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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없는 낙천낙선운동은 퇴행이다
 
서형원   기사입력  2004/02/12 [20:09]

왜 정책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 첫째는 그것이 시민사회운동의 상식적이고 정직한 태도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시민사회운동이 일궈온 대안 가치를 국민들과 공유하여 정치의 나아갈 방향, 그리고 새로운 정치주체가 담아야 할 가치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1월 19일자 시민의신문 기고글을 통해 '시민사회의 가치와 대안을 담는' 총선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노력이 생략된 낙선, 혹은 당선운동은 맹목적 실력행사에 불과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다른 자리에서는 '부패·도덕성'과 '정책입장'을 양대 평가기준으로 삼아 낙천낙선운동을 펼칠 것을 제안하면서, 정책 기준의 다섯 가지 항목으로 '국가보안법 개폐'(민주주의와 인권), '호주제 폐지'(성평등), '새만금갯벌 보전'(생명), '이라크 파병 반대'(평화), '부안 핵폐기장 백지화'(분권과 자치)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시민사회단체들이 한시도 쉬지 않고 주장해온 정책내용을 후보 평가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공동의 기준에 합의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 경험이 있다. 가깝게는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보안법 개폐', '호주제 폐지', '부패청산'을 3대 기준으로 합의해 제시했다. 또한 새만금, 이라크 파병, 부안 핵폐기장의 문제는 2002년 이후 전국 시민사회단체들이 한 목소리를 낸 쟁점이었다.

이들 정책쟁점 중 하나만을 이유로 낙선후보를 선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정책기준 하나하나가 후보 선정에 미치는 영향을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5대 정책평가기준'을 선명하게 제시함으로써 시민사회운동은 부패나 지역주의와 같은 구태를 청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정치가 나아갈 미래지향적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

이럴 때 낙천낙선운동은 개혁과 참여의 열망에 불타는 유권자들이 새로운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적 학습' 과정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정책 보고 투표하자'는 상식에는 접근할 수 있다.

2월 2일에는 물갈이연대가, 3일에는 총선시민연대가 후보평가 기준을 발표했다.

물갈이연대의 지지당선운동이 정책 기준으로 후보를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물갈이연대는 '개혁성'(30점)과 더불어 환경, 여성, 인권 등 '정책지향'(30점)을 양대 평가기준으로 제시하여 이 두 항목에 총 100점 중 60점을 배정하였다. 해당 시민운동부문의 추천을 받아 환경, 여성, 인권 등의 지지당선 후보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그밖에 '성실성'(20점), '전문성'(10점), '정치발전 기여'(10)를 평가기준으로 제시했다.

반면 총선시민연대는 낙천대상의 절대기준으로 '부패'를 꼽고, 그밖에 '선거법 위반', '반인권·반민주민주 경력', '성실성 및 반의회·반유권자적 행위', '개혁법안 및 정책에 대한 태도', '도덕성과 자질'을 상대 기준으로 꼽았다. 정책 기준에는 정치개혁, 인권, 환경, 여성, 복지, 노동, 재벌개혁, 반부패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런 기준으로는 시민사회가 실현하려는 가치를 드러낼 수 없다. 유권자의 참여 열망에 올라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참여가 나갈 방향을 제시하거나 대안 가치를 실현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패와 더불어 환경, 여성, 평화 등의 정책에 대한 태도를 핵심 기준으로 도입하자는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부문의 입장을 조율하기 힘들다는 참여연대 등의 주장이 힘을 얻어 낙천기준으로는 2000년 총선연대와 다를 것이 없는 기준이 선정되었다. 필자가 보기에 여성운동이나 평화운동 단체들이 이번 낙선운동에 소극적인 것은 단지 다른 활동으로 바빠서만이 아니다. 낙선운동은 시민사회운동의 다양한 흐름을 모아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낙선에는 성공하고 정치를 변화시키는 데는 기여하지 못했다는 2000년 낙선운동의 평가를 똑같이 반복해서야 되겠는가? 그 이후 풍성하게 전개된 시민사회운동의 흐름을 뒤로 되돌린다는 점에서 이것은 퇴행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녹색정치' 준비모임(http://www.greens.or.kr) 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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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2/12 [20: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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