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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뫼 허웅선생님! 평안한 소천되소서!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우리말을 지키며 살아 가겠습니다
 
이대로   기사입력  2004/01/28 [20:03]

눈뫼 허웅 스승님, 기어이 하늘나라로 가셔야 합니까. 산더미처럼 쌓인 우리말 문제를 놔두고 우리 곁을 떠나시렵니까.  우리말과 한글을 짓밟는 나라안팎의 무리들이 날뛰고 있는 데 우리만 놔두고 눈을 감으십니까. 태어나면 언젠가 이 땅을 떠나는 게 사람의 삶이라지만 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신다니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눈뫼 허웅     ©YTN
2년 전 사모님께서 돌아가신 뒤 눈에 띄게 건강이 좋지 않으신 것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가시진 않을 줄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서 길을 가르쳐주고 힘을 실어주실 줄 알았는데 빈소에서 꽃 속에 파묻힌 님의 사진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제가 님을 처음 뵌 건 60년 대 전국대학국어운동학생연합회 활동을 할 때였습니다. 님께서 우리 모임의 지도교수님으로서 외솔 선생님과 함께 우리 학생들을 잘 이끌어주셨기에 국어독립운동 새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를 시작으로 제가 사회인으로서 시민운동 모임을 만들고 국어독립 운동을 열심히 하는 동안 님이 계셨기에 저는 든든했고 한결같이 뛸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수십 년 동안 님을 모시고 한마음 한 뜻으로 함께 우리말과 겨레를 걱정하고 국어운동을 할 수 있었던 건 큰복이고 영광이었습니다.

초등학교 한자교육반대, 한자혼용반대, 한글날 공휴일 제외 반대, 국회의원 한글명패 쓰기, 한글전용법 폐기 반대, 한글날 국경일 제정, 한자병용 추진 반대, 영어 공용어 반대, 최근의 한자교육진흥법 반대 운동과 친일파 청산운동에 이르기까지 님은 젊은 사람보다 더 뜨거운 가슴과 명석한 머리를 가지고 앞에서 끌어주시고 뒤에서 밀어주셨습니다. 우리 말글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넉넉하고 따뜻한 웃음과 조용한 말씀으로 힘을 주셨습니다.

님과 함께 한자파에 맛서 한글을 지키기 위해 힘쓰던 지난 날 저는 님으로부터 많은 걸 배우고 느꼈습니다. 학교 공부나 학문은 님으로부터 배우지 않아서 학문에 대한 업적은 잘 모르지만 나라사랑 겨레사랑정신을 배우고 함께 국어운동을 하면서 인격과 애국심이 남다른 분임을 알고 감탄했고 마음 든든했습니다. 이 세상에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님은 우뚝 솟은 큰 어른이셨습니다. 세상과 또 다른 이들이 님의 머리와 정신을 따라가고 알아주지 않는 게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저에겐 8년 전 먼저 돌아가신 공병우박사님과 함께 눈뫼 허웅 교수님은 국어운동의 큰 스승이고 울타리였습니다. 이 땅을 떠나시는 순간까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말글과 겨레를 위해 힘쓰시는 모습은 어떤 책보다 감명 깊고 거룩했습니다. 제 삶의 큰 스승 두 분 모두 하늘나라로 가시니 끝없는 벌판 길에 혼자 서있는 심정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부르심으로 떠나신 두 분의 발자국을 따라 저도 죽는 날까지 묵묵히 가겠습니다. 살아 계실 때 모자란 저를 과분하게 사랑해주시고 믿어주신 두 분께 부끄럼 없도록 변함 없이 국어독립운동을 하겠습니다. 아니 더 신나게 열심히 할 것입니다.

지난 해 10월 한글학회 사무실에서 국회에 들어가 있는 국어문제 법안 대책을 의논드릴 때 님께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말글을 지키기 위해 여러 곳에 쓰신 글과 말씀을 모은 책, '이삭 줍는 마음으로 '를 힘든 모습으로 제게 말없이 주셨습니다. 그 때 저는 "이제 난 말할 기운도 없으니 안타깝다. 여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다 있으니 앞으로 네가 알아서 잘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저도 묵묵히 이삭줍는 마음으로 죽는 날까지 국어운동을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고 그 책을 옆에 두고 읽으며 앞으로 할 일을 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 했는데 앞으로 스승님처럼 마음놓고 기대고 의논드릴 든든한 다른 어른이 떠오르지 않아 걱정됩니다. 스승님의 호, '눈뫼'의 뜻이 눈 덮인 뫼(산)인데 스승님은 눈 덮인 백두산 같이 우러러 뵈는 큰 어른이었고 겨레의 스승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언젠가 일반국민이 알지 못하는 낫선 외국말을 마구 쓰는 신문과 방송을 보면서 "일생동안 한국말 공부를 한 나도 한국 방송과 신문에 쓴 말을 알아보기가 힘들 때가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하시며 외국말을 멋대로 쓰고 지나치게 영어를 떠받드는 세상 흐름을 가슴아파하시던 모습을 보고 이 나라 최고의 국어학자도 알아보기 힘든 국어생활을 바로잡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움직인 기억이 떠오릅니다. 

눈뫼 스승님! 그토록 우리말과 겨레를 걱정하시고 지키기 위해 애쓰셨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시게 되니 가시는 길이 편치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님은 이 땅에서 세종대왕과 주시경, 외솔, 한결, 공병우박사님들처럼 우리 국어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국어독립이 한 두 사람이 그 세대에 끝낼 수 없이 큰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하늘나라에 가시면 먼저 가신 분들을 떳떳하고 반갑게 만나 편안하게 지내소서. 이제 이 땅에 살아있는 이들이 이어가면서 최선을 다해 못 이룬 꿈을 이룰 것입니다. 님이 가셨다고 주저앉아 슬퍼하고만 있지 않고 더 세차게 싸우고 움직일 터이니 아무 걱정 마시고 편안히 가소서. / 본지 고문

2004년 1월 28일
눈뫼 스승으로부터 국어사랑 겨레사랑 정신을 배운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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