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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재단 퇴진시켜 상식통하는 대학으로'
세종대 재단비리 척결, 세종투위 발족, 검찰에 고발장 접수
 
이재정   기사입력  2004/02/11 [19:44]

세종대 재단의 경영권을 놓고 벌어진 가족간 고발사건의 파장이 세종대 재단의 퇴진과 부당해직 교수의 복직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복직투쟁 중인 김동우 교수     ©브레이크뉴스
2004년 2월 10일 광화문 열린광장에서 열린 '세종대재단퇴진과 김동우교수복직투쟁위원회'(이하, 세종투위)는 그 동안 제기된 사학재단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사였다. 세종투위 박춘노 위원장(세종대 79학번)은 세종투위 발족 선언서에서 "주영하, 최옥자 부부의 폭로로 말미암아 장남인 주명건 이사장의 비리와 패륜적 악덕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고 주장하고 "주씨 일가의 탐욕과 독선으로 찌들어온 세종대학교를 환골탈태 시킬 수 있는 시점"이라고 선언했다.

세종투위 발족식은 80년대부터 진행된 세종대 학내민주화 투쟁과정을 설명하는 경과보고에 이어 오영숙(전 세종대 직선총장), 박거용(교수노조 부위원장), 노태구(경기대 교수), 김혜진(덕성여대 총학생회장)의 연대사로 이어졌다. 이후 김동우 교수는 "이제는 복직이 문제가 아니라 상식이 통하는 대학을 만드는 것"이라며 그간 심경을 토로했다.

세종투위, 재단 '교비횡령' 의혹 제기

지난 2003년 12월 23일 세종대 전 이사장인 주영하, 최옥자 부부는 그들의 장남인 주명건 현 세종대 이사장을 비리의혹으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그간 세종대 재단의 전횡과 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세종투위는 행사 마지막 서울지방검찰청장 앞으로 보내는 고발장에서 주명건 이사장과 세종대 임원들의 교비횡령 및 업무상 배임, 이사회 회의록 위조 의혹을 형사고발 했다.

▲김동우교수가 '복직 및 재단비리를 고발'하며 1인시위를 그린 걸개그림     ©브레이크뉴스
교비횡령 및 업무상 배임 부분에서는 파주에 조성된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가 '오로지 출판'의 목적으로 조성되어 교육용 부지로의 전용이 불가능함에도, '서부캠퍼스 조성' 목적으로 학교법인의 교비회계에서 약 43억을 지출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학교법인의 교비회계를 지출할 경우 학교법인의 명의로 지출되어야 하나 전혀 관계없는 세종서적과 세종대학교 명의로 지출한 것은 사립학교법 위반일 뿐 아니라, 형법상 업무상 횡령을 저지른 것으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고발장에는 이 같은 교비의 불법 전용에 대한 의혹과 더불어 공사비 과다 계상으로 인한 비자금 조성과 주명건 이사장이 2002년 12월 13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사장으로 선임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사장으로 선임된 것처럼 회의록을 위조한 의혹도 같이 제기 되었다. 특히 회의록 위조와 관련해서는 주명건 이사장의 부모인 주영하와 최옥자씨가 증언하고 있어 앞으로 사법부의 판단이 주목된다.

그러나 이 같은 세종대 문제의 시작은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80년 초 '서울의 봄'과 더불어 분출된 세종대 학생들의 족벌재단 퇴진 요구는 다시 들어선 5공 군사정권에 재단이 적극적으로 굴종을 하면서 후퇴하게 되었다.

1987년의 '6월항쟁'을 계기로 1988년 세종대 총학생회는 총장직선제를 재단측과 합의 할 수 있었지만 이후 교직원 급료 미지급등의 문제로 직선총장이 해임되고 다시 재단에서 총장을 임명하는 갈등을 겪었다. 이에 반발한 총학생회는 전체교수회의에서 선출한 오영숙 직선총장 명의로 등록금을 '이원화'하여 납부하면서 1990년 3월 총파업에 들어갔다. 당시 문교부는 학내사태가 파행조짐을 보이자 학교 휴업조치를 단행하였으며 마침내 7월 12일에는 세종대 사태를 전교생 유급으로 처리하는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세종대 사건은 진정국면을 보이는 듯 했으나 1993년 주영하 이사장이 복귀하고 1997년에는 장남 주명건씨가 이사장직을 승계 하면서 불화를 키워왔다.

▲김동우 교수의 조각작품 사진     ©브레이크뉴스
이러한 불화는 김동우 교수의 해임사건으로 다시 불거지게되었다. 1998년 김동우 회화과 교수는 전임책임시간(주 12시간)의 부족분을 조각작품으로 1년에 1점씩 제작하라는 제의를 수락하고 '모자상'(母子像)을 제작했다. 그러나 1999년 재단 이사장이 작품비례가 '8등신'이 아니라며 수정을 지시하자 주이사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소신대로 완성된 작품을 학교에 설치하였다. 이에 학교측은 얼마 후 김교수의 재임용 탈락을 통보하고 김교수는 2002년 3월부터 학교정문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해왔다.

사학의 폐쇄적 의사 결정구조가 문제

이러한 학교측의 독단적인 조치에 대해 학생과 해직교수, 교수단체, 동문, 시민단체 등이 재단퇴진과 김교수의 원상복직을 목표로 세종투위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세종대 문제는 비단 세종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간 사학재단이 가지고 있는 불합리한 의사결정 구조가 누적되어 세종대에서 표출된 것에 불과하다.

1963년 제정된 사립학교법은 그간 18번의 개정을 거쳐왔으나 모두 소유주와 경영주 측면에 유리하게 부분적으로만 수정되어 왔다.

학교운영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예산의 심의, 의결과 교원임용 등의 핵심 권한이 모두 이사장과 이사회에 집중되어있고 이를 감시할 수 있는 학교운영위원회는 권고의 기능만을 갖고 있어 재단의 독단적 학원 운영을 제어할 실제적인 수단은 없는 상태이다. 더구나 이사의 선출에 있어 재단과 이사장의 측근으로 선출되는 현실은 덕성여대와 동덕여대 등 기타 다른 학원의 파행운영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현재 세종투위는 세종대 재단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관선이사를 파견해 줄 것과 부당하게 해임된 모든 교직원을 즉각 복직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종투위의 발족과 고발장 접수와 더불어, 그 결과는 앞으로 '학원 민주화'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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