '자국방위'라 말합니다. 이처럼 자국방위를 위한 군대는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군대라는 존재 자체가 언제나 전쟁을 예비하고 있다며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복무를 원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음으로해서 군대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전쟁도발성은 억제될 수 있다는 것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면서 저는 전범국가의 군인이 되느니, 차라리 감옥을 택하겠습니다.
 
병역거부자 이원표 (만 26세)
1978년 대전 출생
1997년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졸업
한국항공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입학
1998년대학 등록금 투쟁으로 제적
2000년복적
2001년한국항공대학교 부총학생회장
2003년한국항공대학교 졸업
사회당 중앙위원
2004년사회당 대전시위원회 기획국장 (현)
이라크 파병반대 대전시민행동 집행위원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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