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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더욱 새롭게 / 김삼웅
 
김삼웅

갑신년 설이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다시 맞는 설이지만, 설은 추석과 함께 여전히 한국인의 최대 명절인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본래 ‘설’ 이라는 어원은 ‘설다’, ‘낯설다’ 등의 ‘설’ 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 새해에 대한 낯설음, 즉 새해라는 문화적인 시간의 충격이 강하여서 ‘설다’는 의미로, ‘설은 날’로 인식된다.

예부터 설을 ‘신일(愼日)’ 이라 하여 “삼가하고 조신하는 날”로 생각해왔다. 새해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날이므로 삼가고 조심함으로써 지혜롭게 신년을 맞는다는 뜻이 담긴다.

설이 언제부터 우리의 최대 명절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중국의〈수서〉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군신을 모아 잔치를 베풀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고려사〉에도 9대속절(九大俗節)의 하나로 기록되었고, 조선시대에는 4대 명절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일제시대 우리말 우리글 우리의 성과 이름까지 빼앗기면서 설도 못 쇠게 되었다. 그러나 민중들은 총독부의 감시와 단속에도 양력설은 일본설, 음력설은 조선설이라 믿으면서 몰래 설상을 차리고 설 명절을 지켜왔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음력 대신에 양력을 쓰게 된 것은 1895년 (고종 32)이다. 김홍집 내각은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내정개혁에 착수하여 개국(조선왕조) 504년 11월 17일(음)을 건양(建陽) 원년 1월 1일로 하여 양력을 채용하는 동시에 전국에 단발령을 내렸다.

양력설이 일본설로 인식하게 된 것은 이때 일본의 작용으로 양력 채용과 단발령이 내려지면서 생기게 되었다. 단발령 반대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저항으로 전국적인 의병운동이 일어나고 일제와 치열한 의병전쟁이 전개되었다.

해방 후에도 양력이 국가의 기준력으로 사용됨으로써 양력설은 제도적으로 지속되어 왔다. 1989년까지 양력 1월1일부터 3일간이 공휴일이 되고, 음력 설인 고유의 설이 엉뚱한 ‘민속의 날’로 지정되었다. 일제시대부터 민족의 고유한 설이 ‘이중과세’를 이유로 탄압을 받고 ‘민속의 날’로 푸대접을 당하다가 1989년 2월1일 정부가 국민의 여론을 받아들여〈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고쳐 음력 1월1일을 전후한 3일을 공휴일로 지정촵시행하면서 설은 민족 고유의 명절로 부활되었다.

그러나 설을 다시 찾았지만 설날 고유의 의미와 전통은 회복되지 못한 듯 하다.

그냥 며칠 동안 노는 날이거나, 모처럼 고향을 찾아가는 날 정도로 치부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거나 가족끼리, 친구끼리 모여 술타령 아니면 고스톱으로 소일하는 것이 일반적인 설날의 풍습이다. 설 명절의 대표적인 민속놀이 중에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남녀노소, 가족 친지가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윷놀이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가정에서나 마을에서 공동체의 유대와 친목을 도모하는 행사로 윷놀이를 즐겼다. 손녀와 할아버지가 짝을 이루고 손자와 할머니가 짝을 이뤄 던지는 윷가락은 거의 다 끝난 승부를 몇 차례의 도가 뒤집어 한숨과 환호가 교차하는 극적인 장면을 낳기도 한다.

민간의 새해 초에 즐기던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백제의 관직명인 저가 구가 우가 마가 대사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며, 또 고구려의 5가(五加:동·서·남·북·중앙)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한다. 이밖에 어느 장수가 적과 대치하던 중에 야밤을 탄 적군의 기습을 경계하여 병사들이 잠을 자지 못하도록 이 놀이를 창안하였다는 말도 전한다.

윷판의 동그라미가 왜 29개인가에는 설명이 구구하다. 이에 대해 조선시대 김문표는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 뜬 것이요, 안의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니, 즉 하늘이 땅바닥까지 둘러싼 것이다. 별의 가운데 있는 것은 추성(樞星)이요, 옆에 벌려 있는 것은 28수(宿)를 본뜬 것이다. 북두칠성을 뭇 별이 둘러싼 것을 말한다. 해가 가는 것이 북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들어가 중앙을 거쳐 다시 북으로 나오는 것은 동지의 해가 짧은 것이요, 북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들어가 서쪽까지 갔다가 다시 북으로 나오는 것은 추분의 밤이 고른 것이다. …그러니 하나의 물건 (윷판)이지만 지극한 이치가 들어있다.”고〈사도설(柶 圖設)〉이란 글에서 주장했다.

윷가락은 하나를 ‘도’, 둘을 ‘개’, 셋을 ‘걸’, 넷을 ‘윷’, 다섯을 ‘모’라고 부른다. 이 호칭은 본래 가축의 이름을 딴 것인데,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가리킨다.

다시 설이다. 올 설명절은 5일간의 ‘연휴’가 이어진다. “정월 초하룻날은 한 해가 비롯되는 우리들의 생활의 ‘시작’이요, 그 출발점이다. 우리는 새로운 생활의 설계와 사업에 대한 구상과 그것이 실천으로 옮아가는 제일보를 내딛게 되는 순간이다. 그 처녀성, 그 순수성, 그 정결성, 그 엄숙하고 숙연한 실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 ‘설날 새벽’이다.” (박목월)

옛 성인은 설날이 오면 매일 사용하는 세숫대에 ‘일신 일신 우일신(日新 日新 又日新)’이라 새기고 마음을 다짐하였다고 한다. “매일 매일이 새롭게, 또 새롭게”라는 결의인 것이다.

우리 우리 설날에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 소원성취 하소서.  


기사입력: 2004/01/21 [21:53]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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