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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송영길의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한총련합법화, 반전평화운동의 전도사, 총선시민연대는 재고해야
 
최양현진

기계적 적용론이 불러온 오류,
총선연대는 반드시 재심의 해야 된다

이번 총선연대의 낙천.낙선 대상자 발표는 2000년 총선에 이어 2004년 총선에서도 또 다시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며 그 의미가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고 있다. 대상자 66명 가운데 그 어느하나 변명과 자기 논리가 없겠는가?

그러나 단 한사람 총선연대의 어떠한 논리로도 해결될 수 없는 한명이 있다. 바로 송영길 의원이다.

▲송영길 의원    ©브레이크뉴스
송영길 의원은 16대 국회에서 가장 뛰어난 의정활동을 보인 정치 신인으로 소신과 원칙을 중시하고 사회 어두운 부분을 찾아다니며 발로 뛴 대표적인 의원 중 한명이다. 이 사람이 낙선.낙천 대상자로 올랐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총선연대가 자기기준을 철저하게 세우고 그 기준을 한치의 시행착오도 없이 노력했다는 점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시민단체가 가장 경계해야 될 원칙론적 구호속에서 허덕이면서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어간 기계론적 오류를 나타낸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송영길 의원이 분명 지난 15대 총선에서 보궐 선거로 선거를 치루는 과정에서 대우로부터 선거비를 일부 받아 쓴 사실과 2000년 총선 당시 선거법 위반으로 곤욕을 치룬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총선연대는 단순하게 당시 선거 과정에서의 잘못된 관행만을 얘기할 뿐 이후 국회운영 과정과 상임위 활동 그리고 국회의원으로써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함구하고 있다.

분명 우리는 집안에서 조그만 가계부를 만들어도 대차대조표를 만들고 수입과 지출을 계산하여 합계를 집안 소득으로 이월한다. 하물며 이 나라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 있어서 전혀 소득은 계산되지 않고 지출만 계산하여 만든 대차대조표를 적용하여 객관성을 얘기한다고 하면 어느 누가 그 대차대조표에 대해서 믿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다시한번 얘기하지만 이번 총선연대의 낙천.낙선 대상자 선정에 있어서 송영길 의원의 경우 이러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하지 않은 기계론적 오류의 가장 전형적인 예로 총선연대의 최대의 패착으로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을 저버리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이에 다시 한번 총선연대의 재고를 촉구한다.

이에 필자가 겪었던 송영길 의원의 개혁성과 진실성에 대해 몇 자 적고자 한다.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에서의 송영길 의원

한총련 이적규정 문제는 우리사회의 미래의 주인인 현 대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활동을 제한한 현대판 주홍글씨로 UN사법위원회에 제소가 되어있는 사건이다. 또한 조금이라도 이 사회에 조금만 관심이 있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한총련 문제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법률적 판결이 얼마나 허술하고 잘못되어 있는가를 금방 알 수 있는 사건이다. 그리고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법률인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 각 시민사회단체에서 개폐를 주장해왔고 국제적으로 잘못된 법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필자는 지난 2001년 9월 강위원 한총련 전 의장과 출소 이후에 당시 공중파 방송에서는 처음으로 다루던 100분 토론을 준비하였던 것을 계기로 처음 만나 한총련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을 시작하였다. 시민단체의 어떤 누구도 한총련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지 못하고 함구하였었다. 당시 우리는 송영길 의원을 찾아가 한총련 이적규정의 부당성을 얘기하였고 이에 송영길 의원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국회의원으로는 처음으로 당시 국정감사에서 한총련 이적규정의 문제점을 얘기하기 위하여 함께 준비하였다. 그러나 이때 평양에서 일어난 8.15대회에 대한 국내 보수언론과 단체의 시위로 인하여 시기를 찾지 못하고 자료를 정리하여 다음 기회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2001년 12월 말, 본격적으로 한총련 합법화 문제를 얘기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로 강위원씨와 논의하고 2002년 1월에 '한총련 합법화를 위한 범사회인 대책위'를 발족하였다.

당시 강위원씨와 필자는 한총련 이적규정의 부당성을 각 시민사회단체의 대표들과 언론사, 사회원로 등을 찾아다니며 읍소하며 함께 해 줄 것을 부탁 드렸다. 그러나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우리의 이러한 노력에 대하여 심적으로 동조할 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으며 재야의 몇몇 어른들만이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당시에 정치인 중에서 본인들이 정치적인 어려움이 있음을 앎에도 불구하고 송영길 의원과 임종석 의원이 후배들의 일이며 또한 본인들의 문제라며 우리를 적극 도와주었다. 이에 힘입어 더 많은 어른들을 대책위원으로 모시 수 있었다. 당시를 기억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유수의 시민단체들도 이 문제의 심각성은 알면서도 누구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였고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대책위원에도 이러한 단체의 대표들은 대책위원으로 어느 분 한명 분명히 나서지 않았었다.

이후 송영길 의원은 바쁜 와중에도 대책위의 거의 모든 행사에 함께 참여를 해주었다. 그렇다고 송영길 의원이 무조건 한총련 학생들을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한총련 학생들에게 분명히 선배로써 해야 될 말을 따끔하게 해주었고 학생들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고 해주었던 사람이였다. 말만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비겁자가 아닌 진정 용기있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사람이었다.

대책위와 관련된 이야기 중 이번 총선연대에서 제시한 송영길 의원의 선정 이유와 관련된 애피소드도 있다.

2002년 5월 한총련 학생들은 서울산업대에서 10기 한총련 출범식을 준비하면서 '학생운동20년사'라는 토론회를 만들어 대책위에 섭외를 부탁하였고 당연히 대책위에서는 송영길 의원에게 패널로 참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이번에 총선연대에서 제시한 보궐선거 당시의 금품수수 협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중이었고 이 일로 인하여 송영길 의원은 소명자료를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없던 시기였다. 우리의 제안을 처음에는 난감해 했지만 이후 몇 차례의 접촉을 통하여 승낙을 얻어내었고 송영길 의원이 참석이 정해졌다. 그리고 당일 산업대로 들어와서 필자와 처음으로 만나서 한 얘기가 '내가 금품수수 협의로 조사받고 있는데 후배들에게 누가되는 것 아니냐'며 이런 모습으로 후배들을 만나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하였다.

토론회에서도 첫 마디가 이런 불미스런 일로 후배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어 미안하다는 얘기로 시작하였다. 당시 토론회에 참여한 학생들 대책위 모두는 그런 송영길 의원의 말에서 그 사건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던 간에 송영길 의원이 고의적으로 했던 일이 아니라는 진정성을 엿 볼 수 있었다. 그랬기에 당시 토론회는 좋은 분위기에서 끝낼 수 있었으며 밤 늦은 시간임에도 송영길 의원은 이적규정 이후 처음으로 한총련 학생들의 박수를 받으며 출범식에 참가한 최초의 의원이 되기도 하였다.

통일 운동에서의 송영길 의원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2001년 국정감사 기간에 한총련 문제로 자료를 준비하던 중 평양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 대축전 참가단의 불미스런 일로 인하여 보수 진영의 목소리가 커졌다. 따라서 국정감사 조차 이 문제로 파행을 겪으면서 당시 준비했던 자료를 활용하지 못하였다. 그 때 송영길 의원은 직접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이 문제의 진실을 알려야 된다는 심념으로 '8.15방북의 진실과 독일통일의 교훈'백서를 발간하여 기자들에게 돌렸었다. 그래서 8.15방북 때 일어난 일을 국회에서 누구보다 먼저 쟁점화 시켜 문제의 본질을 바로 잡았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송영길 의원은 민족의 가장 큰 문제인 통일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준비를 해왔었다.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 산하의 청년학생위원회에서도 모든 행사를 준비할 경우 가장 먼저 찾아가서 섭외했던 국회의원이 송영길 의원이였다. 물론 송영길 의원은 청년학생위원회의 모든 행사에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주었다.

특히 송영길 의원은 최근 창립한 '남북청년경제문화교류단'을 통하여 실질적 남북 민간교류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재단은 2002년 10월에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해외 청년학생대회'에서 북한의 대표단과 남한의 대표단이 만나 당시에는 비공식적인 회의를 통하여 2002년 대통령 선거 이후 실질적 교류를 하기 위하여 준비를 하였던 모임이였다. 그리고 대선 이후 당시의 의견을 구체화 시켜가는 과정에서 송영길 의원이 적극적으로 결합하였고 2003년 9월 실무 회담을 겸한 북녘 문화유적 답사 및 청년 경제 협력단의 일원으로 방북하여 경제문화재단의 구체적 일정을 합의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의정활동 중에도 재단의 창립과 관련된 모든 일정을 챙기면서 재단의 창립을 위하여 누구보다 열심히 앞에서 일하여 지난 1월 29일 한완상 전 통일 부총리를 이사장으로 본인은 부이사장으로 하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창립하였던 것이다.

또한 송영길 의원은 현대아산의 국민주 운동 모금에서도 원내에서 참가하여 금강산 광관을 살리는 활동에도 앞장서 일해 왔으며,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및 제주도 민족체육대전 등 많은 민간교류에 다른 어떤 정치인보다도 열심히 참여하여 남북 민간 교류 활동에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이라크 파병 반대와 반전.평화 운동에서의 송영길 의원

2003년 벽두는 이라크 파병과 관련하여 전세계의 시민사회단체가 한목소리로 명분없는 전쟁의 반대를 외치며 세계 곳곳에서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로 들끌었다. 물론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파병 요청을 받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2년 10월 여중생 촛불시위로 시작된 SOFA 개정운동이 해를 넘기면서 이라크 파병 반대 시위로 번져나갔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개시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가운데 각 시민사회단체는 이라크 반전평화를 위한 인간방패로 이라크 현지로 급파되었다. 이때 우리나라 국회의원으로 이라크 의회의 초청으로 이라크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국회에서 파병반대에 대표적인 의원으로 여야 의원들을 쫒아다니며 설득하고 이라크 파병의 부당성을 알려내는데 노력하였다.

당시 필자는 국회파병동의안 처리 저지를 위한 국회 점거농성을 위하여 동의안 표결이 예상되는 날이면 몇겹의 경찰 병력으로 둘러싸인 국회에 들어가 안쪽 사정을 밖에 얘기하였다. 표결이 있다고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갔고 가장먼저 국회 의원회관에 들어가서 의원회관 위에서 국회 주변 동정을 살피고 들어오는 방법을 밖에 있는 동료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때 국회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알려 주었던 방법 중 하나가 국회의원 이름을 대고 의원 비서진들에게 먼저 얘기하여 들어올 수 있도록 경비실에 전화를 하는 일이였다. 그 당시 당연히 파병반대 의원실의 비서관을 찾아가 부탁을 하였고 그 중 대표적인 의원이 바로 송영길 의원이였다.

송영길 의원실은 당시 언제나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으로 파병반대를 위한 사람들이 찾아가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던 몇 안되는 사무실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당연히 송영길 의원실에 일이 있어서 왔다는 얘기로 국회를 들어 올 수 있었고 1차 표결이 진행되던 날 국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송영길 의원 등 몇몇 의원실에서 방청권을 얻어 국회 방청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당시 양당(한나라당과 민주당) 총무의 합의로 방청은 무산되었고 들어간 사람들은 국회 본관 건물 밖에서 농성을 하고 전원 연행되기도 했었다.

이후에도 송영길 의원은 이라크에 다녀와 이라크의 실상을 얘기하였고 아직 논의 중이지만 이라크 2차 파병에서는 전투병 파병 반대라는 입장을 가지고 현재도 반전.평화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송영길 의원의 소명 자료와 대상 발표의 문제점

이상 필자가 그간 송영길 의원과의 직,간접적 만남을 통해서 지켜본 송영길 의원과의 회고였다. 이렇듯 송영길 의원은 16대 다른 어느 국회의원보다도 먼저 한반도 평화와 통일, 인권의 문제를 주장하였고 실천에 옮긴 몇 안되는 국회의원 중에 하나이다.

물론 선거운동 과정에서 몇몇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봐야 될 것은 일부가 아닌 전체를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분명 총선연대는 자신들이 발표할 대상자들이 이후 정치적으로 어떠한 파장이 올것인지 국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2000년 총선을 통해서 분명히 보아왔다. 그럼에도 총선연대는 전체가 아닌 일부를 대상 기준으로 선정하여 한국 정치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한 의원의 미래를 재단하려고 한 우를 범한것이다. 만약 이번에 발표한 자료가 국회의원 바로 알기 차원에서 발표한 정보공개라면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분명 이것은 낙선,낙천 대상자라는 이름을 걸고 한 발표이기에 더욱 신중을 기했어야만 했다. 원칙을 위해 전체를 살피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는 총선연대가 기계론적 오류에 빠져있는 자신들의 한계를 분명히 노출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다시 재심사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에도 들어갔다면 분명한 자기 논리가 필요하고 전체적인 부분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분명히 제시해야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자신의 잘못을 알고 고칠 줄 아는 것도 시민단체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당일 발표 이후 각계에서 나오는 송영길 의원 구명에 대한 목소리를 분명히 귀담아 총선연대가 저지른 기계론적 오류를 시정하기 바라는 바이다.

참고로 송영길 의원의 총선연대 소명자료를 첨부한다.

 <2004 총선시민연대에 보내는 소명자료>

먼저 낡은 정치 청산과 돈정치, 부패정치 청산을 위해 항상 노력해 오신 여러분의 활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출하지만 유권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각 시민단체가 자신들의 철학과 기준에 기초하여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것은 헌법적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낙선대상자의 선정이 자기 철학과 기준에 따른 발표가 아니라 자칫 형평성과 일률적인 기준에 맞춰 이루어질 때, 현재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박빙의 수도권 지역에서 유권자들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바른선택, 국민행동’과 같은 극우보수단체의 낙천, 낙선대상자 발표 등으로 개혁적 인사들까지 낙천대상으로 지목되어 유권자들의 판단에 자칫 혼란을 줄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어 신중하고 균형 있는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1. 대우그룹회장 김우중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 1억원의 영수증 미처리 문제

가. 사실관계

저는 1984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반군사독재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속된 후 석방되자마자 바로 1985년 여름 인천에 내려와 대우자동차 르망공장 신설 건축현장에서 배관용접을 하면서 노동자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86년부터 주안5공단 동방상사, 선퍼니처가구, 대진산업 등에서 공장 근로자로 일하면서 노동자의 권익개선을 위한 현장활동을 해 왔습니다. 나중에 변호사가 되었지만 노동, 인권변론에 집중하느라고 돈도 벌지 못했고 그나마 변호사 사무실 보증금 1억원이 임대건물의 부도로 지금까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던 차에 제가 살고 있는 계양구에서 재선거가 실시되게 되어 공천이 되었습니다. 선거자금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선거를 한번 치르려면 수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유권자들의 일반적 인식이나 정치행태였다는 것을 정치판에 뛰어 들면서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공천 후 돈이 없어 힘들어 하는 상태에서 현재 저의 후원회장이신 연세대 송 자 총장께서 당시 연세대 동문회장이던 김우중 회장에게 수차례 도움을 요청하였고, 김우중회장은 동문회차원에서 주는 격려금이라며 현금 1억원을 보내왔습니다.

당시 저는 정치 초년생으로 큰 문제의식 없이 선배님들이 주신 고마운 격려금으로 생각하고 감사해 했습니다. 당연히 영수증처리 및 회계처리를 즉시 했어야 함에도 선거경험도 없는 정치초년생으로, 저는 변호사이지만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고 선거가 끝난 후 결산보고 될 것으로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거가 패배하자 당시의 선거본부의 실무자들은 자신들의 본업으로 돌아가면서 사후처리는 흐지부지되었고 저자신도 이를 꼼꼼히 챙기지 못하고 지나가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1999. 6. 3. 재선거가 끝난 후 1999. 8. 대우자동차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김우중회장이 해외로 도피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저 자신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고, 괴로워하다가 고 제정구의원의 친동생이자, 제가 다니는 본당의 제정원 베드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2002년 이 문제가 검찰수사로 언론에 보도되자 저는 모든 사실을 바로 시인하고 검찰수사에 협력하였습니다.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고 국회회기중임에도 출두하여 조사를 받고 1심판결이 나자 승복을 하고 항소를 포기하였습니다.

저의 문제에 대해 여야 동료의원들은 물론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전현직위원장들이 탄원서를 작성하여 주었습니다. 저는 이를 거울삼아 그 이후에 많은 정치자금 수수에 대한 유혹을 차단하고 자기를 절제하는 예방주사와 같은 계기로 삼아 왔습니다.

나. 정상 참작 변론

원래 정치자금법위반 행위는 뇌물, 알선수수와 같은 국회의원이나 공무원의 직무관련성, 대가성을 기초로 한 부패행위와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차떼기와 같은 엄청난 규모의 대선자금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다루어지다 보니 정치자금법위반 사항 역시 사실상 포괄적 대가관계가 있는 뇌물죄와 유사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의 사건의 경우는 당시 현직 국회의원도 아니었고, 낙선한 선거였습니다. 또한 옷로비사건 등으로 인해 민심이 이반되어 당선의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았기에 김우중회장이 대우그룹을 위해 로비대상이 될 만한 위치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연세대상대 출신의 정치인이 여야 국회의원을 포함하여 저 혼자뿐이었고(현재도 그렇습니다),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연세대동문 차원에서 충분히 도움을 줄만한 대상이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더구나 송자 총장을 비롯한 연세대상대 동문들이 같은 연세대상대 출신인 김우중회장에게 수차례 도움을 요청하여 준 후원금으로, 최근 벌어진 이회창후보나 노무현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특혜를 바라는 차원의 포괄적 대가관계가 있는 정치자금(사실상 뇌물성)과는 차원이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저의 문제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나 동료 법조인들은 부인하거나 검찰출두를 거부하라는 조언도 많았지만 공소시효 만료를 며칠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저는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반성했으며, 회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출두하여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고 판결에 승복했습니다. 동료의원들과 후원자들은 저의 딱한 사정을 알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추징금의 일부를 마련해 주어 세무서에 증여세를 모두 내고 추징금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2000년 총선이후 의정생활을 하면서 이 사건으로 예방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고 당당한 의정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 선거법위반 문제에 대하여

가. 사실관계

1999년 말 송년회 때 지역사회에 봉사활동을 하느라고 고생중인 한 초등학교 녹색어머니회 회원들 10여명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했다는 것과 2000년 초 조기축구회에 10여 군데에 축구공 1개씩 준 사실, 그리고 학교 졸업식 등에서 본인 명함을 배포하였다는 이유로 벌금 80만원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나. 정상 참작 변론

저는 정치초년생으로서 지역구민을 만나 소신과 공약을 전달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 보니 선거법위반행위를 한 점에 대해서는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정치개혁과정에서 논의되었듯이 당시의 선거법 자체는 너무 불평등하여 정치신인들의 초보적인 홍보활동도 금지된 상태였습니다. 현역의원은 의정보고회를 선거당일 전까지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5천원이하의 식사 및 다과를 제공할 수 있고, 의정보고서를 회수, 매수에 제한 없이 배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의 상대였던 현역의원인 안상수후보는 축구연합회장 자격으로 수십 개의 축구공을 각 조기축구회에 제공하고, 의정보고서를 수 만장씩 선거직전까지 배포하였습니다. 이에 저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까지 냈습니다만 기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들의 정치진입장벽을 낮추라는 요구에 의해 이 문제에 대한 여야의 개정합의가 이루어지게 된 현실을 고려하여 판단될 문제라 생각됩니다.

맺는 글

위 사건은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저를 뽑아준 계양구민들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사죄드리며 이를 가슴 속에 깊이 새기고 반성하고 반성해왔습니다. 언론이나 주위분들로부터의 지적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수용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지적을 채찍으로 생각하고 한반도의 평화, 나라와 지역발전을 위해 묵묵히 황소처럼 일해 왔습니다. 전쟁직전의 바그다드와 사실상 전쟁상태인 이라크를 목숨을 걸고 두 차례 방문하여 이라크침략전쟁 반대와 평화를 위해 싸워 왔습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증권집단소송법 등 개혁입법을 위해서도 앞장 서 왔습니다. 현재는 친일반민족행위자진상조사에관한법률의 관철을 위해 마지막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인에게 있어서 정치자금은 불가피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자금 자체를 부정시하면 돈 없는 시민운동가나 저 같은 가난한 변호사는 정치권 자체에 진입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 시대의 양심적 정치선배인 김근태 대표도 2억이 넘는 돈을 영수증 처리 없이 썼다고 고백하여 실정법상 재판을 받기도 햇습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한화갑의원이나 정동영의원의 경우에도 당내 경선에 몇 억씩 드는 현실에서 후원금으로 영수증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안영근의원의 고백에 의하면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전 지구당이 1억 3천정도의 불법자금을 회계처리하지 않고 받은 사실 등을 비추어 볼 때 정치초년생인 제가 이번 총선도 아닌 1999년 떨어진 재선거에서, 일반 기업도 아니고 대학 총동문회장이 현역도 아닌 상태에서 후배에게 격려금을 준 돈을 선거에 떨어진 바람에 미처 영수증 처리 못한 사안이 다음 총선에 출마할 자격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아야 되는 사유가 되어야 하는지 제 스스로에게 자문하여 봅니다.

저는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정치개혁, 나라발전을 위해 불타는 애국심을 가지고 발버둥 치고자 하는 저 자신을 아직까지는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스스로 그럴 자신이 없으면 시민단체에서 이런 논란이 되기 전에 깨끗이 정치를 포기할 것입니다. 4년간의 고통스러운 정치생활에 회의를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이러한 과오를 수용하고 격려해주는 수많은 계양구민들을 비롯한 저의 의정활동에 지지를 보내는 전국의 국민들의 격려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단지 비겁한 도피가 아니라 저에게 주어진 소명과 책임감 때문에 이렇게 해명서를 보내니 저 자신뿐 아니라 국가와 서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깊이 참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4년 2월 4일
국회의원 송영길

* 필자는 전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 산하 청년학생위원회 실무활동, 전 한총련합법화 범사회인 대책위 집행위원, 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모임 총무로 활동중입니다.


기사입력: 2004/02/05 [23:5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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