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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는 ‘노사모이야기’를 할 수 없다?
독자언론이 2주연속 빠진 경위를 밝히며ba.info/css.html'><
 
취재부   기사입력  2002/04/29 [13:41]
지난 4월 20일치 <한겨레> 독자언론면이 사라진 데 이어 27일치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독자언론면을 맡은 이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26일 여론매체부 차장직을 사임했습니다.

<한겨레> 독자언론면 ‘출동 독자가 기자로’에 ‘노사모이야기’가 2주 연속 나오지 못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IMAGE2_LEFT}4월 19일 오전 편집위원회 뒤 조상기 편집국장(편집위원장)이 여론매체부에서 출고한 독자언론면 '노사모이야기'와 인터뷰 기사를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는 말을 최성민 부장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나는 조 편집국장을 찾아가 독자언론면을 기다리고 있는 한겨레 독자들과 독자언론기자와의 신의 문제를 생각해 실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조 편집국장은 출고 기사가 독자언론면 컨셉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하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일치 독자언론면이 나갈 수 없음이 명백해졌기에 나는 부장에게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여론매체부 기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대책회의를 열어 조 편집국장의 결정은 부당하며 반드시 20일치 독자언론면을 내보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최성민 부장 명의로 <독자언론면 '노사모'를 살려야 하는 이유>를 다섯가지로 정리해 국장단에 문서로 전달했습니다.

그 내용은
1. 노사모는 한낱 정치현상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 문화현상으로서 현재 독자와 국민들의 큰 관심사 중의 하나다.
2. 한겨레나 타 신문에서 노사모를 본격적으로 다룬 적이 없다. 재개위에서도 그런 지적이 나왔다. 한겨레는 '노무현 편향' 우려를 하고 있으나 요즘 경향신문은 오히려 노무현 현상을 한겨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다뤄 큰 재미를 보고 있다.
3. 한겨레 독자언론면 노사모 이야기는 정치면 기사와 상호보완적으로서 노사모 창안자 인터뷰 및 경선현장의 노사모 이야기, 동서화합 등 노사모의 사회문화정치적 지향점을 종합적이고 분석적으로 다루고 있다.
4. 노사모는 현재 전국민적 초관심사이므로 한겨레가 경향신문보다 더 치고 나가야 한다.
5. 독자언론면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되며, 독자들이 기자로 참여해 꾸미는 면이므로 단순히 소재의 겹침(내용이 아니라)을 이유로 면 자체를 폐쇄하는 것은 독자 및 3주일 전부터 취재해온 독자기자와의 약속 위반이다.
2002년 4월 19일 여론매체부장 최성민

입니다.

최성민 부장은 이날 오후 편집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이것이 여론매체부 기자들의 뜻이라고 강조했고, 회의에서는 이를 고려해 20일자로 싣자는 일부 편집위원들의 의견도 나왔지만 1주일 늦춰 내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26일 여론매체부는 ‘노사모’ 기사를 보완해 다시 출고했고, 최 부장은 아침 편집위원회 회의에서 게재를 간곡히 요청했으나 27일치 독자언론면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결국 <한겨레>가 독자와 독자언론필자와의 신의를 지키지 못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26일 오후 조상기 편집국장에게 사직서를 냈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죽는다 하며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산다 하는가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고 살아도 살지
아니함이 있다. 그릇 살면 죽음만 같지
못하고 잘 죽으면 도리어 영생한다.
살고 죽는 것이 다 나에게 있나니
모름지기 죽고 삶을 힘써 할지어다.’

이것은 서울 수유리 산속에 있는 이준 열사 묘비에 적혀 있는 그의 어록 중 일부입니다. 나는 몇해 전 산책 중에 이 글을 발견하고 한겨레 창간정신에 투철하라는 뜻으로 가슴에 새겨 본 바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독자언론면은 토론면인 ‘왜냐면’과 함께 올해 한겨레가 ‘전략지면’으로 독자들에게 새로 선보인 것입니다. 이런 독자언론면이 담당부서에서 출고했음에도 2주 연속 문을 닫은 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편집국 내부 사정 차원을 넘어 <한겨레>가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독자언론면 진행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독자와의 신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여론매체부의 바람을 외면한 편집책임자들의 벽이 깨어져야 한다는 뜻으로 사임했습니다.

‘출동 독자가 기자로’라는 문패를 단 독자언론면은 독자들이 언론에 참여하는 마당입니다. 이 면이 마련됨으로써 독자들이 <한겨레> ‘전업기자’들과 함께 창간정신에 따라 민족 민주 민중 언론 구현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넓어졌습니다. 이 면에는 한겨레독자비평위원들의 ‘한겨레비평’도 싣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언론의 주체로서 참여하는 독자언론면은 언론 활동의 내용과 형식에서 <한겨레> 기자들의 것과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나는 그동안 독자언론면을 진행하면서 독자기자들이 정세와 시대 흐름의 정곡을 찌르는 정론을 펼쳐 주기를 바랐습니다. 독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정보와 의제 설정임에도 신문과 방송이 제대로 다루지 않은 것들이 주로 소개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독자기자들이 주인이 되어 꾸리는 독자언론면에서도 한겨레 지면을 빛낼 특종이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여론매체부에서 출고한 ‘노사모이야기’는 지난 20일이나 27일치 독자언론면 기사로 별 손색이 없으며, 시기도 적절했다고 봅니다. ‘정치개혁과 동서화합의 출발점 노사모’(가제)를 다룬 머리기사는 이준희 인터넷신문 <디지털말> 기자와 민경배 사이버문화연구소장의 공동기사로 마련됐고, 노사모를 처음 제안한 이정기씨를 발굴 소개한 인터뷰는 이준희 기자의 특종기사였습니다.

인터넷이 올 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정치개혁을 바라는 민심의 폭발을 불러왔습니다. 민주당의 국민참여 경선에서 나타난 ‘노무현 바람’은 한국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네티즌의 적극적 참여가 바탕이 된 ‘노풍’은 색깔론과 음모론,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사상 이념 검증’ 공세 등 한국 정치를 옭좨온 구태를 무력화시키면서 새로운 정치문화의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이런 ‘노풍’의 진원지로 알려진 ‘노사모’는 세인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되기에 충분했지만, 이를 심층적으로 소개한 기사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27일치 독자언론면의 원고로 독자기자가 보내온 ‘노사모이야기’ 머리기사와 인터뷰 기사 원문입니다.

정치개혁과 동서화합의 출발점 노사모
20~40대네티즌, 새 정치문화시대 열어


“지역감정의 굴레를 떨쳐버린 것이 너무 기뻐 밤새워 울었습니다. 이제 광주는 5.18과 3.16 이 두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겁니다.”(윤재해(55)씨, 광주노사모 회원)

정가의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 경선 개표 결과, 영남 출신 노무현 후보가 1위에 오르는 ‘이변’이 벌어졌다. 지역 조직에서 열세이던 그가 광주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꺾으면서 ‘노풍’이 전국으로 거세게 불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노풍의 진원지로 알려진 한국 최초의 자발적 정치인 팬클럽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www.nosamo.org)'도 눈길을 끌게 됐다.

{IMAGE1_RIGHT}노사모는 지난 4.13 총선 때 지역구도 타파를 내걸고 부산에서 출마했다 낙선한 노무현 후보를 위해 네티즌들이 만든 온라인 모임에서 비롯했다. 노사모 탄생의 주역 중 한 명인 김민정(아이디 절세미녀)씨는 “‘늙은여우’라는 네티즌이 노무현 홈페이지(www.knowhow.or.kr)에서 ‘팬클럽’을 제안한 것이 시초”라며 “효율적인 회원 모집을 위해 팬클럽 전용 게시판을 만들자, 가입자가 몰려 며칠 만에 300명을 넘었다”라고 밝혔다.

온라인 모임을 주도했던 네티즌들은 이후 오프라인 모임을 마련했다. 2000년 5월7일 노사모 대전 준비모임을 거쳐, 6월6일 대전 한남대 앞 한 피시방에서 회원 100여명이 참석해 창립식을 했다. 홈페이지는 회원의 자원봉사로 5월17일 개설됐다.

노사모는 현재 국내외 29개 지부를 두고 회원 3만5천여명(4월25일 기준)이 온/오프라인에서 활동 중이다. 회원 대다수가 20~40대 젊은 층이어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이 대열에 네티즌들과 민주화운동 세대의 참여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노사모는 대중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연승 회원은 “노사모는 정치개혁과 동서화합을 지향하고 있다”며 “한국 최초의 국민참여 경선 마당을 통해 노사모는 수구세력에 대항하는 유권자운동으로 더 큰 발돋움을 이미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 경선을 앞두고 노사모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선거인단에 편지 쓰기와 인터넷투표 참여 운동을 벌이고 있다. 노사모 국민경선대책위 김진향(아이디 진솔이) 위원장은 “경기 경선 투표율이 20.9%밖에 되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며 “서울 경선에 선거인들이 적극 참석해 범국민적 축제로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시민이 창조한 새로운 ‘정치혁명’의 바람을 서울에서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명계남 노사모 회장은 일부 언론의 ‘색깔론’ 등 왜곡보도와 관련해 “노무현 후보의 승리는 우리 사회에서 네거티브 선거운동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보여줬다”며 “민주당 경선 뒤에는 <조선일보> 구독거부 등 언론개혁 운동과 새로운 정치문화 운동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노사모 진로에 대해 그는 “정치개혁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며 “최종 방침은 회원들이 참여하는 전자투표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년 전 온라인에서 몇몇의 네티즌들이 노사모를 시작할 때 그 바람이 어떠할지는 그 자신들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 4월, 노사모는 분명 한국의 낡은 정치구도를 바꾸는 ‘희망의 씨앗’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 노사모 회원이 선거인단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노사모의 열망이 짙게 배어 있다. “누가 올바른 사람인가, 누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의 기준으로 선택해 주세요. 정치 발전을 위한 희망의 씨앗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준희/인터넷신문 <디지털말> 기자 peacehope@digitalmal.com
민경배/사이버문화연구소 소장 ^bm

노사모를 처음 제안한 이정기씨 인터뷰

“2000년 4월13일 총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낙선을 접하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노무현 홈페이지에 쏟아지는 글들이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라도 노무현 지지자들이 모이길 바랐다.”

노사모를 처음 제안한 이정기(35세 아이디 ‘늙은여우’ afoxlee@orgio.net)씨는 그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현재 광주의 한 인터넷꽃배달 서비스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 결성 당시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창립 당시엔 네티즌들이 모여 노무현과 영호남의 화합을 이야기하고, 가끔 번개(오프라인모임)를 하는 친목단체 정도였다. 지금은 노무현을 홍보하고, 오프라인 활동까지 활발하다. 지지 활동을 넘어 정치‧언론개혁 등에 대한 열망도 표출되고 있다.

– 민주당 경선에서 노사모의 역할은?
‘정치도 재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탈정치를 정치참여로 바꿨고, 국민에게는 ‘희망’이라는 말을 되돌려주었다. 노사모가 있었기에 국민 경선이 빛났다.

– 회원들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배타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선 뒤에는 후원회에 합류해 더 적극적으로 노무현의 대선 승리를 위해 뛰어야 하지 않을까.

– 노사모 활동에 대해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아내도 노사모 회원이다. 노사모 초기에 전북노사모 회원이었던 아내를 만나서 노사모 1호 커플이 됐다. 환갑이 넘으신 부모님은 물론 가족 모두가 노사모 활동을 좋게 봐주었다.

– 광주 승리 당시의 심정은?
현장에 있었는데 옆사람을 껴안고 울었다. 광주시민들이 자랑스러웠다.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라 할 수 있는 노무현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갚았다는 생각을 했다.

– 노사모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정의하기 어렵다. ‘노사모’는 아직 선례가 없고, 인터넷공간에서 변화하는 생물이나 다름없다. 노무현을 통해서 희망을 감지한 ‘386세대(정신적으로)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개혁지향의 표출’ 정도로 보고 싶다.
이준희/인터넷신문 <디지털말> 기자 peacehope@digitalmal.com

이 글들이 과연 <한겨레> 독자언론면 컨셉에 맞지 않는 것이고, 2주 연속 독자언론면을 막을 만큼 문제가 있는 것인지 독자들께 묻고 싶습니다.

얼마전 중앙일보는 시민언론부를 만들고 대학생 기획기사를 모집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는 한겨레 독자언론면을 모방한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한겨레 독자언론면을 더 잘 꾸려 갈 것을 요구하는 듯합니다.

나는 1988년 5월1일 창간주주 경력사원으로 입사해 그동안 한겨레가 창간정신대로 발전하기를 소망해왔습니다. 이번 독자언론면 ‘노사모이야기’ 폐쇄사건은 독자들의 알권리를 외면한 것으로 나에게 감내할 수 없는 충격을 주었으며, 독자언론에 구조적인 벽이 높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해줬습니다. 나의 퇴직이 독자언론을 살리는 씨앗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2002년 4월 29일
박해전 드림

(문의 : 휴대폰 016-251-0695  전자우편 jajuphj@hanmir.com)

[관련기사] 이준희,
   "한겨레 독자언론 정상화해야"-한겨레 조상기 편집위원장께, 대자보 81호


* 본문은 디지털말 이준희 기자의 제보에 의해 기사화 된 것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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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4/29 [13:4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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