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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까리에서는 나오는 독소무기, 리신(ricin)
생물무기와 화학무기의 중간, 생물학작용제의 하나로 독소무기로 개발돼
 
예병일

민방위훈련 중의 '화생방 경보'라는 말에서 화생방이 화학, 생물, 방사능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소량으로 치명적인 살상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방사능에 해당하는 핵 무기에 대해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이야기를 통해 직접 경험하지 않은 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화학 무기는 <더 록>, <언더시즈 3> 등의 영화를 통해서 익숙해졌고, 생물 무기는 <미션 임파서블 2>, <아웃브레이크> 등에서 간접경험을 하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 2월 2일, 미국 워싱턴 DC의 상원의원회관에 리신이 들어 있는 포장물이 배달되면서 상원 업무가 중단되다시피했다는 AP 통신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3개의 상원의원회관 건물이 2월 3일부터 수일간 문을 닫았고, 우체국에서는 의사당으로 우편발송 업무를 중단했으며, 미국 정부는 CDC, FBI 등으로 구성된 수사팀을 발족했습니다. 상원의원회관 직원 6200명은 신체검사와 보건교육을 받았지만 다행히 피해자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미국의사당에서는 2001년 가을에 탄저균 배달 사건이 있은 이후 배달되는 모든 우편물에 방사선 검사를 거치고 있지만 리신은 방사선 검사로도 파악되지 않습니다.

리신도 탄저균과 마찬가지로 흰색을 띠고 있으므로 백색가루의 공포가 재현될 뻔 했지만 경찰이 건물내 환기시설을 정지시키고, 발견지역 주변을 소독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 한편 2003년 10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리신 가루가 들어 있는 우편물이 발견된 적이 있는데 편지와 내용물이 똑같은 것으로 밝혀졌지만 범인은 잡지 못했으며, 동일범의 소행인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생물 무기와 화학 무기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 독소 작용제의 하나인 리신을 주제로 삼고자 합니다. 독소 작용제는 생물체에서 뽑아낸 것이므로 생물 무기(생물학 작용제)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생명체로서의 특성은 상실한 채 화학 무기(화학 작용제)와 같은 성질을 지니므로 이 둘의 중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군사 교과서에서는 생물학 작용제를 생명체로서의 성질을 지닌 미생물 작용제와 생명체에서 분리해낸 물질만을 이야기하는 독소 작용제로 구분해 놓았지만 미국 질병통제 센터(Center for Disease Control, www.bt.cdc.gov)에서는 리신을 오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테러 사건으로 유명한 사린이나 영화 <더 록>의 주제가 되었던 VX와 함께 화학 작용제로 구분해 놓고 있습니다.

역사와 군사적 중요성

리신은 Ricinis communis라는 아주까리(피마자)에서 분리해낸 독소로 식물독소중 가장 독성이 강하면서 대표적인 것입니다. 아주까리의 사용은 기원전 40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이집트 유적에서 이것이 사용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연화 및 윤활제로 사용하기 위하여 재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전투기에 사용할 윤활제로 아주까리의 효용성이 증가되면서 주변에서 널리 이용되는 물질로 다가왔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충분한 윤활유를 확보하지 못했던 미국은 1960년대에 캘리포니아에서 아주까지 생산을 증대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런 용도로 아주까리 대신 인공 윤활유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현재는 윤활유로서의 가치가 전보다 훨씬 낮아졌으나 아주까리는 지금도 전세계에서 대량으로 자라고 있는 상황이며, 인도, 중국, 브라질 등이 대표적인 나라들입니다. 아주까리 독소는 염석(수용액에 무기 염류등을 가하여 녹아 있는 물질을 침전시키는 방법) 등에 의하여 쉽게 추출할 수 있으므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군사적 활용성에 대하여 각국의 관심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스틸마크가 아주까리에서 독성을 가진 리신을 분리해낸 것은 1800년대 후반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리신이 혈액속의 적혈구와 단백질을 응집시키는 기능을 가진다는 점을 알아냈습니다. 매독치료제인 살발산을 발견했고, 항체 곁사슬 이론으로 19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를리히도 1890년대에 리신과 아브린(abrin, 붉은색 콩의 일종인 Abrus precatorius에서 분리한 독소로 이것도 현대의 유력한 독소무기중 하나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바 있습니다.

이 독소들의 독성은 경구투여보다 주사를 받았을 때 훨씬 강하게 나타나며, 에를리히는 생쥐나 토끼에서 이 물질을 아주 소량 투여하면 내성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혈액속에 이 독소에 대한 항체가 생성됨을 확인하였으며, 임신중에는 산모로부터 태아로 항독소 기능을 지닌 물질들이 전달되고, 수유중에도 모유를 통하여 이 물질이 전달된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1951년에는 리신이 항종양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되었으나 크게 활용되지는 못하다가 최근에 면역요법이 발전하면서 면역독소(immunotoxin)라 불리는 항암 치료제 개발을 위해 연구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종양세포에 특이하게 반응하는 단클론항체에 리신을 접합시켜 얻은 여러 가지 물질의 항암효과에 대한 임상시험이 진행중이므로 테러 또는 전쟁을 위한 엽기적인 무기가 불치병 치료에 이용되려는 시도에서 의학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양면효과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습니다.

리신이 생물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인식이 시작한 것은 생산이 너무나도 쉽고 독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국에서는 리신의 무기로서의 가능성을 시험하기 시작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과 연합하여 W라는 폭탄을 개발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전쟁에 사용된 예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참고로 리신을 무기화하면 가루, 분무, 알약의 형태로 만들 수 있고 물에 타서 먹일 수도 있습니다.
 
단지 테러에 사용된 예로 불가리아에서 망명한 마르코프(Georgi Markov)를 들 수가 있지만 인간에게 사용한 예가 워낙 드물어서 치료제 개발과 같은 해결책 마련에는 별 대비를 하지 않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무기로서의 가능성이 크게 대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95년 2월에는 미국에서 세금부과에 항의하던 두 사람이 리신을 소유하고 있다가 체포되기도 했고, 리신을 소지한 전력을 가진 알칸서스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죄수가 리신을 이용하여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이라크의 군사력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 되기는 했습니다만 한 때 이라크의 화학 및 생물 무기 보유가 대단하다고 여겨지던 시절 캘리포니아에 있는 몬테레이 연구소의 생화학 무기 전문가 터커(Jonathan Tucker)는 이라크가 무기 개발을 위해 아주까리를 재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리신의 특성과 증상

아주까리 기름(피마자유)은 윤활유, 플라스틱, 페인트, 화장품, 인주, 잉크 등에 사용되는 무독성 원료입니다. 이와 같이 활용이 다양한 것은 기름 속에 포함된 지방 성분이 불포화 지방산이어서 실온에서 녹지 않기 때문이며, 기름에는 아무 독성이 없고, 아주까리 씨속에 독성물질이 남아 있으므로 기름을 빼낸 후에는 일반적으로 폐기처분하곤 합니다. (그냥 씨를 삼켜서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며, 씹어서 내용물이 입 속으로 나오게 해야 치명적입니다)

단백질 합성을 억제함으로써 독성을 가지는 이 리신의 작용은 고대로부터 알려져 있었으며 인체에서 해를 발생시킨 경우는 750예 이상이 알려져 있습니다. 보툴리눔 독소와 비교할 때 독성은 1000배 정도 약하지만 열에 안정하고, 전세계적으로 재료를 구할 수 있으며, 대량생산이 쉽다는 점에서 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리신은 아주까리 전체 무게의 1-5%를 차지하는 단백질의 하나로 크기는 약 66kD입니다. 32kD 크기의 259개의 아미노산 사슬 두 개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모양을 하고 있으며, X-선 회절법에 의하여 자세한 구조가 이미 밝혀져 있습니다.

실험동물에서의 독성은 체중 1kg당 요구되는 치사량을 계산했을 때 개구리나 닭에서는 치사량이 크고, 말에서는 치사량이 작아서 그 차이가 100배나 됩니다. 생쥐에서는 1g당 20ng 정도를 투여했을 때약 반수가 사망에 이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고, 피부에 발랐을 때 독성은 크지 않으며, 호흡기로 흡입했을 때와 정맥에 주사했을 때 가장 치명적이고, 복강 또는 피하에 주사하거나 입으로 섭취했을 경우에는 덜 치명적이지만 지속시간이나 동물 개체에 따라 차이가 큰 편입니다.

생쥐에서의 실험결과를 사람의 체중으로 환산하면 체중이 70kg이라 가정할 때 20x1000x70=1400000ng=1.4mg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체중 kg당 1mg 정도 투여했을 경우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결과도 있고, 또 그보다 훨씬 적은 μg 단위로도 치명적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실제로 인체에 적용해 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치사량을 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의학에서 추정은 가능하나 정확한 정보는 얻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치사량 결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신의 작용기전은 세포에 존재하는 탄수화물에 결합하여 세포질에서 일어나는 단백질 합성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물체 세포에서 필요로 하는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음으로써 투여 후 8-24시간 사이에 세포는 사멸하고, 개체는 임상증상을 나타내게 됩니다.

임상 증상은 노출 방법, 노출 시간, 노출량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노출 방법이 중요하여 호흡기와 소화기로 들어온 경우에 증상이 심각하여 호흡기로 흡입시에는 호흡기 이상이 일어나고, 입으로 섭취시에는 속이 쓰리고 매스꺼우며, 구토, 설사, 복통이 동반되기도 하고, 심하면 소화기 출혈 및 간, 비장, 신장의 괴사가 일어나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근육에 주입하면 통증과 함께 근육과 임파계는 물론 내부 장기의 괴사를 유발할 수도 있고, 사람에서는 일시적으로 백혈구 수가 2-5배 증가되기도 합니다. 혈액 속에 알부민이 감소되고 부종이 발생하여 순환기 장애가 발생하기도 하고, 호흡기로 흡입시에는 호흡 부전에 이르기도 하며, 신체내 혈액 응고와 간을 비롯한 장기의 손상을 가져오기도 하므로 사망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추정되고 있지만 과량투여서 사망에 이르는 기전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진단과 치료

전장에서 젊은 병사들에게서 갑작스레 호흡기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에 의심해야 하며, 포도상구균 감염, fluoride가 함유된 고분자물질에 노출된 경우와 감별해야 합니다.

ELISA(Enzyme-Linked Immunosorbent Assay, 효소면역 측정법) 방법으로 리신 단백질의 일부를 검출함으로써 확진할 수 있으며, 혈액 속에서는 리신이 빨리 사라지므로 초기가 아니면 진단이 쉽지 않으므로 조직을 부검하여 항체를 찾아내는 방법 등이 추천됩니다.

리신의 작용은 아주 빠르고 비가역적이므로 일단 호흡기 등에 이상이 발생하면 빠른 시간에 효과를 볼 수 없는 치료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백신을 이용한 예방이 어떤 미생물이나 독소 무기에서보다 중요하게 취급됩니다. 

그 외에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증상과 상황에 따라 신체기능을 보존할 수 있는 치료법을 시도하는 것으로 전해질과 수액의 균형을 맞추어 주고, 염증 해소를 위한 소염제, 통증 해소를 위한 진통제 등을 투여하는 것입니다.

최근 비약적으로 생명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세포내 물질과 신호전달 기전에 작용할 수 있는 매개약물들이 개발중이며, 세포막에서 물질을 전달하는 채널, 펌프, 운반체 등에 작용하는 물질을 치료제로 개발하려는 연구가 진행중입니다. 리신이 탄수화물에 결합하는 과정에 경쟁적 억제 작용을 하는 갈락토스와 그 유도체들, 뉴클레오시드 유도체들, 골지체로 운반되는 기전을 억제하는 brefeldin-A 등이 치료제로 사용되기 위하여 시험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동물 실험에서 특별한 효과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참고로 아직까지도 아주까리는 효용가치가 있는 식물인데 독성이 문제가 되므로 독성이 없는 아주까리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유전공학 산업 기술이 그 바탕에 있으며, 실제로 Anawah 등의 회사에서는 독성이 없는 아주까리를 이미 생산해 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여 리신의 독소가 단백질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 단백질을 생산해낼 수 있는 유전자가 발현되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없애버리거나 안티센스(antisense) DNA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결론

리신은 미국과 동맹국들에 의하여 제2차 세계대전중에 생물무기로 개발된 물질입니다. 여러 투여 경로에 따라 다양한 증상을 나타내지만 에어로졸 형태로 호흡기로 흡입된 경우 기도 부위에 존재하는 세포의 괴사, 폐세포와 모세혈관 사이의 투과도 변화 등이 가장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키므로 전쟁 또는 테러용 무기로 개발할 때는 에어로졸을 통한 살포를 가장 크게 고려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테러 시에는 혈관에 직접 주사기로 찔러 넣는 것도 생각할 수 있고, 호흡기 이상 또는 심혈관계 이상으로 사망할 수 있으며, 효소면역 측정법으로 확진할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백신을 투여하여 예방하는 것이며, 아직까지 완벽한 치료방법은 개발되지 않고 있으므로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사입력: 2004/04/30 [14:09]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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