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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이 친북세력이라 말한 적 없다?
안티조선과 조선일보의 홍위병 전사 이문열이 만난 풍경
 
여인철   기사입력  2002/05/03 [10:26]
현재 대전지역 안티조선 진영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문열씨에 대한 명예훼손 관련 형사소는 지난해 12월 1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그날 부산 영광독서토론회에서 "안티조선은 친북세력이며, 그의 원조는 북한"이라는 황당한 주장(대한매일)을 하였다.

{IMAGE1_LEFT}이것은 나름대로 이 사회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안티조선 진영의 활동가에게는 참으로 악질적인 비방에 다름 아니었으며, 안티조선 진영은 이를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안티조선 운동가들은 법적 대응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며, 올해 1월 19일 옥천에서 열린 전국의 조선일보 바로보기 시민모임 (안티조선 물총독립군) 모임에서 그에게 자성을 촉구하는 뜻으로 2월11일까지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사진출처 : 대한매일


그러나 그는 법원의 판단에 맡기겠다며 묵묵부답이었고,안티조선 진영의 논의를 거쳐 2월 18일 나와 오한흥 옥천신문 대표이사 (당시 편집국장), 우희창 대전충남 민주언론운동 시민연합 사무국장은 안티조선 진영을 대표하여 대전지검에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소를 제기하였으며, 대전지검에서 한차례 고소인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는 고소건이 이문열씨 거주지 관할 여주지청으로 이첩된 것이다.

[관련기사] 불화와 선동만 담긴 '술단지와 잔'을 치우며, 대자보 71호  

{IMAGE2_RIGHT}5월 2일, 드디어 대문호(?) 이문열씨를 만나기로 한 가슴 설레는 날이다. 오전 10시 30분, 오한흥 옥천신문 대표와의 약속장소인 대전 톨게이트 입구. 검은 무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대표는 예의 그 까만 저승사자복을 입고 (나는 그의 까만 생활한복을 그렇게 부른다. 조선일보에겐 저승사자복이라고), 2차 이문열돕기운동을 주관한 김계명씨와 기다리고 있었다. 10분 쯤 달려 신탄진 부근 갓길에서 온갖 먼지바람을 맞으며 기다리던 우희창 대전충남 민언련 사무국장을 태우고 난생 처음 가는 곳, 여주로 향했다.

웬지 긴장이 되었다. 그동안 공부(?)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으나 시험은 공부 많이 했다고 잘 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 기억에 공부한 만큼 흡족하게 점수를 받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고 언제나 잡쳤다고 생각한 기억만이 있을 뿐이었다. 혹시 오늘 시험을 잡치면...하는 생각이 들어 차 안에서도 그 동안 준비해온 수험자료집(?)을 뒤적이며 시험공부를 해 나갔다.

오갈 말들을 미리 생각해 보았다. 이문열씨가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그럼 용서한다고 해야하나. 아니지, 이건 내가 혼자 결정한 문제가 아니지. 우리 안티조선 진영 전체의 의사를 물어봐야 한다고 어깨에 힘주며 얘기해야지.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고 두어 시간, 김치국을 몇 사발씩 마시는 동안 여주에 도착했다.

여주지청에서의 이문열씨와의 대질심문. 아, 이 무슨 꼴이냐. 어쩌다 한국 현대문학사의 한 획을 긋는다는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나야 시중의 장삼이사고, 시골검찰청에서 한참 후배뻘 되는 검사에게 "다리 꼬고 앉지 말라"는 핀잔이나 들어가며 조사를 받아도 그만이지만, 어쩌다 그래도 일각에서는 문호라는 거창한 호칭을 받는 이문열씨가 이렇게 영락해 버렸단 말인가. 우리같은 조무래기들하고 같이 접의자에 앉아 검사에게 예, 예, 하며 말이다. 측은지심이 고개를 들었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아직도 우리를 "내 이름을 갉아먹고 쏠아대는데 단단히 재미를 붙여온 쥐새끼들, 내 삶 주변에 모여들어 웅웅거리는 쉬파리떼, 내 문학을 헤집고 스멀거리며 돌아다니는 바퀴벌레 무리"라고 생각하시느냐고. 아니라고 한다면 금방이라도 화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문열씨는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제출할 것이 있다며 신문 기사 사본을 두 묶음 내 놓았다. 하나는 이문열돕기 운동본부에서 행한 책장례식에 대한 신문기사 묶음, 다른 하나는 옥천에서 열렸던 '금시조' 풍장식 관련 기사묶음이었다.
금시조 풍장식 사진보기

검사는 그 풍장식 기사를 보더니 풍장이 무어냐고 물었다. 오한흥 대표가 잘 설명해 주었지만, 이해가 잘 안 가는 듯한 표정이었다. 담당검사는 공안부검사답게(?) 안티조선 운동 같은 것은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핵심적 사안이 "안티조선은 친북세력"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계속 안티조선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한 명의 유력한 안티조선 독립군을 포섭(?)한다는 생각으로 차분히 설명을 하였다. 그렇게 약 1시간 정도가 흘러갔고 검사는 잠시 쉬자고 하였다. 그 때가 3시 10분 경이었다.

친북세력이라 말한 적 없다?

다음은 휴게실에서 오한흥 대표와 이문열씨 간에 오간 대화 내용이다. 잠시 쉬는 시간에 휴게실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이문열) 난 결코 친북세력이라고 말한 적 없어요. 전체적인 뉘앙스에서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기는 했지만…그리고 요즘 친북세력이라는 말을 듣기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친북세력 이란 말을 나쁜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반대로 반북세력은 매우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오한흥)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촌지'는 결코 나쁜게 아니겠네요.
(이문열) 촌지는 나쁜 거죠.
(오한흥) 아니 촌지가 왜 나쁩니까? '작은 정성의 뜻'이 담긴 건데…
(이문열) 촌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뇌물의 의미로 굳어져 있잖습니까?
(오한흥) 마찬가지죠. 친북세력이라고 하면 오래전부터 '빨갱이' 혹은 '좌익세력'의 의미로 굳어져 있잖아요.

그는 그렇게 끝까지 "안티조선은 친북세력"이라고 발언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었다.

잠시의 휴식이 끝나고 본격적인 명예훼손 조사가 이어졌다. 조사 도중 오한흥 대표가 이문열씨에게 느닷없이 말한다.

(오한흥) (나긋나긋하게) "조선일보 보지 마세요"
(이문열) (무뚝뚝하게) "신중하게 생각해서 말하세요".
(검사) "좀 조용히 하세요"

오한흥 대표는 역시 승부사 기질이 있는 프로였다. 조사 도중에도 이문열씨에게 절독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번엔 조선일보의 반민족, 반민주, 반통일성에 대해 말이 나왔다.

(검사) 여기 고소장 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던데, 조선일보에 대해 반민족, 반민주, 반통일신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이문열) (용기를 얻어 고자질하듯) 안티조선 지식인 성명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인철) 예, 제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검사) 조선일보가 반민족신문이라는 건 좀 충격적인데요...조선일보에서는 무슨 반박 안 합니까?
(여인철) 무슨 반박을 합니까? 사실인데.
(오한흥) 민족지라고 우기지요.
(검사) 그래요? 이 말은 친북세력이라는 말보다 더 심한 말 아닌가요?
(우희창) 아니 반민족 행위를 한 신문에 대해 반민족신문이라고 말한 것이 뭐가 심합니까? 친북세력이란 말은 터무니없이 근거가 없는 말이구요.
(오한흥) 민족을 배신한 신문을 반민족신문이라고 한 것은 점잖은 겁니다. 저는 조선일보를 반민족 범죄집단으로 규정합니다.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예요. 뭐가 잘못됐나요?
(검사) 아니, 됐습니다.

환상의 트리오였다. 그리고 이문열씨는 혐의사실을 대부분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안티조선은 친북세력"이라는 말은 그렇게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다고 계속 잡아떼다가, 나의 수험자료집에 있던 기사를 하나 꺼내 검사에게 추가로 제출하자 입을 다물었다.

조사받는 내내 이문열씨에 대해 안타까움이 들었다. 비록 그와 다툼을 벌이고 있지만 나는 그에게 문호로서의 당당함을 기대했다. 안타까움과 함께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러나 이 사안은 자연인 여인철과 자연인 이문열의 다툼이 아니다. 안티조선 진영과 조선일보의 홍위병 전사 이문열과의 다툼이다.

그의 얼굴 위로 오버랩 되는 얼굴들이 있었다. 제자에게 불량제품으로 리콜당한 연세대의 몇몇 사회학과 교사들을 비롯해서, 각 대학에 포진하여 조선일보의 입노릇을 대신하는 "조선일보류"의 대학교사들.

항공모함이 순양함, 구축함 등 호위선단을 거느리듯, 조선일보는 대학교수, 언론인, 문인 등의 호위병을 거느린다. 구축함, 순양함을 먼저 격침시키지 못하면 항공모함에 접근조차 할 수 없듯이, 조선일보의 주변을 서성이며 허접쓰레기같은 글로 허명을 얻으려는 저 부나방같은 지식인을 먼저 굴복시키지 않으면 조선일보에 접근할 수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이문열과의 다툼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다.

그들은 사회의 등불이 되기는커녕 해악을 끼친다는 측면에서 더 이상 지식인이 아니다. 이문열로 상징되는, 조선일보를 에워싸며 인간띠를 형성하고 있는 저 지식 보따리상 들, 소위 명문대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박사학위 하나 건져와, '권력'같은 대학교사 자리 하나 꿰찬 그들, 기껏 조선일보에 얼굴 내밀며 대신 나팔을 불어주기 위해 외국에서 그 고생을 해가며 학위를 했단 말인가.

그들과 비슷한 시기, 외국에서 공부하며 딴 나의 학위가 그들 때문에 부끄럽다. 그렇기에 나의 그 알량한 공학박사 학위, 마음으로는 이미 땅에 묻은 지 오래다. 그들을 혼이 나가도록 꾸짖을 수 있도록 사회과학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조사를 마치고 나오니 취재 차 나온 대자보의 이창은 기자가 전한다. 검찰청에 출두한 소회를 묻는 이대표의 말에 묵묵부답 그냥 가던 이문열씨가 다시 돌아와 하는 말, "참담한 심정이다. 한국의 지성인인 박사가 나이 어린 검사한테 야단이나 맞고..."

무슨 말일까? 그것은 본 건과는 관련이 없는 기사를 들고 와서 논점을 흐리려 하지 말라는 나의 발언에, 책장례식 하던 사람들하고 우리가 같은 사람 아니냐 라는 그의 발언으로 잠시 옥신각신 할 때 검사가 좀 조용히 해달라고 한 말을 그리 전한 것이리라. 정말 저렇게 사태 파악을 못할까? 그가 그 많은 사람에게 읽힌 소설을 썼다는 것이 불가사의로 여겨졌다.

아카디아 승용차를 타고 돌아가는 이문열씨



이제 그가 소설다운 소설, 만인의 가슴을 울리고 데워주는 그런 소설을 쓸 수가 있을까? 부정적이다. 그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그가 자초한 일이다. 그 스스로의 모자람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데.

그는 지난 2월 19일 모 신문에 기고한 "이문열, 폭풍의 언덕을 가다"라는 글에서 "너는 지금 무엇에 분개하고 무엇을 한탄하는가. 혹시 그것들은 지난 20년간 네가 아무런 반성없이 누려온 문학의 그 사이비한 부산물에 집착하는데서 온 것이 아닌가. 너는 함부로 저들을 쥐새끼와 쉬파리떼, 바퀴벌레들로 비하하고 있지만, 너야말로 그 사이비한 것들을 지키려고 버둥대며 썩어 가는 살덩어리일 수도 있다. 그 고약한 냄새와 진물이 죄없는 저들을 꾀어들인 것이다. 오히려 죄있는 것은 너다"라고 쓴 바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이문열이 논란의 당사자들에게 화해의 뜻을 전했다"고 썼다. 그러나 오늘 그는 그 글이 또 다시 하나의 장편(掌篇)소설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다. 그는 아직도 안티조선 진영의 사람들을 "내 이름을 갉아먹고 쏠아대는데 단단히 재미를 붙여온 쥐새끼들, 내 삶 주변에 모여들어 웅웅거리는 쉬파리떼, 내 문학을 헤집고 스멀거리며 돌아다니는 바퀴벌레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하찮은 장편소설을 쓸거라면 무엇하러 영국의 브론테 자매의 생가까지 '거센 바람과 찬 겨울비'에 외화 낭비하며 갔는지 모를 일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그 '악전고투' 끝의 '절대고독' 속에서 깨달은 것이 고작 "쥐새끼들"이고, "쉬파리떼"이고, "바퀴벌레"란 말인가. 괜히 고이 잠들어 있는 에밀리 브론테를 욕보이고 있다. 그런 벌레는 우리나라에도 많다. 굳이 비싼 돈 들여 영국까지 그 고생을 하며 갔다 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의 유죄 여부는 이제 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다. 이번 형사건으로 그에게 재산상의 손실을 크게 입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민사소도 남아있으니까.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모자라겠지만, 단 돈 얼마라도 벌금형을 받는다면 그걸로 족하다.

나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는 검사의 말에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색깔론적인 발언과 글쓰기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문열씨가 법의 엄정한 심판을 받게 되기를 원한다"고 짧게 대답했다.

그것은 이문열씨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향후 또 출몰할 지도 모르는 "조선일보류"의 지식보부상에게도 향한 준엄한 경고이다.

(대화내용은 우희창 국장의 기민함으로 인해 위와 같이 생생히 복원할 수 있었다. 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 필자는 공학박사로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과 대전충남 민언련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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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5/03 [10:2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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