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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산과 강남역, 여성운동의 로컬리티를 묻는다
[정문순 칼럼] 여성운동, 지역에 발 딛고 지역에서 지역으로, 지역이 함께 해야
 
정문순

2018년 서울 강서구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남편이 이혼한 전처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강서 주차장 살인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가정폭력으로 이혼당한 전 남편이 이혼 후에도 전처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지 못한 데서 빚어진 극단적인 비극이었다. 이 사건은 중앙 언론의 1면을 장식하면서 가정폭력 가해자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분노를 여론화시켰다.

  

이 사건과 고작 며칠을 두고 부산에서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여성과 그 가족이 전 남자친구에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가 무려 4명인 이 사건은 데이트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건 중 어느 사건이 더 심각한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4명인 사건이 앞의 사건보다 덜 심각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언론 보도에는 이 점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부산 살인 사건이 일어난 날 부산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하루 종일 언론사의 전화를 받느라 분주했지만, 그 언론사들 중에서 중앙 언론은 얼마나 있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언론의 서울 중심 보도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이상, 여성폭력사건이라고 해서 언론의 보도도 별다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서울중심적 시각이 과연 언론에만 그칠까.

 

2016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범죄의 효시이자, 미투운동의 격랑을 낳게 한 진원지로 평가된다. 이 사건이 미투운동의 출발점에 있다는 평가는 합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혐오범죄의 출발이라는 평가는 정당할까. 혐오범죄의 일반적인 속성은 대체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라는 데 있다. 즉 무연고성이다. 아는 사이에서는 혐오범죄가 발생하기 어렵다. 물론 남편이나 애인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여성의 경우,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 원한과 여성 일반에 대한 혐오 심리가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혐오범죄의 또다른 속성은 집단성이다. 피해자는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의 속성을 가지는 존재이며, 그 속성이 가해자의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여성 혐오범죄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는 대개 일면식도 없으며,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해자로부터 끔찍한 범죄 피해를 당한다.

 

무연고성과 집단성, 이 두 가지가 혐오범죄의 대표적인 속성이라면,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 혐오범죄의 출발이라는 평가에는 쉽사리 동의하기 힘들다. 비록 경찰이나 사법당국은 그 사건이 혐오범죄라고 규정하는 데 주저했지만, 앞의 두 가지 속성에서 혐오범죄의 혐의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강남역 사건이 여성혐오범죄일 수는 있어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여혐 범죄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 앞선 2015년 내가 사는 창원에서는 무학산에서 한 여성이 등산을 하던 중 비면식범으로부터 성폭력을 피하려다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제때 범인을 잡지 못해 진상이 드러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해자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고, 성폭력이 극단적인 여성혐오나 차별 의식에서 빚어지는 범죄임을 감안하면, 이 사건이야말로 전형적인 여성혐오범죄의 속성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강남역 살인 사건은 한국여성운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 된 반면 무학산 살인 사건은 지역민을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조차 드물다. 서울이 좋은 건 죄다 가져가더니 여성혐오범죄의 상징이나 효시마저 독점하려고 드는 것은 욕심인가, 아닌가.

  

서울역 살인 사건에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어떻게 극단적인 여성혐오범죄가 일어날 수 있느냐라며 흥분했다. 강남이 대한민국 수도의 문화적, 소비적 중심지인 것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 중의 수도, 중심 중의 중심 지역은 혐오범죄가 일어나서는 안되는 지역이라고 판단한다면 이런 태도가 정상적일 수 있는가.

 

다른 곳은 몰라도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는 여성이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하는 판단이라면, 서울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탐욕과 자기중심성이 정도를 넘어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사건이 서울지하철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창원역 사건이라면, 부산역 사건이라면, 혐오범죄의 효시 운운하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서울 강남역 사건을 여성운동이 만발하는 시발점으로 삼는 것에 대해 어떠한 문제 제기도 하지 않고 되레 그것에 편승한 여성운동 진영의 서울 중심주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성운동의 서울 중심주의는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여성운동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여성운동가들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심각성이 더하다. 올해 3.8세계여성의날을 앞두고 부산 지역의 여성운동단체들은 기념행사를 알리는 보도자료를 냈다. “부산에서 우리도 외쳤다.” 보도자료 제목이다. 우리도 외쳤다는 말은 저 문장에 언급되지 않은 어떤 지역, 즉 서울을 의식한 발언이다. 저 표현이 서울만 미투하니? 부산도 하니까 서로 동등해지자라는 뜻일까? 서울 강남역 사건 이후 부산에서도 미투 운동이 활발히 벌어졌다. 피해를 지지하는 모임이 꾸려졌고 집회 때마다 발언자가 끊이지 않았다. 누구도 부산의 미투운동이 변변찮다고 말한 적이 없다. 저 선언은 서울을 중심에 놓고 자신을 곁가지에 두는 위계적인 사고에서 나올 수 있을 뿐이다.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저 희한한 진술은 미투운동과 지역소외 의식이 결합하여 생긴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의 여성운동진영조차 식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사회 구석구석에 뿌리내린 서울 중심주의의 자장이 그만큼 강력하거나, 사회운동으로서 여성운동의 수준이 아직은 미흡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성운동의 목적은 여성의 빼앗긴 지분만큼 되돌려 받는 데만 있지 않다. 2016년 유네스코는 권고문에서 성평등이 여성의 문제로만 국한하는 것을 경계했고, 성평등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위한 일이라고 천명했다. 여성문제를 논의할 때마다 성소수자 문제가 함께 거론되는 이유는 여성운동은 구질서의 근본적인 전복을 꿈꾸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관계는 서울과 지방의 관계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서울 중심의 여성운동은 남성 중심의 여성운동처럼 언어도단에 빠지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서울 중심, 지역 차별의 여성운동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은 각자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서울도 대한민국의 한 지역일 뿐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같은 갱상도로 묶이지만 창원과 부산은 엄연히 문화적 공기가 다른 지역이다. 창원은 창원이고, 부산은 부산이다. 각자 마시는 공기가 다르고, 각자가 처한 여건이 같지 않다면, ‘가 사는 곳이 세상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역성을 견지하는 것만으로는 서울 중심이 온전히 극복되지는 않는다창원oo의 전화라는 여성단체는 몇 년 전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여성폭력 예방 캠페인을 길거리에서 벌인 적이 있다. 회원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성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요령들이 적혀 있었다. 그 중의 하나는 집에 혼자 있더라도 목욕하고 나온 뒤에는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있어라.”였다. 나는 경찰청에서 뿌리는 유인물이 아닌가 하고 눈을 의심하였다. 성폭력 가해를 막는 법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성폭력 피해를 예방하는 법은 없다. 피해자에게 책임이 되돌려질 수 있는 성폭력 피해를 막는 방법 따위나 궁리하고 있는 창원 지역의 여성단체에 대해, 나로서는 다른 지역의 여성단체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비교해 보고 싶었다. 다른 지역의 여성운동단체가 같은 사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 비교해 보면, 내가 사는 지역의 여성단체나 여성운동이 어떠어떠하다고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관계성이 중요하다.

  

리베카 솔닛의 저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는 조티 싱이 여러 차례 언급된다. 조티 싱이 누구인가? 인도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승객 남자들에게 집단으로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무참히 살해당한 여성이다. 리베카 솔닛은 조티 싱 사건이 인도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자신이 사는 미국에서 어떤 몰지각한 남자가 유명한 페미니스트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피를 흘려 쓰러지게 하는 인터넷 게임을 만든 사실을 언급하면서, 조티 싱의 가해자들이 가학적인 게임을 개발한 남자와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한다. 적어도 미국의 페미니스트는 지구 반대편의 사건이 자신의 문제와 비슷하다고 사유할 줄 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조티 싱의 비극이 알려졌을 때 우리 여성계에서 애도나 규탄의 성명서라도 한 장 낸 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저 한국보다 훨씬 더 못한 나라의 여성인권 수준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을까.

  

관계성이 확대되면 연대성으로 발전한다. 지구 반대편의 사례가 '내' 문제와 비슷하다는 깨달음이 관계성이라면, 지구 반대편의 일도 곧 '내' 일이라는 인식이 연대성이다. 연대성은 잘못된 로컬리티를 극복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서울 중심주의를 이기는 데 지역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지역성은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는 점을 언급해야 하겠다. 서울에 대한 피해의식은 로컬리티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오도하기도 한다. 특히 가부장과 결합하여 성차별주의를 확대 재생산할 수도 있다.

 

지역에서 목소리 큰 남성들이 주도하는 연고문화, 혈연문화에서 여성은 대개 배제되어 있으며 지역언론도 여기에 가세한다. 경남 진주는 진보정당 출마자가 성씨가 같은(성씨라는 것은 전형적인 부계혈통주의를 상징한다) 극보수정당 후보자와 단일화를 시도하는 곳이 가능한 지역이다. 서울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혈연 문화가 강력히 발휘되는 곳이 여전히 있다. 이러한 잘못된 로컬리티를 깰 수 있는 힘이 연대성이다. 여성운동은 그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은 부계혈통주의와 연고문화의 결합이 낳은 마초적 로컬리티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할 일은 많다. 로컬리티를 발전시키는 것도 여성이고, 잘못된 로컬리티를 깨는 것도 여성이고, 서울 중심을 깨는 것도 여성의 몫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경을 넘어서 지역과 지역이 만나는 날을 꿈꾼다. 창원과 인도 델리의 여성들이 힘을 모으고, 부산과 미국 어느 지역의 여성들이 만나는 것, 일국주의를 넘어서 대한민국 여성과 지구 반대쪽의 여성이 지역 차원에서 해후하는 날을 꿈꾼다. 국내 지역 차별도 해결하지 못하는 마당에 그건 망상일까? 아니다. 국내 문제의 해결도 때로는 국제적으로 푸는 것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부산에서 우리도 외쳤다"라는 말은 나더라 바꿔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이 바꿔 보겠다. 

 

"부산이 외쳤다."

 

다른 지역은 일부만 외치지만, 내 지역은 도시 전체가 모두 외쳤다는 것이니, 지역적 자긍심이 철철 넘치는 선언이 아닐까.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9/11/18 [12:0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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