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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병역거부토론회] 살생을 하지 않을 작은 권리
 
최정민   기사입력  2002/03/05 [22:50]
{IMAGE1_LEFT}"‘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양심, 사상, 종교의 자유에 속하는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로써 이미 해외에서는 그 타당성을 의심받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 권리는 어느 순간 국가적 이익과 충동했을 때 제한 받을 수도 있는, 아니 제한 받아 마땅한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린다. 그리하여 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오랜 동안 한국에서는 권리가 아닌 것으로 취급되어 왔으며 그 권리를 행사했던 많은 거부자들은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아왔다. 비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문제뿐만 아니라 양심과 사상에 관한 모든 개인의 불가침적 자유와 권리는 지금까지 폭력적 국가권력 아래 국가안보나 경제발전 등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보다 한 수 아래의 취급을 받아왔다. 특별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관해서는 그 피해자들이 대부분 사회 전체가 이단시 취급하고 있는 특정 종교의 교인들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인권은 더욱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국군창설 이래 60여 년의 기간동안 만 명을 헤아리는 피해자들이 존재했음에도 그 사정은 올 초 한 주간지의 기사 이전에는 제대로 일반사회에 알려지지 조차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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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2_RIGHT}운동사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남성운동가들이 군대에서 직접적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과 마주쳤음에도 이들의 인권보장을 위한 운동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결국 이 운동이 촉발되게 된 계기는 이렇게나 많은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던 것이 아니었다. 최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도‘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지난 해 아셈 민간단체 포럼에서 대만의 소식을 들으면서였는데 같은 아시아 국가이면서 중국과의 대치상황으로 군사주의가 강한 나라, 남성 중심의 사회 등등 많은 부분 한국과 비슷한 표정을 가진 국가에서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었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이후 자료를 모으고 피해 사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도 1600여명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현재 전국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숫자는 전 세계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관한 어느 자료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많은 규모이고 지금도 그들은 스스로 감옥행을 택하고 있으니 앞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인한 전과자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게 그 피해자들의 규모만 보더라도 벌써 몇 번쯤은 사회가 발칵 뒤집혔어야 했고 그 오랜 기간을 봤을 땐 벌써 이들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사회적 합의가 있을 법도 했는데 지금에서야 겨우 그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남북관계와 분단상황을 필요에 따라 과도하게 들먹이며 반대의 쌍수를 드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이단에 대한 특혜 어쩌구 하는 여론이 들끓는 것으로 봐서 한국 사회 저번에 아주 두껍게 깔려있는 보통과 다수결이 아니면 조금의 땅도 허용되지 않는 무서운 전체주의적 습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진짜와 가짜, 정통과 이단을 쉽게 구분하고 나와 다른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활용하는... 하지만 과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특정 종교인만의 권리인가? 살상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모든 종교와 그 종교를 믿는 교인들에게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해당되지 않는 권리인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행동을 하는 이들의 인권은 무시되어 마땅한 것인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란 양심의 이유로 징집과 같은 병역의무를 거부하거나 전쟁 또는 무장충돌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하며 이를 행할 수 있는 권리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인간이 누려야할 기본적인 인권으로 자리잡고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좁게는 징집에 응하지 않는 직접적인 거부행위에서부터 넓게는 군대 혹은 전쟁과 관련된 모든 행위를 거부하는, 예를 들면 무기를 디자인하는 등의 행위 모두를 거부하는 것까지를 포괄하는 넓은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약 40여 개국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헌법 및 각종 하위법을 통해 인정하고 있으며, 이들 나라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내 비전투 분야 복무나 혹은 양로원, 장애인 시설 등의 사회복지 기관에서 국방의 의무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대체복무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유엔차원에서도 이미 1980년대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각 국가에 이를 인정할 것을 호소하였으며 이후 몇 차례의 결의를 통해 이 권리를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명시하였다. 이후 유엔인권위원회는 단순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의 인정을 각 나라에 호소하는 수준을 넘어 국가의 의무와 연결시키며 양심상의 이유로 이들을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유럽인권규약 제9조에 의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유럽의 나라들에 각 나라별 국내법과 관행을 변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 국제 인권단체인 엠네스티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징집대상자로서 양심상의 이유나 종교적, 인종적, 도덕적, 인도주의적, 정치적 또는 유사한 동기로부터 나오는 깊은 신념에 따라 군복무 혹은 다른 직간접적인 전쟁 및 무력 행위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국제엠네스티, 1991년).‘ 국제엠네스티는 또한 위 정의에 따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그러한 행위로 인하여 구금 또는 투옥되었을 경우 그 사람을 양심수로 간주한다.

1998년 4월 유엔인권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과 관련 결의한 77호-본 결의안의 주요 내용은 ‘징병제와 군복무의 실태 및 대안모색을 위한 워크샵’(2001년 3월) 자료집 중 「인권으로서의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덧붙이는 얘기들」(이대훈)에서 재인용하였음.채택. 유엔 회원국은 이를 사회에 알리고 준수할 의무를 지닌다. 물론 한국도 이것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

<결의안의 주요 내용>
* 1995년 유엔인권위 결의안 등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정당한 인권으로 인정된 사실을 상기해야 하며,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행위는 양심에 기초한 이성과 원리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 병역 복무 중에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며,
* 세계인권선언 14조에 따라 모든 사람이 박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하며,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세계인권선언 18조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에 따른 모든 사람에게 부여되어야 할 정당한 권리라는 점에 관심을 촉구하며,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없는 국가들이 병역거부자의 신념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고 독립적이고 편견 없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기관을 설립할 것을 촉구하며,
* 각국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위하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취지에 합당한 민간봉사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며,
* 각국은 병역거부로 인해 거부자가 투옥이나 반복된 징계를 받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 각국은 병역거부로 인한 박해를 피해 자기 나라를 떠난 사람들에게 난민으로서의 보호를 취하도록 권장하며,
* 병역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신청절차에 관한 정보가 쉽게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 유엔 사무총장에게 본 결의안이 각국 정부, 유엔 전문 기관, 관련 정부간 기구 및 비정부조직에게 전달되도록 조치하기를 요청하며,
* 차기회의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 의제를 계속 심의할 것을 결정한다. (1998년 4월 22일)

<위 결의안에 따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보장되어야 할 주요 권리>
* 독립적이고 공정한 기관에서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
* 난민 보호를 신청할 권리
* 비보복적 성격의 민간봉사를 선택할 권리
* 복무 중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할 수 있는 권리

대체복무제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는 대다수의 나라들은 이들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으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도입된 시기나 각 국가별 특성으로 이러한 제도의 내용은 천차만별이나 대체적으로 군사분야와 관련 없는 사회봉사 분야에서 이들이 병역의 의무를 대체하여 사회적으로 차별 받지 않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양로원이나 장애인시설, 간호 역종 등에 가장 많은 민간봉사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복무기간은 현역병보다 조금 길다. 대만의 경우 이들의 복무기간이 1.5배 길지만 독일의 경우는 1달이 길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거부자 자신의 신념의 문제이므로 이들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고 따라서 대체복무기간이 현역병에 비해 너무 길면 처벌이 된다는 것이다. 국제사면위원회의 경우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는 나라에서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병 복무기간의 1.5배 이상 길 경우 이를 거부하는 거부자들을 양심수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이들 대체복무자들이 복지국가 독일을 이룩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을 이미 알려진 사실이며 아직까지 대체복무제도 도입으로 군 기피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던지 하는 큰 폐해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국가의 징집 자체를 거부하는 완전거부자들의 문제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또 대만의 현재 상황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이 제도의 도입 초창기에는 양심을 규정하는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심사하는 심사위원회의 구성에서부터 논의과정의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사회봉사 분야의 문제, 고용의 문제, 대체복무 기간의 문제 등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도출되고 실지로 이 제도를 시행하는 데 관련법규만 100가지 이상을 고쳐야 하는 등 사회전체 시스템의 문제가 제기되고 도입 이후에도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개선되어져 나가야 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아주 오랫동안 시행해 왔고 이제 징병제 폐지의 기로에 선 혹은 최근 폐지된 유럽 나라들은 이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부끄럽거나 남성답지 못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따라 충분히 선택 가능한 보편적 권리로 자리잡았으며 개인의 양심에 차별을 두지 않고 절차가 까다롭지 않으며 독일의 경우 신청서의 서면제출, 90% 이상의 인정 등으로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전체 병역의무자의 30%에 이른다고 한다.

이쯤에서 그런 나라들이야 다 속편한 나라니까 그렇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는 어림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속 편해 보이는 이런 나라들의 대체복무제도 도입 시기는 현재 한국의 남북대치 상황보다 더욱 긴박했으면 긴박했지 별로 덜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독일의 경우 1960년 냉전체제 하에서 이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이스라엘이나 대만의 상황도 군사적 대치 상황은 심각하고 국민 모두가 안보에 대한 철저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다.

대체복무제도와 안보개념의 전환

초창기 병역거부자들은 총살형에 처해지기도 했고 갖은 고문과 장기간의 감옥생활을 겪어야만 했었지만 지금은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에서 이들 거부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대체복무제도라는 제도를 마련,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양심상의 이유로 군 입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주고 병역거부 행위로 인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군에 입대하는 대신 다른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으로 국방의 의무를 대신하게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국가별로 역사적으로 다양한 수준과 범위에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아주 간접적으로라도 군대나 전쟁과 관련된 일이 아닌 순수한 민간차원의 활동이 주가 되며 그 기간도 현역병 복무기간보다 약간 길되 너무 길어서 징벌적 성격을 띄지 않는다.

이러한 대체복무제도 도입에는 이들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수준 높은 인권의식과 함께 기존의 전통적 안보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각도로 안보를 해석할 수 있다는 보다 발전된 안보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 국가의 안보가 과연 힘 혹은 무장력의 우위로서만 판가름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는 것으로서, 군사력의 신장을 통한 국가안보는 결국엔 엄청난 무기경쟁을 낳을 수밖에 없고 동반자적인 공동체 의식보다는 국가간의 적대성을 강화시키는 결과만을 낳을 수밖에 없으므로 기존의 전통적 국가안보관은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많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들 전쟁의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종교분쟁, 불평등한 무역, 실업, 성적 불평등, 아동착취, 열악한 노동조건에 기반한 수출주도형 경제 등 대부분이 민중에 대한 모든 억압적 요소와 구조적 폭력, 환경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이러한 분쟁의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국가, 국민 나아가 전 세계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북한과의 관계에서 지금은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주적 개념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이렇게 군대나 군사력에 관한 논의만 시작되면 제일 먼저 국방부나 반대세력에서 들고 나오는 얘기가 바로 북한의 존재이다.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면 누가 군대를 갈 것이며 누가 나라를 지키겠냐는 것이다. 백 번 양보하여 군사력의 신장만이 북한군의 남침을 막아낼 수 있다는 군사주의자들의 신념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지금 현재적 상황에서 한국군의 모습은 위에서 얘기했던 안보개념의 전환과 대체복무제도 바로 그 모습을 띄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군은 15만여 명의 현역 군입대자 중 절반에 달하는 7만여 명이 공익근무요원, 산업기능요원, 예체능특기자, 해외봉사협력요원 등의 비전투 분야의 병역활동으로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일정 기간의 군사훈련을 받지만 고작 몇 주의 군사훈련을 받고 안 받고의 차이가 병역거부자들을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서 감옥에 보내야 할 만큼 국방력에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인지 오히려 되묻고 싶다. 오히려 우리는 이미 이러한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므로 맘만 먹는다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기존 대체복무제도의 개선은 가까운 아시아 국가 대만보다 더 빠르게 진척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피해자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해줄 어떠한 대안도, 논의도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여호와증인의 권리고 기독교 신자의 권리도 그 어떤 특정 종교 신자의 권리도 아닌 보편적인 ‘인간‘들의 권리인 것이다. 지난 12월 17일 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씨는 그 존재 자체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개인의 양심은 신념 그 자체이지 이것을 놓고 옳다, 그르다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옳은 양심, 그른 양심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 다른 개인의 양심이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의 양심은 다양하며 또 내심에 머무르지만 않고 다양하게 표출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나와 틀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았다.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구실도 많았다. 그 속에서 다른 양심이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본보기로 처벌받았다. 이들을 처벌함으로써 그리고 처벌을 통해 남은 사람들을 교육함으로써 감히 다른 양심이 표출되지 않도록 아니 아예 다른 양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였다.

오태양씨의 병역거부 선언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확보하기 위한 운동은 또 한 국면을 넘어섰다. 지난 1년 동안 몇몇 거부자들에 한해 형량이 줄고 위헌제청심판이 받아들여져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앞두고 있는 등 사법계의 성과와 시민․사회운동 차원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위한 연대회의 발족 등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실존하기보다는 내 안에 존재하는 가상의 적을 통한 또는 일상적인 집단화 교육을 통한 군사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아직까지 양심의 자유 혹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무언가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흔한 주제도 흔한 행동도 아니다. 양심에 꺼리더라도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혹은 좀 더 큰 대의를 위해서 사소한 문제들은 그냥 넘어가곤 했던 우리의 문화에서 특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너무 버거운 주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를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운동은 입영을 앞둔 남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광범위한 영역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예비군 훈련에서 사격 훈련을 거부하는 것, 아이들에게 무기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것, 군사분야와 관련된 자료 및 홍보물의 부착을 해당 공간에서 거부하는 것 등 아주 다양한 분야의 운동이 가능하다. 잠시 접어두었거나 아니면 몰랐거나 아니면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우리의 양심에 따른 행동은 아주 조그만 곳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

* 필자는 평화인권연대 활동가로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 본문은 지난 3월 4일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 등에서 주최한 [불교의 평화사상으로 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토론회] 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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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3/05 [22:5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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