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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안데르센 동화들
[정문순 칼럼] '인어공주'와 '눈의 여왕'이 안데르센 동화 전부가 아니다
 
정문순

안데르센이라고 하면, 우리는 인어공주, 눈의 여왕등 신비롭고 환상적인 동화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안데르센 동화들은 때로는 환상이 너무 지나쳐 비극도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거나 현실감각을 잊는 경우도 적지 않다.

 

▲ 안데르센 동화는 190여 개 나라에서 책으로 나왔다. 덴마크의 안데르센 박물관은 전세계에서 발간된 안데르센 동화책을 수집, 전시하고 있다. 사진은 안데르센 박물관이 수집한 1999년 한국 발간 안데르센 동화집이다     © 정문순


가령 추위에 얼어 죽은 성냥팔이 소녀가 하늘나라로 올라가 먼저 죽은 할머니와 재회한 것을 축복이라고 규정할 때 우리는 그것에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까. 성냥을 다 팔지 못하면 알콜 중독자 아버지의 매가 기다리고 있는 집에 돌아가야 하는 불쌍한 아이에게서 가정폭력이나 아동노동 등 당대 현실의 참혹함에 대한 안데르센의 인식은 배어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안데르센의 캐릭터들이 대개 수동적이고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가 살았던 19세기를 고려하더라도 시대적 한계를 짙게 풍기거나 현대적 감각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인어공주의 막내 인어는 왕자 대신 기꺼이 죽어서 물거품이 되는 길을 받아들이며, 완두콩 다섯 알에서 꼬투리가 터질 때 마지막으로 세상에 나온 콩이 될 대로 되어라라고 읊조리면서 제 몸을 썩게 하여 꽃을 피워 아픈 아이의 병을 치유해 주는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상의 사랑과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만큼 합리화될 수 있을까.
 
꼬마 이다의 꽃들에서 어린 이다가 시들어 죽은 꽃들을 관에 넣어 땅에 장사 지내고 다음 해의 부활을 기대하는 모습에서는 아이다움이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가 죽음을 그렇게 태연하고 천연덕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거니와, 안데르센 동화 도처에 죽음이 얼씬거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안데르센 동화가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비판도 일찍이 제기되었다. 자신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왕자를 살해해야 하는 인어공주의 고민, 추위에 동사한 성냥팔이 소녀의 고통을 떠올려보자. 어렸을 때 인어공주 이야기가 내게 힘들었던 것은, ‘물거품의 허망함과 아울러 인어공주에게 자신이 살려낸 왕자의 심장을 칼로 찌르라고 한 마녀의 구체적인 살해 주문이 경악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순응적이고 기독교적인 색채가 안데르센이 남긴 수백 편의 동화 중 전부는 아니다. 안데르센의 작품 중에 그림 없는 그림책이라는 33편의 연작 소설이 있다. 시골에서 서울로 이주한 화가가 밤마다 외로워하자, 하늘에 뜬 달이 자신이 세계 방방곡곡에서 본 재미난 일들을 들려주는 33편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작품이 이루어졌다. 이 작품들 중에는 인어공주등과 다르게 매우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들도 있으며 어린이의 성장이나 교육에 관해 통찰을 안겨주는 것들도 있다. 두 편을 소개해 본다.
 
달이 내게 말했다. 어젯밤에 나는 자그마한 뜰을 들여다보았어. 집으로 둘러싸인 곳이었어. 거기엔 암탉 한 마리하고 병아리 열한 마리가 있었어. 아주 작은 여자애가 주위에서 놀고 있었지. 그래서 닭은 병아리들이 다칠까봐 겁이 나서 꽥꽥거리고 날개를 좍 펴느라 야단이었어. 그때 여자애 아빠가 나와서 야단쳤지. 난 거길 지나갔고 잊어버렸어.
그런데 오늘 밤 말야, 좀 전에 내가 다시 그 집 뜰을 들여다보았어. 아주 조용했는데 갑자기 그 여자애가 나왔어. 닭장으로 조심조심 가는 거야. 잠금쇠를 들어올리더니 닭과 병아리들을 가만히 낚아채 들어 올리는 거야. 닭과 병아리들이 큰소리로 꽥꽥거리고 날아다니고 여자애는 잡으려고 쫓아다녔지. 난 벽에 난 구멍을 통해 보았기 때문에 잘 볼 수 있었어. 난 건방진 걔한테 무척 화가 났어. 그랬는데 다행히 아빠가 나와서 여자애 팔을 잡고 혼냈지. 어제보다 훨씬 더 따끔하게 말야. 여자애는 머리를 숙이더니 커다란 푸른 눈에 눈물이 가득하더군.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니?” 아빠가 물었어.
들어가서 암탉한테 뽀뽀해 주려고 했어요. 어제 한 일을 용서해 달라고 빌고 싶었어요.” 아이가 훌쩍였어. “그런데 그 말씀을 드리기가 겁났어요.”
그러자 아빠는 착한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단다. 나는 아이의 눈과 입술에 입맞춤을 해줬어.
―『그림 없는 그림책중 두 번째 밤 전문
 
부모의 자식 훈육을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다. 아이는 처음 한 행동으로 부모에게 야단을 맞고 나서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신속하게 학습이 이루어졌다. 단 한 번의 아버지 꾸지람만으로도 아이는 가르침을 얻었고 그것을 행동에 옮김으로써 학습이 완료된 것이다. 그러나 하루 만에 아이가 성장한 사실을 어른은 믿지 않는다. 자식 교육에서 어른이 아이를 아무리 타이르고 어르고 공을 들여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자식이 부모의 기대를 훨씬 웃도는 행동을 할 때도 많다.
 
아이는 어른이 계획하고 의도하는 대로만 따르지 않는 존재다. 이를 알지 못하는 아버지는 아이에 대한 편견에 가득 찬 마음으로, 어쩌면 한 번의 학습으로는 내면화하지 않는 자신의 기준으로 아이를 판단한 것이다. 아이의 눈물은 자신의 진실을 몰라주는 어른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아이를 울게 한 아버지는 두고두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야 할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의 학습능력을 믿지 않는 경향이 있는 한, 진짜 교육이 필요한 존재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일 수 있다. 이 이야기보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달이 들려준 스물두 번째 이야기다.

 

▲ 안데르센 동화의 여러 이미지들     © 안데르센 박물관

 
달이 말했다. 난 작은 계집아이가 우는 걸 보았단다. 세상의 사악함 때문에 울고 있었거든. 걔는 선물로 아주 예쁜 각시인형을 받았어. 각시가 어찌나 예쁘고 귀여운지, 고생이라고는 겪어보지 않을 것 같았어.
그런데 키 큰 계집아이 오빠들이 각시를 마당의 높은 나무에 올려 버렸어. 아이는 각시한테 손을 뻗칠 수도 없었고 아래로 내려오도록 도울 길도 없었단다. 그래서 울고 있었던 거야. 각시도 아마 울고 있었을 거야. 각시도 초록색 나뭇가지 속으로 팔을 뻗어 보았고 정말이지 아주 슬퍼하는 것 같았거든.
맞아, 이건 세상의 어려운 일 중 하나야. 엄마가 자주 이렇게 말했잖아. 아아, 각시야, 불쌍 해서 어떡하니. 저녁 별빛이 벌써 가까이 오고 있는데 밤도 곧 올 거야. 아이는 벌써 꼭지 에 점 찍힌 모자를 쓴 작은 도깨비를 보았다고 상상했어. 도깨비는 수풀에서 기어 나오고 있고, 키 큰 귀신들은 걸음이 보이지 않게 춤추면서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고, 각시 가 있는 나무를 향해 손을 뻗치고 있었고, 손가락으로 각시를 가리키며 낄낄대고 있었지.
아이고, 계집애가 얼마나 놀랐을까. “그래도 우리 둘이 죄 지은 일이 없다면, 나쁜 귀신이 우리를 해치지는 않을 거야. 혹시 내가 뭔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몰라.” 아이는 이렇게 생각했어.
, 있다. 다리에 빨간 딱지가 난 불쌍한 꼬마 오리를 보고 웃은 적이 있었지. 뒤뚱거리며 걷는 게 왜 그리 재미있던지. 그래서 웃었지만, 짐승을 비웃는 건 나쁜 짓인 줄 알아.”
소녀는 각시를 올려보며 물었어. “너도 짐승을 업신여긴 적 있니?” 각시는 머리를 흔드는 것처럼 보였어.
―『그림 없는 그림책, 스물두 번째 밤 전문 
   
이 이야기에서 착하게 살자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있을 지도 모르겠다. 동화에서 도덕과 교훈을 찾거나 아이는 착하게 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각은 철저히 아이의 시선에서만 이야기를 읽은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선악에 대한 아이의 판단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된다. 아끼던 인형이 나무 위에 얹힌 것과, 아이가 저지른 지난 잘못은 서로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다. 그러나 둘을 연결 짓지 않으면 아이로서는 이 힘든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다.
 
아기가 태어날 때의 지배적인 감정은 흔히 불안과 공포라고 한다. 공포는 불안이 좀더 커졌을 때 나타나므로 공포도 불안의 일종이다. 유아기나 성장기 아이들의 기본적인 감정 중 하나도 불안이다. 불안은 무지에서 나온다. 세상을 모른다는 것, 경험하지 않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에서 불안은 싹튼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온통 모르는 것투성이다.
 
이 이야기의 계집아이는 아끼던 인형이 나무 위에 올려진 상황을 난생 처음 겪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그동안은 모든 것을 엄마가 해주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으스스함은 불안이 극대화하여 공포에 이른 아이의 심리를 나타낸다. 아이가 이런 상황을 한 번이라도 겪어봤다면 두려움에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계집아이는 혼자 있기는 하지만 자기 집 안에서 일어난 일이고, 엄마는 저녁밥을 차렸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찾으러 곧 나올 것이다. “얘야, 어디 있어? 수프 식는다. 밥 먹자.” 부엌에서 나온 엄마의 이 한마디면 상황은 종료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런 경험이 학습되지 않은 아이로서는 어떻게든 제 힘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엉뚱하게 자신의 잘못을 떠올리는 것은 세상에서 처음 맞닥뜨린 공포와 불안을 나름의 방식대로 달래기 위한 심리에서 나온 것이다. 자신이 처한 곤욕스러운 상황이 언젠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따르는 합당한 징벌이라고 생각할 때 아이에게 공포와 불안은 그나마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이 일을 겪은 이후 아이는 이전과 달라져 있을 것이다.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던 아이는 불안과 공포를 자신의 역량으로 감당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큼 성장해 있을 것이다. 아동의 심리 상태가 어떠한지,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 경험이 얼마만한 값어치가 있는지, 한 개인으로서 아동의 잠재력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 등이 이 짧은 동화 속에 담겨 있다.
 
어디서나 일어날 법한 소박한 이야기들을 통해 아동의 심리를 절묘하게 파악하거나 아동 교육에 대한 통찰력을 안겨주는 작품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안데르센의 동화 세계로서는 뜻밖의 것들이다. 안데르센의 동화들 중 신비롭고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작품들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애니메이션 같은 대중문화에 계속 영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몰랐던 동화의 아버지의 다른 면모들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안데르센의 작품 중 아이의 순수함을 일깨워주거나 성장통을 다룬 동화는 벌거벗은 임금님(원제: 임금님의 새 옷)미운 오리 새끼정도가 우리에게 친숙하다. 아동의 잠재력을 역설하는 안데르센 작품 목록에 몇 개를 더 추가하도록 하자
   
[이미지 출처]
 
<딱다구리 그레이트 북스>. 곽복록 옮김. 동서문화사. 1976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hingil1970&logNo=130014332809&parentCategoryNo=&categoryNo=18&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List
 
안데르센 박물관
http://andersen.museum.odense.dk/eventyr/eventyr.asp?sprogID=60&language=en 
  

iCOOP소비자활동연합회 시민기자단 블로그에 게재한 글을 손본 것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8/01/08 [11:25]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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