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여성과 경제] 가사노동가치 160조원의 의미
 
이승훈(객원논설위원)   기사입력  2002/03/07 [02:42]
밖에서 일하지 않고 집안에서 가사만 하는 전업주부의 노동을 월급으로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받아야할까?

최근 여성부에서 무보수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가사노동의 가치는 연143조~169조원이나 되는 액수였고, 국내총생산의 30~35.4%나 차지하는 규모였다. 가사를 전담하는 전업주부 1사람당 평균 월 56만~64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IMAGE1_LEFT}우리 사회에서는 가사노동을 경제적으로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성조차도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그동안의 실정이다. 그래서 이 연구결과는 언론의 주목을 끌었고, 이 보고서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규모가 큰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이 연구보고서에서 발표된 액수가 축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가사노동의 가치가 이 정도의 규모가 될 것이라고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해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법과 각종 제도의 개편을 주장한 바 있다.

경제학에서의 비용이라는 것은 기회비용이라는 점, 전업주부가 아무리 무보수로 가사노동을 한다고 해도 주부가 가사노동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그 가사노동을 해야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정도의 규모가 나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다. 가정부를 하루 종일 혹은 한달 내내 일하도록 할 때 얼마나 많은 돈을 주어야할까를 생각해보면 위의 연구발표 결과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가사노동자로 가정부를 대체시키면 전업주부 1사람당 평균 월 56만~64만원이라는 액수는 오히려 적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가정부로서는 절대 제공할 수 없는, 가족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정의 평온하고 안락함까지 계산하면 가족의 가사노동가치는 훨씬 높아진다.

그리고 한국의 사회학에서는 이러한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외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사회학자인 앤터니 기든스는 그의 저서 '사회학' 에서 산업사회에서 전업주부들의 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전체 경제의 25~40%를 차지한다고 밝힌바 있다.

참고로 앤터니 기든스가 조사한 것은 전업주부의 노동가치의 경우만 그렇다는 것이다. 이번에 여성부가 조사한 연구보고서는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의 가사노동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다.

아무튼 이 연구조사결과에서 발표된 가사노동가치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 연구조사결과가 가지는 의미를 말하고자 한다.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관한 연구는 각종제도, 특히 이혼시 재산분할 청구권 등에 반영되어 경제적 약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 선진외국의 현실이다. 이 문제, 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연구와 재산분할청구권의 문제에는 경제학, 사회학, 법학 등 여러 학문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한국의 학계는 그동안 이 문제에 관해서는 사실상 임무를 방기해왔다고 할 수 있다.

여성부가 발표했듯이 이 연구결과는 전반적으로 여성지위향상과 노동의 성평등에 기여하며, 여러형태의 가정에 대한 정부정책지원의 자료로서 사용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와 관련해서 특히 이혼시 '재산분할청구권'의 문제와 간통죄와의 관계를 주목한다. 한국에서 이혼시 (여성이) 재산분할청구권을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최근인 1990년이다. 따라서 이제 겨우 10년 조금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재산분할청구권 제도라는 것에 사회학계는 물론 법학계에서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IMAGE2_RIGHT}식자 중에는 재산분할청구권이 생겼기 때문에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재산분할청구권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의 재산분할청구권에 대한 이해는 수준이 낮다. 재산분할청구권 제도가 생긴지 이미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재산분할비율에 대한 어떠한 명문규정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혼소송과정에서도 이 재산분할청구권 제도가 제대로 실행되고 있지 않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실제 이혼 시에는 위자료와 재산분할청구권상의 분할재산을 대충 뭉뚱그려서 집안일만 한 여성의 경우 부부 재산의 15%~ 35% 정도를 받는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우리 사회는 재산분할청구권이 실제법률문제에서 적용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위자료라는 말에 재산분할청구권이라는 말을 형식적으로 집어넣어서 재산분할청구권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별로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 사회는 재산분할청구권 행사로 평균 20%를 받는 셈인데 서구에서는 위자료는 별도로 하고 재산분할청구권상의 분할 재산만을 볼 때 1/3만을 가져가는 나라도 있기는 하지만 50%를 가져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재산분할청구권이란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사실상 빈껍데기인 것이다 민법상의 프로그램적 규정이라고 평할만하다. 따라서 이 재산분할청구권에 관한 법률을 정비할 것이 시급히 요청된다고 하겠다.

집안에서 가사만하는 전업주부는 최소한 재산분할비율이 다른 외국들의 경우처럼 전 재산의 50%를 받아야한다. 최소한 1/3 이상은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되어야한다. 가사노동가치가 벌써부터 최소한 1/3을 차지하기 때문이며, 거기에 혼인으로 결합된 부부공동체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전 재산의 50%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위자료는 별도이다. 이것은 인권의 문제이다.

이 재산분할 청구권에 관한 법률을 정비하면 집 밖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의 경제적 지위도 점차 향상되기 마련이다. 여자가 밖에서 경제활동을 잘 하도록 하는 것이 남자에게도 득이 된다는 사실이 사회 전반에서 인식되기 때문이다.

또한 간통죄 존폐와 관해서 역시 간통죄 문제에서 사실상의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면서 진보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간통죄란 결국 위자료와 재산분할청구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사노동가치 160조원이라는 연구결과가 한국사회의 전근대적 법률과 제도, 사회관습을 치유하는데 기여할 수 있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바란다.

ps: 필자가 위의 글에서 전업주부라고 한 것은 專業主婦와 專業主夫를 동시에 지칭한 것이다.

자유... 백수광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2/03/07 [02:42]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