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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의 낯설게 하기] 베트남, 그 사실과 인식에 대하여
 
서현   기사입력  2002/03/23 [10:30]
- 하성란의 '양파'에서 베트남 전쟁을 읽어본다 -


{IMAGE2_RIGHT}아무래도 하성란은 사실과 인식의 괴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가령 그녀의 소설 '양파'는 이 문제에 대한 작가의 천착이 얼마나 치밀하고 치열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로, 놀라울 정도로, 소설 '양파' 속엔 버려진 사실들과 어긋난 인식들만이 꿈틀거린다. 그 안에선 모든 인식들이 모든 사실들과 괴리되고, 갈수록 한없이 멀어진다. 이 끊임없는 어긋남을 관찰하는 것은 초조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독자 따위는 아랑곳없이 옥수수밭 한가운데에 처박힐 뿐이다. 죽는 순간까지 그들은 각자의 오인과 오해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 한국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4,960명. 베트남 한가운데에 처박혀버린 한국의 군인들 또한 죽는 순간까지 오인과 오해를 간직했을 가능성이 많다. 누구도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고, 어디서도 사실을 접할 수 없었다. 오로지 강력히 주입된 인식만이 그들을 움직였고, 결국 인식은 그들의 신념으로 자리했다. 기실 신념이란 결코 믿어선 안 되는 위험한 것이지만, 그들이 그것을 알았을 리 없다. 때문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은 자신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숭고한 군인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들의 신념은 사실이 아니었다.

{IMAGE1_LEFT}그래서인지 그들의 죽음은 서둘러 정리됐다. 권력자들은 그들을 죽게 한 것이 베트콩이 쏜 총알이 아닌 자신들이 주입한 인식이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놀라운 비밀을 감추기 위해 권력자들은 많은 것을 기획한다. 훈장을 주고, 시신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며, 죽은 자들 중 몇몇을 영웅으로 미화한다. 효과는 확실하다. 덕분에 전장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 여태 베트남을 둘러싼 사실과 인식의 괴리를 메우지 못하고 있다. 그 시간이 무려 30년,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하긴 이 긴 시간 동안 버려진 사실들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사실들이 그렇듯이 베트남을 둘러싼 그것들 또한 자신의 파편을 이곳저곳에 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양파'의 남자와 여자가 자신의 삶의 편린들, 그러니까 구멍 뚫린 분홍색 형광 욕실화나 끔찍하도록 날카로운 회칼, 백화점 통신판매용 책자 등을 곳곳에 흘려두었던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현실의 권력자들과 마찬가지로 '양파'의 권력자(경찰)들은 이 소중한 파편들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들은 귀찮았다. 그들에겐 버려진 사실들보다 비벼만 놓고 한 젓가락도 먹지 못한 파출소의 자장면이 더 중요했다. 하여 남자와 여자의 죽음에 동반자살 이상의 상상력은 금지된다. 그들의 죽음은 동반자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

베트남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담론은 이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이 땅 어딘가에 베트남의 사실들을 귀찮아하는, 혹은 두려워하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파병을 기획하고 획책했던 이들 권력의 무리는 베트남의 사실들이 돌아올 경우 그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양파'의 경찰들처럼 그저 늘어나는 잡무 수준의 것이 아니다. 또한 간단한 사과 차원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여태껏 누려오던 수많은 기득권의 근간들을 통째로 뽑아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먹던 자장면을 마저 먹지도 못할 것이며, 어쩌면 이미 먹은 것까지 다 게워내야 할지도 모른다.

해서 제도권이 교육하는 베트남 전쟁의 역사는 항상 통킹만에서 시작한다. 통킹만에서 월맹이 어뢰를 쐈고, 그래서 전쟁이 시작됐으며, 한국과 미국은 힘을 합쳐 공산침략세력과 싸웠다는 것이다. 이것은 굳이 6·25라는 날짜로 표현되는 한국전쟁의 역사와 그 구조가 정확히 일치한다. 이미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이 역사기록의 테크닉은 전쟁의 발발이라는 거대한 파노라마 중 단 하루에 집착하게 함으로써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은밀한 속임수다. 이 묘한 속임수에 걸려드는 바로 그 순간, 사실과 인식은 괴리되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버리게 된 베트남의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1863년, 프랑스 제국주의의 침략. 베트남의 항불(抗佛)독립투쟁. 1954년 5월 7일, 베트남, 마침내 승리(디엔 비엔 푸 결전). 그러나 프랑스의 빈자리를 메우는 미국. 미국의 지원을 받는 고 딘 디엠 정권의 등장. 고 딘 디엠의 폭정. 민심 이반. 인민의 80% 호치민 지지. 위기를 느낀 미국, '선전포고 없는 전쟁' 개시. 통킹만 사건. 미국, 본격적이고 노골적인 폭격 시작. 한국, 참전. 쉽게 풀이하자면, 베트남에서의 한국군의 역할이란 일제 시대 우리의 독립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투입된 일본군 앞잡이 정도에 해당한다. 버려진 베트남의 사실은 이러하다.

소설 '양파'의 경우 역시, 남자와 여자의 죽음에 대한 해석, 즉 동반자살이라는 인식은 사실이 아니었다. 자살이라 해석된 죽음의 그 순간, 그들은 외려 희망에 들떠 있었다. 남자는 여자와 함께 동해안에 정착해 새 삶을 시작하려는 꿈을, 여자는 오랜 오인과 오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가려는 꿈을 꾸고 있었다. 비록 여기서조차 서로의 꿈은 어긋나 있지만, 그들 각자는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니까, 그 어두운 밤, 광고판에 그려져 있던 그 '진짜 같은 가짜 길'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결코 죽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그들은 좌로 굽은 진짜 길 대신 원근법까지 잘 지켜 그린 큰 길, 그 '가짜 길'로 뛰어든 것이었다. 뛰어든 다음, 광고판을 지탱하는 철골 구조물을 한 번 들이받고, 옥수숫대를 훑으며 날아가 옥수수밭 한가운데에 처박혔다. '양파'의 죽음을 둘러싼 사실은 바로 '진짜 같은 가짜 길'이었다.

현실에서도 '가짜 길'은 여전히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더욱 정교하게 거듭나고 거듭나서 '진짜 길'과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다. 때문에, 아버지는 월남전에, 그리고 자신은 대테러전에 참전한다며 카메라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일단의 군인들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인식은 사실이 아니다. 또 국가와 잘못된 인식을 공유하는 것, 국가의 광기에 같이 휩쓸리는 것 역시 애국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마음과 머리 속에 오인과 오해를 품고 있다. 사실을 되찾지 않는다면, 역사는 반복되고 말 것이다.


- '양파'는 하성란 작품집 '옆집 여자'(창작과 비평사, 1999)에 실려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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