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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일본 한자말 떠받드는 사람들 많다
[논단] 한글이 빛나면 한겨레도 빛나, 말로만 하는 한글사랑이 아니고 실천!
 
리대로   기사입력  2019/11/28 [22:25]

한글은 1443년 조선 넷째 임금인 세종이 만들어 1446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한글은 온 누리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인데 573년이 지난 아직도 이 나라에서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 이제 한글임자들은 한글이 좋은 글자라고 말로는 하면서 아직도 한자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거기다가 요즘엔 미국에 눌려 살아서 그런지 미국말 섬기기 바쁘다. 참으로 못나고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반백년 동안 이 한글을 살리고 지키고 빛내려고 애쓰고 있는데 아직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일은 돈과 힘이 엄청나게 많이 드는 일도 아니고 한글임자들 모두 한 마음으로 조금만 힘쓰면 될 일인데 안 되니 답답하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은 이 글자가 참 좋은 글자임을 알기에 이 한글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쓰게 하려고 애썼다. 손수 이 글자로 그 당시 거룩한 이야기인 왕조 이야기를 적은 ‘용비어천가’와 불교 이야기인 ‘월인천강지곡’을 썼으며, 한글을 과거시험 과목으로 정하고 ‘효뎨례의’란 동전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아들인 문종, 세조 때를 거쳐서  손자인 성종 때까지 50여 년은 한글을 알려 쓰려고 힘썼으나 그 뒤 연산군 때부터 한글은 어둠 속에 살았다. 나는 세종대왕이 53세에 돌아가셨는데 지금 내 나이만큼 20년만이라도 더 살았다면 한글과 이 나라가 엄청나게 빛났을 것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세종이 쓴 한글로 만든 동전(가운데)과 한글로 쓴 용비어천가(왼쪽)와 월인천강지곡(오른쪽)     © 리대로

 

 

한글은 조선 끝 무렵까지 450여 년 동안 공문서와 교재로도 안 쓰고, 한문이나 외국어 공부를 위한 보조 수단으로 쓰거나 일부 깨어있는 선비가 소설과 가사를 썼다. 또 왕실과 양반 아녀자들이 편지에 쓰일 정도였지 일반 대중은 많이 쓰지 않았다. 오히려 한글이 태어나고 300여 년이 지난 정조 때 실학파란 박제가는 중국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했으며, 같은 실학자인 박지원은 중국화를 주장하고 정약용과 다른 실학자들도 같은 생각으로 한문으로만 글을 썼다. 마치 오늘날 세계화(미국화)가 좋다며 소설가 복거일이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하듯이 말이다. 정조 때는 기독교가 들어와 성경을 한글로 쓰기 시작해서 일반 대중도 한글을 널리 쓰이기 시작할 때인데도 개혁하자는 실학자들은 한문으로 중국화 한문화를 외쳤다.

 

▲ 정조 때 실학자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 박제가가 쓴 북학의 모습     © 리대로

 

정조가 제 나라 글자인 한글을 업신여기고 중국화가 살길로 생각하는 얼빠진 실학자들과 개혁정치를 한다고 했으니 성공할 수 없었던 게 뻔하다. 그리고 실패한 개혁군주 정조 때가 죽으니 유교와 당파 파벌정치와 세도정치에 몹시 득세해서 나라가 흔들리고 100여년 뒤 19세기에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고종 때에 중국이 약해지니 ‘대한제국’이라고 나라이름을 바꾸고 우리 한글을 살려서 흔들리는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고종 때 최초 신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 교사로 온 미국인 헐버트가 한글이 훌륭한 글자임을 알고 한글로 ‘사민필지’란 교과서도 만들고, 서재필 주시경이 ‘독립신문’을 만들면서 한글 빛이 보인다.

 

▲ 1890년 헐버트가 한글로 쓴 교과서 사민필지(왼쪽), 1896년 서재필 주시경이 만든 독립신문.     © 리대로

 

 

한문나라 중국 그늘에서 벗어난 대한제국 때 서재필, 헐버트를 모시고 독립신문을 만든 배재학당 학생 주시경은 한글나라를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가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한글을 살린 수 있는 길을 찾고 만들려고 애썼으나 그 때도 공문서는 한문이었다. 고종이 1894년 칙령1호로 공문서는 한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어쩔 수 없을 때에 한자를 병기한다고 했지만 한글은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 주시경은 자신이 한글을 가르친 김두봉, 최현배 들 제자들과 1908년에 최초 민간학회인 국어연구학회(오늘날 한글학회)까지 만들고 한글나라를 만들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0년에 일본 식민지가 되었고 1914년에 주시경이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났다.

 

참으로 한글은 태어날 때도 힘들었지만 살아가는 동안도 매우 힘들었다. 한글이 태어나고 500년이 지난 대한민국 때도 공문서는 한글이 아니고 일본처럼 한자혼용이었다. 심지어 독립운동을 하는 상해임시정부 분들도 우리 말글 독립이 우리 겨레 얼과 나라가 독립하는 근본임을 모르고 중국이나 일본처럼 한문 말글살이였다. 제 글자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인데도 이러했으니 우리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도 한글을 살려야 한다고 깨달은 이들이 한자패들과 문자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치열하게 싸웠다. 나는 지난 50여 년 동안 이 싸움판 선봉에서 온 몸을 바쳐서 싸웠고 이제 겨우 한글나라 빛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 식민지 때 길든 일본 한자말을 일본처럼 한자로 적자는 이들이 날뛰고 있다.

 

▲ 왼쪽부터 고종 때 관보, 대한민국임시정부 때 공보, 대한민국 초기 때 공문서 모습.     © 리대로

 

 

한글이 태어나고 500년이 지났는데도 공문서조차도 한글로 쓰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중국과 일본 굴레에서 벗어났으니 우리 겨레말을 살려서 한글로 쓰자고 해도 일본처럼 한자를 혼용해야 한다고 가로막는 이들이 정치인, 학자, 언론인, 기업인으로 나라를 지배하고 힘들게 했다. 그래서 그들과 문자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치열하게 싸워 거의 한글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영어와 그 숭배자들이 판치니 우리 말글살이가 어지럽고 나라가 몹시 흔들려 마치 나라 망하던 대한제국 때 형세와 비슷해서 그 때 독립신문을 읽으며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갈까 고민해봤다. 난 온 국민이 세종과 주시경의 자주정신으로 뭉쳐서 한글을 빛내야 얼 찬 나라가 되고 우리가 살 길이 열린다고 생각되었다. 다른 분 생각을 듣고 싶다.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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