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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가족] 나, 모두와 함께 번영하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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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진   기사입력  2002/03/13 [20:42]
경기도 화성의 산안마을은 ‘나, 모두와 함께 번영한다’는 이상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아니 공동체라기 보다는 각기 다른 남남이 모여 내남없이 살아가는 한가족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산안마을은 1984년 윤성렬(55) 기숙향(50) 부부를 비롯한 뜻맞는 몇몇의 실험적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러 지금은 50여명이 함께 살고 있다. '야미기시즘 실현지‘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50년대초 일본인 야마기시 미요조라는 사람이 시작해 널리 퍼진 전인행복운동의 결정체로 지금은 한국, 일본, 브라질, 독일, 스위스, 호주, 미국 등 여러 나라에 그 실현지가 있으며 각국의 교류도 매우 활발하다.


농부, 교사, 사회운동가, 종교인, 직장인 등 각각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모여 한식구가 되면서 이들이 갖게 되는 가족의 개념은 혈연을 뛰어넘는 ‘우리모두’이다. 이곳엔 여타의 공동체들이 갖고 있는 규정이나 규약이 없다. 권리나 의무 또한 없다. 그런 것은 사람들이 사이좋게 살아가는데 오히려 불편할 뿐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질서는 ‘사의존중공의행(私意尊重公意行-개인의 의견은 존중하고 공동의 뜻을 행한다)에 의해 만들어진다. 아직은 50여명의 적은 숫자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 아니겠느냐는 물음에 그들은 1700여 명이 문제없이 살고 있는 일본의 실현지가 그에 대한 답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갖게 되는 이에 대한 의구심은 어쩌면 살면서 익숙한 것과, 경험하지 못한 낯선 것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안마을에 들어올 때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가지고 오지만 소유는 없다. 필요한 물품은 공동구매하여 함께 사용하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물품은 생활부에 신청하면 사다준다. 돈이 필요하면 이야기하고 가져간다. 그러나 이곳에선 돈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곳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대략 두가지다.
첫째는 종교집단이 아니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회주의자들이 아니냐는 것. 그러나 이곳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또한 소유문제를 제도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사회주의자들도 아니다. 이에 대해 처음부터 이 운동을 함께 시작했던 윤성렬씨는 ‘지적혁명, 즉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이 보다 성숙해 소유와 행복이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소유문제를 해결하는 보다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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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농장의 주생산물인 2만여수의 닭을 치며 달걀을 거두는 양계부를 비롯, 살면서 필요한 건물을 짓거나 설비를 맡고있는 건설부, 각종 채소류를 생산하는 채소부, 된장, 고추장, 참기름 등을 만드는 가공부, 아이들을 돌보는 학육부, 빨래, 요리 등을 책임지는 생활부, 생산물을 소비자에게(여기서는 활용자로 부른다)공급하는 공급부 등으로 나누어 각자 맡은 일을 한다. 물론 이곳의 모든 생산물은 인간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무공해’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무공해란 개념조차도 없다. 일은 6개월마다 전체 회의를 통해 자동해임 형식으로 맡은 일이 바뀌기 때문에 모든 일에 있어서 기회가 균등하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일이 있다. 한가족이 된 동생들과 토끼를 돌보기도 하고 닭장에서 달걀을 꺼내오는 일을 하기도 한다. 도시의 아이들이 이곳저곳 학원을 전전할 때 이곳의 아이들은 자연을 통해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느낀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이곳을 여자와 아이들의 천국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가사노동과 육아,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각종의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유로와진 사람들은 그 여유를 다른 가족들에게 베푼다.

산안마을 소식지에 실린 김현주(39)의 다음글에서 그런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아이를 낳은 엄마가 퇴원해서 돌아오던 날,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는 방과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메모, 그 감동과 마음이 다음 사람에게로 이어지고... 학육부의 큰형 , 언니들도 나름대로 분주합니다. 이름 지으랴, 아기와 산모에게 선물공세하랴. 선물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너무 재미있습니다. 큰 아이들의 색종이 모빌은 그런대로 아주 훌륭합니다. 색색이 맞추어 접은 모빌을 아기 머리 맡에 달아주면 아기도 퍽 좋아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너댓살짜리들의 선물은 너무 대견한 것들이었습니다. 산책길에서 발견한 신기한 물건은 몽땅 선물 목록에 포함됩니다. 심지어는 누가 잃어버린 귀고리  한짝까지도 그야말로 보석처럼 빛나기에 어김없이 선물로 포장되어 배달됩니다...”

연찬(硏鑽)은 이곳 사람들의 주요 일상생활이다.
일과를 시작하기 전의 아침모임, 차를 마시며 일상사를 나누는 오후의 휴식시간,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 관심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특강 등 모든 사유의 행위를 일컬어 이들은 연찬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7박8일의 연찬과정을 거친 후 14박15일의 연찬학교에 참여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이곳 식구들의 합의를 얻어 들어오게 된다.

산안마을에 들어오기 전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사회운동에 열심이었던 서혜란씨는 4년 동안 시어머니와 남편, 아이들과 함께 들어와 살면서 느낀 바를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기서 살다보니까 일반 노인의 소외감, 무력감, 무능력, 이런 게 없어졌어요. 여기에서는 노인의 가치가 찾아지죠. 그분들이 가진 경험이나 여타의 것들이 결코 무시되지 않아요. 노인이라서 그렇게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분들이 가진 역할과 가치를 존중하게 됩니다.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 또한 놓칠 수 없는 감동입니다. 일반고등학교에 다니던 큰아이가 이곳에 와서 농고로 편입을 했는데 오로지 공부와 시험성적에 매달리던 그전의 모습이 아니에요. 한번은 학교를 결석해야겠다고 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지금은 농번기라 농사일이 학교 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그래요. 여태까지는 장래에 무엇이 될까를 많이 생각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면서 열심히 살것인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그래서 아!아이들이 많이 달라졌구나 느꼈지요.”

그러면서 서씨는 ‘야마가시 운동이야말로 새로운 사회를 위한 실천적 대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이념과 제도를 통해 만들어지고 이어져온 인간의 삶의 방식이 21세기에는 어떻게 변할 것이며 또 다른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필요한 지금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의 유토피아 또는 이상향을 구체적인 이념과 실천으로 만들어 나가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산안마을과 야마기시운동에 대해서는 이 사이트(www.yamagishism.co.kr)를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 사진은 산안마을 홈페이지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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