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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승을 향하여! 축구도 반전운동이다
미영동맹군의 이라크침공도 축구로 담판을 지었더라면
 
서태영   기사입력  2003/04/16 [00:56]
"아프리카의 오두막집 앞에서, 페루의 오래된 문명의 폐허 위에서, 콜롬보의 빈민가에서, 침략군의 탱크 앞에서, 그리고 이 세계의 수많은 불행한 골목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김훈)

전쟁으로 문제를 푸는 정치인은 축구를 모르는 미개인이다. 축구는 침략본성을 놀이로 바꿔놓았다. 축구는 싸움을 놀이로 바꾼 인간진화의 산물이다. 문명은 전쟁을 미개사회의 증거물로 삼는다. 부시맨들이 날뛰는 지구촌은 이라크를 난투장으로 만들었다. 이긴 전쟁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은 드물다. 전쟁은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발은 인간의 몸 가운데 가장 하등한 부위로 통한다. 축구는 그 발로 하는 예술이다. 축구는 손으로 하는 다른 경기 못지 않게 발로 차는 것도 아름답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현대축구는 이미 그 경지에 도달했다. 축구는 발길질이 전부다. 잘 봐줘서 몸싸움 정도 허한다. 상대를 향한 발길질은 가차없이 반칙이 된다. 공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 공이 모든이의 이목을 잡아 당긴다. 공은 그 흡인력으로 탱글탱글 부풀어오른다. 공은 너와 나의 눈길로 둥글게 둥글게만 공유된다. 공은 축구장밖 인간의 관점으로도 유효하다.

공차기의 즐거움은 봄에 지독하다. 축구가 반전의 봄기운처럼 만발했다. 인간이 피어낸 꽃처럼 축구장이 열렸다. 축구는 인간의 몸으로 피우는 봄이다. 무르익는 봄을 따라 축구장으로 갔다. 축구장에서는 봄을 달구는 한국프로축구연맹전(http://www.k-league.org/ )이 갓 시작되었다. 봄날의 축구공은 생명감으로 솟구쳐 올랐다. 졸음이 싹가신다. 극장에서 음악회에서는 몰라도 축구장에서 졸음온다고 조는 사람은 없다.

4월은 축구가 있어 잔인하지 않다. 월드컵 3-4위전이 열렸던 월드컵 대구축구경기장. 나는 '달구볼경기장'이라고 명명한다. 6만 경기장에는 2만 5천이 운집해도 빈 구석이 감추어지지 않는다. 관중이 적지 않은데도 고민이다. 애달도다. 국제행사용으로 설계된 축구장에서 국내축구대회를 치르기에는 도무지 벅차다. 박종환 감독은 2만명 모여도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 같단다.


▲ '무질서 응원'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대구시민축구단 뒷바라지꾼들의 응원 장면

꼴찌들의 1승도 주목을 끈다. 1승이 목표다. 무승부와 패배만 기록하고 있는 광주상무와 대구시민축구단의 대결은 무승부로 끝이 났다. 서로를 제물 삼으려던 기대치는 헛계산으로 그쳤다.

공은 허공을 질주할 때가 많다. 어느 일방에 소속 되기 싫어서다. 공의 길은 명확하다. 모나지 않게 둥근공이라지만 공은 선수들의 의도에 호흡을 잘 맞춰주지 않았다. 선수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더 많이 보인다. 인상을 찡그려도 밉지 않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의 크기가 정확도다. 공이 골문을 빗나가는 것은 선수의 실수가 아니라 공의 본능일지 모른다 . 헤프면 안된다. 그래서 발로 차는 골은 손으로 하는 경기보다 짠가 보다! 90분을 넘게 뛰고도 기억나는 장면은 골 들어갈 때 몇 분간이다. 골이 들어가지 않아도 경기 내용을 긴장감으로 팽창시켜야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는다. 축구장은 짧기만 한 감동의 순간이 오래오래 머무르는 여운의 집이다.

경기는 광주 상무가 계속 앞서나갔다. 종료 1분전 1:0. '1'이라는 숫자의 무게는 농구장의 10점보다 버겁게 느껴진다. 호루라기가 울리기 전에 한 골을 넣어야 비긴다. 이기겠다고 뛰던 선수들의 머리는 비기는 것으로 가득차 간다. 89분을 헛발질(?)한 선수들에게 1분간에 이루어낼 수 있는 최고의 기적은 한골이면 충분하다. 수비만 하면 이길 수 없다. 지기를 작정하지 않았다면 공격에 능해야 한다. "와와!" 순식간이다. 전광판에는 노상래 선수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새겨진다. "골이다." 탄성이 솟아지고 축포가 터진다. 89분 동안 이기고도 호각이 울리기 전에 동점골 허용하면 비긴다. 휴식신호처럼 안도하라고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각소리가 울렸다. 잔디밭을 떠나라는 신호이다. 축구는 90분만 싸우도록 약속된 경기이다.

박종환 감독은 "4-4-2로 재미를 보았다. 노장(?) 노상래 선수를 투입한 것이 주효했다"며 경기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4-4-2 전법은 상황에 따른 변화에 대처하기 쉬운 전술이다. 노상래 선수는 "두번 다시 골을 넣을 거라 생각 안했는데"라는 말로 골잡이로 복귀한 기쁨에 갈음했다. 1년 7개월 만에 골을 터뜨렸다. 입술이 부르트도록 훈련한 정직한 댓가가 골로 나타난 것이다.

공차기를 보는 즐거움은 경기장 밖까지 팽창된다. 축구장 밖에도 주인공은 있다. 푸른 색의 뒷바라지꾼들. 비록 몸은 공과 떨어져 있지만 하나되어 뛴다. 서포터즈라고 부른다. 앉아 있기보다 서있기 일쑤인 응원단은 "나의 대구"를 노래하며 축구장을 고무시켰다. 축구장은 '마음을 하나로'였다. 경기 내내 소리내어 응원했던 사람들은 박수로 퇴장하는 선수들을 격려했다. '유종의 미'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일요일 경기장을 지킨 대구시 문화체육국의 김형일 계장은 자발성에 바탕한 응원단의 축구단 사랑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아직도 시민축구단을 못믿겠습니까?" 김계장의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3무2패. 10등. 이긴 팀도 진팀도 없는 무승부. 사력을 다해 뛴 100분여 시간. 1승을 향한 꼴지팀들의 선전은 다음 경기로 연장된다. 무승부와 패배로 점철되고 있는 무승의 고별전은 언제일지. '마음을 대구FC로(http://www.daegufc.co.kr/ ), 대구를 축구로!' 왕년에 한 가닥했던 선수들이거나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선수들로 구성된 대구시민 싸구려축구단! 꼴찌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축구시합은 계속된다. 함께 하는 축구장엔, 싸우는 놀이에 신명이 추가된다. 게시판엔 경기장을 찾겠다는 성원의 목소리로 옹골차다.

부시는 축구를 잘 몰라 전쟁을 벌였다! 축구경기 열심히 응원하는 것도 전쟁반대 놀음이다. 미영동맹군의 이라크 침공전도 축구로 담판을 지었더라면 그처럼 처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은 전승도 전패도 없는 축구로부터 배워야 한다. 선수들에게 경기 그 자체가 목적이듯, 정치인에게는 평화가 목적이 아니고 산다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야 한다. 평화를 원하면 축구장으로 가라. 축구장은 시위하기에 가장 좋은 빈터다. 평화주의자들이여, 축구장을 장악하라. 축구는 이라크 침공전보다 더 관심을 끌어야 한다. 축구공으로 하는 놀이는 각광받아야 한다. 인류는 더 많이 축구를 즐겨야 한다. 11명 축에 낄 재간이 부족하면 열심히 응원하는 것도 축구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공은 만인의 것이다. 축구는 행복한 공놀이이다.

* 사진 : 달구볼경기장 서태영
* 필자는 하니리포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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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4/16 [00: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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