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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노대통령에게 '화해와 타협' 호소
편지글 형식으로 민주당 분당은 '호남소외' 지적, 당분간 절필도
 
취재부   기사입력  2004/03/15 [11:37]

노대통령 만들기 1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강준만 교수가 3월 15일 <한국일보>를 통해 탄핵받은 노대통령에게 '편지글' 형식으로 '고언'의 글을 보냈다.

강 교수는 일단 현재의 탄핵국면이 노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될거라고 예측하면서, 위로보다는 '고언'을 하게 됨을 밝혔다.

먼저 강교수는 민주당 분당 관련,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강하게 비판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당시 "일부 사람은 열린우리당을 비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게 돌을 던지는데 그들과 싸우는 게 너무 싫었고, 다른 분들은 제가 대통령님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를 호되게 비난"하는 것을 들어 정치적 '중간파'로 전락했던 심경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입장보다 열린우리당이 추진한 개혁방식이 "국민의 정치에 대한 혐오와 저주를 이용해 과거의 민주화 동지들에 대한 사실상의 ‘인격 살인’을 저질렀고, 신당 창당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한다고 해서 민주당에 남은 사람들만 어떻게 하루 아침에 ‘반(反) 개혁, 친(親) 부패, 지역주의 기생세력’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라며 강력한 항의를 표시했다. 나아가 "그들이 느꼈을 인간적 배신감과 모멸감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셨습니까? 감옥 가서 고생하는 건 나중에 명예나 되지요. 그런 식으로 모멸을 당하는 건 감옥에 몇 년간 처박히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일 겁니다"라며 섭섭함을 넘어 분노를 표출했다.

무엇보다 강 교수는 "지난 수십년간 저질러진 ‘호남 소외’를 누구보다 더 잘 아실 대통령님께서 영호남 지역주의를 양비론으로 대하는 것도 전혀 옳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선 그런 것들은 개혁과 미래를 위해선 ‘작은 문제’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저는 바로 그런 생각을 재고해달라는 말씀"을 드리며 "증오와 원한을 만들지 마십시오. 더디 가더라도 화해와 타협을 해가면서 우리는 옳은 길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도 사랑과 관용을 호소해 주십시오. 대통령님이 모든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될 자질과 역량이 충분한 분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며 글을 맺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자성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당분간 쉬고자"한다며 앞으로 정치관련 글을 쓰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노대통령이 탄핵까지 당한 비상시국에 강 교수가 위로 보다는 '고언'을, 그것도 열린우리당 식 정치개혁을 뼈아프게 지적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이번 탄핵 가결을 기점으로 총선 국면이 급속도로 '친노 대 반노' 전선으로 재편되면서 민주당이 '고사'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에서 강 교수는 '증오와 원한'의 정치가 아닌 '화해와 타협'을 노대통령에게 간절히 호소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다음은 <한국일보>에 실린 강준만 교수의 [쓴소리] 전문이다.

[강준만의 쓴소리] 노무현 대통령님께

노무현 대통령님.
외람됩니다만 저는 몇 개월 후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모든 일이 대통령님께서 원하고 기대하시는 대로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님께 위로보다는 고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분간 한가한 시간을 ‘학습’과 재충전의 기회로 삼으시면서 제 고언을 음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3, 4개월 전 민주당 분당과 관련하여 열린우리당을 강하게 비판했었습니다. 대통령님도 비판했지요. 그 후 저는 정치에 관한 글쓰기를 중단했습니다. 여기 한국일보 지면에도 ‘쓴소리’는 해야겠는데 정치를 피해가느라 소재 고갈로 아주 혼이 났습니다.

제가 왜 정치에 대해 침묵한지 아십니까? 바로 엊그제까지도 저를 존경한다던 분들이 제가 열린우리당을 비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게 돌을 던지는데 그들과 싸우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제가 대통령님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를 호되게 비난하더군요. 두 손 들었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대화 불능의 상태입니다. 도무지 저 같은 중간파가 설 땅이 없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님을 지지했던 사람들마저 양극으로 갈려 이 모양인데 대통령님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떠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런 극단적 분열주의에 대해 과거 대통령님을 열렬히 지지하는 책들을 썼던 사람으로서 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도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저는 탄핵안 가결에 대해 누구 못지 않게 분노하고 개탄하는 사람입니다만, 열린우리당의 비판 내용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님과 열린우리당이 추구하는 숭고한 목적을 모르지 않습니다. 제가 동의할 수 없었던 건 그 방법론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국민의 정치에 대한 혐오와 저주를 이용해 과거의 민주화 동지들에 대한 사실상의 ‘인격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신당 창당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한다고 해서 민주당에 남은 사람들만 어떻게 하루 아침에 ‘반(反) 개혁, 친(親) 부패, 지역주의 기생세력’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이 느꼈을 인간적 배신감과 모멸감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셨습니까? 감옥 가서 고생하는 건 나중에 명예나 되지요. 그런 식으로 모멸을 당하는 건 감옥에 몇 년간 처박히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일 겁니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국민적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들도 자식들에게 지키고 싶은 명예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저질러진 ‘호남 소외’를 누구보다 더 잘 아실 대통령님께서 영호남 지역주의를 양비론으로 대하는 것도 전혀 옳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선 그런 것들은 개혁과 미래를 위해선 ‘작은 문제’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저는 바로 그런 생각을 재고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증오와 원한을 만들지 마십시오. 더디 가더라도 화해와 타협을 해가면서 우리는 옳은 길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도 사랑과 관용을 호소해 주십시오. 대통령님이 모든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될 자질과 역량이 충분한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강준만의 쓴소리는 오늘로 마칩니다. 강 교수는 “자성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당분간 쉬고자 하며 성원을 보내 주신 독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전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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