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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노사화합', 노동계 '4·15총선' 단결하자
재계ㆍ노동계 신년사를 통해 전망해보는 2004년 경제
 
홍성관   기사입력  2004/01/02 [09:22]

재계 인사들과 노동계 인사들이 각각 신년사를 내놓고 2004년 새해의 바쁜 행보를 시작했다. 양측의 한 해 로드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신년사에 드러나는 이들의 다짐이나 각오들에서 새해에도 노사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이 예상된다.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 반(反)기업 정서 완화해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강신호 회장은 신년사에서 지난 한해 “산업현장에서의 대규모 분규사태, 사스확산, 태풍 매미, 이라크 파병논쟁, 새만금 사업과 부안의 방사능 폐기장 건립 논란, 정치자금 수사 등으로 경제가 주름지어 있었다”고 언급했다. 강 회장은 새해 끊임없는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체질을 강화하는 한편 우리 제품에 대한 품질 및 원가경쟁력을 제고하는 등 기업 경쟁력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수년간 경기침체와 투자부진 등으로 구조적인 차원의 성장잠재력 약화를 극복하기 위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기업인들에게 “가계부채의 증가, 신용불량자의 급증과 함께 정치자금 문제로 증폭된 반(反)기업 정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있는 정치자금 논란을 통해 경제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선진 정치자금 제도가 만들어지기를 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어 줘야"

한국경영자총협회의 김창성 회장은 역시 신년사를 통해 “지난해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변혁과 혼란이 중첩된 한해였다”고 평가하면서, 북핵 문제, 4월 총선, 카드사 부실화, 강경 노동운동 노선 등이 여전히 사회적 갈등과 반목을 자아낼 요인들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 경제 실정에 대한 ‘비판 없는 자만심’을 경계해야 할 것으로 꼽으면서, “성장과 분배의 문제는 항상 함께 가야 하는 사회적 과제이며, 다만 정책 기조의 무게 중심이 어느 쪽에 가 있는 것이 유익할 지에 대해 범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은 “새해에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특단의 조치가 요구된다”고 강조하면서, 정부의 규제에 대한 재검토와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지원,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의 문제들을 최우선시 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인적자원 개발에 관한 노사정의 관심 제고와 여성인력의 노동시장 유입을 유도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주40시간 근로제도의 도입을 삶의 질 향상과 연계시키기 위한 생산성 배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4ㆍ15총선을 노동자계급 단결의 출발선으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대자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단병호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노무현 정부의 허구적 개혁성에 잠시 눈이 멀어 긴장의 고삐를 늦추고 있는 사이 경제특구법이 시행됐고, 노동시간 단축을 빌미로 근로기준법이 개악됐으며, 수많은 노동자가 구속되는 등 반노동자적 탄압이 자행됐다”고 지적하면서, 이로 인해 손배가압류 철회,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을 외치던 소중한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었다고 성토했다. 단 위원장은 노동열사들이 열어놓은 투쟁국면을 완전한 반전의 계기로 만들지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고, 이에 대한 노동계의 자성과 함께 산별노조 건설․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힘쓸 것을 촉구했다. 또 기업별 임단투의 한계를 벗어나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 사회공공성 강화 등 평등의 가치를 실현키 위한 투쟁을 진행해갈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단 위원장은 “4ㆍ15 총선이 이 땅의 노동자들이 정치의 주체로 일어서는 계급적 단결의 출발이 되도록 하자”고 호소했으며, 새해에는 노동자들이 외세와 자본의 지배에서 완전한 자주적 통일의 주체로 설 것을 주장했다.

"사민당 당원 늘리고, 노조 조직률도 제고시켜야"

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이남순 위원장은 지난해를 “국정혼란과 정책난맥, 국론분열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했으며, 이 속에서 손배․가압류와 노동자의 분신자살 등으로 어느 때보다 힘들고 고통스런 한해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참여정부에 대해서도 “차별해소와 균형 있는 발전, 비정규직 권익보호, 공무원노동조합 보장 등을 약속했지만 재계의 반발과 정부의 정책혼선으로 하나도 제대로 실천한 것이 없다”고 평했다. 주5일 노동제 관련 근기법개정안은 노동계의 의견이 묵살되고 사용자의 의견이 대폭 반영된 채 국회를 통과했고, 이에 3ㆍ30전국노동자대회, 6ㆍ30총파업투쟁, 11ㆍ23전국노동자대회 등 대중투쟁을 전개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전국직업상담원 노조의 정규직화 쟁취, 많은 조합원들의 사민당 진성당원 가입, 남북한 노동자대표의 첫 평양상봉과 남북노동자의 교류협력사업에 대한 합의 등은 긍정적인 성과였다고 보았다.

이 위원장은 4월 총선과 주5일노동제 실시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과 노사관계선진화연구위원회에서 내놓은 반노동자적인 '노사관계로드맵'의 저지가 당면과제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한국노총은 조합원에 대한 정치교육을 강화하고 사민당 진성당원 증가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역량 있는 노조간부 및 조합원, 노동자 서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양심적인 지식인을 발굴하여 총선에 출마시키고 적극 지원할 계획을 밝혔다. 또 노조 조직률 제고, 노동조건의 후퇴 없는 주5일 노동제의 전 사업장 도입, 비정규직ㆍ여성ㆍ외국인노동자ㆍ저임금노동자 등 취약계층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제도개선과 조직화사업에 총력을 다 할 뜻을 밝혔다.

노사 모두의 노력으로 경기회복에 힘써주기를...

재계는 대개 기업경쟁력 강화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정부에게는 기업규제 완화 및 철폐, 정치자금법 개정 등을 요구하고, 노동계의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기업경쟁력은 필수적인 항목임에는 틀림없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나 비효율적인 행정절차 등은 없애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그간의 우리 경제가 지나치게 관(官)주도였기 때문에 이런 체질은 바뀌어져야 하지만,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반(反)환경적인지 아닌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재계의 정치자금법 개정요구는 ‘뭐 뀐 놈이 성내는 꼴’이다. 재계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네도 희생자였으니까 고쳐달라고 외쳐대는 것은 방탄 국회로 비난받는 정치인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재계인사가 검찰을 드나들면 나라경제가 흔들린다는 인식이 쓸데없이 박힌 탓에 재계가 이를 잘 이용하고 있다만, 재계의 자중을 바란다.

노동계는 지난해 여러 명의 식구를 떠나보냈다. 경기침체를 빌미삼아 자행되는 노동탄압의 엄혹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말하기엔 그들의 죽음이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다. 올 해에는 노동계의 단합이 시급한 관건이 될 것이다. 총선에서 과연 진보정당이 얼마만큼의 의석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향후 노동자의 이익 대변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은 이런 투쟁 과정에서 소외시키고 있는 노동자 계층은 없는지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지난 해 임금협상 투쟁이 대기업 노조 위주였다는 일부의 비판에 대한 자기고민도 상당히 요구된다.

노사갈등으로 시끄럽지 않았던 해가 없었지만, 올해에는 또 한번 기대해본다. 세계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 기류에 편승하지 못하면 참여정부가 내세운 국민소득 2만 달러는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노사갈등의 책임을 노조 한쪽으로만 몰아가는 보수언론들의 변화도 새해에는 꼭 필요할 것 같다.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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