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군 지역 농활에 참가했던 서울대 학생들이 나이 많은 60~70대 현지 주민들이 여학생에게 '아가씨', ''아줌마'라고 부른 것에 대해 성희롱을 주장하며 예정보다 일찍 농활을 마치고 돌아온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9일 현재 서울대 총학생회 홈페이지 (
http://chonghak.snu.ac.kr) 는 서울대 학생들이 분별없이 행동했다며 항의하는 수많은 네티즌들로 인해 다운되어 열리지 않는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네티즌들이 언론사 게시판에 남긴 글을 보면 대부분 아가씨를 아가씨라 불러도 성폭력인지 묻고있다. 또 60~70대 노인들이 부른 것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았다고 서울대 학생쪽을 나무라고 있다.
|
▲네이버 나도한마디 코너에 올라온 네티즌의 의견들 © 네이버 |
충남농민회는 노인들이 '아가씨',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무슨 큰 뜻을 가지고 그렇게 했겠느냐"면서 "학생과 농민들 사이의 사소한 문화적 갈등"이라 말한다. 이에 대해 서울대총학생회 쪽은 "'아가씨','아줌마'라고 부르는 과정에서 불쾌감이 생길만한 대화가 오가고 여학생들의 숙소에 농민들이 들어오기도 했다"며 "학생들이 성폭력 문제를 농민회쪽과 논의했지만 성폭력 개념에 대한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보며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에도 교감이 회식자리에서 여교사들에게 ‘술 따를 것’을 요구한 행위에 대해 여성부는 성희롱 결정 처분을 내렸으나, 서울행정법원 제2부가 성희롱이 아니라고 성희롱 취소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는 성희롱에 대한 개념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 간에 다양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성희롱은 우선적으로 성희롱을 당하는 피해자의 감정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성희롱을 정의할 때는 성범죄 행위의 구성 여부와 관계 없이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로서, 피해자의 합리적인 주관적 판단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즉, 성희롱을 당하는 피해자가 성희롱이라고 생각하면 성희롱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하 세부규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정의가 되어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남자들이 이러한 정의에 대해 잘 이해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눈한번 마추치는데 여자가 기분나쁘다고 성희롱이면 눈길한번 제대로 못주겠네?" "친구로서 어깨에 손올려도 성희롱인가?" 이렇게들 생각할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 법원도 교감이 여교사들에게 '술 따를 것'을 요구한 것이 성희롱이 아니라고 본 듯하다. 그러나 이 판결은 잘못된 판결이 아닐까 한다. 많은 여교사들이 연속적으로 거부했다는 정황이 성희롱을 인정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이다. 여교사들이 성희롱이라고 생각했다는 점과 술을 따르는 것을 많은 여교사들이 연속적으로 거부했다는 점을 봤을 때 성희롱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문기사를 보면 대부분의 성희롱 사례에서 성희롱이 일어난 정황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기자들이 성희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게 보도하지 않은 듯하다. 정황을 밝혀야한다. 성희롱사건에서 주관적인 성희롱모욕감을 빼고, 객관적인 부분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사건의 주변 상황, 정황이다. 대체로 주관적인 사정보다 객관적인 사정에 따라 판단할 수 없기에 성희롱판단에는 이 객관적인 정황이 중요시된다. 똑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정황에 따라 성희롱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실상 성희롱으로 엮어들어서 엮이지 않을 행위가 거의 없다. 피해자가 성희롱이라고 생각하면 거기서부터 성희롱문제가 발생하는 법이다. 아가씨를 아가씨라고 불러도 성희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능글맞은 눈으로 괜히 집적대는 몸짓으로 느끼하게 "아가씨~" 이럴 때 그 아가씨가 불쾌함을 느꼈다면 성희롱이 될 수 있다.
이번 농활에서 문제의 여학생이 성희롱이라고 주장했는데, 아가씨라고도 부르고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점 그보다는 불쾌한 대화가 오고갔다는 점, 여학생의 숙소를 들락날락했다는 점이 정황으로서 중요한 사실들이 될 듯하다. 따라서 아가씨를 아가씨로 부르는 것이 어쩌면 술집아가씨라는 맥락에서 부른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정황을 확인해봐야한다. 아마도 현재로서는 성희롱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성희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성희롱을 했는지 잘 모른다고 해도, 아무리 그 사람이 60~70대 노인이라고 해도 우리 사회에서 성희롱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다면 그 노인은 비판받아야한다. 오래전 성희롱문제가 사회문제로 발전했을 때 피해 여직원이나 여학생들이 동료 상급자, 스승을 공격하며 고소하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했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나이 많다고, 농촌의 특수한 환경이라고 유세부릴 수는 없다.
차제에 성희롱 학칙, 법규등 성희롱 규정에 있어서 좀 더 치밀하게 정의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황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성희롱인지 문제되는 그 행위만 객관적으로 봐서 성희롱연관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행위, 예를 들어 어깨를 주무르거나 유방을 만지는 행위에 의해서 성희롱주장이 나온 경우와 성희롱 연관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행위, 예를 들어 눈을 마주치는 행위나 아가씨를 아가씨로 부르는 행위에 대해서 각각 구성요건을 달리해서 정의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성희롱연관성이 높은 행위에 의한 성희롱 사건은 보다 쉽게 성희롱이 성립하도록 하고 성희롱연관성이 낮은 행위에 의한 성희롱 사건은 좀 더 어렵게 성희롱이 성립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런 식으로 저를 쳐다보지 마세요 불쾌합니다" 라는 의미의 의사를 상대방에 유언(有言)이나 무언(無言)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정도로. 아무튼 성희롱 사건은 정황이 중요하다. / 편집위원
[자료]
홍성군 농민회 입장 전문
2001여름농활과 관련한 홍성군농민회의 입장 1. 농활기간 중 홍성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하여 심히 유감을 표한다.
2. 그러나 가해당사자가 공식적인 사과를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학내에서는 피해 당사자가 원하는 처벌을 한다며 농활 중에 발생한 경미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사과문을 마을회관에 게재해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은 서로의 문화적차이를 인정치 않고 농촌사회에 대학문화를 그대로 적용하려는 편협하고도 경직된 발상이다.
3. 성폭력사건에 대한 공론화는 이미 발생했던 마을에서 청년회모임에서 논의되어 일정정도 이루어 졌다고 본다. 농활전체회의에 의제화되어 참여했던 모든 농민들이 사건을 인지하면서 공론화되었고, 비교적 경미한 사건이니 당사자의 공개사과로 정리하자는 주장에 끝까지 학생측의 `사과문 마을회관 게재` 주장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농학연대의 대의로 나서야하는 연대의 기본틀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4. 학생들이 주장하는 여성문제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학교와 농촌사회에는 문화적, 사회적, 의식적인 편차가 존재하는 만큼 홍성군농민회는 그 상황에 맞는 사업들을 앞으로 해나갈 것이다.
5. 서울대학교 홍성군 농활대는 농학연대의 기본틀을 무시하고 대학사회의 고정관념을 일방적으로 농촌사회에 적용하려는 발상과 이로 인해 발생된 농민회의 명예실추에 대하여 공개사과하라.
6. 전농은 5번 사항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서울대학교와의 농학연대사업을 전면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
홍성군농민회
홍성군 농활 성폭력 경위 6/30 장곡면 가송리 마을에서 서울대 약대 농활대와 마을 청년회와 간담회 진행.
술자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청년회 3명이 남아 삼삼오오 술자리가 이어졌음.
가해자는 한 남학생과 둘이 마주앉아 맥주컵으로 소주를 서로 주고받다가 술발이 센 남학생과 술 마시는 것이 불리하게 되자 `여학생도 껴서 먹지`라고 총 3회 했음. 주변에 있던 불특정다수의 여학생이 이 발언을 들었음.
옆에 있던 다른 청년회원(농민회원)이 "야! 너 그런 소리하면 성폭력이 될 수 있어"라고 함.
9시경 시작된 술자리가 1시 30분쯤 아무 문제제기 없이 마무리 됐음.
7/1 이 사건이 농활대 평가에 다루어지면서 "여자도 껴서 먹자"라는 표현이 성폭력이라고 규정하고 가해자 공개사과와 사과문을 농활대가 농활을 마칠때까지 마을회관에 부착한다는 내용을 결정.
7/2 농활대가 마을 청년회장에게 성폭력이 있었음을 통보.
긴급히 청년회 모임을 소집하고 경위를 파악.
가해자는 "여학생도 껴서 먹자"는 표현은 함께 먹자는 뜻이었지만 듣는 사람이 기분이 상해 성폭력이 된다면 공식적으로 사과하겠다는 의사표명.
학생측에서는 내부논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므로 사과문 게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 청년회측은 사과문 게재는 지역 정서상 확대해석 될 수 있는 소지가 있으므로 재고할 것을 요구. 학생측은 의사를 관철시켜야한다고 주장. 이후 수 차례 공식사과로 이 사건을 마무리하자며 사정조의 부탁도 했음.
학생측은 다음날 있는 홍성군 전체 농활 중간평가에 정식 제기키로 결정함.
7/3 농활 중간평가(학생 20여명, 농민회원 및 마을대표자 12명 참석). 성폭력건이 기타안건으로 다루어짐.
학생측 의견= 학교에서도 피해자가 원하는 처벌 방식대로 한다며 사과문 게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
농민측 의견= 사과문 게재는 농촌 정서상 적절치 못하며 앞으로 남은 일정과 마을마다하는 마을잔치 때 `술 한잔 따라봐`등 이보다 더한 일이 일어날텐데 이때마다 공식사과하고 대자보 붙이고 하는 것을 농민들이 이해 못한다. 오히려 이로 인해 농민회가 농촌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며 공식사과를 받아들이고 정리할 것을 요청.
이에 대해서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절반 이상의 농민들이 화가 나서 퇴장.
농민회측은 농활의 의미와, 학교와 농촌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줄 것을 말하고 학생들끼리 다시 논의토록 모두 퇴장.
농민회와 마을대표자들은 경미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공식적인 사과선에서 마무리해야지 사과문 부착은 있을 수 없다며, 만약 끝까지 학생들이 고집한다면 당장 마을에서 철수시킨다는 의견이 다수로 모아짐.
학생들의 회의결과 결정을 유보키로 했다고 하자, 다수의 농민들 지르며 이런 학생들과는 연대할 수 없다고 의견이 모아지고 농활을 중단 할 것을 결정.
도연맹에 보고 후 다음 사항을 농활대 본부에 전달.
1. 이 시간 이후에 농민회는 농활에 관여하지 않는다.
2. 농활본부를 7/4일 중으로 철수한다.
3. 마을에서의 철수는 마을에서 관련 결정한다.
7/5 - 6 11개팀 마을에서 모두 철수
법대,인문대, 약대 학생회 입장 전문 서울대 법대·인문대·약대 홍성군 농활대에서 농민회 충남도연맹에 드립니다. 1. 대략의 사건 경위
7월 3일 홍성군 각 지역에 농활을 들어와 있는 서울대 법대·인문대·약대 학생들과 농활대를 받아서 인솔하고 계시는 각 마을의 대표분들이 함께 모여 농활의 중간상황을 점검하는 평가 자리에서 한 사건이 접수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던 중, 학생측과 농민회측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피치 못하게 농활을 중간 종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서울대 약대 농활대가 농활을 들어갔던 홍성군 장곡면 가송리 마을에서 어느 술자리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농활대와 마을 청년회분들간의 술자리가 진행 중이었고, 그 자리에서 한 청년분이 "여자를 끼고 술을 마셔야지..."라는 말씀을 몇 차례에 걸쳐 하셨습니다. 곧 주위에 계신 다른 한 분의 청년분이 그 말에 동조하셨고, 또 다른 한 청년분은 "그런 말은 성폭력이 된다"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이러한 말들이 오고 간 이후에도 계속 되었고,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여학생들은 이 말에 매우 심한 불쾌감을 느꼈으며, 그 중에 몇 명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분위기는 계속 불편한 채로 진행되었고, 그렇게 그 날의 모임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밤, 농활대원 전부가 모인 회의 시간에서 한 농활대원이 전날의 이 사건이 문제가 됨을 제기하였고, 농활대 전체가 논의 끝에 이것은 명백히 농활대 여학생에게 성적 불쾌감과 수치심을 준 `언어 성폭력`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에 농활대가 청년회분들과 가해자를 만나서 이것이 성폭력이 됨을 말씀드렸고, 가해자의 농활대에 대한 공식 사과와 함께, 사건을 공론화하여 마을에서 좀 더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제안을 드렸습니다.
이에 가해자는 그 상황이 성폭력이 될 수 있음을 시인하고, 사과의 뜻을 밝혔으나, 공론화에 대해서는 마을 청년회와 함께 반대를 하셨습니다. 이후, 이 논의는 자연스레 농활대와 마을 대표분들이 다같이 모이는 회의 자리로 옮겨오게 되었으나, 그 자리에 참석하신 많은 농민분들 또한, 이 사건을 성폭력이라 볼 수 없다며, 학생들의 의견에 극구 반대하셨고, 더욱이 `공론화`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노여워하셨습니다. 학생들은 따로 된 재논의 끝에 이후의 성폭력 사건의 해결/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농민회와 함께 재논의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우선적으로는 당시 상황이 성폭력적인 상황이었음에 대해서만 다시 말씀드리고자 논의를 제안드렸습니다. 하지만 농민회분들을 위시한 어르신들은 이것을 오히려 성폭력이라고 보는 것 자체에 대해서 반대하시며 더 이상의 재논의 및 번복이 불가능함과 함께 농활의 중단을 선언하셨습니다. 학생들은 이후 밤샘 논의 끝에 다시 재논의를 위한 농민회와의 접촉을 시도하였으나 별 진전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급기야 서울대 법대·인문대·약대 농활대는 더 이상 남은 기간 동안 홍성에서 농활을 수행하기 힘든 상황을 인식기에 이르렀습니다.
2/ 이 사건은 명백히 `성폭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를 끼고 술을 마셔야지.."라는 얘기가 되었다는 걸 들었을 때, 저희 학생들이 느꼈던 감정은 그 자리의 농활대가 느꼈다고 얘기했던 불쾌감, 수치심과 꼭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여자`를 술자리에서 `남자`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쯤으로 여기는 관습 속에서 나온 얘기가 명백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어른들은 그 말이 그러한 `의도`가 전혀 없었으므로 성폭력이 될 수 없다는 걸 강조하십니다. 물론, 저희도 그 자리에서 그 분이 이 여학생들을 그렇게 취급하겠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그런 얘기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만, 이 농촌에서 그리고 이 사회에서 으레 통용되는 생각, 즉 남성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며 여성을 남성을 보조하는 존재쯤으로 여기는 통념 속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즉,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그런 적극적인 의도가 있었는가, 없었는가가 아니라 가해자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얘기가 여러 차례 나왔다는 사실이고, 그 속에서 농활대 학생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 또한 가해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떤 한 남성이 어떤 여성들에게 말로써 불쾌감과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폭력을 행사했다는 측면에서 명백한 `성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3/ 불미스러운 일이기 전에,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저희는 이 사건이 처리되는 방식이 한 마을 내에서만, 그것도 한 가해자와 농활대가 최대한 잡음을 줄이면서 쉬쉬하며 해결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실수`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의 공동체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취급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사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농활이 시작되어 온 이후로 이것과 비슷한 사건이 한 해도 없었던 적이 없었으며, 그 때마다 피해자가 그냥 참거나, 혹은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마을 안에서 그냥 쉬쉬하며 처리하거나, 묻어버리는 식으로 거듭 되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절대 이러한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음을 해를 거듭하면서 저희는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이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의 목적은 그렇게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른 분에게 그러한 폭력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에 있지 않고, 이 공동체 속에서 이러한 일들이 근본적으로 차차 없어지도록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건을 쉬쉬하기보다는 공개하여 다시금 우리의 공동체를 반성하는 시간을 모두가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보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통념과 태도의 변화를 모색해나가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많은 어른 분들은 불미스러운 일이라며, 시끄럽게 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을 계속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엄연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여전히 한 켠에서는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있음에야 말할 것이 없습니다.
4/ 저희들은 책임 있는 재논의를 요청했습니다.
많은 어른들은 공개하여 처리하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아가 그 상황을 성폭력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일관하십니다. 저희는 그 처리가 여전히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농촌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그 처리과정 자체를 농민분들과 다시 논의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이후 다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농민분들은 한사코 그 상황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거부하시며 모든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다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농활을 통해 관계를 맺어온 홍성군농민들과 서울대 학생들이 모두 함께 책임 있게 이 사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자는 합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의 전제는 분명히 생각지도 않게 그런 일상적인 성폭력이 농활 수행 중에도 일어날 수 있으며, 그럴 시에는 농민회와 학생들이 함께 책임지고 논의해 나가자는 약속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농촌사회를 지배해온 통념과 관습은 우리의 생활 공간에서 성폭력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간의 관계맺음의 성과들이 우리들 모두를 성숙시켜온 것을 돌아본다면, 다시금 이 관계가 더욱 성숙되기 위한 노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이 아무리 지난하고 힘들지라도 우리의 노력이 중단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마음에서, 오늘 저희들에게 전달된, 성폭력 문제에 관해 재차 농민회와 농활대가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고 드렸던 저희들의 제안이 홍성군 농민회 전체 회의에서 부결되었다는 소식과 이후 서울대 농활대의 농활 금지 요청에 관한 홍성군 농민회의 입장은 그야말로 성폭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상호 인식의 차이 문제 이전에 `연대`라는 방식의 관계 맺음에 있어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저희들에게 농촌의 얘기를 들려주시고 함께 삶을 고민하기 위한 노력을 하시는 농민회 충남도연맹분들은 이런 내용에 그 어떤 분들보다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금방 해결되기가 어려운 부분이라면 부디 보다 멀리 보는 여유를 가지면서 이러한 노력을 지속해 나갔으면 합니다. 더운 여름날 수고하시는 가운데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항상 저희 서울대 법대·인문대·약대 농활대도 이후 이러한 상호 인식의 차이가 더욱 좁혀지길 바라며 이 땅 7000만 민중의 해방 세상 그날까지 농민분들과 열심히 투쟁하도록 하겠습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