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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비판은 죄가 없다
남성들의 피해의식을 만든 자는 누구인가?
 
정문순   기사입력  2002/10/11 [10:34]
{IMAGE1_LEFT} 얼마 전 이화여대 총학생회에서 징병제를 반대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지지를 발표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이 대학의 홈페이지로 몰려와 난동을 부린 일이 있었다. 그 동안 ‘신성한’ 군대를 ‘겁 없이’ 입에 올렸던 여성들이 당했던 피해, 즉 군필자 가산점 폐지를 청원한 여성들과, 예비역 대학생들을 풍자한 월장이라는 웹진이 입었던 극심한 사이버테러가 재연될 것 같았다. 그것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 신문 대자보에 올렸더니, 곧 군필자로 보이는 어떤 남성이 이번 일과 관련하여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만든 사이트에 있는 글들을 내게 보내왔다. 그 자료에 따르면 이렇다. 사이버 시위를 벌였던 자신들을 다른 사이버테러꾼과 섞어 취급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들의 주장은 양심적 병역 거부 지지 반대가 아니라, 이것에 관해 그 학교 학생회 간부가 정몽준 대선 후보를 인터뷰한 발언에 대한 해명과 사과라고 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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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환, 정몽준 '양심적 병역거부'를 만나다, 대학생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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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발언은, 정몽준 후보가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들이 왜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느냐고 하자, 그에 반박한 답변이다. 기사화된 발언은 다음과 같다. “군대가 있음으로 해서 전쟁이 발발한다. 전쟁시에 여성의 성은 남성들에 의해 폭력적으로 다루어진다.” 군부대 주변에 창궐하는 성매매 업소도 군대에 의한 여성의 착취를 말해준다 등등. 이 대목을 군대를 없애자는 말로 알아듣고, 군과 군인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자. “담배가 있음으로 해서 폐암이 발생한다.” 이 말은 담배를 없애자는 뜻으로만 풀이해야 하며, 담배인삼공사 직원들이 들고일어나야 할 발언인가?

그러나 저 발언에서 군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느냐의 여부를 캐내는 것이, 알맹이는 아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김없이 여성이다. 이들이 군대를 악으로까지 규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성과 평화를 희생양으로 삼는 한국의 군사주의 문화와 징병제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침략이든 대응이든 전쟁을 염두에 두지 않은 군대가 존재할 수 없는 한, 군대는 태생적으로 전쟁의 폭력이나 잔혹성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는 조직이기도 하다. 순수하게 평화나 자기 방어만을 위해 존재한 군대가 거의 없다는 점은 역사가 말해준다.

{IMAGE2_RIGHT} 이화여대 총학생회 측은, 군대와 전쟁을 연관시킨 것으로 기사화된 발언이 곧 군대를 없애자는 취지의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내게는 과잉 친절로 읽히는 부분이다. 설령 군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전달되었으면 또 어떤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 말을 철없고 생각 없는 것이라 판단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할 일은 논쟁을 통해 반박하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명예훼손이라며 사과하라니. 군을 비판한 데 대해 모욕을 느껴야 한다면, 군대 조직을 만든 국가와 핵심 요직의 인사들일 것이다. 그러나 일반 사병으로 제대한 이들이 군대와 자신을 하나로 묶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린애 떼쓰듯 하는 이들의 행동은, 전시에 여성에 대한 성적 유린이 자행된다는 발언에 대해, 모든 남성들을 ‘예비 성범죄자’로 모는 것이라고 흥분하는 데서 정점에 달한다. 침소봉대도 이 정도면 측은하다고 해야 하리.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매도가 될 수는 없다. 전쟁 중에 성범죄가 빠지지 않음은, 그것 역시 역사가 말해준다. 그랬더니 여자만 전쟁의 피해를 입느냐고 한다. 혹시 이런 발언에는, 성범죄를 여느 범죄와 같은 격으로 놓거나, 전시에는 성폭력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무섭다.    

군대에서 젊은 날을 그렇게 고생했으면서도, 군과 자신을 쉽게 동일시하고 군에 대한 비판을 참지 못하는 것, 그런 예비역 남성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특권의식으로 변질된 사무친  피해의식이다. 피해 없는 피해의식은 없다. 제발 엉뚱한 데 화살을 날리지 말진저.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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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0/11 [10:3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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