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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총리 경제성장률 6%상향, 돼지값 '펄쩍'
한ㆍ칠레 FTA무산, LG카드 난항, 번호이동성 제도 시작
 
홍성관   기사입력  2004/01/05 [11:04]

벌써 갑신년 새해의 한 주가 지났다. 이제 시끄러웠던 한 해는 잊고, 원숭이가 높은 나무를 거침없이 올라가듯 새로이 시작해야 할 때다. 이런 소망을 들어주기다로 하듯, 새해 증시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고, 조류독감도 한풀 꺾인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밀린 숙제들이 속을 썩인다. 작년 소비·투자가 상당히 저조했음이 드러났고, 수출로만 버티던 여력도 한계에 도달할 조짐을 보인다. 한·칠레 FTA는 농촌출신 의원들의 반발로 결국 무산됐고, LG카드의 향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또 이동통신의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작되면서 SK텔레콤 가입자들이 대거 이동하고 있다. 그야말로 경제레터의 소재는 연초부터 넘쳐난다.

2004년 경제 "작년 어둠 걷고, 순조로운 출발"

지난 연말 810선을 단숨에 회복하며 한 해를 마감했던 종합주가지수는 새해 개장일인 2일 큰 폭으로 올라 821.26P로 장을 마쳤다. 이는 새해 증시에 대한 낙관적 기대감이 외국인과 기관의 순매수로 이어진 탓으로 분석된다. 3일 연속 상승하며 44.87P로 2003년을 마감했던 코스닥지수도 개장 첫날 개인과 외국인이 순매수를 이끌면서 45.14P로 상승 마감했다.

주식시장이 이렇게 산뜻하게 출발한 데 이어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내부적으로는 올 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6%로 상향해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성장 목표로 6%대를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그만큼 정부가 04년의 정책운용의 초점을 경제에 두겠다는 확고한 뜻이거나, 제반 여건을 통한 자신감의 표출로 풀이된다. 총선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면 몰라도 충분한 근거에 의한 것이라면 반길 일이다.

지난 연말 여러 곳에서 악재로 작용했던 조류독감의 의심 추가신고가 일주일째 접수되지 않으면서, 조류독감으로 인한 불안감이 서서히 걷혀가고 있다. 농림부가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고 했지만, 증시에는 이미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다. 여전히 광우병 소동은 잔재 내지는 확대될 가능성이 커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순항 뒤에 도사리는 악재 1 : 석유값, 한우· 돼지값 "펄쩍 뛰어"

넘어야 할 고비는 '먹을거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새해에는 뭔가 좋은 일이 생기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들이 증시의 호조 등 순항을 이끌고 있지만, 여전히 지난 해 들끓었던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선 설날을 한참 앞두고 벌써 소비물가 인상이 커지고 있어 서민들 지갑에 정초부터 찬바람이 불고 있다. SK, 현대오일뱅크가 새해 벽두부터 석유제품가격을 인상했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 및 원유수입 부과금 인상에 따라 가격을 인상하게 됐다는게 후문이다. LG칼텍스정유와 S-오일도 조만간 석유제품가격을 인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류독감이 한풀 꺾인 반면, 광우병의 영향은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산지 한우와 돼지 값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물가인상은 소비수요가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설날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 사재기라도 해둬야겠다고 밝힌 바 있는 본 기자는 실제 냉동실을 돼지고기로 채워놓아 근심을 덜고 있는 상태다.

순항 뒤에 도사리는 악재 2 : 작년 소비· 투자 울상, 연초에도 계속

일년 내내 얼어붙어 있던 소비, 투자가 연초에도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의 계속되는 고성장의 수혜를 입은 수출부분만 혼자 웃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1월 소비는 98년 11월 이래 60개월만에 최저수준이다. 설비투자도 5개월 째 감소세다. 반면에 수출증가율은 아시아에서는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수출증가율은 11월말까지 18.3%로 중국(32.9%), 홍콩(18.6%)에 이어 세 번째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흑자도 사상최대였다. 그러나 수출이 갈수록 자동차, 반도체와 같은 몇 부분에만 집중되고 있어, 수출구조의 부실함을 메우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순항 뒤에 도사리는 악재 3 : 중견 PC업체 잇따라 도산 

컴퓨터에 좀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현주컴퓨터가 사업중단을 선언한 것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현주컴퓨터가 국내 데스크톱PC 시장에서 3~5위권을 유지해왔을 정도로 중견급에 속하는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주컴퓨터보다 작은 업체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나래해커스'라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던 나래앤컴퍼니는 지난 10월말 사업을 정리했고, 로직스는 지난달 폐업신고를, 컴마을은 이달 초 파산절차에 들어간다. 심지어 현대멀티캡마저 최근 심각한 자본잠식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증자를 실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된 것은 당초 PC 교체기로 예상됐던 03년에 경기불황으로 인해 PC 수요가 개선되지 않았고, 삼성전자나 외국계 업체들의 시장잠식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것이 PC 시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년 수출이 상당한 실적을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수출호황의 빛을 누린 것은 거의 대기업 위주였다. 중소기업들은 수출은커녕 내수침체로 문을 닫을지 말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이렇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럴 경우 언젠가 한번은 크게 문제시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나 힘이 없는 중소기업들로서는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으며, 해법을 찾기는 더 어렵다.

LG 카드 산업은행으로 가닥잡나,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도

▲ LG카드사    

LG 카드가 결국은 산업은행 주도의 공동관리로 갈 전망이다. 그러나 채권은행들 가운데  국민은행과 기업은행, 농협 등 일부 은행이 반대하고 나서 확실한 전망은 불투명한 상태다.

주채권 은행인 우리은행이 내민 공동 관리에 대한 합의서 및 LG카드 채권의 1년 만기 유예에 따른 동의서에는 아직 우리은행만이 서명하고 있다. 만약 공동 관리가 무산된다면 법정 관리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산업은행 노동조합은 지난 2일 산업은행을 주축으로 LG카드 공동 관리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에 반발하는 성명을 내고 "정부의 시장경제 실패와 부도덕한 재벌의 책임 회피를 산은에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재벌그룹이 자신들의 세확대를 위해 무리하게 금융권에 손을 댔다가 실패한 책임이 국민들에게 전담되는 형국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채권은행들도 결국 LG 카드사태의 원만한 해결이 아닌 조금이라도 덜 손해보겠다는 속셈으로 질질 끌고 있다. 김 부총리의 "능력과 도덕이 없는 기업이 금융기관을 소유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발언은 일견 수긍이 간다. 그의 말대로 현실적으로 채권단이 손실을 모두 떠 안는 것은 어렵겠지만, LG카드 대주주들에게도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도록 방치해둔 상당부분의 책임을 지게 해야 할 것이다.

한· 칠레 FTA 비준동의 결국 2월로 연기

▲한ㆍ칠레 FTA 비준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집회모습     ©서태영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 본회의 상정에 앞서 난항을 겪은 끝에 2월로 미뤄졌다. 연내 타결이 가능할 것이라 전망했던 재계는 인상을 찌푸렸고, 국회 앞에서 연일 농성을 벌였던 농민들은 잠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박관용 의장이 어떻게든 2월에 타결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무산'이 아닌 단지 '연기'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재계는 다시 한번 기대감을, 농민들은 다시 한번 짐싸고 국회 앞에 모일 준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비준동의안을 처리하기로 예정됐던 본회의장에서는 당파에 상관없이 소속지역으로 갈려 세 싸움이 벌어졌다. 농촌출신 의원들로서는 동의안 처리는 자신의 '의원생활' 청산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에, 심지어 저지조까지 결성되었다.

국회의원들이 결국 농업을 수호하기 위함이 아닌, 자신의 금뱃지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결사적으로 FTA 처리를 막았다는 것을 알기에 내심 씁쓸하기도 하지만, '표심으로 국회의원들의 의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이야말로 의회정치의 본질이지'하며 위안을 삼아본다.

번호이동성 제도 실시 "예상대로 대(大)이동"

이동통신사간의 치열한 접전을 예고했던 번호이동성 제도가 드디어 시작됐고, 예상대로 기업간 신경전이 대단했다. 번호이동성 제도는 그간 번호이동의 제약으로 인해 불편을 겪었던 소비자들의 권익이 향상되는 효과보다도,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있었던 후발업체들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측되면서 통신산업의 뜨거운 감자였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 그대로였다. 시행 첫날 SK텔레콤의 고객 1만명이 서비스 회사를 바꿔 후발업체인 LG텔레콤이나 KTF는 희색이 만연했고, SK텔레콤은 구멍 뚫린 듯 새어나가는 고객을 붙잡느라 손에 땀을 내고 있다. 한 때 SK텔레콤 전산망이 오류를 범하면서, 고의적인 방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일단은 다양하고 저렴한 요금상품을 내놓은 LG텔레콤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이동통신사간의 불붙은 전쟁은 더 뜨겁게 진행될 전망이어서, 서비스 개선되고, 가격 저렴해진 고객이 최후의 승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정말 신명나는 경제 2004년이 되기를...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경제현상에도 항상 앞, 뒷면이 붙어 다닌다. 2004년의 시작 역시 호재와 악재가 나란히 국민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새해에는 부디 지난 한 해의 어수선함을 정리하고, 안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경제 여건을 구축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사회의 안정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4·15 총선으로 인해 그런 바람도 물거품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벌써 연말 예산안 처리 등에서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선심성 퍼주기가 시작됐다. 국민들의 현명함과 철저한 감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부디 오랜 침체의 늪에서 깨어나 신명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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