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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언론과 긴장관계 만들지 말라?'
[기자수첩] 언론개혁 '나중에 하자'는 말은 '하지말자'는 것과 같을 뿐
 
심재석   기사입력  2004/04/28 [16:14]

정치인은 결국 언론이라는 중간 매체를 통해 국민과 만나는데, 언론 개혁과는 별개로 언론과의 지나친 긴장관계는 효과적이지 않다

 

▲김부겸 의원    
열린우리당 김부겸 의원이 27일 당선자 워크숍에서 처음으로 원내에 진입한 신인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한다며 던진 말이다. 그는 더불어 참여정부 초반에 과다한 긴장관계로 인한 상처 때문에 이후 언론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의원의 이같은 발언은 일반론적으로 보이지만, 최근 당내에서 언론개혁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의견들이 노출되고 있는 시점임을 감안하면 단순한 발언은 아니다. 17대 국회가 개원되자마자 언론개혁에 들어가야 한다는 당내 일부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신입 국회의원들에게 언론에 솔직하라고 주문한 것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진솔한 주문일 것이다. 이렇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기자가 본 김 의원이 참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쿨’한 김부겸, “TV카메라 오면 브리핑”

 

17대 총선이 있기 한 달쯤 전 국회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실에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당의 원내 대변인 격인 김부겸 의원의 의원총회 결과 브리핑이 있기 때문이었다. 약속된 시간이 됐음에도 김 의원은 브리핑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좀 우습지만 선거가 가까워 오니 저도 TV카메라 좀 타야겠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라며 부끄러운 웃음을 지었다.

 

국회의원들이 TV에 나오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아무리 열심히 의정활동을 해도 언론에 노출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고, 정치인을 알리는데 TV가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선거가 코 앞에 있는 상황에서는 오죽하랴. 이날 카메라를 기다려달라는 김 의원의 부탁은 그가 매우 솔직한 사람임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지난 3월 11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기 전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국회본회의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국회로비에서 김 의원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만났다. 홍 의원이 김 의원을 보더니 농담을 건넸다.

 

김부겸이는 한나라당에 있을 때는 이런 궂은 일에 한번도 안 나서고 뒷짐만 지고 있더니, 열린당 가니까 맨 앞에 서네? 홍 의원의 짓궂은 농담에 김 의원의 답변이 압권이었다. 여기는 완장을 채워주지 않습니까..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농성장으로 들어가는 김 의원을 보면서 홍 의원은 한나라당에 그냥 있었으면 총재감인데…”라며 아쉬워했다.

 

김 의원은 또한 깨끗하고 비권위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남들이 선거기간 동안 이벤트성으로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것과 달리 그는 평소에도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지난 2월 <브레이크뉴스>의 창간 5주년 기념식에 축하인사차 들렀던 김 의원이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신학림 언론노조위원장 등과 폭탄주를 몇 잔 돌린후 얼큰하게 취해서 종각 지하철역 계단으로 내려가던 뒷모습은 기자에게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는 비서관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언론문제 시장에서 알아서?

 

다시 언론개혁 문제로 돌아오면, 깨끗하고 개혁적인 이미지의 김부겸 의원이 27일 언론개혁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 뜻밖의 모습은 아니다.

 

지난해 8월 김 의원은 <브레이크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참여정부의 대언론 태도를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제일 중요한 것은 언론이 마음에 맞는가가 아니라 효율적으로 국정운영을 하고 그것을 통해서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희망을 주는 것”이라며 “어찌보면 대통령이 언론과 싸우는 것은 호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안티조선운동에 대해서도 그는 “언론에 대해 반언론이라는 방식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을 갖고 있다”면서 “어쨌든 시장에서 국민이 판단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시장에서 국민이 판단하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그의 발언에 기자는 조금 놀랐다. 언론개혁 운동의 핵심 중에 하나가 바로 신문시장질서를 바로잡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질서를 바로잡자는 운동을 하는데, 시장에 맡기자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4.15 총선직후 신기남 의원이 언론개혁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 영등포 당사를 방문한 김 의원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는 “국민들이 싸우지 말라고 요구하는데, 그런 것부터 먼저 덤비면 17대 국회는 또 싸움만 하게 된다. 한나라당이 가만히 있겠나?”라면서 “의원총회에서 그런 얘기해 봐야 동의하는 의원들 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의 주장을 간단히 말하자면 ‘시간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17대 국회에서 하기는 하나?’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당연하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중에 하자’는 주장은 언제나 하지 말자는 주장과 함께 이해된다. 국가보안법을 개정 또는 폐지하자는 주장에 보수진영은 항상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전태일 열사가 죽어가던 박정희 개발 독재시대에 독재자는 ‘분배는 나중에’라고 답했다. 재벌들은 지금도 ‘분배는 나중에’를 외친다.

 

결국 김부겸 의원이 ‘언론개혁은 나중에 하자’는 의견은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하지 말자’는 의견과 같이 해석될 수 밖에 없다.

 

김 의원은 신참 국회의원들에게 ‘기자 상대하는 법’을 가르치기 이전에 ‘왜곡된 한국의 언론시장 질서를 바로 잡는 법’을 연구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야 ‘17대 국회 임기내에 언론을 개혁할 것’이라는 동시에 “(언론문제는) 시장에서 국민이 판단하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상반된 주장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김 의원에게 기대를 갖고 있다. 그가 조금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모처럼 찾아온 언론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흘러 또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김 의원이 조금 더 큰 뜻을 품었을 때 XX일보로부터 발목을 잡힐 가능성도 농후하다. 당장 XX일보와 관계가 나쁘지 않아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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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4/28 [16:1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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