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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금 수사에 시누이짓 골라하는 재계
[기자수첩] 전경련의 '지정기탁제' 타령은 정경유착 공식화
 
홍성관   기사입력  2003/12/20 [11:10]

지난주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실망스런 '핑퐁게임'을 보아야했다. 다름아닌 이회창 전 대선후보와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기자회견을 두고 하는 말이다. 탁구공이 테이블을 오가듯이, 장군이요 멍군이요 장기를 두듯이 릴레이 회견을 펼친 이들의 모습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반성과 참회를 보기보단 일종의 '정치 시소게임'을 보았다. 가뜩이나 날씨도 추워지고, 지갑은 얇아졌는데, 뉘우치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행보는 씁쓸함만 안겨주고 있다.

▲연일계속되는 대선자금 공방 보도     ©MBC
지금 이들이 이렇게 정치싸움을 하고 있는 화제는 '불법 정치자금'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에게 나서서 사과를 하고 참회해야될 사람들은 비단 정치인들만은 아닐 것이다. 받은 사람이 있으면 준 사람이 있을 테니까.

그런데 지난 18일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의 정치자금관련 발언을 보면, 마치 돈을 준 기업은 아무 잘못 없는냥 행세를 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자신들은 희생양이라고 하소연하면서 동시에 자기들 입맛에 맞게 정치자금법을 고쳐달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여기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19일 논평을 통해 "지정기탁제를 부활시키지 않는다면 합법적 정치자금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전경련의 말은 재벌당을 키우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라 평한 것은 일리가 있다.

불법 정치자금도 수요와 공급이 만나서 이뤄진다. 수요자는 정치인이고, 공급자는 기업이 될 것이다. 불법 정치자금을 수요하려는 자는(즉 얻으려 하는 자) 그로부터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 시키려하고, 공급하는 자는 자신의 이윤을 늘리려 한다. 이런 계산이 없으면 불법자금이 오갈리 만무하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돈 안 줬다고 공중분해된 국제그룹과 같은 일이 실상 벌어지기는 힘든 오늘에,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이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바 없이 자금을 공급했을리 없다. 그런 재계가 정치권을 나무라는 것은 도둑질한 공범이 붙잡히자, 한사람한테 덮어씌우려는 속셈과도 같다. 아무래도 재계는 국민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정치권을 향해있자 슬그머니 옆으로 빠져, 오히려 정치권에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염치없고 얄미운 짓인가.

▲ 검찰은 12일 한나라당이 현대자동차 그룹에게서도 100억원을 차떼기로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YTN

재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길어질수록 우리 경제전반에 끼칠 부정적 여파는 분명하다. 하지만 재계가 그것을 빌미로 자신들의 잘못을 사면 받으려 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이자 착오다.

검찰의 수사는 명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정치권뿐만 아니라 재계에 대한 수사도 철저하게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곪은 곳은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거저 치료되지 않는다. 시급히 도려내고 그 부위에 약을 발라줘야 한다.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재계의 부정부패를 한번 봐준다고 내버려두면, 과연 그들이 내년 총선에 불법자금을 유통시키지 않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정치자금법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뀌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또 정치인들과의 어두운 커넥션을 만들고, 돈보따리를 건넬 것이다. 왜 그럴까.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한국 경제의 풍토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 재계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나가고, 대외 신인도가 추락하는 고통을 수반하게 되더라도 불법자금에 대한 뿌리를 뽑아야 한다. 곪은 부위를 가차없이 도려내야 한다. 그래야 풍토도 변한다. 기업인들은 '돈을 주는 것이 손해다'는 인식을 하고, 정치인들은 '돈 받으면 손해다'는 인식을 당연히 하게 되어야만 투명한 경제질서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불법 정치자금과 관련한 사건에서 죄가 없고 오히려 정치인들로 인해 희생당했다는 듯 하소연하는, 그러면서 자기들 입맛에 맞게 정치자금법을 바꿔달라고  생떼를 쓰는 재계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국민들 앞에 진정으로 사죄의 뜻을 밝히고 보다 투명하고 건전한 기업경영을 해나갈 것을 촉구한다.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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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2/20 [11: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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