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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SARS)를 통해본 전염병의 역사
페스트, 매독, 인플루엔자, 그리고 바이러스
 
하석건   기사입력  2003/04/15 [15:01]
급성호흡기 증후군 일명 SARS가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질병에 관한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괴질은 '아직 무섭다'라는 말을 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조상들은 간단한 전염병조차 견디지 못해 떼죽음을 당한 일이 수 없이 반복되는 역사속에 살았다. 아마 오늘날 우리가 괴질을 견디고 있는 것은 조상들이 길러준 저항력 덕분이지도 모른다.  

프랑스가 배출한 구조주의 역사학의 거장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이 저술한 불후의 명작 <물질문명, 경제, 자본주의: Civilisation Maté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XV-XVIII siècle>의 제 1권 제 1장에서는 질병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의 저작에서 나타난 질병의 특징을 살펴보자.

광기의 모습들

과거에는 주기적으로 페스트가 창궐했고 마치 죽음의 사자처럼 페스트가 엄습해올 때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제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우선 페스트가 엄습하면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구별이 분명해졌다. 부자들은 도시를 떠나 시골의 별장으로 은신했고, 신부들과 관리 그리고 군인들은 병의 확산되는 것을 막기는 커녕 주거지를 황급해 옮기는 일에 몰두했다.

15세기와 16세기에 프랑스의 많은 지방법원들은 통째로 이주를 했다. 1580년 추기경 아르마냐크는 아비뇽이 전염병에 휩싸이자 몸을 피해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10여 개월이 지난 후에 아비뇽으로 돌아왔다. 아비뇽의 한 시민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추기경은 복음에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말을 하리라, 즉 나는 목자지만 하나님의 양떼를 알아보지 못한다"

또 페스트가 한 번 쓸고 지나가면 빠리의 빈민가 거리는 깨끗이 청소한 것 처럼 사람들이 사라졌다. 또 전염병이 물러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부자들은 가난한 여자를 한명 사서 자기 집에 몇주 동안 살아보게 했다.
과거에는 전염병이 돌면 군대는 경비를 강화하고 주요도로는 통제하였으며, 한 마을이 통채로 불태워지기도 했다. 이렇게 법석을 떨다가 전염병이 떠나고 나면 피신해 있던 직책이 높은 주교들은 다시 나타나서 하나님이 내리는 천벌을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며 가르쳤다.

그러나 항상 무기력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1600년대에 100년 동안 파리에는 6번의 페스트가 발생 했었는데 당시에 파리당국은 전염된 환자들을 강제로 끌어내서 일부 병원에 모아 치료를 했고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파리나 런던 같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예외적인 조치였다. 1720년에 마르세유에 페스트가 돌았을 때 시민의 절반이 희생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

가장 무서운 병 페스트

이른바 흑사병이라고도 부르는 페스트는 검은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세균을 옮겨서 발병하는 것으로 십자군 전쟁이후 유럽으로 들어왔다. 물론 쥐의 종자들에 대한 구별등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11세기에서 13세기 무렵에 페스트는 유럽에 들어왔다고 본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몽고가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지역간의 이동이 활발해진 것을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여하튼 유럽학자들의 학설은 주로 나쁜 것은 밖에서 들어온 것이고, 들여온 악당의 주인공도 반드시 하나쯤 만들어 둔다.      

그리고 페스트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희생시키고는 18세기 들어서 사라져갔다. 페스트가 사라진 데는 사람들이 주거환경을 개선한 덕분이다. 여러 차례 도시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고 난 뒤 사람들은 나무 대신 돌을 집을 짓는 재료로 적극 사용했다. 주택의 실내를 청결하게 하고 무엇보다 사람들 자체가 청결하려고 노력한 것이 효과를 거두었다. 물론 가축들의 축사나 배설물을 처리하는 장소를 주거장소로부터 떨어지게 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청결수준에 관한한 유럽인들이 한국인들을 따라오려면 아직도 한참인 것 같다. 샴푸와 비누 소비량, 그리고 더운물 소비량의 차이가 단적인 예다.

브로델은 페스트에 관한 역사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은 연구자의 의지를 꺾을 수도 있을 만큼 방대한 양이 축적되어 있다고 묘사한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많이 발생했고 엄청나게 죽었다는 것이다. 16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프랑스, 네덜란드, 이태리, 독일, 폴란드 모스크바에 이르는 전 유럽이 페스트와의 투쟁으로 몸살을 알았다.

옥수수 보다 빨리 전파된 매독

매독은 15세기 말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입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나 일부 학자들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매독이 하나의 전염병인줄 알았다는 시점을 마치 매독이 유럽에 처음 유입됐다는 시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문제를 상기해두자. 매독은 그 후에 비단길을 타고 중국으로 번져가서 기록에 의하면 16세기 초에 중국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아메리카에서 들어온 옥수수와 고구마가 유럽을 거쳐 비단을 타고 중국에 전파된 것은 16세기 말이다.

전염병이 농사와 식량문화보다 빠르게 전해진 셈이다. 매독은 공기중이나 단순한 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병이 아니다. 특정한 관계를 통해야만 하는데 16세기에도 그런 관계는 국제관계차원에서도 대단히 활성화 됐던 모양이다. 비단길이 얼마나 험했는지?.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매독을 부르는 별칭 중에 프랑스병(Frenche disease)이라는 유행어도 있었다. 프랑스 인들이 음탕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프랑스가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앙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긴 유행어 같다. 글쎄 프랑스만 다녀오면 매독에 걸린다? 또 매독은 거지부터 영주, 국왕 이르기 까지 신분과 계급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는 특징 있다. 신부들이나 주교들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의사들이 매독에 걸린 필립 2세 왕에게 매독은 유전성도 있다고 보고한것 처럼 이런 종류라고 믿어주기 바란다.

여하튼 당시 의사들은 매독을 다스리기 위해 무진장 애섰던 것 같다. 1503년 경 파리의 오뗄 디유(Hôtel Dieux)병원의 이발사겸 외과의사(당시는 이발사가 수술을 했음)들은 불에 달군 쇠로 상처를 태우는 비법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디에 난 상처를 말하나? 연구를 거듭한 끝에 1600년 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수은 치료법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매독은 제압되기 시작했다.

질병의 순환

질병은 한번 나타나서는 크게 기승을 부리다가 수그러들거나 어떤 경우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나병은 14-15세기에 유럽에 크게 유행했지만 지금은 미미한 존재가 되었다. 콜레라, 천연두 같은 질병은 완전히 제압되었다.

그러나 이런 질병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질병은 지구 한쪽에 사는 사람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어떤 경로로던 전달된 다른 쪽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돌연 나타날 수 있고 그런 양상을 보여 왔다. 아마도 신체적으로나 생활구조상 저항력이 취약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런 질병을 겪으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신체적으로 저항 능력이 배양되고 생활구조도 저항력이 강해진다.

인류가 여러 질병으로부터 해방된 가장 중요한 요인이 있다면 잘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충분한 영양공급 만큼 질병을 이기는데 중요한 것은 없다. 과거에는 50세를 살면 장수라고 말할 만큼 사람들은 체력을 유지하고 질병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먹지 못했다.

오늘날 잘 먹고, 청결한 생활환경을 유지하고, 과학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우처럼 급성호흡기장애증후군이 나타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남아시아의 다소 청결치 못한 주거문화나 식생활이 전염병의 근원이라고 지적할 근거는 거의 없다.

의학사 연구가들은 희생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병원체들도 자체의 특수한 역사가 있으며, 질병의 진화는 주로 이 병원체 자체의 변화나 변이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플루엔자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병이 처음 발견된 것은 12세기 무렵이다. 이 병은 아메리카 인디언을 무수히 죽이고 1588년 베네치아는 이 병으로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현재 들어와서도 여전히 나타나고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인플루엔자의 종류는 무수하게 많다. 이놈은 역사적으로 지역적으로 계속 변이하고 있는 것이다.

사스도 어떤 병원체의 변이일 것이고 그 병원체는 나름대로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류는 거대한 동물을 먹이로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바이러스라는 미생물로부터는 그들이 기생하는 희생대상이 되어왔고, 이것을 이기기 위해 지금도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    

* 본문은 프랑스 동포신문 오니바 http://www.oniva82.com/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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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4/15 [15:0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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