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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제발 내버려 두어라
 
조약골(편집위원)   기사입력  2002/03/12 [14:20]
끔찍한 상상을 하나 해보자. 만약 한국어로 되어 있는 인터넷 웹사이트들이 모두 똑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 색깔도 모두 똑같고, 구조도 모두 같고, 심지어 아이콘과 배너 등 이미지 파일까지 모두 동일하고, 그 속에 들어가는 내용만 조금씩 다르다면 어떨까?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 사용을 당장 그만둘 것이다. 너무 획일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상상은 실제 인터넷 상에서는 그대로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이런 획일화는 실제로 이 사회에서 오랫동안 벌어져왔고, 지금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붕어빵을 찍어내듯 획일적인 인간형을 양성해온 한국의 교육제도를 보라. 아니, 당장 군대의 연병장을 떠올려보면 알 것이다. 모든 다양성을 상실한 그 숨막히는 획일화의 모습을 말이다. 줄과 열을 맞춰 마치 도미노가 차례차례 늘어서듯 정렬해 있는 월요일 아침 애국조회 시간의 학생들, 혹은 그렇게 도열해 서있는 군인들.

이제 높은 단상에 올라 모두 하나로 보이는 이 어린 학생들을 굽어보는 교장의 입장이 되어보자, 또는 손가락을 한 번 까딱이면서 수백 수천의 졸병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하며 흐뭇해하는 단상 위의 지휘관의 입장이 되어 보자.

획일적이란 것은 결국 소수의 지배자들이 다수의 피지배자들을 훨씬 용이하게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직도 이 사회 한 켠에 획일적인 모습이 남아 있다는 것은 동시에 다른 쪽에서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까딱임으로 일사분란한 통제를 가하고 있을 지배자가 있다는 말이다.

{IMAGE1_LEFT}이제 마약 문제로 넘어가 보자. 놀랍게도 마약에 관한 한 이 일사분란한 통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마약에 관한 담론은 정말 놀랍게도 군인들이 입는 제복만큼이나 획일적인 모습을 보인다. 즉, 마약은 끊을 수 없는 중독을 유발하고 당장 몸이 병들며 각종 범죄에 연루되므로 결국 개인을 파멸로 이끌고 나아가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물질이기 때문에 공권력을 동원해 철저히 금지시켜야 한다는 것이 마약에 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알량한 담론의 전부이다.

그래서 예를 들면 유명 연예인이 마약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뉴스가 나올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보아 두 가지로 제한된다. 하나는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 또 하나는 비록 실수로 마약을 하게 된 것은 잘못이지만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에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 이런 입장은 황수정이나 싸이, 심신, 등 소위 공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돈 많은 유학생이 환각파티를 벌이다 적발되든, 이주 노동자가 마약 밀거래를 하다가 적발되든 간에 법은 마약으로 잡힌 사람들을 준엄하게 심판할 것이며, 이런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을 반성하고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 이들 범죄자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약에 관한 한 한국은 아직 원시적이고 획일적인 사회라고 불러 마땅하다. 이것은 마치 정부의 명령에 아주 미미하게 거부하기만 해도 "공산당"으로 몰려 모든 권리를 통째로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히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암울한 과거를 연상케 한다. 문제는 그 암울한 과거가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있다.

독재와 자본의 횡포에 대항해 투쟁해 온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힘입어 빨갱이 콤플렉스는 이제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다고들 한다. 한국 사회가 균형있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좌우의 두 날개로 날아가는 새처럼 다양한 사상이 자유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믿음이 확산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마약의 사용은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이므로 국가가 나서 간섭할 문제는 아니니 마약에 관련된 각종 법률을 폐지시키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접하면 순식간에 사람들은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는 반응을 보인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 등급제는 나쁜 것이며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할 것이며, 이와 관련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위에 참가하기도 한다. 이들은 또 국가보안법은 국가가 나서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이므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국가의 통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내용을 국가가 통제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대자보를 읽는 양식있고 진보적인 시민들의 반응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마약이라는 단어에 드리워져 있는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에 힘입은 바 크다. 사실 "마" 자로 시작하는 말 중에는 무섭고 음침한 말이 많다. 마귀, 마왕, 마녀, 마수걸이, 마이크로소프트, 하필 마르크스도 마로 시작하며, 이밖에 마취, 마피아, 마초 등등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이런 부정적인 단어들의 선두에 마약이 있는데, 그렇기에 마약이라는 말만 들으면 마치 반사신경이 반응하듯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이미 선악에 대한 판단을 내려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약에 대한 이 끔찍하고 암울한 획일화는 이제 그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대신 마약에 대한 좀더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합리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인지 숙고해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법으로 단죄하고 있는 마약류는 양귀비나 아편 등의 마약과 향정신성 의약품 및 대마를 지칭한다. 이중에서 암스테르담에서는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전인권, 강산에, 싸이 등의 사용하여 문제가 되었던 대마초(마리화나)는 특히 논란의 여지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프랑스 국립 위생의학연구소가 마약류에 관해 작성한 보고서와 관련한 신문 기사를 보자. 이 보고서는 놀랍게도 1998년 6일 17일치 조선일보 사회면 에 실려 있다. 이 연구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표는 다음과 같다.

마약류에 관한 이 보고서에 의하면 술은 코케인, 헤로인 등과 같은 1급의 위험성을 지닌 마약류로 분류되며, 담배는 대마초보다 더 해롭다고 한다. 그 보고서는 마약류를 세 그룹으로 분류하는데, 위험도에 따라 1급에 헤로인, 코케인, 알콜 2급에 심리자극제, 환각제, 담배, 정신안정제 그리고 3급으로 대마초를 열거했다.

[황수정 관련 스포츠조선 기사] 황수정 히로뽕 수차례 복용 혐의 구속 (2001. 11. 13)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강한 의문이 든다. 즉 중독성이 매우 강하고, 특히 건강에 매우 해로우며, 인간의 정신을 피폐화시켜 결국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알콜은 사회적 위험도가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법으로 허용되는데 이와는 달리 많은 의사들이 임상 실험을 통해 밝힌 바 여러 통증을 완화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마리화나는 왜 금지하는가?

술만 먹으면 자식들과 아내를 두들겨 패는 폭력적인 남자의 이야기는 많다. 술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애꿎은 희생자들의 삶을 앗아가는 뉴스는 거의 매일 접한다. 그럼에도 알콜이 합법이고 마리화나가 불법인 것은 법의 모순일 뿐만 아니라 마약에 관한 한국의 폐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최소한 마리화나가 왜 법률로 금지되는지, 무슨 효용가치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법률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금지를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는 유신시절의 악랄했던 반공법, 혹은 사회안전법과 같은 악법을 묵묵히 따르며, 민주화 투쟁을,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노력을 공산당의 사주, 빨갱이의 만행으로 비판하는 것과 같은 무식한 태도이다.

동네 강아지도 손쉽게 살 수 있는 알콜에 비해 위험성도 낮고 중독도 매우 약한 마리화나가 완전히 불법으로 묶여 있는 것은 한마디로 마약에 대한 규제를 손쉽게 함으로써 사회를 통제하려는 권력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화나는 미국에서 1937년에 재배, 사용, 판매가 법(바로 the Marijuana Tax Stamp Act)에 의해 금지되었다. 이것은 마리화나의 높은 생산성 때문에 위협을 받게된 종이 제조업자들이 목숨을 걸고 벌인 치열한 로비 때문이었다.
그러나 5년 후인 1942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군수 물자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미국은 한시적으로 이 법을 제한하여 마리화나를 합법화하지만 전쟁 후 다시 금지시켰다. 이 법이 해방 후 새로 헌법을 제정하던 한국에 그대로 수입된 것이다. 미국은 최근 여러 주에서 마리화나의 의학적 효과를 인정하고 환자에게 처방하는 것을 합법화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이런 경향은 그 법률을 그대로 빼다 박은 한국에서는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열등국의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한국이 수입한 일본식 영어 단어 '화이팅 fighting'은 정작 그 단어를 만든 일본에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데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살아남아 국민적 애용어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즉 예전 무식하던 시절에 선진국에서 무작정 수입한 것이 지금 선진국에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또다시 비주체적으로 따라하지는 않겠다는 자존심 말이다.

마리화나는 마약류의 하나로 분류되지만 이것은 법적으로만 그러할 뿐 사실은 엄밀한 의미에서 마약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약이라고 하면 끊을 수 없는 중독을 유발하고 당장 몸을 병들게 하며 각종 범죄에 연루되어 개인을 파멸로 이끌고 나아가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는 권력자들의 설명, 즉 의심하지 말고 그저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알고 지내라는 명령은 황색 언론의 선정적 보도 태도와 마찬가지로 이젠 정말 짜증나게 한다.

답? 답은 간단하다. 마약에 대한 규제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술에 취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술 마시는 것을 법으로 규제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마약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코케인을 투약하고 환각 상태에서 차를 몰다가 사고를 내면 단죄하면 된다. 황수정이 괴로워서 히로뽕을 복용했든 모르고 마셨든, 섹스의 쾌감을 높이기 위해 최음제를 사용했든 안 했든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황수정이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다면 개인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여 그럴 권리가 그녀에게는 있다. 다른 마약 복용자들의 권리 역시 마찬가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마약을 한 사람을 범죄를 저지른 죄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환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약사범이라는 단어에서도 이미 마약 사용을 범죄로 취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 역시 공산주의에 대한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법의 처벌을 받아야 했던 지난 폭력적이었던 시대의 잔재이다. 마약을 사용한 사람의 경우 환자로서 재활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마약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방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약에 대한 규제를 하지 않으면 마약 거래에 관한 각종 조직폭력배들의 범죄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이 문제는 밀수와 이권 다툼에 따른 살인 등 마약 관련 범죄는 마약이 불법이기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술이 불법이었을 때 이와 똑같은 범죄가 판을 쳤지만 지금 이런 문제는 거의 없지 않은가?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 중 하나가 호기심이다. 금지된 것을 넘보려는 것. 이것을 어떻게 법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마약, 그저 내버려두고 볼 일이다.

[관련기사]
황수정 우리가 원하는것 / 변희재 대자보 69호


* 본 글은 대자보 69호(2001.12.10)에 발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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